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99
◈ 99화
사태는 금방 진정됐다.
구심점을 잃어 멀리 흩어지는 마력과 화살표로 인해 허물어지는 하르트의 모습.
강서준은 참았던 숨을 뱉어 냈다.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클리어했습니다.] [레벨에 비해 믿을 수 없는 업적을 해냈습니다. 보상을 준비 중입니다.] [……!] [막대한 경험치를 습득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중략)……
[레벨이 올랐습니다.]끝도 없이 올라가는 메시지의 끝엔 C급 던전의 시나리오 퀘스트를 클리어한 ‘최종 보상’이 걸려 있었다.
강서준은 자신의 눈앞에 둥둥 떠 있는 인장을 바라봤다.
[특수 아이템, ‘용의 인장’을 습득했습니다.] [칭호, ‘의 주인’을 습득했습니다.]잠시지만 하르트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게 만들었던 ‘용의 인장’이었다.
어쩌다 보니 오가닉도, 리자드왕도 아닌 강서준이 던전의 주인이 되고 만 것이다.
“…….”
문득 뭉개진 주변 풍경도 보였다.
산성에 녹아 버린 것처럼 콜로세움의 곳곳은 소멸했고, 대개 물에 수장되어 호수엔 온전한 건물의 형태는 남아 있질 않았다.
정말 끝난 걸까.
화살표에 몸통 곳곳이 소멸한 호른 부족의 전사들과 리자드맨 사이로 멀리 도망쳤던 아크의 플레이어들이 슬금슬금 접근했다.
고요한 전장엔 강서준만이 오롯이 서 있었다.
“끝난…… 겁니까?”
사망 플래그 비슷한 말을 내뱉는 김강렬. 강서준은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끝났냐고?
질투욕덩어리였던 하르트는 소멸했고, 화살표도 목적을 잃은 탓에 씻은 듯이 사라진 마당이었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었다.
강서준은 아귀처럼 피를 빨아 대는 재앙의 유성검을 흘깃 째려본 뒤, 고개를 들어 다른 방향을 쳐다봤다.
안 그래도 피가 부족한데, 괜히 이놈의 스킬을 해제하질 않은 게 아니다.
“어딜 도망치려고?”
[스킬, ‘초상비(F)’를 발동합니다.]물 위로 듬성듬성 올라온 돌벽을 밟아 가며 강서준은 가속을 더했다. 다급하게 개활지 너머에서 도망치는 한 녀석이 시야에 걸렸다.
콰아앙!
빠르게 내지른 주먹에 놈이 나자빠지고 말았다. 전투 능력 자체는 대단히 높진 않은 걸까.
바닥을 나뒹군 녀석의 목을 재앙의 유성검으로 겨누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놈이 경악하며 말했다.
“……어떻게 알았지?”
“네놈들처럼 음침한 놈들이 정면으로 나설 리가 없잖아.”
하르트가 이번 음모의 주모자라고 하기엔 음흉한 맛이 부족했다. 왜냐면, 놈들은 무슨 일을 꾸밀 때엔 항상 정면으로 나서질 않았으니까.
진짜 하르트가 컴퍼니의 조직원 중에서도 골수 조직원이었다면, 가면을 벗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끝이 파국일 뿐인 익스텐더가 될 리도 없고.”
강서준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놈의 눈을 쭈욱 들여다봤다.
아쉽지만, 이놈도 강서준이 쫓던 그놈의 본체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전보단 더 많은 게 보인다.
[스킬, ‘류안(S)’을 발동합니다.] [스킬, ‘집중(S)’을 발동합니다.]“너 그렇게 생겼었구나?”
“……뭐?”
두 가지 S급 스킬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놈의 스킬을 역추적하는 데에 성공했다.
전엔 그저 흐름으로만 느껴졌지만 이젠 놈의 스킬인 염탐의 반대편까지 볼 수 있었다.
투둑, 툭. 툭!
다급하게 놈이 스킬을 해제했는지 시야에 노이즈가 끼고, 보이는 것들이 뭉개졌다.
해서 강서준은 짧은 찰나에 보이는 모든 걸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이 모든 게 정보였다.
모르긴 몰라도, 컴피니의 본거지를 유추할 수 있으리라.
그때였다.
치지직!
류안으로 스킬의 흐름을 역추적하다 보니, 놈의 본체에 닿은 순간이었다. 그 본체에서 미묘한 흐름을 또 발견한 건 우연이었다.
뭐지?
불현듯 놈의 얼굴이 점멸했다.
실로 당황했는지 염탐 이외의 놈이 유지하던 스킬 너머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이고 있었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투두둑.
염탐이 해제되고, 더는 눈동자 너머의 풍경은 보이지 않았다.
