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125
125
Chapter30 – 미슐랭의 품격 (3)
화장실을 빠져나온 필상이 경연이 치러지게 될 연회장 B홀 안으로 들어서려던 찰나였다.
문 앞을 지키고 선 채, 필상이 모습을 드러내기만 기다리고 있던 멜리가 다가와서는 나직이 말을 건네왔다.
“필상.”
그런 그녀의 시선이 제 허리춤에 부착된 마이크로 향해있음을 눈치챈 필상이 고개를 천천히 내저어가며 답했다.
“걱정 않으셔도 돼요. 이번에는 확실히 꺼뒀거든요.”
그 말에 멜리가 제 앞머리를 위로 한 번 쓸어넘겨 보이고는, 재차 물음을 건네왔다.
“호세 아빌레 셰프 팀과 오만 달러 내기하셨다면서요? 지는 팀이 ‘*푸드뱅크’(*Food bank:소외계층을 지원하는 복지 단체) 쪽에 기부금을 내는 형식으로요.”
이내 잠시간 멜리의 눈치를 살펴대느라 여념이 없던 필상이 잠시 틈을 두고는 “예, 맞아요.” 하고 짤막하게 답해 보였다.
다름 아니라, 멜리의 표정이 마냥 어둡고 심각해 보였던 터라 섣불리 이렇다 할 말을 덧붙이기가 모호했던 것이다. 그렇게 필상이 독단적으로 행동한 것에 대한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닐지, 연신 고민하고 있던 찰나였다.
“어떻게 그런 아이디어를 떠올리신 거예요?”
“네?”
“정말 대단해요.”
나직이 말해 보인 멜리가 제 좌∙우를 살펴보고는 사뭇 고조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두 분의 *도네이션(*기부) 내기 관련 대화가 고스란히 송출된 이후로, 실시간 스트리밍 시청 인원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고 있어요.”
“그런가요?”
“네, 내용이야 어찌 됐든 자그마치 오만 달러가 걸린 내기잖아요? 필상에겐 어떨지 몰라도 웬만한 사람들의 일 년 치 수익과 엇비슷하거나 더 높은 금액이라고요.”
오만 달러, 한화로 환산했을 때에는 자그마치 오천오백만 원을 조금 넘어서는 금액이랄 수 있었다.
“적은 금액은 아니죠. 다만, 이길 수 있으리란 확신이 있었기에 선뜻 걸 수 있던 거고요.”
“결과야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한 것 같네요. 오만 달러가 걸린 내기라니, 정말 자극적이잖아요? 한데, 속을 들여다보면 따뜻하고 기분 좋은 취지와 의도가 담겨있기까지 하고요. 백 점짜리 마케팅이었어요.”
이내 제 턱을 살살 어루만져가며, 짙은 침음을 흘려 보인 필상이 고개를 내저어가며 답했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큰일 나겠는데요?”
한차례 “내기 때문에요?”하고 되물어 보인 멜리가 동조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덧붙였다.
“하기야, 오만 달러가 절대 적은 금액은 절대 아니니까요.”
“아뇨, 오만 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겠죠.”
“필상, 그냥 하신 말씀인 거 모르실 것 같죠?”
“맞아요. 사실 여러 경우의 수가 있지만….”
“패배에 대한 경우의 수는 없겠죠.”
말을 마친 멜리가 제 뿔테 안경을 살짝 치켜 올려 보이고는, 삼류 연극배우를 연상케 하는 작위적인 톤으로 말했다.
“필상에게는 그저 필상만의 방식이 있을 뿐이니까요.”
두 사람 사이에 정적이 드리우기를 잠시. 이내 필상이 제 미간을 잔뜩 찡그린 채로 되물었다.
“멜리, 혹시 영화 ‘월플라워’의 대사를 인용하신 거예요?”
“역시, 알아봐 주실 줄 알았어요.”
“상황에 걸맞지 않았을뿐더러, 대사도 틀리셨죠.”
“저는 필상 같은 완벽주의자가 아니니까요.”
“아니, 느낌 자체가 아예 달라졌잖아요?”
그 말에 멜리가 고개를 내저어 보이고는 이죽대는 투로 되물었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할까요? 대사의 주인 격인 ‘에즈마 밀러’가 있을 방향으로 사과라도 할까요?”
“배우가 아니라 작가에게 사과하셔야죠. 고심해서 썼을 대사를 완전 다른 내용으로 각색해 버리셨잖아요?”
