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91
◈ 91화
리자드맨의 우물을 통해 NPC들의 마을 ‘갈릴리오’까지 돌아가는 길은 생각보다 훨씬 순탄했다.
“으라차!”
앞서 달려 나가며 리자드맨 전사의 허리를 반으로 접어 버리는 나도석.
꼬리를 쥐고 빙빙 돌리기까지 하는 괴력을 보고 있노라면 헛웃음이 먼저 나왔다.
‘다시 봐도 괴물이야.’
하기야 선택의 미로에서 헬 난이도를 골라 클리어한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몬스터가 눈앞에 있기에 때려잡아 플레이어가 된 것도.
단순히 운동할 때 중량을 늘리고 싶다는 이유로 오직 힘에만 투자한 스텟도 그렇고.
나도석의 플레이 방식은 다른 천외천처럼 규격을 벗어났고, 상식과는 아득하게 떨어져 있었다.
비록 아직 ‘마력’을 방어할 수단이 없어서 지난번 전투는 강서준의 승리로 끝났지만.
‘과연 마력에 대해 방비하게 된다면 어떨까.’
섣불리 누가 우위에 있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나도석이나 강서준이나, 모두 헬 난이도를 클리어한 ‘성장 중인 괴물’이니까.
‘최하나도 그래.’
강서준은 로켓의 등에 올라탄 채로 연신 마탄을 발사하는 그녀를 바라봤다.
마탄은 모두 붉은색.
모든 공격이 ‘번 블러드’에서 기인했다는 증거였다. 실제로 그녀는 아크에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번 블러드’를 해제한 적이 없었다.
‘번 블러드 상시 발동이라…….’
트롤의 심장을 먹어 ‘자가 회복 능력’을 갖춘 그녀였다. 번 블러드를 지독하게 무리해서 쓰질 않는 이상 그녀가 부작용을 겪을 일은 앞으로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렇듯 번 블러드로 꾸준히 HP를 깎아 주면, 자가 회복 능력인 ‘재생’ 스킬의 숙련도가 쌓이는 법.
일거양득(一擧兩得).
그녀는 강한 공격을 상시 사용할 수 있으면서, 이젠 가만히 있어도 강해지는 방법을 터득했다.
타아아앙!
“그나저나 신기하네요. 이 녀석이 그 ‘자이언트 혼 리자드’가 맞나요?”
최하나는 아직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로 로켓을 내려다봤다. 로켓은 열심히 네 발을 놀리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하기야 상상이나 했을까.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서로 죽고 죽이고자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인 사이였는데, 지금은 말처럼 타고 다니고 있었으니.
문득 강서준은 나도석을 향해 말했다.
“그나저나 미안합니다. 혼자만 달리게 해서.”
“신경 쓰지 마. 설령 탈 수 있다 해도 내가 거절이니까.”
나도석은 덩치가 있어 로켓의 등에 올라탈 수 없었다. 현재로서는 강서준을 포함하여 최대 세 명이 한계 인원.
해서 나도석은 던전에 들어온 이후로 줄곧 옆을 달리고 있었다.
그는 꼬리를 잡아 빙빙 돌리던 리자드맨 전사를 멀리 던져 버리며 말했다.
“편함에 중독되면 근손실이 나거든.”
참으로 나도석다운 말이었다.
“그나저나 아직 멀었어?”
“아뇨, 거의 다 왔습니다. 저기 기암괴석이 바로 목적지…….”
후우웅!
그때 강서준은 불현듯 들려오는 바람소리에 류안을 발동했다. 궤적을 보니 나도석의 머리를 정통으로 노리고 날아온 화살이 있었다.
[스킬, ‘파이어볼(F)’을 발동합니다.]화르르륵!
창졸간에 날아간 불덩어리는 손쉽게 화살을 불태워 버렸다. 그와 동시에 나도석은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달려가면서 말했다.
“먼저 가지!”
“……잠깐만요!”
훌쩍 수풀을 넘어 점처럼 멀어진 나도석. 멀리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금세 들려왔다.
강서준이 로켓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로켓. 속력을 내자.”
키이이잇!
수풀을 헤쳐 달려가니 곧, 뻥 뚫린 공터에 도달할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은 한 사람을 두고 넓게 경계를 펼치고 있었다.
그 중심에서 나도석이 신난 듯 큰 목소리로 외쳤다.
“좋아! 다들 근성이 있어! 좋아아!!”
“……무, 무슨 괴물이!”
“덤벼어!!”
“찔러도 죽질 않잖아!!”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씨익 웃는 나도석을 보며, 도리어 둘러싼 전사들이 몸을 떨었다.
나도석은 접근한 사람을 힘껏 들어서 날리거나 쓰러트리는 걸 반복했다.
“하…….”
