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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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29 – 슈퍼 루키 (4)
다름 아니라, 필상&다빈 팀에 소속되어 있는 인상이 사납고 덩치가 큰 요리사의 행동 때문이었다.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우람한 체구를 한 그가, 분자요리 장비의 전원을 하나씩 하나씩 연결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뭐, 뭐지…?’
만약 영 셰프가 정말 자신을 뒤흔들기 위해 장비들을 가져다 둔 것뿐이었더라면, 굳이 전원을 연결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이내 오만 가지 가설과 확률들이 머릿속에서 부딪히기 시작했다. 또 마치 과부하가 걸린 컴퓨터처럼, 사고가 쉽게 정돈되지 않고 자꾸만 어질러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급기야는 몸이 돌연 후끈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는 정말 가끔, 자신의 계산이 철저히 빗나갔을 때 발생하곤 하는 일련의 징후나 마찬가지였다. 상황이 크게 어그러졌다. 계산이 틀렸다. 모든 상황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갈라예프를 불안하게 하는 모든 생각들이, 머릿속을. 아니, 경연이 치러지고 있는 연회장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말려들어선 안 돼. 정말 분자요리라는 카드로 맞서겠다는 결정을 내린 거라면, 오히려 더 긍정적인 상황이야. 계산이 틀린 건 확실히 당황스러운 일이라지만, 그래도 승률은 확실히 상승했을 테니까….’
분자요리의 세계에 빠져들고,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집착하고 파헤친 기간만 하더라도 자그마치 십 년이 넘는다. 자신의 파트너 셰프로 함께 출전한 러셀 역시 마찬가지였다. 주말이면 그와 함께 도서관에서 관련 논문 및 서적을 독파했으며, 심지어 직접 집필한 책도 몇 권이나 되었다.
또 일과를 마친 뒤에는 그와 함께 진흙 목욕 클럽으로 향해, 진흙 반신욕을 하며 분자요리에 대한 토론을 거듭해왔고 말이다. 노력이 집결된 시간이다. 아무리 천재적인 재능 탓에 추앙받고 있는 영 셰프라 한들, 절대 그 노력의 시간을 단숨에 뛰어넘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순 없을 테였다.
‘좋아.’
결연한 표정을 해보인 그가 수차례 심호흡을 해보이고는, 다시금 자신이 선보여야 할 코스를 위한 준비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한창 깊은 상념에 젖어 든 채로 허우적대고 있던 갈라예프 셰프와 달리, 필상은 마냥 평온하기 그지없는 상태였다.
로버트와 시시콜콜한 대화를 주고받아가며, 분자요리 장비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를 확인하기 시작한 것이다.
급속냉각 장비인 ‘*파코젯’(*Pacojet)을 시작으로, 거품을 낼 때 사용할 *휩 쉬폰(*Whip Siphon), 비슷한 용도로 사용하게 될 ‘*바믹스’(*Bamix) 등….
그 밖에도 오늘 사용하게 될 여러 장비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모두 확인한 필상이, 로버트의 어깨를 가볍게 ‘툭.’ 쳐 보이고는 로버트에게 나직이 말했다.
“이제 준과 함께 밑 작업을 해주시면 될 것 같네요.”
“예, 셰프.”
이내 필상이 다빈과 함께 이번 분자요리 코스에 쓰일 스톡(*육수)과 소스를 준비해나가기 시작했다.
다만 그 방식이 앞서 치렀던 1차 예선 때와는 사뭇 다른 듯 보일 따름이었다. 스톡, 퓌레, 소스의 경우 넣을 재료를 냄비에 넣고 삶은 뒤 으깨거나 갈아 걸쭉한 정도를 맞추고 맛과 색을 내기 마련이다.
한데, 문제가 한 가지 있었다.
다름 아니라, 수비드 기계로 스톡을 우려내면 깊은 맛을 낼 수야 있다지만 12시간에서 16시간가량의 장시간의 조리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분자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셰프들 역시, 경연의 제한 시간 탓에 수비드 기계를 거의 활용하지 않은 채 스토브를 이용해 조리하는 일반적인 스톡 및 퓌레를 선보이고 있는 중이었고 말이다.
