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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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28 – 코리안 더비 매치 (1)
곧장 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개회식이 시작됐다. 대회의 연혁과 취지를 소개하는 말들이 한참에 걸쳐 이어졌고, 연달아 이번 대회의 심사를 맡은 이들이 차례로 연단 위에 오르기 시작했다.
전 세계 각지에 미슐랭 스타 파인다이닝을 몇 개씩이나 보유하고 있는 원로 급 셰프들을 시작으로, 트립 어드바이져, 레스토랑스를 비롯한 권위 있는 심사기관 측 칼럼니스트에 이르기까지.
마치 이번 대회의 규모를 증명하기라도 하는 것 마냥 요리계의 인사들이 줄줄이 연단에 오르기 시작했다.
이내 배정된 자리에 착석해 있던 다빈과 필상이 목소리를 한껏 낮춘 채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필상, 중앙에 서 있는 셰프 보이시죠? 폴 보티즈에요.”
“그렇네요···.”
“맙소사. 교황을 실제로 보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이미 알고 있었잖아요?”
“그야 그렇지만 감회가 새로워서요.”
말을 마친 다빈이 고개를 휙 돌려서는, 필상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필상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저도 감회가 새롭네요.”
폴 보티즈.
자신의 이름을 내건 파인다이닝이 수여받은 미슐랭 스타를 합치면 그 합이 자그마치 서른여섯 개나 되는, 또 포브스 집계 결과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돈을 번 셰프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다.
프랑스풍과 일본풍이 적절이 뒤섞인 요리를 선보이며 세간의 이목을 사로잡은 그는 프랑스의 대중적인 디저트 ‘크림 브륄레’의 고안자인 동시에, 요리사 중 최초로 레종 도뇌르 슈발리에 훈장, 또 프랑스 정부로부터 국가 장인상까지 수여받은 바 있는 프랑스 요리계의 최고 존엄이자 살아있는 전설이랄 수 있었다. 애초에 프랑스에 방문하게 된 *국빈(* 國賓)들의 경우 태반이 그의 레스토랑에 방문하는 게 일련의 절차처럼 굳어져 버린 상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필상은 회귀 이전의 삶 속에서 이미 한 번 그와 조우해 본 경험이 있었다.
프랑스 유학을 시작하던 날, 파리의 스튜디오에 짐을 풀기 무섭게 수개월 전에 미리 예약해 둔 그의 파인다이닝에서 식사를 해본 적이 있었다. 얼마 되지 않는 잔고를 탈탈 털어 간신히 맛본 만찬이었으나, 후회는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다. 그 정도로 훌륭한 요리의 향연이었으니까.
그 무렵, 폴 보티즈는 병색이 짙은 와중에도 주방을 지키고 있었다. 자신이 식사를 마친 뒤에는 주방 바깥으로 나와 오늘 요리가 어땠냐는 물음마저 건네왔으니 말이다. 이토록 셰프가 홀에 나와 손님에게 오늘 코스의 만족도를 묻는 문화조차 폴 보티즈 장본인이 만든 것이었고 말이다.
그 날, 필상은 고개를 끄덕여가며 답했다.
‘예, 저도 당신처럼 훌륭한 요리를 하는 셰프가 되고 싶습니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온다면 초대해주시죠.’
그리고 딱 반년 뒤, 그는 향년 9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지금으로부터 고작 오 년도 남지 않은 시점의 일이다.
전생에서는 영원히 잊지 못할 행복한 만찬을 선사해 준 그에게 보답의 의미를 지닌 초대장을 보낼 도리가 없었다지만, 지금은 그 이야기가 사뭇 달랐다. 회귀 이전의 삶 속에서 미처 받지 못했던 평가를, 이제서야. 두 번째 삶에 접어들어서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오직 ‘폴 보티즈’ 한 사람만을 겨냥한 코스를 준비해둔 상황이기도 했고 말이다.
필상이 그렇게 상념에 젖어들어 있던 찰나였다. 팔짱을 낀 채로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던 다빈이 제 입술을 한 번 적시듯 핥아내고는, 다시금 조심스러운 어투로 말문을 열었다.
“어쨌든, 폴 보티즈 셰프를 제외하더라도 심사위원 라인업이 정말 상상 이상으로 탄탄한데요? 만약 이번 대회에서 심사위원들에게 호평을 받는다면 미슐랭도 미슐랭이지만, 여러 매체의 관심을 끌 수 있겠어요.”
“호평은 물론이고 입상도 어려운 일이 아닐 겁니다. 그동안 정말 철저히 준비해왔잖아요?”
“네, 맞아요. 그리고 말인데, 이번 기회에 입만 살아있는 셰프들한테 본때를 한 번 보여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 말에 이정준이 조심스레 끼어들며 되물었다.
“그나저나 개회식 시작 전에 무슨 일 있으셨어요? 그러고 보니, 다빈 셰프도 그렇고 로버트도 그렇고 아까부터 표정이 어두우신 것 같아서···.”
이내 로버트가 이정준의 어깨 위에, 통나무처럼 두꺼운 제 팔을 두르며 덧붙였다.
