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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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25 – 레토르트 히든 캠 (6)
“이건 정말 기적이야.”
필상이 선보인 ‘소이 크랩 노리마키 롤과 트러플 크림소스’를 맛본 존 스튜던트가, 한참 동안 침묵을 유지하다가 엷게 떨리는 투로 어렵사리 꺼내 든 말이었다. 방금 맛본 한국식 노리마키 롤은 형용하여 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복합적이고 고풍스러운 맛을 지니고 있었다.
와삭, 한 입 베어무는 순간 느껴지는 까슬까슬한 김의 식감이 업습해왔다. 그다음에는 처음 느껴보는 짙은 플과 트러플의 향. 또 연달아 미미한 흙냄새까지. 산을 연상시키는 향과 맛이 쇄도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다를 연상시키는 강렬한 짭조름함과 옅은 비릿함, 그리고 감칠맛이 차례로 문을 두드려댔다.
이중적이고 오묘한 매력적이기 그지없는 맛이었다. 방금 맛본 요리의 맛을 복기하듯,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존 스튜던트가 콧김을 뿜어가며 다시 눈을 떠보이고는 재차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오늘 맛본 요리 중 단연 최고였던 것 같군. 앞서 맛본 에피타이져 메뉴 한국식 버섯 전복 *라이스 포릿지(*쌀죽)는 식감이 내 취향이 아니었고, 연달아 서비스된 수프 메뉴 *본 스톡(*곰탕)은 지나치게 자극적인 감이 있었거든. 물론 둘 다 맛있지만, 완벽하다는 평을 받기에는 조금 부족한 감이 있었는데 이건···.”
“이건?”
“완벽해. 여태껏 맛본 모든 노리마키를 통틀어 봐도 ‘Top3’ 안에 꼽힐 수 있지 않을까 싶군그래. 뭐랄까? 서양식으로 잘 풀어낸 노리마키라고 해야 할까? 발효 향신료의 향이 짙지도 않고, 적당히 싱그럽고 자극적인 맛이라고 해야 할 것 같군. 먹는 방식도 재미있고 말이야.”
말을 마친 존 스튜던트가 접시 한 편에 담겨있는, ‘크림소스’를 가리켜 보이고는 나직이 덧붙였다.
“특히 이 소스를 살짝 묻혀 맛보면 풍미가 잔뜩 살아나는 게, 정말 마법처럼 느껴지더군..”
이내 프레이디가 동조한다는 듯 고개를 몇 번 끄덕여보았다. 일본식 노리마키라면, 뉴욕 도처에 널린 스시 스토어에서 몇 번이고 맛본 적이 있었다. 일하며 간단히 끼니를 때우기에 꽤 적합한 요리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토록 고급스러운 노리마끼를 맛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관건은 이 요리 역시 레토르트 식품을 근간으로 만들었다는 것이겠지···.’
그때, 존 스튜던트가 제 입술을 한 번 핥아내고는 나직이 말했다.
“마지막 메뉴가 나오려나 본데?”
이윽고, 카트를 끌고 온 서버가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메인 디쉬를 서비스해드리겠습니다. 메인 디쉬는 각종 재료를 넣고 우려낸 한국식 치킨 수프, ‘삼계탕’입니다.”
존 스튜던트가 “삼계탕?” 하고 중얼거려 보이던 찰나. 서버가 돌연 두툼한 주방장갑을 주섬주섬 손에 끼워 넣더니, 여전히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는 갈색 접시를 집어 들어서는 조심스레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덧붙였다.
“접시가 뜨거우니 조심하셔야 해요.”
접시 안에 담긴 뽀얀 국물이 아직도 팔팔 끓어오르는 중이었다. 다소 오일리(Oily)해 보이는 국물 안으로는 큼직한 닭과 더불어, 편으로 얇게 썰어낸 버섯, 인삼, 밤, 양파, 인삼 등이 담겨있었고 말이다. 이내 서버가, 이번에는 소금이 담긴 작은 종지를 내려놓아 주었다.
“안에 든 닭고기 살에 내어드린 소금을 살짝 묻혀서 드시면 될 것 같군요.”
“네, 감사합니다.”
“또, 메인 디쉬와 함께 ‘*디제스티프’(*식후주)를 함께 서비스해드리겠습니다.”
“흠, 식후주를 함께 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말을 마친 서버가 조곤조곤한 투로 설명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우선 디제스티프로 서비스된 한국 전통주를 들이켜신 뒤에, 씁쓸한 향을 잠시 음미하시다가 메인 디쉬로 서비스된 치킨 수프의 국물과 닭고기를 함께 떠서 드시면 됩니다.”
