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96
◈ 96화
김강렬은 거친 숨을 토해 내며 코앞까지 다다른 리자드맨의 배를 꿰뚫었다.
피가 역류하면서 그의 손아귀가 전부 피로 물들었지만 그것까지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검을 뽑고, 다시 휘둘렀다.
전장은 그저 끝없는 전투의 연속. 숨이 남아 있는 한 전력을 다해 싸우고 또 싸울 뿐이었다.
하지만 잠깐 집중이 흐트러졌을까.
그는 어깨에 꽂히는 창을 막을 수 없었다.
“크윽……!”
그리고 그때.
머리 위가 뜨거워진다 싶더니, 작은 흑룡 한 마리가 흑염을 토해 내며 전장을 가로질렀다.
강서준이 두고 간 펫 ‘고롱이’였다.
키, 키이이잇!
고롱이가 지나간 자리로 리자드맨들은 렉이라도 걸린 것처럼 머뭇거렸다. 기회였다.
호른 부족의 전사들은 경직된 놈들을 향해 날카로운 검격을 쏟아부었다. 덕분에 잠시 숨을 돌릴 여유가 생겨났다.
“허억…… 괘, 괜찮으십니까?”
거친 숨을 토해 내며, 얼굴까지 피로 뒤덮인 몰골. 김강렬의 부대원인 공간 이동 능력자 ‘김훈’이었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김훈이 달라붙어 특수 포션 치료를 감행하자, 상처 부위는 빠르게 아물었다. 김강렬은 겨우 통증을 참으면서 물었다.
“……상황은 어때?”
“최악입니다. 당장 고롱이 덕분에 버티고는 있지만 다들 한계까지 부딪친 것 같아요.”
숫자가 너무 열세였다.
리자드맨 전사들은 개별적인 전투력은 다소 낮더라도, 그 숫자가 방대한 데에 있어서 강점인 몬스터.
반대로 개개인의 실력은 뛰어나도 결국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치는 호른 부족의 전사들이었다.
김강렬도 오래 버틸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조금 더 버텨야 해. 네 번째 조건까지 나왔으니…… 이제 금방이야.”
용의 인장을 차지할 조건이 무언지 알아내진 못해도, 그 조건이 몇 개인지는 알고 있었다.
도합 다섯 개의 조건.
그것만 모두 성공시킨다면 이 지독한 전장의 승자는 그들의 몫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쉽지 않았다.
쿠아아아아앙!
한쪽에서 거구의 리자드맨이 나타나더니 호른 부족의 전사를 공중으로 날려 버렸다.
하늘로 비상한 전사는 그대로 바닥에 추락하면서 큰 부상을 입었다.
그렇게 생긴 구멍.
겨우 전선을 유지하던 호른 부족이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그 무리는 아크의 플레이어에게 가중됐다.
일단 김훈은 빠르게 공간 이동으로 호른 부족의 전사를 무사히 데리고 돌아왔지만.
문제가 남아 있었다.
“이분까지 치료하면 남은 포션은 단 한 병이에요.”
김훈의 능력을 높이 사서 갖고 있던 모든 포션을 맡겼던 터였다. 하지만 수많은 전투로 인해 부상자는 늘어났고, 결국 한정된 포션은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김강렬이 입술을 짓씹으며 말했다.
“안 되겠어. 직접 상황을 봐야겠어.”
“……네?”
“올라가자.”
김강렬의 의도를 알아차렸을까.
김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김강렬을 붙들고 허공으로 공간 이동을 개시했다. 그들의 몸이 상공 30M쯤에 떠오르자 멀리 리자드맨의 행렬이 보였다.
아직 여기까지 다다르지 못한 리자드맨의 숫자도 많았다.
“이대로는 개죽음이야.”
“……그전에 강서준 님이 일을 성공시키길 바라야죠.”
“아니, 버틸 수 없을 거야.”
서서히 추락하는 시점에서 재차 공간 이동으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김강렬은 치열하게 싸우는 전사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말했다.
“콜로세움으로 들어가야겠어.”
“……이대로 들어가면 안쪽으로 리자드맨을 잔뜩 끌고 들어가는 꼴이 될 겁니다.”
여태 길목을 막고 전선을 세운 이유가 뭐겠는가. 가능한 리자드맨이 콜로세움에 개입할 여지를 줄이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김강렬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말했다.
“이대로 있으면 우리가 전멸할 거야.”
포션도 다 떨어졌고 전사들도 상당수 지친 시점이었다. 여기서 무리해서 더 버틴다고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여긴 너무 개활지야. 콜로세움을 끼고 싸우는 게 우리한텐 훨씬 이점이 될 수 있어.”
제아무리 콜로세움에서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해도, 여기서 죽치고 있는 것보단 나으리라.
하지만 그때였다.
“……저거 뭐야?”
전장을 둘러보던 김강렬은 문득 하늘 위로 쏘아진 무언가를 확인했다. 적어도 리자드맨 전사들이 쏘아 낼 만한 것들은 아니었다.
퍼버버버벙!!
