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94
◈ 94화
[스킬, ‘파이어볼(F)’을 발동합니다.]콰아앙!
다가오는 리자드맨 전사의 면상에 불꽃을 때려 박으면서 몸을 회전시킨다. 숨 쉴 틈도 없이 찔러 오는 창을 피하며 가시를 뽑아내고, 그대로 놈의 목젖을 긋는다.
키익……!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지는 리자드맨 전사!
그 뒤편으로 또 다른 리자드맨이 달라붙었다.
틈을 파고들어 길게 튀어나온 주둥이에 가시를 꽂아 넣기까지 물 흐르듯 이어졌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스킬, ‘초상비(F)’를 발동합니다.]가벼운 발놀림으로 찔러 오는 창과 검을 피하며 공중을 빙글 돈 강서준은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스킬, ‘마력 집중(E)’을 발동합니다.]콰아아아아앙!
또 한차례 리자드맨 전사를 무너뜨린 강서준은 호흡을 정돈하며, 가까이에서 전투를 펼치던 김강렬의 곁에 섰다.
“괜찮습니까!”
“……네! 버틸 만…… 으읏, 합니다!”
김강렬을 비롯한 아크의 플레이어들은 의외로 큰 활약을 보이고 있었다.
지난 일주일간 퀘스트를 독식하며 렙업을 걸친 성과일까. 스킬과 과학을 십분 활용하니 그들도 전장에서 꽤 빛나는 것이다.
사실 레벨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플레이어의 각양각색의 스킬은 전장에 수많은 변수를 창출해 내는 요인이었다.
“헉, 헉…….”
“끝도 없이 튀어나오네 진짜!”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 공격은 무뎌지고, 점차 부상도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다는 점이었다.
장기전은 무리였다.
“조금만 더 버텨요! 족장님이 큰 기술을 준비하는 모양이니까.”
“……알겠습니다!”
플레이어들을 독려한 강서준은 한쪽에서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거구의 리자드맨에게 접근했다.
컴퍼니의 몬스터!
이렇듯 전장의 곳곳엔 컴퍼니의 손길이 닿은 ‘특수 개체’가 있어서, 여러모로 골치 아픈 경우가 발생했다.
“그만 좀 나와라. 제발……!”
지척에 다다른 놈의 꼬리를 밟고 빠르게 등허리에 오른 강서준은 두 눈을 번뜩이며 허공을 움켜쥐었다.
이놈의 약점도 가짜 자이언트의 혼 리자드와 같이 배 아래에 있었지만, 거기까지 파고들 필요는 없었다.
‘요점은 거길 파괴하면 된다는 거야.’
그의 손엔 어느새 파이어볼이 생성되어 있었다. 크기가 커질수록 불주먹이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공격은 크게 터져 나갔다.
[조합 스킬, ‘파이어 익스플로전(F)’을 발동합니다.]내리찍은 주먹 아래로 거대한 폭발이 생성되며, 거대 리자드맨은 거품이 터져 나가듯 사방에 흩날렸다.
핏방울이 마치 비처럼 내렸고, 어느 순간 호른 부족의 전사들이 썰물처럼 쑤욱 어딘가로 빠져나갔다.
기다렸던 때였다.
“흐아아아아압!!”
오가닉의 함성과 함께 가공할 만한 기세로 마력이 휘몰아쳤다. 당장 흐름만 봐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저 인간…… 이 일대를 완전히 초토화시킬 셈인가.
어마어마한 마력은 오가닉의 창으로 몰려들었고, 그 창엔 일대를 뒤집어 버릴 폭풍이 휘감겼다.
그리고 약간의 사전 동작과 함께 창은 정면으로 내질러졌다.
크콰카카카카칵!!!
‘……파도잡이의 창은 애들 장난에 불과했었군.’
오대수의 창이 파도를 일으키며 적을 유린하던 때가 떠올랐다. 그 무기도 꽤 쓸 만했었는데.
지금 오가닉의 투창을 보면 괜히 부끄러워질 정도였다. 그때의 공격은 물장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해일이야.’
실제로 오가닉의 창이 지나간 자리는 자연재해에 휩쓸린 것처럼 수많은 리자드맨이 갈가리 찢겨 나부끼고 있었다.
큰 소음과 함께 호수의 한쪽에 쾅 꽂힌 오가닉의 창.
터무니없지만 그 근처에 있던 물은 사방으로 밀려나가고 없었다.
오가닉은 서서히 창이 있던 자리로 호수의 물들이 들어차는 걸 확인하며 말했다.
“전사들이여…….”
오가닉의 말에 호른 부족의 전사들이 능숙하게 자세를 잡았다. 당황하며 물러났던 리자드맨 전사들이 다시 자리를 잡을 시간은 없었다.
“……목숨을 바쳐라!”
“우와아아아아아!!”
오가닉을 필두로 노도와 같은 기세로 뻗어 나가는 호른 부족의 전사들!
아크의 플레이어들도 뒤처질세라 재빠르게 창이 뚫어 낸 길을 따라 내달렸다.
물러났던 리자드맨 전사들이 다시 달라붙었지만 전처럼 꽉 막힌 길은 아니었다.
