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10
10
Chapter3 – 스포트라이트 (4)
7.
심사위원들이 강의실 안으로 들어선 뒤, 이런저런 일정이 연달아 진행되었다.
일단 대회의 연혁 및 주최 취지, 후원 단체 및 기관에 대한 설명이 한참동안 이어졌다. 그 다음에는 진행을 주관하고 있는 ‘한국 요리사 협회’의 협회장이 연단에 올라, 여느 대회의 개막식에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지루한 연설을 잔뜩 늘어놓았다.
그런 내내, 필상에게 불편한 시선들이 쏟아졌다. 몇몇은 기대감 어린 눈으로, 또 다른 몇몇은 가소롭다는 듯 깔보는 눈으로, 또 다른 몇몇은 순수한 호기심을 품은 눈으로 필상을 힐끔힐끔 바라보고 있던 것이다.
물론, 필상은 별로 괘념치 않은 채 조금이라도 빨리 대회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하암-.”
필상이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해보이던 찰나였다. 연단 위에 선 진행자가 손에 쥔 ‘*큐 시트’(*Que sheet)를 힐끔 내려다보고는, 나직이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럼 이상으로 개회식 일정을 마치고, 2013 서울시 전국 요리대회의 1차 현장예선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참가자분들께서는 진행요원의 안내에 따라 본교 내에 위치한 ‘조리실습실’로 이동해주시면 됩니다.”
시작이다.
필상이 기합을 넣듯 제 양 뺨을 가볍게 두드려댄 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는 진행요원의 안내에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조리실습실 안에 들어선 필상이 저도 모르게 “오···.”하고 탄성을 흘려보였다.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널찍하기 그지없는 공간 안으로 수십 개의 조리대가 놓여있었고, 앞쪽에는 이런저런 식재료가 놓여있는 매대와 업소용 냉장고가 세워져있는 상태였다.
필상이 이채를 띤 눈을 한 채 조리실습실 내부 전경을 살피고 있던 찰나, 조리실 앞쪽 화이트보드 인근에 서있던 심사위원 ‘박한솔 교수’가 나직이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럼 2013 서울시 전국 요리대회 1차 현장예선을 시작하기에 앞서 몇 가지 간단한 안내사항을 전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규정 및 경연 진행방식에 대한 설명입니다.”
주최측이 선정한 주제에 걸맞는 요리를 선보여야 한다. 주최측이 사전에 구비해 둔 식재료만을 사용해야 한다. 경연 시간은 총 60분으로, 참가자의 용모와 복장. 자세와 태도, 조리시간, 기술, 맛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뒤 점수를 산출한다. 그 밖에도 기타 등등···.
사전에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되었던 바 있는 설명들이 줄줄이 이어지기를 잠시.
“보시다시피 조리대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고로 프로페셔널 부문 경연을 먼저 진행한 뒤, 곧장 연달아 영 셰프 부문 경연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프로페셔널 부문 참가자분들께서는, 자신의 참가번호가 쓰여있는 조리대 앞에 서주시겠습니까?”
이내 프로페셔널 부문 참가자들이 우르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필상 역시 마찬가지.
진행요원의 안내를 받고 이동하여, 한쪽 귀퉁이에 ‘No.41’이란 글귀가 쓰여 있는 조리대 앞에 자리를 잡고 섰다. 반짝반짝 광이 나는 스테인레스 재질의 조리대 위로, 소금, 후추, 고춧가루, 바질, 파슬리 등의 기본적인 향신료. 또 위생모, 앞치마, 라텍스 장갑 등의 비품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자, 그럼 1차 현장예선의 조리 주제를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제는 영 셰프 부문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주최 측에서 선정한 1차 현장예선의 조리 주제는···.”
이윽고.
“자유조리 입니다.”
그 말인 즉, 그냥 가장 자신있는 요리를 선보여라.
몇몇은 화색을 해보였고, 몇몇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려보이기도 했다. 참가자들 중 태반이 베일에 쌓여있는 조리 주제 탓에 불안에 휩싸인 채 지냈을 게 분명했다. 지난 한 달간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돌동이가 치워졌으니, 저마다의 방식으로 후련한 기색을 비칠 수밖에 없던 것이다.
반면, 필상은 마냥 덤덤한 표정을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역시 기본기를 시험해보겠다는거네.’
가장 자신있는 요리를 선보일 때야 말로, 갖춰진 기본기가 여과없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또한 실수라는 게 으레 그렇다. 익숙함에서 빚어지는 것이 실수다. 주최측이 보고자 하는 바는 간단했다. 가장 자신있고 익숙한 요리를 조리하는 과정에서 품게 되는 방심과, 그 방심으로 인해 빚어지게 될 사소한 실수. 또 비춰지게 될 잘못된 습관들.
‘절대 방심해선 안 된다.’
그렇게 필상이 한창 상념에 젖어들어 있던 찰나였다. 박한솔 교수가 제 입가에 인자하기 그지없는 미소를 머금은 채로, 다시금 설명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앞으로 딱 10분간 경연에서 선보일 요리를 구상하고, 조리에 사용할 식재료를 선별할 수 있는 시간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구비되어 있는 식재료는 얼마든지, 자유롭게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여분이 넉넉히 마련되어 있으니 부족한 식재료는, 진행요원에게 요청하시면 다시 준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박한솔 교수가 제 손목 시계를 한 번 힐끔 내려다보고는, 다시금 뒷말을 덧붙였다.