하늘에서 폭죽처럼 터져 나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 거기서 새하얀 연기가 흩뿌려져 전장을 통째로 뒤덮기 시작했다.
“대체 이게 무슨…….”
[‘포자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습니다.]“……뭐?”
순식간에 사방은 하얀 연기로 뒤덮여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안개 속에 휩싸이고 말았다.
***
잠시지만 강서준의 머릿속은 복잡한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컴퓨터처럼 재빠르게 움직였다.
포자의 왕, 질투의 익스텐더.
정보는 많았다.
그리고 다섯 번째 조건이 성립됐다는 말과 함께, ‘용의 인장’을 하르트가 차지하게 됐다는 문장을 읽었다.
강서준은 바로 상황을 이해했다.
‘젠장……!’
어느새 반투명한 구체 너머로 들어간 하르트는 느긋한 얼굴로 용의 인장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강서준이 개입할 여지는 없었다.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는 몰라도, 현시점에서 이 던전의 다섯 번째 조건을 성립한 이는 단 한 명.
던전 내에 가장 많은 생명체를 보유한 집단은 ‘하르트’의 포자 바이러스 쪽이니까.
‘……그럼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수는.’
머리가 팽팽하게 돌아갔다.
용의 인장을 하르트가 쥐게 된다면 상황이 어찌 흘러갈지 눈앞에 얼핏 보이는 듯했다.
과연 이 던전의 앞날은 어찌 될까.
생각은 많았지만 행동은 짧았다.
휘이익!
하르트가 용의 인장을 손에 쥐기 전에 강서준이 던진 파이어볼은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닿은 곳은 오가닉의 뒤통수였다.
퍼엉!
약간 그을릴 정도로 손상을 입은 오가닉. 그가 의문 어린 눈으로 강서준을 바라볼 즈음.
[당신은 ‘팀 킬’을 고의적으로 수행했습니다.] [퀘스트에 반하는 행동입니다.]동시에 하르트가 용의 인장을 손에 쥐었다.
[포자의 왕, ‘질투의 익스텐더 : 하르트’는 용의 인장을 차지했습니다.] [던전의 소속된 모든 이들에게 하르트는 절대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한창 전투를 펼쳐던 리자드왕과 오가닉의 행동이 굳고, 리자드맨을 비롯하여 호른 부족의 전사들도 석상이 된 것처럼 멈춰 버렸다.
하르트가 명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흐음. 이런 느낌이었나.”
놈은 흡족한 듯 투명한 벽을 넘어 밖으로 나왔다. 마치 신이라도 된 것처럼 그가 다시 내린 명령은 이것이었다.
“꿇어라.”
쿠구궁!
억지로 리자드왕의 무릎이 꿇리고, 오가닉도 두 무릎이 바닥에 닿았다. 거절할 수 없는 절대적인 명령이었다.
하르트는 무릎을 꿇은 강서준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케이. 네놈도 결국 별것 아니구나.”
“……크윽.”
“말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
하르트는 오만한 눈으로 강서준을 내려다봤다. 질투욕의 익스텐더……. 놈의 욕구를 시스템 메시지로 확인한 순간부터 깨달은 게 있었다.
“너, 날 질투했구나.”
“……뭐?”
“케이가 그렇게 부러웠냐?”
놈은 참을 수 없는지 재앙의 유성검을 강서준의 어깨에 꽂아 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강서준의 주먹이 놈의 얼굴을 가격했다.
[조합 스킬, ‘파이어 익스플로전(F)’을 발동합니다.]콰아아앙!
한 대 크게 얻어맞은 놈은 뒤로 나자빠지면서 몇 바퀴 바닥을 굴렀다. 겨우 균형을 잡으며 놈이 말했다.
“……어떻게 속박에서 벗어났지?”
“시스템의 제약을 벗어나는 방법은 많아. 난 플레이어니까.”
NPC처럼 시스템에 의해 규정된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이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 로그인한 플레이어.
시스템을 아는 만큼 빠져나갈 구멍도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하르트도 그 방법을 금세 깨달았다.
“그래서 오가닉을 공격한 거였군.”
“너처럼 음흉한 방법은 아니었지.”
강서준은 콜로세움 위쪽에서 바람을 타고 안으로 흘러 들어오는 연기를 확인했다.
하르트가 이 던전에 벌인 마법이 무언지 쉽게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포자 바이러스를 살포하는 것만으로도 다섯 번째 조건을 훔쳐 갈 수 있을 줄이야.”
하기야 ‘포자 바이러스’도 일종의 생명이었다. 죽음의 화원에서 던전 브레이크를 통해 파생되는 유일한 ‘기생 몬스터’가 아닌가.
“머리 좀 썼네.”
강서준은 초상비를 발동시키며 빠르게 하르트에게 접근했다. 놈이 재앙의 유성검을 맞부딪치며 공격을 회피했지만 소용은 없었다.
“크윽…… 말도 안 되는!”
면상에 주먹이 또 꽂혀 뒤로 나뒹군 하르트는 억울한 음성을 토해 냈다.
불과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이었다. 꽤 비등비등했던 전투 실력은 어느새 강서준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일주일이면 강산도 변할 시간이거든.”