“맙소사, 필상. 요즘 같은 세상에 대체 누가 작가를 신경 쓴다고 그러세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요.”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무어라 말을 잇지 못하고 연신 입술만 옴짝달싹하고 있던 필상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답했다.
“맞아요,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네요. 작가는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죠.”
“그래요, 방금 정말 과하셨어요.”
“인정합니다. 사과할게요. 왠지는 잘 모르겠는데 과하게 몰입했던 것 같아요.”
“주의해주세요.”
“네, 그럴게요.”
두 사람이 시답지 않은 잡담을 주고받고 있던 그때였다. 살짝 열린 연회장의 문틈 사이로, 곧 경연이 시작되리란 사실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내 필상이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연회장 안쪽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널찍한 연회장 B홀 안으로 짙은 침묵이 드리워있는 상황이었다. 다들 심각하기 그지없는 얼굴을 한 채로, 또 한껏 목소리를 낮춘 채 자신의 팀원들과 이번 32강 경연에서 선보일 코스 메뉴에 대한 회의를 나누느라 여념이 없는 중이었으니까.
하나, 중앙쯤에 위치한 필상 팀은 연신 화기애애한 대화를 주고받고 있는 중인 듯 보일 따름이었다.
“음, 사실 정말 즉흥적인 내기였는데 이토록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실 줄은 몰랐네요.”
필상의 말에 조리대 위에 설치된 아이패드 위로 떠 있는, 실시간 스트리밍의 채팅 창이 빠르게 갱신되기 시작했다.
[ 그런데 확실히 유명 셰프들이 돈을 많이 벌기는 하나 봐. 5만 달러를 이렇게 선뜻 걸어버리네. 기왕 이렇게 된 거 나도 요리를 한번 배워볼까? 스물여덟이면 시작하기 늦은 나이이려나…? ] [ 이봐, 괜한 환상 갖지 않는 게 좋을걸. 요리사는 지난 백 년 내내 열악한 직업 TOP10 안에 들었던 직업이라고. ] [ 뭐, 어쨌든 두 셰프 모두 그만큼 스스로의 실력에 대한 믿음 같은 게 있다는 거 아닐까? ] [ 아무리 자신이 있어도 그렇지, 만약 전 재산이 5만 달러였다고 생각해봐. 이렇게 선뜻 걸 수 있었을 것 같아? ] [ 두 사람 다 멋있다. 이런 컨텐츠 정말 멋있고 좋은 것 같아. 분명 푸드뱅크 쪽에서도 고마워할 거야. ] [ 두 사람의 내기 덕에 분명 수천의 배고픈 입이 허기를 달랠 수 있을 거라고. 정말 끝내준다. 이래서 내가 영 셰프에게 점점 더 빠져드는 거라고. 쓸데없는 겉멋은 없잖아? ]호세 아빌레 셰프와 은밀하게 나눴다고 생각했던 대화의 내용이 실시간 방송을 통해 송출된 직후, 그와 관련된 소식들이 온갖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퍼져나갔다고 했다.
덕분에, 스트리밍 플랫폼 자체를 이용하지 않던 이들조차 호기심에 가입을 마친 뒤 자신의 방송을 시청하기 위해 몰려드는 중이었고 말이다.
지구 반대편의 소식을 전해 듣는 데 불과 수 초 남짓한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충분히 있음 직한 일인 것 같기야 한데 제대로 실감할 수는 없을 듯했다.
뭐랄까? 분명 개연성은 충분한데, 필연성이 조금 부족한 느낌이었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멍하니 채팅을 들여다보고 있던 찰나였다. 말끔한 차림의 진행자가 연단 위에 올라서는, 스탠딩 마이크 앞에 제 입을 가져다 댄 채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경연 준비 시간이 모두 끝났으니, 곧장 32강 경연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규칙은 이전 경연과 같습니다. 제한시간은 총 두 시간으로, 구색이 갖춰진 코스 메뉴를 선보여주시면 됩니다.”
말을 마친 그가 좌에서 우로, 경연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여러 셰프들을 훑어본 뒤 근엄한 투로 덧붙였다.
“그럼 곧장 경연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무수히 많은 이들이 기다리고 있던 말이었다. 그 말이 끝맺어짐과 동시에 다시금 연단 뒤편 스크린에 제한 시간을 알리는 타이머가 송출되기 시작했고 참가 셰프들은 기다렸다는 듯 잽싸게 움직여대기 시작했다.