눈앞의 컴퍼니원은 쓸모가 다했는지 머리나 귀, 두 눈에서 연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과부하가 걸린 기계 같았다.
강서준의 입맛은 꽤나 씁쓸했다.
“……크록이라고?”
터무니없지만 그가 본 놈의 얼굴은, 드림 사이드 1에서 분명히 죽인 전적이 있는 악성 NPC의 얼굴이었으니까.
***
이후, 강서준은 리자드왕에게 명령을 내려 모든 리자드맨을 동쪽으로 돌려보낼 수 있었다.
모두 용의 인장이 가진 능력이었다.
“아쉽네. 이런 개사기급 능력을 앞으로 한 번밖에 쓸 수 없다는 게.”
강서준은 길게 꼬리를 축 늘어뜨린 채로 힘없이 돌아가는 리자드왕의 뒷모습을 보면서 입맛을 다셨다.
무척 아쉽긴 했지만 파격적인 아이템 성능엔 제한이 걸려 있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걸 쓸데없이, ‘멈춰라.’, ‘꿇어라.’ 따위로 날려 먹은 하르트가 멍청한 것이다.
‘그나마 리자드맨들에게 동쪽 영역 제한과 던전 바깥 출입 불가 명령을 내릴 정도의 명령권은 남아서 다행이지.’
그도 아니면 골치 아플 뻔했다.
……앞으로 한 번의 명령권이 더 남았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행운일지도.
“그나저나 이젠 이 던전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일단은 공략이라고 봐야 되겠죠?”
C급 던전 공략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NPC 편에 붙어 승리하거나…… 몬스터 편에 붙어 승리하거나.
표면적으론 이 두 개가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처럼 예외는 있는 법.
고인물의 격언처럼, 드림 사이드는 늘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것이다. 플레이어가 던전의 주인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럼 어떻게 될까.
‘플레이어의 마음대로.’
던전의 입구를 완전히 막고 앞으로의 던전 등급 업을 없앨 수도 있었고, 이대로 놔둬도 무방했다.
모든 건 강서준의 선택에 따라 바뀌는 것이다.
강서준은 쉽게 결정을 내렸다.
‘굳이 막을 필요는 없어.’
어차피 호른 부족의 사람들은 아크의 플레이어에게 호의적이었다. 리자드맨이 거슬리긴 했지만 놈들에겐 이미 ‘용의 인장’으로 강제적인 명령을 심어 놨다.
지금 이상으로 성장하는 건 불가능했고, 서울로 빠져나갈 일도 없다고 봐도 된다.
이 던전은 서울의 해가 되질 않는다.
‘뭣하면 던전을 막아 버리면 되니까.’
물론, 던전의 주인이 되질 못했다면 이렇게 마음 편하게 생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설령 NPC의 승리로 끝나더라도 그중 악한 성질의 NPC가 난동이라도 부린다면 일은 귀찮아지니까.
그럴 땐, 던전 내에 숨어 있는 이스터에그라도 찾아서 던전의 입구를 봉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귀찮은 과정을 모두 배제할 수 있으니, 던전의 주인이 된다는 건 어렵지만 상당히 메리트가 있었다.
“후우……그럼 우리도 돌아가죠.”
빠르게 전장을 수습한 일행은 5시간이나 걸리던 거리를 불과 2시간 만에 주파하여 갈릴리오에 복귀할 수 있었다. 최하나와 나도석은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고생 많으셨어요.”
“네. 근데 저 사람들 뭐 하는 겁니까?”
“사소한 시비가 붙어서요. 금방 끝날 거예요.”
강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갈릴리오 한쪽에서 한창 대련 중인 플레이어들을 눈여겨봤다. 겁도 없지, 그들은 나도석을 향해서 검을 들이밀고 있었다.
사소한 시비라…….
쿠웅, 콰아앙!
“무슨…… 썰어도 썰리질 않아!”
“죽어 버려!”
“으아아앗!”
오가는 말투가 정답게 죽음을 부르고 있었지만, 정작 나도석의 얼굴은 연속된 전투로 흥분한 눈치였다.
즐기는 것 같은데. 아닌 게 아니라, 기분 좋은 탄성도 내지르고 있었다.
“크핫! 이것밖에 안 되냐!”
“이익……!”
뭐, 저들 사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든 간에 상황은 금방 정리될 게 분명했다. 저들이 뭔 짓을 해도 나도석에게 데미지를 입힐 리는 만무했으니까.
강서준도 대충 넘기기로 했다.
“일단 오늘은 이곳에서 쉬고, 내일 아크로 복귀하도록 합시다.”
바람의 쉼터로 들어선 플레이어들은 제각각 자유 시간을 가졌다.
오랜 전투에 지친 이들은 대개 2층으로 올라가 숙면을 취했고, 대대적으로 술판을 벌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들 긴장은 전부 놓은 상태였다.