“자. 그럼 이상으로, 2013 서울시 전국 요리대회 프로페셔널 부문의 1차 현장예선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박한솔 교수가 손에 쥐고 있던 무선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이내 참가자들이 실습실 앞쪽, 식재료가 구비되어 있는 매대와 업소용 냉장고를 향해 부리나케 걸음을 옮겨대기 시작했다.
마치 이미 어떤 요리를 선보일 것인지에 대한 계획이 끝난 것만 같은, 확신에 찬 움직임들이었다.
반면, 필상은 사뭇 달랐다. 느긋하게 걸음을 옮겨가며 천천히, 또 유심히 구비되어 있는 식재료를 살펴보고 있는 중이었다.
이유는 자못 간단했다.
음식 맛의 8할은 식재료의 품질이 좌우한다는 말이 있다. 일단은 어떤 식재료의 품질이 뛰어난지를 먼저 살피고, 그에 따라 오늘 선보일 요리를 선정할 예정이었던 것이다.
이윽고 필상이 ‘주재료’로 쓰일만한 식재료들이 담겨있는 업소용 냉장고의 문을 활짝 열어보이던 찰나. 저도 모르게 “아···.”하고 짧은 침음을 흘리고 말았다.
다름 아니라, 스티로폼 박스 안에 얼음과 함께 담겨있는 생 연어 한 마리 탓이었다.
‘이거다···.’
정확한 명칭은 ‘사카이 살라몬’(Sockeye Slamon), 국내에서는 홍연어라 불리는 품종으로, 맛과 품질이 아주 뛰어난 종이다. 하나, 국내에는 자연산 냉동방식으로 극소량이 유통될 뿐인지라 구하기가 몹시 힘들고 설령 구할 수 있다 하더라도 비싼 값을 치러야 하는 것이다.
꿀꺽, 입 안 가득 고인 침을 한 번 삼켜내 보인 필상이 곁에 서있던 진행요원에게 나직이 말했다.
“이 녀석으로 한 마리 꺼내주시겠어요?”
이내 “예, 잠시만요.”하고 답해 보인 진행요원이, 연어를 아이스박스째 꺼내들어서는 건네주었다.
필상이 박스 안에 담긴 홍연어의 상태를 다시 한 번 점검해보고 있던 찰나였다.
“상태가 아주 훌륭하죠? 그런데, 괜찮겠어요? 손질이 꽤 까다로울 텐데.”
바로 곁에서 그런 필상을 바라보고 있던 심사위원, ‘강훈 셰프’가 나직이 건네 온 말이었다.
“아, 네. 괜찮습니다.”
“잘 해보세요.”
“네, 감사합니다.”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인 필상이, 다시금 제 조리대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내 다른 심사위원인 이혜원 셰프가 다가와서는 나직이 물음을 건넸다.
“강훈 셰프, 저 참가자한테 관심이 많은가봐요?”
“아, 예. 뭐, 그냥···.”
“그나저나 용감하네. 손질이 쉽지 않을 텐데.”
지금 현재, 손질조차 되어있지 않은 생 연어를 주재료로 선택한 참가자는 필상 뿐이었다.
다름 아니라 냉장고 안에 완벽하게 손질한 뒤 진공포장 시켜놓은 육류나, 바로 사용할 수 있게끔 ’*필렛’(*Fillet) 형태로 만들어 놓은 어류 등이 한가득 쌓여있던 탓이었다. 비록 손질이 되어있지 않은 자연산 식재료만큼은 아니라지만, 모두 품질이 썩 나쁘지 않은 편에 속했다.
더군다나 직접 손질을 해야 할 경우 자연스레 시간적 손실이 발생한다. 뿐아니라 손질을 능숙히 잘 해난다면 가산점을 받을 수 있겠지만, 만약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감점요인이 될 수도 있다.
재료손질에 정말 자신이 있는 게 아니라면, 굳이 이런저런 위험요소를 떠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내 강훈 셰프가 조리대 앞에 선 채, 1차 현장 예선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필상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을이었다.
“제가 보기에는 정말 뭔가 있는 것 같아요. 굳이 까다로운 ‘*오로시’(*おろし:생선손질) 작업을 필요로 하는 생 연어를 주재료로 채택한 것도 그렇고, 많고 많은 연어들 중에서 딱 사카이 살라몬 품종을 선택한 것도 그렇고···.”
이혜원 셰프가 한차례 피식 미소를 지어보였다. 무뚝뚝한 것으로 유명한 강훈 셰프가, 이토록 길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는 게 이번이 처음이었던 탓이었다.
“꽂혔네, 꽂혔어.”
“그런 것 같네요.”
한차례 “흠···.”하고 침음을 흘려 보인 이혜원 셰프가, 끝내 씨익 미소를 지어보이며 낮게 중얼댔다.
“정필상이라고 했나? 여러모로 이목을 끄는 친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