후우욱, 콰앙!
움켜쥔 파이어볼이 바닥에 크레이터를 만들며 폭발했다.
용케 피해 낸 하르트였지만 초상비를 극성으로 발휘하는 강서준을 피할 바는 아니었다.
“전직을 하고도 남을 시간이고.”
“……전직을 했다고?”
“그래. 이제야 상황 파악이 돼?”
게다가 그의 비약적인 전투력 상승에 지대한 영향을 준 건,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전쟁이었다.
수많은 리자드맨이 뭉쳐 있는 곳.
막말로 끝없는 몰이사냥의 현장!
평균 레벨도 낮은 그에겐 더더욱 경험치가 쏟아질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크악…… 이럴 순 없어! 갓 전직한 주제에 어떻게!”
“말했잖아. 난 케이라고.”
“이익!!”
강서준의 주먹이 놈의 복부에 꽂히고, 빠르게 접근하며 한 번 더 놈의 턱을 날려 버렸다.
역시 레벨이 높아서 그런지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 고탄성 샌드백처럼 무수하게 두드려 맞았음에도 놈은 버티고 있었다.
“단단하긴 더럽게 단단하네.”
그리고 그때였다.
“……으아앗! 놈을 막아!!”
하르트가 대뜸 외친 함성은 예상 못할 효과를 불러왔다.
쿠구구궁!
순식간에 강서준을 향해 다가오는 날카로운 창. 그것도 두 개나 되는 것들이 노도와 같은 기세로 그를 찔러 왔다.
“……!”
류안과 초상비로 피할 수야 있었지만, 그 공격에 내포된 충격까지 어찌 막을 수 있을까.
콰지지직!
튕겨 나간 강서준은 겨우 균형을 잡으며 일어섰다. 숨 쉴 틈도 없이 그에게 공격은 이어지고 있었으니까.
‘……하르트가 깨닫질 못하길 바랐는데.’
그래서 정신없이 시작부터 놈을 몰아붙였던 것이다. 주먹으로 머리를 계속 가격한 이유도 생각을 여기까지 잇지 못하게 만들기 위함이었고.
하지만 운이 좋게도 놈이 외친 한마디는 강서준을 바로 수세에 몰리게 만들었다.
‘리자드왕과 오가닉이라…….’
놈을 막으라는 한마디가, 이 던전의 보스급 둘을 동시에 움직이게 만들어 낸 것이다.
오가닉은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
“으으윽…… 몸이.”
“거부하지 마십시오. 머리가 터져 버릴지도 모르니.”
실제로 오가닉의 머리통은 폭발 직전인 것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시스템의 명령을 억지로 거절하려 했기에 벌어진 현상이었다.
“은인에게…… 이럴 수는 없.”
“전 이미 당신의 뒤통수를 쳤다고요.”
“크윽……!”
콰아앙!
공격을 피해도 충격은 고스란히 누적되고 있었다. 그나마 초재생이 상처를 회복시켜 줬지만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마력이 전부 소진된다면 초재생은 더는 활동하질 않는다.
“크하하핫! 꼴사납구나!”
다시 여유를 찾은 하르트는 호른 부족의 전사 한 명의 허리를 굽히고, 이를 의자 삼아 앉았다.
“놈을 죽여라. 감히 내게 반항한 죗값을 치르게 해야지.”
놈의 서늘한 명이 떨어짐에 따라서 오가닉과 리자드왕의 공격은 더욱 매섭게 다가왔다.
개개인의 레벨이 200에 근접하는 괴물들의 합공.
버텨 낼 재간이 없었다.
“흐으으읍……!”
결국 강서준도 최후의 수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장비 ‘도깨비 왕의 감투’의 전용 스킬, ‘이매망량’을 발동합니다.]순식간에 그의 외투 위로 도깨비 갑주가 생성됐다. 또한 주변에서 떠돌던 영혼들이 일제히 그 안으로 흡수되면서 강서준의 힘을 더욱 보완해 줬다.
한 번, 오가닉과 리자드왕의 공격을 상쇄시킬 수 있었다.
콰아아아앙!
‘……미친? 일격에 영혼이 모조리 뜯겨 나갔어.’
괜히 200레벨이 아니었다.
그래도 잠시 생겨난 여유 속에서 강서준은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방법을 찾아야 해.’
베스트는 오가닉과 리자드왕을 쓰러트리고 하르트까지 처치하는 거겠지.
하지만 단언한다.
‘불가능.’
공략법을 달리해야 했다.
‘적어도 한 명이라도 떼 놓을 수만 있다면?’
거기까지 머리를 굴렸을 때, 백귀들에게서 강렬한 의지가 전달됐다. 당장이라도 목숨을 불사르겠다는 라이칸과 로켓의 마음가짐이었다.
그리고 달려드는 오가닉을 보면서 강서준의 머릿속에 전류가 파지직 흘렀다.
‘……방법이 있어.’
이 상황을 타개할 단 하나의 방법.
시스템의 제약을 벗어날 수 있는 그 작은 틈이 방금 두 눈에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