하지만.
“쁘띠, 수비드 기계 온도 좀 맞춰주시겠어요?”
“예, 셰프.”
“오븐도 예열해주세요.”
“온도는요?”
“220도로요.”
이정준에게 지시를 내린 필상이 곧장 스톡의 재료들을 엄선해내기 시작했다. 대략 2kg가량의 뼈, 다짐육, 뭉텅뭉텅 썰어낸 양파를 오븐용 팬에 잘 담아내고는 곧장 예열된 오븐에 집어넣었다.
뼈와 고기, 양파를 익힌 뒤 육수를 우려내면 육수의 맛과 향이 한결 더 깊어지고 고풍스럽게 변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곧장 화구의 불을 켜고, 냄비를 올린 뒤 기름을 두른 채로 예열시켜주었다. 이윽고, 냄비 표면에서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하던 찰나였다.
치이이이익-.
필상이 당근, 후추, 마늘 등을 넣고 한 번에 잘 볶아내주다가 곧장 물을 부어서는 끓여내기 시작했다. 또, 한차례 가열을 마친 뼈와 다짐육. 양파를 모조리 냄비 안에 집어넣은 채 함께 끓여주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육수가 보글보글 끓어오르기 시작했을 무렵, 필상이 냄비의 내용물을 모두 수비드 조리용 스테인리스 재질의 통에 옮겨 담았다. 그리고는 진공포장까지 마친 뒤, 90도가량의 낮은 온도로 예열된 수비드 기계에 집어넣은 채 육수를 우려내기 시작했다.
냄비를 통해 고온 가열 과정을 한 번 거치는 것만으로도 육수를 조리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몇십 배나 단축할 수 있지만 수비드 기법의 특징. 즉, 재료의 품질. 또, 맛과 향 등을 보존할 수 있어 육수의 깊은 맛을 살릴 수 있다는 장점은 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때, 어느새 지척에 다가온 ‘푸드&사이언스 매거진’ 소속 심사위원인 마이클 로스가 나직이 물음을 건네왔다.
“놀랍네요. 수비드 육수 레시피를 제한시간이 부여된 경연에 알맞게끔 잘 변형시켜내셨군요. 분자요리에도 일가견이 있으셨군요?”
“파우스트에서도 몇 종가량의 분자요리를 선보였던 적이 있습니다. 물론, 이번 경연을 준비하던 과정처럼 깊게 파고들어 본 적은 없었지만요.”
사실 2014년 현재까지는 분자요리에 특화된 셰프들이 자연스레 컨벤션 출전을 꺼리는 분위기랄 수 있었다. 수비드를 활용한 조리법을 사용해야 할 경우, 제한시간 내에는 절대 제대로 된 맛을 낼 수 없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로부터 몇 년이 더 흐른 시점에 접어들자 분자요리를 전공한 ‘컨벤션 셰프’(Convention Chef)들이 줄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획기적인 발명품들이 으레 그렇듯, 필요를 느끼는 이들이 많아지면 제조되기 마련이다. 분자요리 레시피 역시 마찬가지.
몇몇 요리사들이 컨벤션 출전에 초점을 맞춘 분자요리학 레시피들을 줄줄이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필상의 말이 끝맺어지던 찰나, 이번에는 그의 곁에 서 있던 폴 보티즈 셰프가 재차 물음을 건네왔다.
“이유가 궁금하군.”
“예?”
이내 폴 보티즈 셰프가 제 심사용지에 무언가를 기록해가며, 재차 질문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주었다.
“갈라예프&러셀 팀은 분자요리학계에서 입지가 굳건한 것은 물론이고, 상당히 고평가받고 있는 인물들이지. 상대에 대한 분석이 부족했던 건가?”
“아마 분석이 부족했던 건 절대 아닐 겁니다.”