강서준은 이마에 손을 얹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기암괴석이 가까워서 슬슬 도착할 때도 됐다 싶었는데.
“어? 리자드맨…… 리자드맨입니다!”
멀리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 소리가 난 방향을 돌아보니 한 전사가 이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선 사내는.
“……어라?”
“흠…….”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나도석과 강서준을 멀뚱멀뚱 바라보다, 얼마 안 있어 상황을 눈치채고 새빨갛게 익은 얼굴로 말했다.
“……멈춰! 모두 멈춰어!!”
당장이라도 나도석을 죽일 기세였던 전사들의 행동이 일시에 굳었다. 영문도 모른 채로 멈춘 사람들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꽂힐 뿐이었다.
그는 사방에 손을 저으면서 말했다.
“은인의 일행이야! 모두 예를 갖춰!”
“……네?”
곧 전투를 펼치던 사람들도 강서준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들 화들짝 놀란 얼굴이었다.
그들이 강서준을 모를 리가 없었다.
바로 ‘무녀 카린’의 부하들이니까.
한편 검을 물리고 물러나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아쉬운 듯 혀를 차는 나도석이 보였다.
문득 소름이 끼친다.
‘이 사람. 알면서 일부러……?’
미간을 구긴 강서준은 어쨌든 그렇게, 갈릴리오로 복귀할 수 있었다.
***
기암괴석 사이에 자리한 NPC들의 마을, 갈릴리오.
호른 부족의 호위를 받으며 도착한 그곳엔 어떻게 소식을 들었는지 꽤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지친 안색이었지만 전처럼 그늘진 얼굴은 아니었다.
강서준은 마을을 쭉 둘러보며 말했다.
“많이 변했네요.”
한차례 컴퍼니에 의해 곳곳이 부서졌던 갈릴리오는 고작 일주일도 안 걸려서 꽤 복구된 상태였다.
“아크의 여러분이 도와준 덕분이죠.”
그 말을 들으며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아크의 플레이어들이 이곳에서 꽤 많은 퀘스트를 반복해서 클리어한 듯했다.
‘마을 자재를 모으거나 리자드맨 사냥을 돕거나…….’
만약 최하나가 다치지 않았더라면, 강서준도 이곳에서 갈릴리오의 NPC들로부터 퀘스트를 받아 렙업에 전념했을지도 몰랐다.
은인의 칭호를 가졌으니 경험치도 꽤 쏠쏠했을 것이고, 다른 NPC들의 호감도 많이 샀겠지.
‘아쉬워할 건 없다. 여기에 있었으면 전직은 못 했을 테니까.’
리자드맨 전사를 사냥하는 정도로 12시간을 내리 싸울 수나 있을까.
애초에 여긴 너무 위험했다.
12시간을 내리 싸우려면 수많은 리자드맨 대군을 상대해야만 가능한 일. C급 던전에서 트롤의 둥지에서 했던 짓을 벌인다면 죽을 위기는 수십 번을 넘겨야 할 터였다.
‘그럼에도 실패 확률이 더 커.’
리자드맨이 트롤처럼 생명력이 질긴 놈들은 아니니까.
‘그리고 그랬다면 돌아갈 아크는 진즉에 사라지고 없었을 거야.’
강서준이 아크에 없었더라면…….
링링, 박명석은 어떻게든 던전병 창궐과 트리거, 익스텐더를 막아 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기까지 닿는 데에 얼마나 희생을 치러야 할까.
상상도 못 할 것이다.
“이쪽입니다, 아크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카린의 부하이자, 세아의 전속 호위였던 칼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바람의 쉼터’라는 여관이었다.
그곳엔 이미 소식을 들었는지 김강렬을 비롯하여 많은 플레이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김강렬은 한달음에 달려와 말했다.
“축제가 그렇게 성황이었다면서요.”
“……네?”
“저흰 여기서 뭐 빠지게 퀘스트하고 사냥하고 있었는데, 누구는 최하나 님의 공연도 보고…… 그렇게 좋았다죠?”
말에 돋은 가시가 한결 날카롭다. 다소 뾰로통한 말투. 찔릴 것만 같았다.
강서준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그런 것치고는 꽤 신나게 레벨 업을 하신 것 같습니다만.”
“……티 납니까?”
“온몸에 자신감이 뿜어져 나옵니다. 도대체 얼마나 올린 겁니까?”
“하하! 여기 완전 노다지입니다. 일주일간 벌써 10업이나 했다니까요.”
김강렬의 레벨은 얼추 110에 근접하는 수준이었다. 제아무리 C급 던전에서의 사냥이었다고는 하나, 일주일 만에 10업인 것이다.
살짝 배 아프려고 하네.
“그나저나 강서준 님. 딱 적당할 때 오셨습니다.”
“네?”
“안 그래도 오늘 수상한 정황을 포착했거든요.”
