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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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28 – 코리안 더비 매치 (3)
폴 보티즈 셰프가 허탈한 웃음을 한 번 흘려 보이고는, 필상에게 재차 물음을 건넸다.
“토마토소스와 베샤멜 소스의 비율, 버터의 염도와 농도, 투입된 향신료의 종류와 양까지 모두 정확히 일치하는데 발뺌할 생각은 아니겠지?”
“발뺌이라뇨?”
“대체 누가 칠칠맞게 내 레시피를 흘리고 다닌 거지? 어디서 난 건지 말하게. 자네에게 책임을 묻게 할 생각은 없네.”
그 말에 필상이 제 머리를 검지로 ‘톡, 톡.’ 두드려 보이고는 답했다.
“상상을 보태서 만들어봤는데 어떻게 꽤 그럴싸했나요?”
“발뺌하겠다는 건가?”
그렇게 장내에 무겁기 그지없는 정적이 드리우기를 잠시. 필상이 다시금 화구 위에 얹어진 냄비들의 내용물을 주걱으로 휘휘 내젓거나, 손잡이를 꼭 쥔 채 빙글빙글 가볍게 돌려가며 되물었다.
“1961년, 폴 보티즈 정통 코스에 함께한 요리사 중 발설할만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건….”
“한 명도 없겠죠. 당시의 쿡 헬퍼였던 요리사분조차 여전히 폴 보티즈 셰프의 밑에서 일하고 있으며, 전 세계 각지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의 헤드 셰프로 거듭났으니까요.”
한차례 피식 미소를 지어 보인 폴 보티즈가 재미있다는 듯 되물었다.
“비밀이 궁금하군그래.”
“그래서 비밀이죠.”
“말해줄 생각은 없나?”
말을 마친 폴 보티즈 셰프가 바짝 마른 제 아랫입술을 한 번 핥아내 보이던 찰나. 필상이 그런 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덤덤하기 그지없는 투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서칭을 통해 관련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흑백사진만 게시되어 있는 건 아니더군요.”
“그럼?”
“셰프께 첫 영광을 안겨 준 코스이기 때문인지 1961년도 폴 보티즈 정통 코스에 포함된 요리들이 각종 행사 및 연회. 또 세계 각지에 위치한 분점의 시즌 메뉴로 편성된 기록이 있더군요.”
“설마…?”
“네. 자료를 수집한 뒤 분석했습니다. 분석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은, 상상력을 보태서 해결했고요.”
그 말에 폴 보티즈 셰프가 저도 모르게 “허….” 하고 낮은 탄식을 흘려 보였다. 만약 영 셰프의 말이 사실이라면, 상식의 범주를 아득히 초월하는 천부적인 재능을 갖추고 있음이 분명했다.
이윽고, 필상이 그제야 폴 보티즈 셰프와 눈을 맞춰가며 재차 입을 뗐다.
“놀라시기엔 이른 시점일 겁니다. 완성되지도 않은 오로라 소스를 조금 맛보신 게 전부잖아요?”
“크하하, 세간이 어째서 자네를 ‘나폴레옹’이라 칭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군그래.”
“흠, 그렇다면 저희 팀이 조리를 마친 뒤에는 셰프께서도 저를 나폴레옹이라 부르게 되실지도 모르겠네요.”
이내 잠시간 그런 필상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던 폴 보티즈 셰프가, 보인 적 없던 그윽한 미소를 머금은 채 짤막하게 말했다.
“기대하도록 하지.”
한차례 “감사합니다.” 하고 답해 보인 필상이 다시금 조리에 열중하던 찰나. 장내 곳곳에서 경외의 시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본의 아니게 엿들은 주변 조리대의 셰프들은 물론이고, 다빈, 이정준, 로버트에 이르기까지. 다들 하나같이 필상의 치밀함과 천부적인 재능에 대해 감탄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하나, 사실 비밀이 한 무더기는 더 숨겨져 있었다.
필상은 ‘폴 보티즈 1961 정통 코스 메뉴’를 맛본 경험이 있었다. 그러니까, 미래라고 해야 할지 과거라고 해야 할지조차 모호한 회귀 이전의 삶 속에서 말이다. 파리에 첫발을 내딛고, 보유하고 있는 현금을 탈탈 털다시피 하여 폴 보티즈 파리 본점에 방문했던 그 날.
폴 보티즈 셰프는 자신의 은퇴를 앞두고, 제 파인다이닝의 메뉴를 폴 보티즈 정통 코스 메뉴로 단일화시켜놓은 상태였다. 영원히 잊지 못할 황홀한 맛이었기에, 틈이 날 때마다 집요하게 추적했고 제법 정답에 가까운 맛을 연출할 수 있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그로부터 정확히 반년 뒤, 폴 보티즈 셰프가 별세한 이후 ‘태양에 특허를 낼 수는 없다.’는 제목의 책이 한 권 발간되었다. 다름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 함께 써내려간 폴 보티즈 셰프의 레시피가 빼곡히 기록된 책이었다.