식후주로 서비스된 것은 소주였다.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소주 중에서도, 도수가 높고 독한 편에 속하는 품종의 소주 말이다. 또 삼계탕 역시 레토르트 삼계탕을 뚝배기에 옮겨 담은 뒤, 여러 재료를 추가로 넣고 오랜 시간에 걸쳐 뭉근하게 끓여낸 게 전부였고 말이다.
이내 존 스튜던트와 프레이디가 시선을 한 번 교환한 뒤, 곧장 디제스티프가 담긴 잔을 집어 들었다.
*운두(*그릇의 둘레와 높이)가 얕고 작은 아기자기한 잔의 표면에는 매화 그림이 수놓아져 었었고, 안에는 맑은 빛을 띤 술이 넘실대고 있었다. 이내 두 사람이 약속이라도 한 것 마냥, 동시에 디제스티프를 입안에 털어 넣고는 미간을 잔뜩 찡그려보였다.
“으으···.”
“크.”
여타 술에 비해 도수가 높다기보다는, 알코올 향이 조금 더 강렬하게 느껴졌던 탓이었다. 이내 두 사람이 서버가 설명해주었던 대로 잠시 코로 숨을 들이쉬어 가며, 입안에 남은 쓴맛을 음미하다가 곧장 스푼을 집어 들었다.
끄트머리로 닭고기 살을 콕 찌르자, 한참을 뭉근하게 끓여냈을 살이 부드럽게 결을 따라 분리되었다. 이내 두 사람이 닭고기와, 수프의 뽀얀 국물을 함께 떠서는 곧장 맛을 음미해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존 스튜던트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로 제 두 눈을 휘둥그레 떠보였다.
“허, 맙소사···.”
마치 앞서 느꼈던 씁쓸함에 대한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다. 살짝 역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렬한 알코올 향을 깨끗이 닦아내 주더니, 종지에는 약재 과에 속하는 향신료가 지는 쌉싸름한 맛과 감칠맛. 또 치킨 스톡 특유의 깊고 진한 맛이 연달아 쇄도해오기 시작한 것이다.
혀와 입안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식도까지 깨끗이 씻어주는 것만 같은 깊고 진한. 또 부드러운 맛이었다.
이내 존 스튜던트가 연달아 국물을 맛보고, 닭고기 살을 발라낸 뒤 소금에 ‘콕, 콕.’ 찍은 뒤 맛을 보았다. 야들야들한 닭고기 살과 깊고 진한 국물의 풍미가 마냥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 마냥, 정신없이 요리를 음미하던 존 스튜던트가 다시금 말문을 연 것은 스푼이 뚝배기의 바닥과 맞닿으며 ‘쨍, 쨍.’ 소리를 내보이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한차례 “후우···.” 하고 숨을 길게 내쉬어 보인, 존 스튜던트가 다급한 손길로 근처에 서 있는 서버를 호출해서는 다급하기 그지없는 투로 말했다.
“셰프, 셰프를 뵙고 싶군요.”
“아직 디저트 메뉴가···.”
“실례인 줄 알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가 재차 덧붙였다.
“지금 꼭 뵙고 싶어서요.”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저 멀리 주방쪽에서 말끔한 화이츠 차림의 필상이 저 멀리서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윽고, 두 사람이 앉은 테이블 지척에 다다른 필상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되물었다.
“귀빈께서 파우스트의 테스트 키친에 참석해주셔서 정말 영광스러울 따름입니다. 저를 호출하셨다고요?”
그 말에 존이 “큼, 흠.” 하고 헛기침을 해 보인 뒤 조심스레 물음을 건넸다.
“아뇨, 저야말로 신예 셰프의 테스트 키친에 게스트로 참석할 수 있게 되어 영광일 따름입니다. 이곳에서의 저는 방송인 존이 아닌, 맛있는 요리에 열광하고 사랑하는 한 명의 손님일 뿐이죠. 그러니, 부담 없이 대해주셨으면 좋겠군요.”
한껏 예를 갖춰 말해 보인 그가, 제 넥타이를 느슨하게 살짝 풀어 보이고는 재차 조심스럽기 그지없는 투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음식은 전반적으로 정말 훌륭하더군요. 새롭고, 이색적이었으나, 셰프의 배려 탓에 거부감보다는 호기심이 먼저 이는 느낌이었습니다. 앞서 맛보았던 한국식 노리마키 롤도 인상적이었습니다만, 압권은 지금 맛보고 있는 메인 디쉬. 삼계탕이었습니다. 깊고 진한 맛이 정말 일품이더군요. 저, 셰프. 그런데···.”