금세 콜로세움의 앞까지 다다랐다.
[두 번째 조건이 공개됩니다.]+
2. 왕의 자격을 갖출 것.
* 현재 퀘스트를 수행하는 이 중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자는 ‘4명’입니다.
+
문득 오가닉의 머리 위로 붉은 별이 떠올랐다. 호른 부족의 족장이니만큼 ‘왕의 자격’쯤이야 갖췄을 줄 알았다.
의외는 그 숫자인데.
‘네 명이라고?’
미간을 좁힌 강서준은 주변을 둘러봤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머리맡에도 붉은 별이 떠올라 있었다.
‘도깨비의 왕이 적용되는구나.’
그렇다면 도합 세 명의 후보는 예상 가능했다. 강서준, 오가닉…… 그리고 나머지는 리자드왕이겠지.
‘다른 한 명은?’
더 말할 것도 없이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호른 부족의 전사들이 호수를 등 뒤에 두고 배수의 진을 친 순간이었다.
[세 번째 조건이 공개됩니다.]+
3. 왕의 무기를 소유할 것.
* 현재 퀘스트를 수행하는 이 중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자는 ‘4명’입니다.
+
이번엔 어느새 회수한 오가닉의 창과 강서준의 두 주먹 위로 붉은 별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니 그의 건틀렛도 사실 ‘왕의 무기’였다.
‘플랜트 킹을 죽여서 얻은 무기니까.’
어쨌든 강서준은 각종 조건을 통과하며 콜로세움에 입장할 수 있었다.
그 안에는 전투 준비를 마친 일련의 부대가 있었다.
리자드왕의 무리.
한데, 그곳에서 강서준은 의외의 인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헛웃음이 나온다.
“……네가 왜 여기서 나와?”
머리 위로 붉은 별 하나를 띄운 채로 리자드왕의 옆에 선 한 남자.
그의 흑색 단검 위에도 붉은 별이 떠 있었다.
강서준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하르트.”
***
빠르게 길을 가로지른 최하나는 어두컴컴한 동굴을 들여다봤다. 목적지인 리자드맨의 감옥이었다.
한편 카린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다소 놀란 눈치였다.
“당신들 대체 정체가 뭐예요?”
“…….”
“어떻게 단둘이서 리자드맨 부대를 전멸시킬 수 있어요?”
그 말에 최하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동굴로 다가갔다.
단순히 그들이 더욱 강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란 걸, 구태여 말로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최하나도 꽤 놀라고 있었다.
나도석.
강한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더한 괴물이었으니까.
최하나는 애써 생각을 털어 내며 동굴을 쭉 둘러봤다. 카린도 미련을 벗어던지고 나지막이 말했다.
“피 냄새입니다.”
어둠을 가로질러 동굴을 따라 이동했다. 지독한 혈향은 갈수록 날카롭게 코를 찔러 왔다.
멀리 걷질 않아도 한쪽에 각종 도구들이 널브러진 게 보였다. 고문이라도 한 건가?
“……이놈들 대체 뭘 하려는 거지?”
“우욱……!”
헛구역질을 하는 카린을 뒤로하고 최하나는 한쪽 벽에 전시되듯 널브러진 리자드맨의 사체를 확인했다.
온몸에 새파란 멍이 가득했고, 잘리거나 아스라진 신체 일부는 곳곳에 쓰레기처럼 버려져 있었다.
나도석은 한쪽 테이블 위에 있던 종이컵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누군가가 이곳에 있었군.”
“……그것도 서울 사람이네요.”
믹스 커피를 뜯어 먹은 흔적이 느닷없이 던전에 있을 리가 없었다. 서울의 누군가가 이곳에서 꽤 긴 시간을 머물렀다는 증거였다.
범인은 빤했다.
“결국 여기도 컴퍼니의 흔적인 거죠.”
최하나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단 더 들어가죠. 안쪽에서 소리가 들려요.”
번 블러드를 상시 발동하는 그녀는 신체 능력도 상당히 올라간 상태였다. 먼 거리의 소리도 집중하면 들을 수 있었다.
[스킬, ‘방음(F)’을 발동합니다.]한편 소리 없이 발사된 마탄은 별안간 리자드맨 전사의 미간을 꿰뚫었다. 놈은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지도 못하고 툭 쓰러졌다.
킷……!
꺾이는 골목에서 우연히 튀어나온 리자드맨 전사는 나도석이 그대로 머리를 돌려 버리자 조용히 쓰러졌다.
“양갈래 길이야.”
“……어떡하시겠어요?”
“난 오른쪽으로 가지.”
최하나는 나도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여기까지 오면서 나도석의 무력은 익히 봐 와서 걱정할 건 없었다.
“뭔가 발견하면 바로 연락해요.”
“그래.”
“카린 님은 저랑 이동하죠.”
카린을 데리고 왼쪽으로 쭉 이동한 최하나는 철창 속에 짐짝처럼 쌓여 있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죽은 듯이 누워서 미동도 하질 않았다.
“……살아 있는 것 같은데.”