강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단 바람의 쉼터로 들어섰다. 안쪽은 목재로 만들어진 주점이 1층이었고, 2층부터는 숙소라고 했다.
“자세히 설명해 주시죠.”
“네.”
원목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자, 안쪽에서 점원이 나왔다. 의외는 그 점원의 인상착의가 꽤 익숙하단 건데.
“……세아?”
“당신이 ‘케이 님’이시군요. 은인을 뵙습니다.”
이 마을의 족장인 오가닉의 딸이자, 이전 퀘스트에서 가장 중요한 열쇠였던 그녀는 지금 ‘하얀 앞치마’를 두르고 있다.
무슨 일인가, 하니 김강렬이 빠르게 설명해 줬다.
“목숨을 구해 주신 은혜를 갚고자 요리를 하신답니다. 족장님도 허락하신 일이라 거절할 명분은 없었고요.”
“그런가요.”
“게다가 음식 솜씨도 대단하십니다.”
확실히 세아가 가져온 스프는 냄새부터 기가 막혔다. 찍어먹기 좋게 옆에 놓인 빵은 모락모락 김이 피어났다.
“방금 만들었어요. 드셔 보세요.”
안 그래도 시장했던 강서준은 일행과 시선을 마주하며 스프부터 떴다. 옆에서 최하나와 나도석이 식기를 달그락 거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문득 도깨비감투가 흔들렸다.
“……알았어.”
영혼이 연결된 라이칸과 로켓의 의사는 굳이 말로 묻질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강서준은 그들을 바람의 쉼터 내에서도 아주 구석진 곳에 소환했다.
“왕이시여…… 영광입니다.”
“됐어. 세아 님? 이들에게도 음식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세아는 금세 스프를 떠와서 라이칸과 로켓에게 건넸다. 둘은 함지박 웃으면서 음식에 코를 박았다.
이놈들 안 먹어도 되면서, 먹는 걸 밝히고 있다. 고롱이를 닮아 가나.
강서준은 일단 그들을 일별하며 다시 김강렬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미안해요. 마저 설명해 주겠어요?”
“……네. 일단 퀘스트의 진척 상황부터 알려 드리죠.”
강서준이 잠시 아크에 다녀오는 동안 김강렬은 무던히도 퀘스트를 수행해 왔다. 레벨을 올리는 목적도 있었지만, 사실 진짜는 정보 수집에 있었다.
그들이 어떤 퀘스트를 진행하고 얼마나 풀이했느냐에 따라서 앞으로의 시나리오는 난이도부터 달라질 테니까.
“오가닉 족장님이 저희를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다행히 던전 내에 있는 흩어진 호른 부족의 전사들도 꽤 많이 규합시켰고요.”
김강렬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문제는 어디에서도 ‘플레이어의 흔적’을 발견하질 못했다는 겁니다.”
“……그건 무슨 소리죠?”
“아무래도 하르트, 그 사람이 데리고 간 플레이어들에게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강서준은 미간을 좁히며 두 가지 가능성을 추려 봤다.
‘몬스터를 선택해서 그쪽을 공략하고 있거나, 이미 전멸을 당했거나…….’
김강렬이 말했다.
“한데 오늘 수상한 정황을 발견했습니다. 인간들을 잡아 둔 리자드맨의 감옥이 있다는 군요.”
“하르트의 팀원들이 그곳에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모릅니다. 하지만 확인해 볼 가치는 있어요.”
앞서 말한 두 가지 가능성을 전부 부정한다면, 아마 이번 소문의 주인공은 아크의 플레이어일 확률이 높았다.
여태 붙잡혀 있었으니 소문조차 나질 않은 거겠지.
하지만 그들이 쉽게 붙잡힐 전력은 아니었을 텐데. 가짜 케이라고는 해도 전투력 하나는 진짜였으니까.
‘……확신하진 못해. 상대편엔 리자드맨만 있는 게 아니니까.’
컴퍼니가 가세한 상황이었다. 또한 그들 중엔 천외천에 버금가는 플레이어가 있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김강렬이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게다가 내일 ‘처형식’을 거행한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공교롭군요.”
“네. 무엇보다 문제는 그 위치입니다.”
김강렬은 가방에서 지도를 꺼내어 펼쳤다. 호른 부족의 상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그가 찍은 곳은 남쪽의 후미진 곳.
“……함정이군요.”
시나리오 퀘스트가 펼쳐지는 장소는 북쪽. 반면 처형식이 벌어진다는 감옥이 남쪽에 있는 것이다.
뻔한 수작이었다.
“이곳까지 시간 내에 다녀오는 건 무리입니다. 가는 것만 해도 하루는 족히 걸릴 거리예요.”
즉, 이건 어느 쪽을 선택해도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양자택일의 함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