“소년, 성년이 되는 날 알려주지.”
“함부로 만지지 말아줘요.”
“우정의 스킨십일 뿐.”
“끈적한 우정은 제 취향이 아니라서요.”
“아쉽군.”
그들 두 사람이 타격대는 모습을 보며 연신 웃음을 흘려대고 있던 필상이, 제 고개를 좌∙우로 내저어 보이고는 말문을 열었다.
“신나게 한바탕 놀아보죠.”
*
지루한 개회식 행사가 끝나기 무섭게, 곧장 대진 추첨이 시작되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팀은 도합 128여 팀에 달했다.
조마다 각각 네 팀씩 편성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무려 서른 두 개 조나 될 정도로 많은 이들이 참가했던 것이다.
심지어 이조차도 훨씬 더 많은 참가자가 몰렸음에도, 인원이 충원되었다는 이유로 참가 신청을 기각한 덕에 형성된 인원이랄 수 있었고 말이다.
이내 연단에 선 진행자가, 제 입을 마이크 앞에 바짝 가져다 댄 채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개회식 일정이 끝났으니 곧장 예선 ‘대진 추첨’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금년 대회는 토너먼트 형식으로 치러질 예정입니다. 한 조에 편성된 네 개 팀 중, 본선에 진출하는 것은 오직 한 팀뿐입니다.”
이미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공표된 바 있는 사실이었다. 한 조 내에서 일차적으로 맞붙게 될 팀을 선별한 뒤 대결을 펼친다.
그다음 이긴 팀끼리 다시 2차전을 벌이고, 도합 2승을 거둔 팀만 본선에 진출할 수 있는 구조였던 것이다.
“그럼 곧장 대진 추첨을 시작하겠습니다.”
대전 추첨은 연단 뒤에 부착된 스크린을 통해 진행되었다. 주최 측에서 준비한 프로그램이 각 조의 대진표를 작성해주면, 진행자가 그 결과를 다시 한 번 일러주는 형식이었다.
“A조 대진 추첨 결과 발표하겠습니다.”
[ A조, 1번 시드 – 호세 아빌레&미구엘 셰프 팀 VS 루이스&아인 셰프 팀 ] [ A조, 2번 시드 – 탑 포드&제이콥 셰프 팀 VS 아도르&알렉산더 셰프 팀 ]스크린을 통해 추첨 결과 발표가 시작되자 장내 곳곳에서 희비가 교차했으며, 높고 낮은 술렁임이 좀처럼 끊이질 않았다.
토너먼트 형태로 치저리는 여타 대회들이 으레 그렇듯, 대진운이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듯 보였던 탓이었다. 예선부터 강팀끼리 맞붙는 경우도 허다했고, 반대로 약팀끼리 맞붙는 경우, 또 운이 잘 따라주어 약팀과 맞붙게 된 강팀, 반대로 운이 좀처럼 따라주질 않아 강팀과 맞붙게 된 약팀도 속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F조 대진 추첨 결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드디어 필상과 다빈, 그리고 강훈 셰프의 팀이 소속된 F조의 대진 추첨 결과가 발표되기 시작했다.
이내 필상이 곁눈질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테이블을 꿰차고 앉아있는 강훈 셰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강훈 셰프 역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대진 추첨 결과에 따라 이번 대회의 첫 대결이 코리안 더비 매치. 즉, 필상 팀과 강훈 셰프 팀의 대결이 될 지도 모를 노릇이었던 것이다.
이윽고.
[ F조, 1번 시드 – 강훈&윤재 셰프 팀 VS 필상&다빈 셰프 팀 ] [ F조, 2번 시드 – 클로스&에릭 셰프 팀 VS 갈라예프&러셀 셰프 팀 ]멍하니 스크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던 다빈이 한차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되물었다.
“이런, 첫 대결부터 ‘코리안 더비 매치’ 매치가 성사됐네요?”
“흠, 그러게요. 대진운이 잘 따라주길 바랐는데···.”
말끝을 흐려 보인 필상이, 제 곁에 앉은 윤재 셰프와 대화를 나누느라 여념이 없는 강훈 셰프를 지그시 바라보며 덧붙여 말했다.
“첫 대결부터 멘토 셰프를 떨어트리게 돼서 마음이 무겁네요.”
무조건 승리할 수 있으리란 짙은 확신이 깔린 말이었다.
*
이번 ‘2014 베스트 듀오 셰프 챔피언십’의 진행 방식은 자못 간단했다. 널찍하기 그지없는 연회장 B홀 곳곳에 설치된 조리대를 활용하여, 두 시간이란 제한시간 내에 한 개의 완성된 코스를 선보이는 형식이었다.
2번 시드에 배정받은 셰프들은 마냥 느긋해 보이는 반면, 1번 시드에 배정받은 셰프들은 진즉에 화이츠 차림으로 환복을 마친 뒤 호텔 내부에 입점해 있는 대형 레스토랑의 팬트리(Pantry)에서 조리에 필요한 식재료를 골라내는 데 여념이 없는 상태였다.
