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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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28 – 코리안 더비 매치 (4)
“정말이지 놀라운 속도로군요.”
전 세계 레스토랑 순위를 매기는 컨텐츠로 많은 구독자를 확보하는 데 성공한, 유명 푸드매거진 ‘*레스토랑스’(*Restaurants)의 편집장인 동시에 유명 평론가인 헤르만 헤세의 말에 필상이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답했다.
“감사합니다.”
이내 한차례 고개를 끄덕여 보인 그가 재차 입을 뗐다.
“하지만 조리 속도를 심사하는 대회는 아니니, 특별한 가산점을 기대하시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군요.”
“예, 물론입니다.”
나직이 답해 보인 필상이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비록 심사위원들이 직접 가산점을 부여해 줄 일은 없겠으나, 글쎄?
이런 부류의 대회에서는 첫 번째 순서로 심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랄 수 있었다.
우선 첫 번째인 만큼 정체성이 명확한 요리를 선보인다면, 그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을 게 분명했다. 또 그들 역시 사람인지라, 아무리 소량을 시식한다더라도 이 많은 팀의 요리를 계속해서 맛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더부룩함과 거북하기 그지없는 성질의 포만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을 터였고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현재 장내에 자리해 있는 카메라 중 태반이 자신들을 담아내고 있기도 했다. 이 또한 첫 번째 순서로 조리를 마쳤기에 만들어낼 수 있던 결과랄 수 있었고 말이다.
그때 폴 보티즈 셰프가 “큼, 흠.” 하고 헛기침을 해 보인 뒤, 조바심이 은은하게 서린 어투로 말문을 열었다.
“타 팀의 조리과정 역시 세심히 지켜보려면 곧장 심사를 시작하는 게 좋겠군요.”
“그럼 에피타이저 메뉴 먼저 준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필상이 “쁘띠.”하고 말하자, 이정준이 널찍한 원형 접시 한 개를 스테인레스 재질의 조리대 위에 내려놓아 주었다.
바닥에 깔린 샐러드 위로 보기 좋게끔, 또 먹기 편하게끔 껍질과 살을 말끔히 분리해놓은 랍스터 한 마리가 통째로 올려진 상태였다. 또 접시 바닥부에는 오로라 소스가 드레싱 대용으로 잔뜩 끼얹어진 상태였고 말이다.
이내 폴 보티즈 셰프가 저도 모르게 제 고개를 좌∙우로 내저어 보이고는, 웃음기가 가득 서린 투로 나직이 말했다.
“플레이팅은 완벽히 분석해낸 것 같은데, 과연 맛도 정확히 재현해냈을지 궁금하군.”
마냥 느긋해 보이는 그와 달리, 여타 심사위원들은 충격을 금치 못한 듯 보일 따름이었다. 심사위원 중 태반이, 폴 보티즈 셰프가 1961년을 기점으로 대략 4년간 선보였던 정통 코스 메뉴를 시식해 본 이력이 있던 까닭이었다.
“셰프께서는 정말 기쁘시겠습니다. 과거를 재현해주는 후배 요리사라니, 정말 낭만적이에요.”
“와우, 정말 놀랍군요. 향수가 담긴 접시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군요.”
한편, 모두가 호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 듯 느껴질 따름이었다. 영 못마땅하다는 듯 들여다보고 있던 ‘파인다이닝 어드바이저’ 소속 칼럼니스트, 다비가 날이 바짝 선 투로 물음을 건네왔으니 말이다.
“시식에 앞서 헤드 셰프께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혹시 ‘폴 보티즈 1961 정통 코스 메뉴’를 그대로 카피하신 겁니까?”
“예, 맞습니다.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오마주’가 적합할 것 같지만요.”
“에피타이저 이후에 전개될 모든 메뉴가, 폴 보티즈 셰프가 과거에 선보였던 코스의 오마주란 말씀이시군요?”
“네, 그렇습니다.”
필상이 의기양양한 투로 답해 보이던 찰나, 다비가 미간을 살짝 찡그린 채 공격적인 투로 물음을 건네왔다.
“하나만 더 여쭤보도록 하죠. 헤드 셰프께서는 이번 대회의 취지와 가장 중점적인 심사 항목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두 명의 셰프가 모였을 때 발생하는 시너지와 창의적인 요리라고 알고 있습니다.”
“예, 맞습니다. 놀랍군요. 정확히 알고 계신데도 불구하고, 타 셰프의 메뉴를 오마주 하셨을 줄은 몰랐는데 말입니다.”
이내 심사위원들이 낮은 목소리로 저들끼리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의견이 분분히 엇갈리고 있는 듯 보일 따름이었다.
