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Unrivaled Spear Knight RAW novel - Chapter 724
외전 325화
나는 천뇌궁 앞을 한참이나 기웃거렸다.
이루카 공주가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4시간은 훌쩍 지난 이후였다.
당장 얼굴에서부터 그 지독한 피로감이 한가득 느껴졌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신 공주마마와 달리, 요즘 황실 기사들은 꽤나 한가한 것 같습니다.”
멈칫.
궁으로 들어서던 이루카 공주가 내 쪽을 올려다봤다.
그 즉시, 나는 지붕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케인 경, 아직도 안 가셨어요?”
“제가 황실 기사의 근무 태만을 두 눈으로 목격해 버려서요. 방금까지 제가 서 있던 곳이 그 현장입니다.”
대번에 녹초가 되어 있던 이루카 공주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터져 나왔다.
“미친…… 근무 태만? 아주 임자 제대로 만났네요. 어떻게, 혼꾸멍 좀 내 주셨나요?”
“어찌 그러겠습니까? 전 이제 이 궁에서 아무런 직책도 없는 동네 아저씨일 뿐 아닙니까?”
“하아. 그 근무 태만자, 소속과 직위가 어떻게 되죠? 제가 직접 치도곤을 안기겠어요.”
“그러실 것 같아서, 이렇게 제가 잡아 뒀습니다.”
나는 곧바로 지붕 위를 향해 손짓했다.
“와, 진짜 이걸 고자질하실 줄이야.”
이에, 어쩔 수 없다는 듯 발몽이 아래로 내려왔다.
“설마 그 근무 태만자라는 게 발몽 경이었어요?”
한데, 내 예상과 달리 이루카 공주마마의 반응이 요상했다.
당장이라도 때려죽일 듯 콧김까지 펑펑 뿜어 대던 이가, 거짓말처럼 평온한 얼굴이 되어 가는 것이 아닌가?
‘이게 아닌데?’
당황한 내가 무어라 말하려는데, 그보다 이루카 공주가 한발 먼저 반응한다.
“케인 경도 참 한가하신 모양이네요. 발몽 경이 저러는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이라고, 그 귀중한 시간을 쓰셨어요?”
“제 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 공주마마.”
“칭찬은 아니고요.”
“아하하하. 조용히 있겠습니다.”
기세 좋게 소리치던 발몽이 이내 부동자세를 취했다.
“아니, 공주마마처럼 부지런하신 분이 이런 한량을 그냥 두시겠다고요?”
“그간 쌓아 온 공(功)이 있으니까요. 나름 제국의 인재인데, 그렇게 다그치다 케인 경처럼 어느 날 갑자기 훌쩍 떠나 버리면 어떡해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차라리 저렇게 두는 게 나아요. 그래도 할 땐 하시는 분이니까. 저러다 황궁에 암살자라도 침입하면, 그때도 가만히 계실 분은 아니잖아요?”
기다렸다는 듯 발몽이 맞장구친다.
“역시 제 마음을 알아주시는 분은 이 드넓은 궁내에 공주마마뿐인 것 같습니다.”
“허 참…….”
하도 어이가 없어 혀만 차고 있는데, 그런 나를 이루카 공주가 빤히 바라봤다.
“케인 경. 괜한 발몽 경 괴롭히지 마시고, 그냥 솔직하게 말씀하세요.”
“예?”
“내 모성애를 자극하려는 거죠? 챙겨 주고 싶은 남자, 뭐 그런 거로 죽은 내 연애 감정이라도 되살리고 싶으신 거예요?”
움찔.
나는 속으로 흠칫 놀라고 말았다.
백 퍼센트 정답은 아니었지만 얼추 정답에 근접했으니까.
솔직히 나야 이루카 공주가 발몽이랑 잘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지 않던가?
나이 차이가 있어서인지 똑똑한 이루카 공주마마도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는 듯했지만.
“그게 아니고서야, 남자를 소개시켜 주신다는 분이 갑자기 이런 한량을 데리고 오지는 않으셨을 테고.”
“남자 소개? 잠깐만요. 이게 대체 무슨 말이랍니까?”
“아, 아니에요. 발몽 경은 신경 쓰지 마세요.”
다만, 내가 간과한 부분이 있었다.
그 사소한 대화가, 알게 모르게 발몽의 승부욕을 발동시켰다는 것을.
“공주마마. 이미 저 빼놓고 재밌는 이야기를 다 하셔 놓고, 자꾸 이러시면 저 섭섭합니다.”
“경이 들어도 별로 재밌을 얘기도 아니에요. 어차피 발몽 경도 연애에 딱히 관심 없으시잖아요? 그저 노는 게 좋으시면서.”
“누가 그럽니까? 제가 연애에 관심 없다고.”
“아니었어요? 흠…… 근데, 아무리 나 아닌 다른 여자들이라도, 게으른 한량은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데…….”
“어허! 언제는 저더러 할 땐 하는 사람이라면서요!”
발몽이 재차 발끈했다.