이내 그런 참가자들의 모습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던 심사위원진이, 낮은 목소리로 저들끼리 이번 경연과 관련된 내용의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물론, 이번 32강에서 맞붙게 된 참가자들 간의 승∙패 여부에 관한 대화가 주를 이루고 있는 와중이었고 말이다.
“확실히 ‘피어슨&하드먼 팀’이 가장 기대되는군요. 그들 두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스타 셰프들이잖아요?”
“일반적인 참가 셰프들과 격이 다른 느낌이기야 하죠. 두 셰프가 보유하고 있는 미슐랭 스타가 도합 열다섯 개나 될뿐더러, 주방에서 보낸 시간을 합치면 족히 50년은 될 테니까요.”
“비록 아직은 눈에 띄는 요리를 선보이고 있지 않은 느낌이라지만, 그들이야말로 압도적인 우승 후보팀이란 사실에는 변함이 없겠죠. 예선 때는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듯했으니까요.”
낮은 목소리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던 그때, 폴 보티즈 셰프가 특유의 고즈넉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아마 두 셰프 모두, 이번 32강에서는 진가를 보여줄 겁니다. 조 편성이 불합리했어요. 양 떼 무리 사이에 풀어져 있는 늑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까?”
“하기야, 같은 시드에 배정되어 맞붙게 된 실라&데이슨 셰프 팀 역시 막강한 팀이니까요.”
고개를 끄덕여 보인 폴 보티즈 셰프가 재차 답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사실 이번 32강 경연에서 가장 기대되는 시드는, 5만 달러짜리 내기가 걸려있는 5번 시드의 대결인 것 같군요.”
그의 말이 끝맺어짐과 동시에, 여러 심사위원들이 저마다의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물론, 태반이 대회 자체의 이미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게 분명한 그들의 건전한 내기를 상당히 좋게 생각해주고 있는 듯 보일 따름이었고 말이다.
“영 셰프 팀과, 호세 아빌레 셰프 팀의 대결을 말씀하시는 거죠? 확실히 양 팀 모두 평균 연령대가 낮은 편에 속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발상 자체가 상당히 기발하고 젊음이 느껴지는 것 같기야 하네요.”
“여러모로 공통점이 많은 셰프들이지 않습니까? 나아가고 있는 방향도 그렇고, 요리 스타일도 그렇고, 이제 보니 매끈한 사고방식마저 서로 닮은 것 같군요.”
“영 셰프의 실시간 스트리밍 방송 시청 인원이 방금 육만 명을 돌파했다고 하더군요. 아마 관련 보도들이 쏟아질 겁니다. 자연스레 대회의 명성도 격상할 테고요. 이번 대회의 심사위원직을 역임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심사위원들이 기분 좋은 투로 담소를 나누고 있는 지금, 당사자인 필상은 난관에 부딪히기라도 한 듯 난감한 기색이 역력해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다름 아니라, 몇 가지 사소한 문제가 발생했던 까닭이었다.
“셰프, 아무래도 글라인더가 고장 난 것 같은데요? 향신료 몇 종도 보관이 제대로 되지 않아 습기가 차 있는 것 같고요. 아무래도 주최 측에 교체를 요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로버트의 말에 필상이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나직이 답했다.
“이런. 아마 팬트리에 대기 중인 주최 측 스태프에게 말씀드리면 해결을 도와주실 거예요. 다른 장비들은요?”
“다른 장비들도 확인해봤는데, 모두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럼 우선 최대한 빠르게 팬트리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로버트가 곧장 급한 걸음으로, 식재료와 조리 도구들이 갖춰져 있는 팬트리 방향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큰 문제는 아니라지만, 썩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내 필상이 곁눈질로 멀찍이 떨어진 조리대 앞을 분주히 오가고 있는 호세 아빌레 셰프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들 팀에도 일련의 문제가 생긴 것인지, 소속 여자 수 셰프 한 명이 종종걸음으로 식자재 및 조리 도구들이 갖춰져 있는 ‘팬트리’ 쪽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일단 시작하죠.”
필상의 말이 끝맺어지기 무섭게 다빈과 이정준이 “예, 셰프!”하고 답해 보인 뒤, 해야 할 일들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
팬트리 앞에 다다른 로버트가 스태프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안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쯧, 경솔했군. 내가 조금만 더 유심히 살펴봤더라면, 이런 변수가 생기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새로 집어 든 글라인더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확인한 로버트가, 이번에는 일렬로 진열된 온갖 향신료의 상태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습기 탓에 눅눅해진 터라 질감이 변형되거나, 향이 사라지지는 않았는지를 꼼꼼히 점검해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윽고, 로버트가 상태가 가장 좋아 보이는 허브가 담긴 지퍼백을 집어 들려던 찰나였다.