말끝을 흐려 보인 그가 미간을 살짝 좁힌 채 되물었다.
“아페르티프, 식후주로 서비스된 술이 궁금하군요. 식후주와 메인 디쉬가 함께 서비스되어 마냥 의아했는데, 맛보고 나니 의도를 알겠습니다. 식후주가 메인 디쉬의 맛을 몇 배나 더 끌어올려주는 것 같더군요. 혹시 어떤 이름의, 또 어떤 품종의 술이었는지 여쭤볼 수 있을지요?”
한차례 고개를 끄덕여 보인 필상이 곧장 답해주었다.
“물론입니다. 아페르티프로 서비스된 술의 정확한 품종은 ‘소주’입니다.”
“소주?”
나직이 중얼거려 보인 그가, 제 아랫입술을 한 번 핥아내고는 재차 호기심 가득한 투로 되물었다.
“제가 한국음식점에 다이닝에 찾아가, ‘소주’라는 제품을 주문하면 언제든 맛볼 수 있는 건가요?”
“아뇨. 방금 드신 것과 아예 동일한 품종의 소주를 드시려면, 주문 과정에서 ‘이슬 소주 레드 라벨’(Red Lavel)로 달라는 말을 꼭 덧붙이셔야 할 겁니다.”
그 말에 존 스튜던트가 “그렇군요.” 하고 답해 보이고는 재차 중얼대듯 말을이었다.
“이슬 소주, 레드 라벨. 혀에 착 감기는, 인상적인 맛이더군요. 여태껏 무수히 많은 품종의 소주를 맛보았지만, 글쎄요? 음식과 조화를 이루는 선을 넘어, 맛과 풍미를 살려주는 술은 지극히 손에 꼽을 지경이었건만···.”
다름 아니라, 보통 한국에서는 “이슬이 빨간 것.”이라 부르곤 하는 모 회사의 오리지널 소주 제품을 식후주로 서비스해주었던 것이다. 이내 필상이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재차 물음을 건넸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오늘 선보인 코스 요리의 식재료를 공개해드리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식재료에 대한 자부심이 있으신가 보군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저도 호기심이 동하는군요. 좋습니다.”
이내 필상이 손가락을 한 번 튕겨 보이자, 서버 한 명이 레토르트 식품이 가득 담긴 카트를 끌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또 그 뒤를 따라, 토니가 카메라를 짊어진 채 따라 나왔고 말이다.
“카메라?”
나직이 중얼거려 보인 존 스튜던트가, 이내 카트 위에 산더미처럼 수북히 쌓여있는 레토르트 식품을 확인하고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로. 또 세차게 떨리는 목소리로 낮게 중얼댔다.
“What the Fuck···.”
그리고는 실성한 사람마냥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연달아 헛웃음을 흘려 보이더니, 자신의 바로 곁에 서 있는 필상을 올려다보며 되물었다.
“이런 미친, 정말 믿기지 않는군요. 정말 전부 다 레토르트 식품으로 만든 요리였다는 겁니까? 제가 완전히 당한 셈이로군요?”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해 보인 필상이,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제 뒷주머니에서 바 형태로 제작된 아이스크림을 건네주며 말했다.
“디저트 메뉴를 준비해드리겠습니다. 디저트는 한국 내 어느 마켓에서든 구입할 수 있는 아이스크림입니다.”
이내 아이스크림이 든 포장지를 받아든 존이 연신 너털웃음을 흘려가며, 포장을 벗기더니 곧장 녹색 빛을 띤 아이스크림을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그 모습을 본 필상이 한차례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토미가 짊어지고 있는 메인 카메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존 스튜던트 씨를 위한 ‘레토르트 히든 캠’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났군요.”
그때, 존이 제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보이고는 카메라 렌즈를 들여다보며 특유의 익살스러운 투로 말을이었다.
“크큭, 제기랄. 디저트 메뉴도 엿같이 맛있네요. 쫀득하고, 부드럽고, 달고, 메론 향과 맛은 진하고, 정말 놀랍도록 맛있다고요.”
그리고는 손에 쥔 아이스크림의 포장지를 테이블 위에 내던졌다. 그의 신경질적으로 테이블 위에 내던진 포장지 위로는, ‘메론바’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각인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