“여자들은 평상시의 모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니까요. 할 땐 한다? 연애할 때도, 기념일만 챙기고 평상시에는 피곤하다고 잠만 자실 거예요?”
“이 발몽 던 브라운. 평소에는 모닥불이지만, 한 번 타오르면 집채마저 녹이는 마그마 같은 남자입니다!”
“뭐, 전 인정 못 하지만 그렇다고 치죠. 피곤한데, 이만 두 분 다 돌아가 주시겠어요?”
“아니, 아니. 그렇다고 치는 게 아니죠!”
절로 내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둘 모두 각 분야의 천재이기 때문일까?
자존심 하나는 제국 제일이었다.
성격이 완전히 상이한데도 이런 공통점도 있었다니.
“……두 사람, 닮은 구석도 있기는 있었군요?”
“……!”
“……!”
내 말에 이루카 공주와 발몽이 동시에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닮아요……?”
“누가 이런 한량이랑 닮아요!?”
발끈하는 이루카의 반응에 기어이 그 발몽의 이마에도 희미한 힘줄이 도드라졌다.
“공주마마, 솔직히 이건 제가 기분 나빠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무슨 뜻이죠?”
“혹시 본인에 대한 소문을 모르시는 겁니까? 일밖에 모르는 황궁의 서류 귀신에, 수하들이 쉬는 꼴은 죽어도 못 보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같은…….”
“어머? 방금 그거 황족 모독죄예요.”
이때다 싶은 내가 곧바로 중간으로 끼어들었다.
“분명히 닮았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그러더라고요. 티격태격하며 싸우다가, 어느새 ‘자기’, ‘여보’가 되는 거라고요.”
“…….”
순간, 숨 막힐 듯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어느새 두 사람이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발몽 경. 아깐 장난. 방금 전이야말로, 내게는 심각한 모욕이었어요.”
“인정합니다.”
“황실 기사로서 두고만 보실 건 아니죠?”
“즉참하겠습니다.”
스르릉.
발몽이 거침없이 검을 뽑아 들었다.
“강한 부정은 또 강한 긍정이라는데…….”
“케인 경!”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나는 잽싸게 몸을 돌려 도망쳤다.
“거기 서요!”
“하하하하!”
왜인지 저 둘.
내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연인이 될 것 같지 않은가?
* * *
일주일 뒤.
“다들 오셨군요.”
나라의 행사가 모두 끝난 나는 현재 마탑에 와 있었다.
극비리에 동행한 귀한 분들도 함께였다.
아발론의 셀림 샌더스 폐하를 필두로, 키르아 대공, 샤를과 이카루스 황후마마, 그리고 이루카 공주마마와 발몽까지.
주군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이들은 만사를 제쳐 두고 모두 모였다.
“어머니!”
“이셀린 마마!”
조금은 초췌하기까지 한 이셀린 황후를, 두 자제분들이 안타깝게 불렀다.
곁에 있는 통합 마탑주도 얼굴은 상당히 상해 있었다.
여기까지는 이미 짐작했던 상황들이었다.
한데, 그 뒤에 등장한 이가 모두의 예상을 깨뜨렸다.
“다, 당신은……?”
고작해야 10대로 보이는 어린아이.
하나, 누구도 그 겉모습을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다들 인사하세요. 여기 계신 블랙 드래곤 크레슈아 님께서 제 연구를 도와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 말과 동시에,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제 지위조차 잊고 고개를 숙였다.
그만큼 이번 연구에 대해선 모두가 진심이었으니까.
“그럼, 갈까요?”
더 망설일 필요도 없다는 듯 이셀린 황후마마께서 앞장선다.
이에, 나는 슬며시 손을 들어 올렸다.
“혹, 워프로 이동하는 겁니까?”
“아뇨, 걸어서요. 저희 목적지는 바로 이 근처거든요.”
“네? 이 근처라면……?”
조금은 피곤한 얼굴의 이셀린 황후마마셨지만, 끝내 내 물음에는 친절히 대답해 주셨다.
“세상의 시작과 끝이 이어진 곳. 우선 저희는 그곳으로 갑니다.”
* * *
잠시 후, 우린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래서 표현을 세상의 시작과 끝 따위로 하신 거였군.’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눈앞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커다란 나무가 자리해 있었다.
달리 세계수라고도 불리는 이그드라실이었다.
“장장 10년이 넘도록……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설령 조슈아를 이곳에 불러낼 방법을 찾더라도, 그는 이미 신이니까. 신을 통째 이 지상으로 끌어내리면, 애써 되찾은 세상의 균형이 또다시 무너질 테니까.”
그 말씀대로다.
천신과 마신이 이 땅에 등장하고, 세상은 멸망하기 직전 단계까지 갔다.
한 가족의 사사로운 감정을 위해, 또다시 대륙 전체를 그런 위기에 빠뜨릴 수는 없는 법.
“……다만…….”
꿀꺽.
누군가 침 넘어가는 소리가 고요히 울려 퍼진다.