요리계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레시피 일부를 공개하겠다는 유언을 남겼고, 제자들이 그의 유언을 따라 레시피 일부를 공개한 것이다. 그 무렵에는 이미 과거의 유산으로 전락해 버린, ‘폴 보티즈 1961 정통 코스 메뉴’들의 레시피 역시 함께 공개되었고 말이다.
책장이 닳아 해질 때까지 읽어댔다. 반년간은 짬이 날 때마다, 그의 레시피가 담긴 책만 죽어라 읽어댔으니 말이다. 그의 천재성과 요리에 대한 열정이 부러웠던 터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 또 자신이 분석한 레시피와 저서에 기록된 레시피를 비교해가며 틀린 부분을 수정하기까지 했다.
결국, 그에게 셰프로서의 첫 영광을 안겨주었던 ‘폴 보티즈 1961 정통 코스 메뉴’를 완벽히 재현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고 말이다.
그의 코스를 완벽히 재현할 수 있다는 확신과 더불어, 그의 이목을 한껏 잡아끌 수 있으리란 확신. 또 이번 대회를 통해서도 꽤 규모 있는 이슈를 만들어낼 수 있는 확신에 이르기까지….
예선에서 폴 보티즈 셰프의 코스를 카피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데에는. 또 팀원들의 염려에도 뜻을 굽히지 않은 데에는, 치밀하기 그지없는 계산이 섞여 있던 것이다.
이윽고, 한차례 “후….” 하고 숨을 내쉬어 보인 필상이 곧장 완성된 소스들을 스토브에서 내리며 덧붙였다.
“다빈, 소스 마무리 좀 부탁할게요.”
“예, 셰프.”
이내 필상이 곧장 수프 메뉴 조리에 시작했다. 이번 경연에서 선보이려는 두 종류의 수프가, 모두 꽤나 긴 조리 시간을 요구하는 터라 가장 먼저 조리할 요량이었던 것이다.
우선 첫 번째 메뉴는 ‘샤프란 홍합 수프’ 였다.
이름만 들으면 여느 레스토랑에서든 간간이 시즌 메뉴로 등장하여 별다른 어려움 없이 맛볼 수 있는 홍합 수프처럼 느껴질 수 있겠으나, 필상이 선보이려는 수프는 폴 보티즈 셰프 본인이 고안해 낸 ‘*부야베스’(Bouillabaisse:서양식 해물 잡탕, 프랑스 마르세유 지방에서 특히 유명하다) 수프랄 수 있었다.
예열한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후끈하게 달아오른 팬 위에 다진 샬롯을 한 주먹가량 끼얹어주었다.
치이이이익-.
듣기 좋은 소리와 함께 양파에서 흘러나온 수분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이내 필상이 한 손으로는 양파를 잘 저어주며, 또 다른 한 손으로는 수프의 베이스를 조리해내기 시작했다.
우유와 밀가루, 미리 끓여둔 해물 스톡을 적정 비율에 맞춰 혼합해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윽고, 양파가 적당히 카라멜라이징 되었을 무렵. 곧장 화이트와인과 미리 만들어 둔 베이스를 함께 끼얹어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프가 끓어오르기 시작했고, 각종 치즈와 허브, 버터, 그리고 잘 발라둔 홍합살을 차례로 넣어주었다. 이제 모든 요리의 조리가 끝날 때까지 약한 불에서 뭉근하게 데우듯 끓여내다가, 접시에 옮겨내는 과정에서 표면에 샤프란을 흩뿌려주면 완성이랄 수 있었다.
비록 레시피는 간단한 편에 속한다지만, ‘심플 이즈 베스트’(Simple is Best)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란 사실을 증명하듯 황홀한 맛을 지닌 훌륭한 수프였다.
또 프랑스 서민 음식과 일본의 조리기법을 기발하게 섞어내곤 하는, 폴 보티즈 셰프의 아이덴티티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요리이기도 했고 말이다.
이내 필상이 연달아 두 번째 수프 메뉴를 조리해내기 시작했다. 두 번째 메뉴는 ‘폴 보티즈 1961 정통 코스 메뉴’의 시그니쳐 메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송로버섯 수프였다.
이는 폴 보티즈 셰프가 엘리제궁에서 개최된 축하 만찬회에서 처음 선보였던 수프로, *전(前) 프랑스 대통령인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이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메뉴이자 그에게 레종 도뇌르 훈장을 수여해준 일등 공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메뉴였다. 물론 그 조리과정은 여타 송로버섯 수프와는 레시피 자체가 아예 다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었고 말이다.