‘오늘만큼은…… 괜찮겠지.’
힘든 하루였다. 때로는 다 잊고 술을 진탕 마시면서 어깨에 든 짐을 내려놓는 것도 필요했다.
하물며 이곳엔 더는 그들에게 해가 되는 존재는 없었다. 컴퍼니도 걱정할 필요는 없으리라.
호른 부족이 눈에 불을 켠 이곳에 뭔 짓을 저지르려는 겁 없는 놈들이 있을 리 만무.
최하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서준 씨는 뭐 하실 계획이죠?”
“……음. 전 할 일이 조금 남았어요.”
“네?”
“오래 걸리진 않아요. 쉬고 계세요.”
***
강서준은 2층 빈 방으로 들어갔다.
창문 아래로 나무 침대만 놓인 단출한 방이었다. 강서준은 허공을 응시하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나와 봐.”
츠츠츳.
잠시 감투에 갇혀 있던 영혼이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반지의 불꽃이 연결되더니 곧 그 영혼의 몸은 실체화되기 시작했다.
도깨비의 부름.
되살아난 컴퍼니원은, 크록이 기생했던 그놈으로 이젠 멍한 눈을 뜨고만 있었다.
“잠깐.”
[스킬, ‘류안(S)’을 발동합니다.]방에서부터 그 주변. 가까운 모든 곳의 흐름을 확인했다. 안쪽으로 새어 들어오는 수상한 마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번에도 누군가가 개입해서 정보를 얻기도 전에, 스킬이 강제로 해제될 일은 없으리라.
“좋아. 시작해 보자.”
강서준은 먼저 이름부터 물어봤다.
“홍영…….”
“컴퍼니에서 무얼 했고, 맡은 임무는 뭐였지?”
홍영은 느릿한 말투였지만 차분히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죽은 영혼을 되살린 것 말고도, 급습으로 크록의 염탐을 끊어 냈기 때문일까. 이번엔 홍영의 말을 방해하는 흐름 자체가 아예 없었다.
“……전 컴퍼니에서 바이러스 1팀 직원으로, 서울 전역에 생성된 죽음의 화원을 관리하는 일을 합니다. 팀장인 배기찬을 주축으로 저흰 도합 일곱 개의 농장을 키우고 있으며…….”
강서준은 다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놈들이 ‘포자 바이러스’를 잔뜩 보유한 걸로 추측했던 문제였지만, 확실히 서울에 등장한 죽음의 화원은 과할 정도로 많았던 것이다.
‘일곱 개나 더 있다니…… 골치 아픈데.’
심지어 이게 바이러스 1팀의 성과였다. 2팀, 3팀…… 그 이외의 팀이 또 있다면 그만큼 ‘죽음의 화원’의 개수는 늘어나는 게 아닐까.
빌어먹을 컴퍼니. 기생충 같은 놈들.
‘됐어. 이 문제는 링링과 상의해 보자.’
그 뒤로도 많은 정보를 물었지만, 알짜배기 정보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아쉽지만 홍영의 보안 등급은 높은 수준은 아닌 듯했다.
‘……이 정도만 해도 큰 수확이야.’
애써 미련을 털어 내며, 강서준은 스킬을 해제하여 홍영의 영혼을 불태워 버렸다.
그리고 잠시 머릿속으로 정보를 정리한 뒤,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
“그때 리자드맨들이 와르르 나타나는 거야. 어? 그래서 내가 말이지…….”
한층 어두컴컴해진 바람의 쉼터 앞마당엔 마을 사람들까지 합류해서 큰 회식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얼씨구. 캠프파이어까지 하고 있다.
알딸딸하게 얼굴이 달아오른 김강렬이 강서준을 발견하고, 대뜸 다가와 말을 건 건 그때였다.
“여태 어디 계셨습니까. 이리 오시죠. 한 잔 받으세요.”
강서준은 거절하지 않고 건네준 잔을 한 입에 털어 넣었다.
스킬의 영향으로 취하진 않을 테지만 곳곳에서 왁자지껄 떠들면서 술을 마시는 분위기만으로도 알코올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같은 기분을 느낀 걸까.
흥이 오른 최하나는 달콤한 선율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삼삼오오 모여 떠들던 소리가 잦아들고, 갈릴리오엔 최하나의 목소리만 고요히 울렸다.
그녀의 신곡이었다.
“……축제, 저도 보고 싶었는데.”
이 사람 진심이었나.
김강렬은 술에 취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정말 최하나의 노래에 감명받은 건지.
눈물까지 훔치고 있었다.
“별들이 노래를 해요. 당신은 여기에 있었다고…….”
한창 무르익은 밤.
우리는 그렇게 C급 던전 ‘리자드맨의 우물’ 공략을 완전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