또 그와 동시에 필상의 뒤편에 일렬로 서 있던 팀원들의 표정 위로, 금세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상황이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한 까닭이었다.
반면, 필상은 여전히 여유롭기 그지없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파우스트를 이끌고 있는 저도 그렇고, 장 조니를 이끌게 된 다빈도 그렇고 트렌디한 요리를 선보이는 셰프라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무슨 뜻이죠?”
“제 주방 안에는 분자 요리 섹션이 따로 갖춰져 있습니다. 저는 유행에 극도로 민감합니다. 재미있고, 뛰어난 맛이 있다면 어떻게든 취하려 노력하는 편이죠. 다빈 역시 마찬가지고요.”
눈짓으로 제 등 뒤편에 서 있는 다빈을 가리켜 보인 필상이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파인다이닝 장 조니가 시대정신에 도태되지 않고, 꾸준히 트렌디한 코스 메뉴를 선보일 수 있었던 데는 젊은 수 셰프 다빈의 공이 있었을 것입니다. 대다수의 평론가 및 칼럼니스트분들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시는 경우가 부지기수고요.”
“예, 그렇죠.”
“한데, 부정의 말이 연달아 두 번 이어지면 긍정이 되지 않습니까? 트렌디함을 쫓는 두 명의 셰프가 만났더니, 오히려 클래식에 집착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좋겠군요.”
필상의 말에 몇몇 심사위원들이 그윽한 미소를 지어 보이기 시작했다. 다비의 공격적인 질문 공세에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느긋하기 그지없는 태도로 제 할 말을 쏟아내는 필상의 모습이 꽤 기특하게 느껴졌던 탓이었다. 이내 폴 보티즈가 포크를 집어 들며, 잠시간의 언쟁을 종식시켰다.
“언변만큼 뛰어난 요리 실력을 지녔는지 확인해보는 게 좋겠군요.”
이내 심사위원들이 개인 접시에 랍스터와 샐러드, 그리고 소스를 적당히 덜어내서는 천천히 맛을 보기 시작했다.
외형처럼 화려하기 그지없는 맛을 지닌 요리였다. 오로라 소스가 지닌 산미와 아삭아삭한 샐러드, 그리고 탱글탱글한 랍스타의 식감이 지극히 선명하고 조화롭게 느껴질 따름이었으니 말이다.
시식을 마친 심사위원 중 가장 먼저 말문을 연 것은, 폴 보티즈 셰프였다. 좀처럼 웃는 얼굴을 보이는 법이 없는 그였으나, 한차례 너털웃음을 흘려 보이고는 포크를 내려놓으며 필상에게 되물었다.
“영 셰프,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조리법을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셰프의 셰프께서 고안해내신 레시피인 만큼, 셰프께서 괜찮으시다면야 얼마든지요.”
“예, 괜찮습니다.”
한차례 고개를 끄덕여 보인 필상이 유려하게 레시피를 읊어나가기 시작했다.
“월계수 잎, 펜넬, 레몬, 라임, 코리안다 씨를 넣어 끓여낸 육수로 랍스타를 삶아냈습니다. 그다음엔 오로라 소스와 계란 노른자, 올리브오일, 트러플 오일을 살짝 섞어줬고요. 신선한 야채를 깔고, 그 위에 랍스타를 올리고, 미리 만든 소스를 끼얹었죠.”
말을 마친 필상이 확신이 가득 서린 투로 덧붙였다.
“셰프께서 1961년에 고안해내신 대로 말입니다.”
“정말 놀랍군요.”
넋이 나간 듯 말해 보인 폴 보티즈 셰프가, 다른 심사위원들의 얼굴을 한 번씩 바라본 뒤에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여러분께서도 아시다시피 한 번도 공개한 적이 없는 레시피입니다. 저뿐 아니라, 모든 셰프들이 자신의 시그니처 메뉴의 레시피를 공개하지 않겠죠. 그런데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완벽히 재현해냈어요. 원작자인 저 스스로조차, 제가 직접 만든 요리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지경이죠.”
그 말에 심사위원들이 한껏 목소리를 낮춘 채로, 저마다의 심사평을 조심스레 주고받기 시작하던 찰나. 폴 보티즈가 곧장 고개를 돌려서는, 다시금 필상을 들여다보며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여유가 절절히 느껴지는 조곤조곤한 투로 되물었다.
“영 셰프, 오마주의 뜻을 아십니까?”
“본래는 ‘존경’이란 뜻이죠.”
“예, 영 셰프의 오마주가 감사히 느껴지는군요.”