“그들 두 셰프의 주 분야인 분자요리로 맞서더라도, 무조건 이길 수 있으리란 약간의 가능성과 희망을 봤다는 뜻으로 들리는군.”
“예, 그렇습니다.”
“그 약간의 가능성과 희망 덕에, 이번 대회를 통해 얻게 될 모든 영광을 걸겠다는 겐가? 조금은 무모한 선택이지 않을까 싶은데.”
이내 필상이 그제야 폴 보티즈 셰프의 얼굴을 한 번 올려다보고는, 옅은 웃음기가 서린 투로 답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만약 제가 예선 1차전 때 셰프의 요리를 그대로 구현하겠다는 결정을 내리지 않았더라면, 과연 지금과 같은 주목을 받을 수 있었을지 모르겠네요.”
그 말에 잠시 미소 지어 보인 폴 보티즈 셰프가, 금세 평소의 표정을 되찾고는 나직이 답했다.
“아마 불가능했겠지. 만약 자네가 평범한 요리를 선보였더라면, 나 역시 평범한 심사 총평을 늘어놓았을 테니까. 혹시 이번에도 심사에는 반영되지 않을 개인적인 질문 하나 건네도 되겠나?”
“얼마든지요.
“이번 대회를 통해 얻고 싶은 게 뭔가? 인지도와 명성? 아니면 상패와 명예?”
“둘 다요.”
말을 마친 필상이 사뭇 짓궂은 미소를 머금은 채로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저는 ‘1등’이나, ‘최고’가 아니라면 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어요. 이번 대회에서 가장 큰 주목과 관심을 받은 팀의 셰프이자, 최고의 영광. 그러니까, 우승을 거머쥔 팀으로 기록되고야 말 겁니다.”
“몹시 야무진 목표로군.”
“심지어 실현 가능성이 확실하기까지 한 목표죠.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은 꽤 간단한 목표거든요. 지금처럼 분자요리 학계에서 일가견이 있는 셰프들로 구성된 팀을 만난다면, 분자요리로 구성된 코스를 선보이고 박살 내면 그만입니다.”
말을 마친 필상이 곧장 메인 메뉴 조리에 쓰일 식재료 손질을 시작해가며, 유려하게 뒷말을 이었다.
“또 클래식에 정통한 셰프를 만난다면 또 클래식한 요리들로 박살 낼 거고요. 제 주 분야가 아니라, 상대의 주 분야에 맞춰 제 코스를 바꿀 겁니다. 이미 거의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 뒀거든요.”
“그들의 주 분야로 맞서 싸우고, 승리를 거머쥔 뒤 그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차곡차곡 쌓아온 명성을 나눠 받겠다는 뜻이로군. 계획대로 흘러간다면 확실히 큰 주목을 받을 순 있겠군그래.”
그 말에 필상이 미간을 잔뜩 찡그린 채로 되물었다.
“나눠 받다니요?”
“예?”
“이건 뺏는 겁니다.”
사뭇 싸늘한 투로 말해 보인 필상이, 손에 쥐고 있던 칼을 도마 위에 던져 ‘푹-.’ 꽂아 세우고는 재차 덧붙였다.
“압도적인 실력으로 찍어누른 뒤, 무력으로 약탈하는 거죠.”
“이해했네, 아주 멋진 계획이로군.”
나긋한 투로 답해 보인 폴 보티즈 셰프가 필상에게 삿대질을 해보인 뒤 덧붙였다.
“어디까지나, 성공했을 때의 일이겠지만 말이지.”
“맞아요, 모든 계획들이 그렇죠.”
“한마디를 안 지는군.”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 편입니다.”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폴 보티즈 셰프가 한차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답했다.
“그래서 자네에게 거는 기대가 크네.”