철창을 가뿐히 부수고 들어선 최하나는 그들의 코에 손을 가져다대고 호흡을 확인했다.
미약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최, 최하나 님! 저걸 부숴요!”
뒤따라 들어온 카린이 한쪽 벽에서 뭉게뭉게 무언가를 만들어 내던 한 기구를 가리켰다.
피슉!
반문할 것도 없이 날아간 마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구를 박살 냈다. 안쪽에서 녹색 물이 쭈욱 흘러 바닥을 적셨다.
카린은 급하게 주머니에서 몇 개의 풀을 꺼내어 입에 넣어 씹었다.
“슈테른의 풀입니다. 지독한 수면 효과를 갖고 있죠.”
“……그렇군요.”
“최하나 님도 이거 드세요. 슈테른의 풀을 불태워 만든 연기는 10분 이내에 깊은 잠에 빠지게 만듭니다.”
하지만 최하나는 고개를 가로저어 정중하게 거절했다. 굳이 해독할 필요가 없는 물질이었다.
[전용 장비 ‘마탄의 리볼버’의 전용 스킬, ‘번 블러드’를 발동 중입니다.] [‘슈테른의 풀’의 수면 효과를 억제합니다.]피를 불태우는 기술이었다. 당연히 그녀의 몸속에 악영향을 끼치는 수면 연기 따위는 피를 불태우는 과정에서 같이 불살라질 뿐이었다.
최하나는 플레이어들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혹시 그 풀로 이 사람들을 깨울 수 있겠습니까?”
“네? 잠시만요.”
카린은 풀을 으깨어 즙을 만들어 냈다. 다행히 그녀의 가방엔 슈테른의 풀을 해독할 약초가 많아서 해독제를 만드는 건 금방이었다.
곧 플레이어들이 꿈틀거리며 눈을 떴다.
“으음…….”
“……여긴 어디지?”
잠시 몽롱한 시선을 내보이던 그들은 최하나를 보더니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천사?”
“개소리 그만하고 정신 차려요.”
“아, 최하나 님.”
하나둘 머리를 털며 일어난 플레이어들은 주변을 둘러보기 바빴다. 꼴에 레벨은 좀 높다고 상황 판단만큼은 느리진 않았다.
금세 긴장한 얼굴의 그들.
최하나는 자초지종을 물어봤다.
“……전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케이 님을 따라서 동쪽으로 이동했던 것 같은데.”
“눈을 떠 보니 여기였다고요?”
“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우린 얼마나 잠들어 있었던 건가요?”
최하나는 한숨을 내뱉으며 그들에게 간략히 정보를 건네줬다. 내용을 들은 그들은 황당한 얼굴을 할 뿐이었다.
“……일주일이나 잤다고요?”
“지금 C급 던전 공략은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고?”
“이곳에 컴퍼니가 있다고요?!”
놀라기만 하는 그들의 얼굴을 보면 괜히 바보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기야 하르트를 진짜 케이라고 믿을 정도로 안목이 구더기 같은 자들이 아닌가.
‘레벨만 높은 가짜 랭커들.’
최하나는 평가를 신랄하게 깎아내리며, 바로 나도석에게 연락을 했다.
어쨌든 목표로 했던 이들은 찾았으니, 이젠 돌아갈 일만 남아 있었다.
한데 나도석은 의외의 답변을 했다.
-이쪽으로 와라. 인질이 더 있다.
어쩔 수 없이 플레이어들을 이끌고 오른쪽으로 쭉 이동한 최하나는, 곳곳에 널브러진 리자드맨의 사체를 밀어내며 목적지에 다다랐다.
카린도 뒤따라오더니 크게 놀라며 말했다.
“스, 스승님?”
구석진 곳에서 나도석은 볼품사납게 굶주린 수많은 사람들을 구출하고 있었다.
그중 백발이 무성한 한 노인.
피골이 상접한 몰골로 벽에 매달려 있기에, 최하나는 정확하게 구속구만을 저격으로 끊어 냈다.
힘없는 종이인형처럼 나풀나풀 쓰러지는 노인은 달려 나간 카린의 품에 안겼다.
“정신 차리세요…… 스승님!”
카린이 바쁘게 노인의 입에 HP포션을 흘려 넣었다. 외관과는 다르게 큰 부상은 아니었는지 잠시 몸을 부르르 떤 노인은 곧 눈을 떴다.
“으으으…… 안 돼.”
제정신은 아니었다.
노인은 흐릿한 눈동자로 허공을 응시하며 손으로 휘휘 저으며 말을 이었다.
“싸워선 안 돼. 막아야 해.”
같은 말을 반복하는 노인을 내려다보던 카린은 입술을 짓씹었다. 그녀가 보충 설명을 해 줬다.
“스승님은 미래를 보십니다. 제 예지력은 비교조차 안 될 수준으로 정교하게 이미지를 그려 내죠.”
“……지금 미래 예지를 하고 있는 겁니까?”
“아무래도요.”
카린의 말에 사람들은 저절로 노인의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무슨 예지를 하려는지는 몰라도 궁금해지는 게 당연한 심리였다.
노인이 말했다.
“……마지막 조건은, 남은 인구수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