우선 초반부의 조리법은 여타 송로버섯 수프와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버터를 녹여낸 팬에 잘게 다진 샬롯을 볶아내다가, 샬롯 입자가 투명해질 무렵 정갈하게 썰어낸 양송이버섯을 넣고 다시 한번 볶아주었다.
그리고는 수프의 농도를 맞추기 위해, 곧장 팬을 살짝 기울여서는 완전히 녹아내려 액체가 되어버린 버터를 팬 한 면으로 완전히 몰아준 뒤 밀가루를 끼얹어주었다. 그다음 곧장 우유를 끼얹어 다시금 끓여내 주었고, 적당히 끓여낸 뒤에는 곧장 부드러운 식감을 부각하고자 끓여낸 수프를 채에 한 번 걸러주었다.
그리고는 곧장 플레이팅을 시작했다. 컵의 형태를 띤 동그랗고 자그마한 접시에 곱게 걸러진 수프를 가득 담아내고는, 그 위에 강판에 얇게 갈아낸 송로버섯과 짙은 녹색을 띤 허브를 솔솔 끼얹어주었다.
일반적인 송로버섯 수프라면 여기서 조리가 끝날 터였으나, 폴 보티즈식 송로버섯 수프는 이제부터 시작이랄 수 있었다. 이내 필상이 “쁘띠.” 하고 말해 보인 뒤, 나직이 물음을 건넸다.
“오븐 온도 체크 하셨어요?”
한차례 “예, 셰프!” 하고 답해 보인 이정준이 의기양양한 투로 답했다.
“정확히 190도, 완벽합니다.”
“좋아요.”
만족스럽다는 듯 답해 보인 필상이 “로버트.” 하고 말해 보이자, 한참 동안 반죽을 치대고 있던 로버트가 수프를 담아낸 접시 위에 반죽을 씌워내기 시작했다. 이윽고, 마치 반죽이 수프가 담긴 자그마한 접시의 뚜껑이라도 되는 양 홈을 완벽히 뒤엎던 찰나. 필상이 육안으로 상태를 점검한 뒤,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나직이 덧붙였다.
“곧장 오븐으로 보내면 될 것 같네요.”
이는 일본 가이세키(会席)의 요리법 중 하나인 ‘공기’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레시피였다. 본래는 향기로운 국을 뚜껑이 달린 공기에 내와 뚜껑을 여는 순간 그 향이 확 퍼지게끔 하는 방식이다.
다만 폴 보티즈 셰프는 뚜껑 대신 파이 반죽으로 컵의 형태를 띤 접시 상단을 뒤엎는 식으로, 송로버섯 수프의 향을 가두고 스푼으로 파이 반죽에 구멍을 살짝 내는 순간 수프의 강렬한 향이 단숨에 쇄도할 수 있도록 레시피를 개량해낸 것이다.
“타이머 설정 완료했습니다.”
로버트의 말에 필상이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타이머 위에 나타나 있는 시간을 한 번 확인해보았다.
[ 00:29:59 ]폴 보티즈식 송로버섯 수프가 완성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앞으로 딱 삼십 분. 이번에는 고개를 휙 돌려서는 연단 뒤편 스크린 위에 나타나 있는 경연의 제한시간을 확인해보았다.
[ 01:43:05 ] [ 01:43:04 ] [ 01:43:03 ]하나, 사실상 스크린 위에 나타나 있는 시간은 무의미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남아있는 여섯 가지 메뉴들을, 송로버섯이 완성되는 데 필요한 30분 안에 모조리 완성해 보일 생각이었으니까.
한차례 득의의 미소를 지어 보인 필상이, 곧장 다음 메뉴 조리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
한편, 한창 조리를 이어나가느라 여념이 없던 강훈 셰프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려 보이고야 말았다.
“허….”
다름 아니라, 필상 팀의 코스 요리가 윤곽을 잡은 것은 물론이고 어느덧 완성을 코앞에 두고 있는 듯 보였던 탓이었다.
이내 강훈 셰프가 고개를 두리번거려가며, 인근 조리대에서 조리를 이어나가고 있는 타 팀의 진행상황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몇몇 팀이 꽤 빠른 속도로 조리를 이어나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필상 팀의 조리 속도는 가히 압도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었다. 자신의 팀을 비롯하여, 대다수의 팀이 이제야 간신히 서너 종류의 메뉴를 완성시키는 데 성공한 듯 보였으니 말이다.
그때였다.
띵-.
필상이 제 조리대 한편에 놓여있던 종을 울려 보였다. 조리를 완료했음을 알리는 신호나 마찬가지였다.
이내 종소리를 들은 모든 이들이, 연단 뒤쪽 스크린을 통해 송출되고 있는 남은 시간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 1:10:38 ]경연이 시작된 지 고작 50분 남짓한 시간 만에, 첫 번째로 조리를 마친 것이다. 이내 심사위원들이, 결연한 표정을 한 채로 ‘필상&다빈 팀’의 조리대를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