말을 마친 그가 의미심장한 투로 재차 덧붙였다.
“부디 코스가 끝날 때까지 지금의 감사함을 유지할 수 있으면 좋겠군요.”
“그럼 다음 메뉴를 준비해드려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이내 이정준이 두 번째 에피타이저 메뉴가 담긴 접시를 조리대 위에 내려놓았다.
“딜로 향을 낸 연어 마리네입니다.”
앞서 서비스된 에피타이저 메뉴와 달리, 다소 투박한 외형을 한 요리였다. 두툼한 두께로, 하지만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낸 연어 위로 다진 샬롯과 더불어 올리브와 파슬리. 그리고 꽤 많은 양의 딜 잎사귀가 통째로 올려진 게 전부였으니 말이다.
워낙 클래식한 요리인 데다가, 지금에 접어들어서는 ‘진부하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널리 전파된 터라 딱히 호평을 듣지는 못했다.
“흠, 신선한 연어로 만든 괜찮은 마리네로군요.”
“나쁘지 않았습니다.”
“눈에 띄게 좋지도 않았지만요.”
“향수가 느껴져서 좋더군요.”
“그래도 1960년대로 돌아온 느낌이 드는군요.”
예상했던 반응이라는 듯 고개를 천천히 한 번 주억거려 보인 필상이, 재차 말문을 열었다.
“그럼 다음 메뉴를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이번에는 주방 장갑을 손에 끼고 있던 로버트가, 직접 오븐을 열어서는 안쪽에 자리해 있던 컵 모양의 접시를 꺼내 들었다.
이윽고, 앞서 필상에게 공격적인 질문을 퍼부었던 파인다이닝 어드바이저 소속 평론가 ‘다비’가 엷게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뗐다.
“맙소사, 설마 ‘V.E.G’수프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나직이 답해 보인 필상이 스푼을 하나씩 건네주며 재차 덧붙였다.
“방금 막 오븐에서 꺼낸 터라, 상당히 뜨거우니 가급적 조심해서 드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이내 심사위원들이 저들끼리 눈을 맞춰가며 헛웃음을 흘려대기 시작했다. 다비가 말한 ‘V.E.G 수프’는 폴 보티즈 식 송로버섯 수프의 별명이었다. 그의 수프를 맛본 뒤 레종 도뇌르 훈장을 수여해주었던 바 있는, 프랑스 전 대통령.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의 약자에서 비롯된 별명이었던 것이다.
로버트가 조리대 위에 수프가 담긴 컵 형태의 접시를 내려놓기 무섭게, 심사위원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 마냥 가까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뚜껑처럼 접시를 뒤덮고 있는 파이를 찢었을 때, ‘확-.’하고 쇄도하게 될 향을 만끽하기 위함이었다.
이윽고, 폴 보티즈 셰프가 손에 쥔 스푼의 끄트머리로 파이의 정중앙부를 푹 찔러넣고 비틀어 파이 부분을 찢던 순간.
차마 형용하여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풍스러운 향을 머금은 후끈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고소한 파이의 향에 감춰진, 수프의 향, 더 깊숙이 파고들어 감각을 곤두세워야 면밀히 느낄 수 있는 송로버섯 특유의 매력적인 흙냄새에 이르기까지….
이내 그 향을 만끽하는 데 여념이 없던 심사위원들이, 각자 몫의 접시에 수프와 파이를 적당히 덜어내서는 조금씩 맛을 보았고 그 누구도 선뜻 말문을 열지 못했다. 지금 선보이고 있는 메뉴들이, 폴 보티즈 셰프에게 어찌나 각별한 의미로 다가올 것인지에 대해 다들 눈치채고 있던 까닭이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폴 보티즈 셰프가 겨울철 칼바람 앞에 놓인 사시나무처럼 세차게 떨리는 투로 말문을 열었다.
“정말 영광스러운 순간이었지.”
그리고는 다른 심사위원들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최고의 순간이었어. 거기서부터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으니까. 대통령에게 극찬을 받고, 요리사 중 최초로 레종 도뇌르 훈장을 수여받고….”
이내 심사위원들이 하나같이 씁쓸한 미소를 머금어대기 시작했다. 지금 폴 보티즈 셰프가 그렇듯 필상이 선보인 수프를 통해, 흘러가 버린 자신들의 젊음을 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윽고, 한참 동안 뒷말을 머금고 있던 폴 보티즈 세프가 심호흡을 한 번 해 보이고는 다급하기 그지없는 투로 말을 이었다.
“다음. 다음 메뉴를 맛보고 싶군.”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가려다간, 눈물을 보일지도 모르겠다는 불안 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