“어?”
돌연 희고 얇은 손이 끼어들어서는, 로버트가 선점해 둔 허브를 낚아채 갔다. 이내 로버트가 미간을 잔뜩 찡그린 채로, 손의 주인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꽤 수려한 외모를 한 여성 셰프가, 능청스러운 표정을 한 채로 말했다.
“아쉽지만 제가 먼저 집었네요.”
“제가 먼저 눈여겨보고 있었습니다만.”
“하지만 결국 지금은 제 손에 들려있네요.”
이내 로버트가 미간을 찡그린 채 되물었다.
“이제 기억났군요. 당신, 호세&제레미 팀의 수 셰프 ‘에이미’로군요?”
“네, 맞아요.”
“호세 아빌레 셰프의 파인다이닝의 수 셰프인 동시에 수석 파티셰고요.”
“그것도 맞아요.”
한차례 “들어본 적 있습니다.” 하고 말해 보인 로버트가 게슴츠레 뜬 눈으로 그녀를 들여다보며 덧붙였다.
“호세 아빌레 셰프의 파인다이닝, ‘필 하모닉 디너’의 디저트 섹션을 도맡아 관리하는 여왕 에이미.”
“낯간지럽지만 다들 그렇게 부르더군요.”
“당신 디저트가 그렇게나 달콤하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 소문이 진즉에 뉴욕까지 퍼졌거든요.”
“언제 한번 대접해드리죠.”
두 사람이 서로 묘한 눈빛을 주고받고 있기를 잠시. 로버트가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근엄하기 그지없는 투로 답했다.
“그 약속 지키셔야 할 겁니다. 저는 기억력이 상당히 좋은 편이거든요.”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그녀가 고개를 살짝 비스듬히 기울여가며 말했다.
“저도 당신에 대한 소문을 들어본 적이 있어요. 장 조니의 차기 수 셰프 ‘로버트’죠?”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로군요.”
“뉴욕 요리사 중 팔뚝 둘레가 18인치가 넘지만, 스테로이드를 복용하지 않은 사람은 오직 당신뿐이라던데요?”
“대부분의 숙녀분들은 제 야성미를 싫어하죠.”
“싫어한다? 아뇨, 절대. 그저 감당할 자신이 없는 거겠죠. 적어도 저는 아니거든요. 약물로 부풀린 푸딩 같은 팔뚝은 거들떠보지도 않지만요.”
말을 마친 에이미가 눈썹을 한 번 튕겨 보이고는, 입가에 묘한 미소를 머금어 보이기에 이르렀다. 한참 동안 인상을 잔뜩 찡그린 채 그녀를 들여다보고 있던 로버트가 “맙소사.” 하고 중얼거려 보인 뒤 되물었다.
“우리가 어째서 적으로 만나게 된 걸까요?”
“운명은 잔인하네요.”
“하지만 승부는 승부입니다.”
“물론입니다.”
“이별의 시간이군요.”
“즐거웠어요.”
“마찬가지입니다.”
이내 로버트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른 허브 봉투 한 개를 집어 들었다. 에이미의 손에 들린 허브 못지않게 품질 좋은 허브가 담긴 봉투였다. 그리고는 곧장 경연장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에이미 역시 마찬가지. 독특한 굴곡을 지닌 터라, 착용자의 인상이 날카로워 보이게끔 만들어주는 뿔테 안경을 한 번 치켜 올린 뒤 곧장 그런 로버트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경연이 시작된 지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이 흘렀을 무렵, 경연장 안에 조리를 마쳤음을 알리는 벨 소리가 울렸다. 이내 심사위원진을 비롯한 장내 모든 이들의 시선이 벨 소리의 근원지로 향하기를 잠시.
심사위원 다비 리트가 한차례 “음?” 하고 침음을 흘려 보인 뒤, 재미있다는 듯 말문을 열었다.
“음? 이번에는 영 셰프가 아니군요.”
단연 다비 리트뿐 아니라, 모든 팀의 예상이 엇나간 순간이었다. 청량한 소리의 근원지랄 수 있는 조리대에는 앞서 치러진 모든 경연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조리를 마무리했던 필상 팀이 아니라, 다른 팀이 서 있는 와중이었으니까. 그것도 심지어, 그들과 맞붙게 된 경쟁 팀. 호세&제레미 팀의 요리사들이 결연한 표정을 한 채 서 있는 상태였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