“……강림(降臨)이라면,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순간, 사람들의 눈이 크게 뜨였다.
“전 육신은 제외하고, 조슈아의 혼(魂)만 강림시킬 생각입니다. 그 옛날, 교황이나 성녀가 주신 에르메스를 제 몸으로 불러들인 것처럼…….”
“자, 잠시만요, 황후마마. 그런 강림이라면 신을 받아 낼 그릇이 필요할 텐데…… 저희에겐 그런 그릇이 없지 않습니까?”
대답은 다른 곳에서 나왔다.
“여기 있지 않나? 이미 그 영혼을 받아 낸 전력까지 있는.”
“……!”
동시에, 사람들의 고개가 홱 하고 돌아갔다.
목소리의 진원지는, 역시나 블랙 드래곤 크레슈아였다.
‘과연, 신의 종족이라 불리는 드래곤의 육신이라면……!’
이런 나와는 달리, 마음씨 따뜻한 샤를 황후께서는 걱정부터 하셨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드래곤이시여. 신의 혼을 받아 내는 건, 지고한 존재께도 큰 무리가 따를 텐데…….”
“무리 좀 해도 돼. 어차피 그놈한테는 받아 내야 할 빚도 있으니까.”
“빚……이요?”
“나와 한 가지 약속을 했거든.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려 준다고 해 놓고, 감히 드래곤과의 맹약을 개나 주고 도망친 시건방진 인간. 신이 됐어도 멱살을 잡고서라도 끌고 와야지.”
이윽고 샤를 황후마마의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타이밍 좋게, 이셀린 황후마마께서 계속해서 말씀하신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재료는 ‘믿음’이에요. 신이 지상에 존재하려면, 그 신을 믿는 신도들이 많아야 하잖아요?”
“아…….”
“조슈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클수록, 이번 일도 성공할 가능성이 커질 거예요.”
그 말과 동시였다.
“전 준비됐습니다!”
나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평소 종교적 신념 따위는 쥐똥만큼도 없으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믿는 거다.
간절히 염원하는 거다.
물론 내게는 쉬운 일이다.
다른 잡신도 아니고 무신이 아닌가?
주군에 대한 믿음이라면 수십, 수백, 수천 년이 지나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털썩! 털썩! 털썩!
어느새 주변에 자리한 모두가 케인을 따라 했다.
그러기를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꽈릉! 꽈르르릉!
움찔.
그런 내 믿음이 흔들리는 순간은 급작스럽게 찾아왔다.
파직! 파지지직!
세상이 당장이라도 멸망할 것처럼, 마른하늘에 날벼락들이 떨어져 내렸다.
“헛!”
나는 저도 모르게 무릎 꿇은 채로 급히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까딱했다간, 그 벼락에 통구이가 될 뻔했으니까.
절로 등 뒤가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
하나, 그런 내 눈은 곧 동그랗게 뜨였다.
주변도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건만.
그 악천후에서도, 다른 모두는 여전히 눈을 감고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고 있었다.
특히나 세 황후마마들은, 바로 옆에 번개가 떨어져 불까지 붙었는데도 움직이지 않으신다.
“이건 아니잖아!”
벌떡 일어난 이루카 공주가 급히 그 불부터 껐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발몽 경도 좀 도와요!”
“예? 아, 예!”
나도 망설임 없이 화재를 잡기 위해 움직였다.
방금 공주의 말대로,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화아아아악!
“어……?”
이변은 바로 그때 발생했다.
세 황후의 몸에서 빛이 새어 나온다.
그 빛은 이내 이그드라실 안으로 스며들었다.
화아아아아악!
잠시 후, 벼락을 내뿜던 시꺼먼 구름이 거짓말처럼 물러갔다.
날씨가 개여 가고 있음이었다.
“와…….”
그 압도적인 광경에, 절로 내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무심코 허공을 바라보니, 어느새 하늘에 새하얀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번쩍!
그 사이로, 번뜩이는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쿠르르르르! 콰르르르릉!
정말 신이라도 강림하는 것일까?
그 빛은 정확히 크레슈아의 정수리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그리고…….
“주……군?”
어느새 새하얀 빛에 휩싸인 크레슈아가 허공에 두둥실 떠올랐다.
흰자위만 가득하던 눈도, 천천히 초점을 맞추어 간다.
나는 느꼈다.
지금 이 순간, 크레슈아의 기세가 일변한 것을.
그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존재는 다름 아닌…….
“주, 주군!”
털썩!
나도 모르게 무릎이 꿇어졌다.
뿌연 습막이 앞을 가린다.
어찌 상대를 알아보지 못할까?
내가 움직이기 전에, 이미 세 황후마마는 엉엉 울며 당신에게 안겨 들고 있었다.
그래.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사람이, 그곳에 서 있다.
마치 아주 잠깐 동안 여행이라도 다녀온 사람처럼, 무척이나 평온한 얼굴로.
“오랜만이야, 다들.”
《역대급 창기사의 회귀 외전&후일담》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