그 말을 끝으로 두 심사위원들이 필상 팀의 조리대를 떠나, 옆 조리대의 진행상황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내 필상이 제 손에 묻은 물기를 *화이츠(*조리복) 앞부분에 살살 문질러 닦아낸 뒤, 곧장 해야 할 일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어디 보자….’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제한 시간이 아직 한 시간도 더 넘게 남아있을 무렵, 장내에 청량한 벨 소리가 울렸다. 조리가 끝났음을 알리는 벨 소리였다. 이내 심사위원은 물론이고, 참가자, 또 관전자들에 이르기까지. 장내에 자리한 모든 이들이 고개를 돌려서는, 소리가 울린 근원지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필상 팀에 소속되어 있는 요리사들이, 조리를 마쳤다는 사실을 과시하기라도 하듯 조리대 앞에 일렬로 서 있는 상태였다. 이내 심사위원들이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그들을 향해 다가서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던 갈라예프 셰프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대, 대체 어떻게….”
다시 한번, 자신의 계산이 엇나간 셈이었다. 계산대로라면, 자신의 팀이 가장 먼저 조리를 끝마쳐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이내 그가 바짝 마른 제 아랫입술을 한 번 핥아내고는,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필상과 심사위원진의 대화를 엿듣기 위해 귀를 쫑긋 세웠다.
이미 필상&다빈 팀의 조리대 앞에 다다른 심사위원들이 필상에게 이런저런 물음을 건네고 있던 것이다.
“아무리 분자요리였다지만 고작 40분 만에 코스 메뉴를 완성시키시리라곤 미처 예상치 못했습니다만….”
“기존의 분자요리 기법들을 컨벤션에서 사용할 수 있게끔 개량시킨 게, 조리 시간 단축에 큰 도움을 준 것 같습니다. 또 조리 동선 자체도 효율성을 고려하여, 체계적으로 설계했고요.”
“그렇군요. 혹시 준비한 메뉴의 가짓수가 부족한 편에 속하는 건 아닙니까?”
분자요리에 특히 관심이 많은 심사위원이자, ‘푸드&사이언스 매거진’ 소속 평론가 마이클 로스가 건네온 물음이었다. 이내 필상이 웃음기 가득한 투로, 그의 의문을 금세 해소시켜주었다.
“절대 아닐 겁니다. 일반적인 코스 메뉴의 형태에 맞춰 설계했으니까요.”
말을 마친 필상이 “쁘띠.” 하고 말해 보이던 찰나였다. 이정준이 곧장 발사믹 소스가 얕게 깔린 둥그스름하고, 넓적한 접시를 가져왔다. 이윽고, 심사위원들이 하나같이 미간을 잔뜩 찡그려 보이던 찰나였다.
한차례 “짝!” 소리가 나게끔 손뼉을 마주쳐 보인 필상이, 웃는 얼굴을 한 채 나직이 말했다.
“심사위원진 분들 중에는 분자요리학에 대한 거부감을 지니신 분도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오늘 그 인식을 조금 바꿔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퍼포먼스를 준비해봤는데 시연해봐도 좋을까요?”
이내 폴 보티즈가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답했다.
“궁금하군.”
가장 영향력 있는 그의 발언 탓에, 반대표를 던지려던 이들이 옴짝달싹하고 있던 입술을 꾹 다물기에 이르렀다. 이윽고, 필상이 이정준에게 눈짓을 해보이자 이정준이 곧장 접시에 깔린 발사믹 소스 위에 병에 담아두었던 질소를 부어주기 시작했다.
솨아아아아아-.
이윽고, 질소 연기가 접시 위를 가득 뒤엎던 순간. 필상이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 든 채로, 마치 정과 망치로 돌을 깰 때처럼 접시 안에 담긴 발사믹 소스를 두드려대기 시작했다.
쩌적, 쩌적-.
마치 얼음이 갈라지는 것 같은 소리가 울리기를 잠시, 연기가 모두 흩어지고 접시 안에 담긴 내용물이 모습을 드러내던 순간.
“오, 맙소사.”
“와우….”
심사위원들이 하나같이 놀란 표정을 한 채, 접시 안에 담긴 내용물만 뚫어지라 바라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