1번 시드에 소속된 팀들이 먼저 경연을 펼치고, 그 이후에 2번 시드에 소속된 팀들이 경연을 펼치게 된 상황이었던 까닭이었다.
물론, 필상&다빈 팀 역시 마찬가지.
바닷가재, 생연어, 송로버섯, 홍합, *루셰(*노랑 촉수과 생선), 농어, 안심, 푸아그라, 닭가슴살, 그 밖에도 치즈와 향신료를 비롯한 여러 식재료에 이르기까지. 필상과 다빈, 그리고 두 명의 수 셰프가 서로 상의해가며 바구니 몇 개 치 분량의 식재료를 골라내는 데 성공했을 따름이었다.
또 심사위원들은 저마다 한 개씩 클립보드를 쥔 채로, 장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각 팀이 식재료를 선별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제 서류에 무언가를 기입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미 심사가 시작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때였다.
“흠, 기분 탓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등 뒤편에서 느닷없이 들려온 음성에, 필상이 고개를 돌려서는 목소리의 주인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폴 보티즈···?”
다름 아니라, 심사위원진 중 가장 권위 있는 심사위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폴 보티즈 셰프가 자신들의 등 뒤를 우두커니 지키고 서 있는 상태였다. 생각을 읽을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로, 자신들의 식자재가 담긴 바구니를 빤히 들여다보는 중이었으나 특유의 피네스가 아우라처럼 넘실대는 듯 보일 따름이었다.
꿀꺽-.
필상이 입안 가득 고인 침을 한 번 삼켜내 보이던 찰나, 폴 보티즈 셰프가 특유의 높고 갈라짐이 심한 목소리로 천천히 물음을 건네왔다.
“골라내신 식자재가 꽤 익숙해 보이는군요.”
“아마 그럴 겁니다.”
“영 셰프, 혹시 제 코스를 ‘카피’(Copy)하시려는 겁니까?”
“저를 알고 계시는군요. 정말 영광입니다.”
“그야 물론이죠. 저도 TV를 보고 인터넷을 사용하니까요.”
말을 마친 그가 재차 덧붙였다.
“더군다나 얼마 전에는 투데이 쇼에서 미슐랭과 모든 셰프를 도발하기까지 하셨지 않습니까? 지속적으로 화제를 만드시는데 모르고 있을 리가요.
“칭찬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받아들이시기 나름이겠죠. 그보다는 제가 드린 질문에 대한 답을 들었으면 하는데.”
“카피라기 보다는 존경심이 담긴 오마쥬라고 할 수 있겠네요.”
“흠, 어쨌든 제 코스를 그대로 선보이겠다는 뜻이로군요. 존경심이 가득 서린 오마쥬보다는 도발적인 문구가 가득 채워진 도전장을 받은 기분이로군요.”
“받아들이시기 나름일 것 같네요.”
한차례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보인 폴 보티즈가, 사뭇 가라앉은 어투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미리 충고해드리죠. 카피든, 오마쥬든, 제 코스를 그대로 선보인다면 좋은 평가를 받기 쉽지 않을 겁니다. 더욱 엄격한 시선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형편없는 요리를 선보이고 재해석이라는 변명을 늘어놓는다면 실격을 절대 면치 못하실 테고요.”
“새겨듣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이 노선을 변경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란 뜻입니다.”
이내 필상이 식재료 바구니 한 개를 들어 올리며 답했다.
“조언은 정말 감사합니다만, 재작년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셰프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으시잖아요?”
“어떤?”
“모든 시련은 극복하고 나면 자랑스러운 영광이 되기 마련이라고요. 그 말인즉슨, 없는 영광을 거머쥐기 위해서는 없는 시련을 만들어서 부여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만. 혹시 잘못된 해석이었나요?”
그 말에 폴 보티즈가 고개를 몇 번 끄덕여 보이고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로 덧붙였다.
“부디 셰프의 시도가 객기가 아니길 기도하겠습니다.”
“실망시키지 않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필상이 제 식재료를 챙겨 든 채 지정된 조리대로 향했다. 여타 팀들과 마찬가지로 챙겨 온 식재료와 나이프 키트의 상태, 화구를 비롯한 조리기구의 정상 작동 여부를 확인한 뒤 홀로 천천히 생각을 정리해보기 시작했다. 다빈을 비롯한 다른 팀원들 역시 마찬가지. 저마다 조금씩 거리를 두고 선 채로, 아무런 말없이 홀로 사색에 잠겨있는 상태였다.
분주히 마지막 작전회의를 거듭하고 있는 여타 팀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하다못해 바로 옆 조리대를 배정받은 ‘강훈&윤재 셰프 팀’만 하더라도, 비장한 얼굴을 한 채로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느라 여념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 순간, 스피커를 타고 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기 시작되었다.
– 지금 부로 1번 시드 경연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와 동시에 B홀 앞쪽에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제한 시간이 송출되기 시작했다.
[ 2:00:00 ] [ 1:59:59 ] [ 1:59:58 ] [ 1:59:57 ]그렇게 운명의 변곡점이 되어줄 지도 모를, ‘2013 베스트 듀오 셰프 챔피언십’의 막이 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