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127
127
Chapter31 – On the mainstream (1)
“다른 셰프들의 요리를 모두 잊게 만들겠다?”
“예. 강렬할 겁니다.”
“자신만만한 태도로군.”
확신에 가득 찬 투로 답해 보인 필상이 능청스러운 투로 덧붙였다.
“요리로 답하도록 하죠.”
“좋네.”
필상이 손가락을 한 번 튕겨 보이자, 이정준이 ‘아뮤즈부쉬’ 가 담긴 요리를 내왔다. 이내 심사위원들이 막 서비스된 아뮤즈부쉬 메뉴를 들여다보기 시작하자, 필상이 느릿한 어투로 설명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알싸한 맛이 일품인 와사비 퓌레와 더불어, 산미가 나는 거품 소스. 또, 찐 보리를 곁들인 랍스터 집게발입니다.”
새하얀 원형 접시의 밑면에 녹색 빛을 띤 묽은 질감의 퓌레가 고여있었다. 또 그 위로는 한 스푼가량의 보리, 야들야들해 보이는 랍스터 집게발, 보드라워 보이는 하얀색 거품 소스, 새싹 잎이 차곡차곡 놓여있는 상태였고 말이다.
“앙증맞군요.”
나직이 말해 보인 심사위원 ‘다비 리트’가 곧장 서비스된 아뮤즈부쉬 메뉴를 맛보기 시작했다.
퓌레가 묻은 보리를 한 술 크게 떠낸 뒤, 그 위로 거품 소스와 새싹 잎이 얹어진 집게발을 쌓아 한입에 욱여넣은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연신 무표정한 얼굴로 일관하고 있던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바다를 떠올리게끔 만드는 짭조름한 맛과 향을 시작으로, 싱그러운 동시에 알싸함이 느껴지는 와사비(わさび) 퓌레 특유의 톡 쏘는 매콤함과 알싸함에 이르기까지.
서비스된 아뮤즈부쉬를 맛보는 순간, 그는 저도 모르는 새 일본을 대표하는 요리인 ‘스시’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비록 그 형태는 아예 다르다지만, 구성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예 일치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간이 맞춰져 있는 듯 보이는 보리, 탱글탱글한 랍스터 집게살, 알싸한 녹색 와사비 퓌레, 마지막으로 상큼함을 더욱 배가시켜주는 새하얀 거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식재료가 조화를 이루는 동시에 극적인 대비감을 지니고 있는 듯 느껴질 따름이었다.
가장 돋보이는 것은, 보드랍고 쫄깃한 식감의 랍스터 집게살과 까슬까슬하고 투박한 느낌의 보리가 연출하고 있는 대비감.
야들야들한 랍스터 살은 쉽게 으깨졌으며, 여러 향신료를 이용해 미리 밑간을 해둔 듯 보이는 보리 알갱이는 씹으면 씹을수록 달착지근하고 시큰한 향미를 과시했다.
“맙소사.”
낮게 중얼거려 보인 다비 리트가, 필상이 아닌 제 곁에 선 심사위원들을 훑어본 뒤 격양된 투로 뒷말을 덧붙였다.
“정말 밸런스가 완벽하군요.”
이내 짧은 ‘문답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심사위원 한 명이 물음을 건네면, 필상이 곧장 그 의문을 해소시켜주는 형식이었다.
“셰프, 한 가지만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어째서 취향을 탈 수도 있는 와사비로 퓌레를 만드신 겁니까?”
“와사비의 맛과 향이 센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친숙한 편에 속하는 향신료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장 뉴욕만 하더라도 길거리에서 와사비가 가미된 ‘*노리마키’(*海苔巻き:일본식 김초밥)나, ‘포케 부리토’(*Poke Burrito) 등을 들고 다니는 행인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으니까요.”
“그 말씀은 일본의 스시에서 영감을 얻으신 덕에, 이 ‘아뮤즈부쉬’를 만드실 수 있단 뜻이군요?”
“예, 맞습니다. 그리고 제 방식대로 탈바꿈시켰죠. 일반적이고 전형적인 스시의 구성을 분석하고 분해한 뒤, 파인다이닝의 메뉴로 거듭날 수 있게끔 말입니다.”
그 말에 폴 보티즈 셰프가 끼어들어서는 되물었다.
“간단히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한차례 “물론입니다.” 하고 답해 보인 필상이 자그마한 스푼을 집어 들어서는, 그 끄트머리로 접시 밑면에 흐드러져 있는 보리 알갱이를 뒤척이며 설명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우선 쌀알이 아닌 보리 알갱이를 사용하여 소위 말하는 ‘씹는 맛’을 살려보고자 했습니다. 또 초가 아니라, 프렌치 요리에 자주 쓰이는 향신료 물에 삶아내는 식으로 익혀주었고요.”
“그리고요?”
“보시다시피 눅진한 질감의 와사비를 바르는 대신 녹색 채소를 가미해 만든 묽은 퓌레를 접시 밑면에 뿌려뒀죠. 그래야 특유의 강렬한 향미가 조금은 중화될 수 있을 테니까요. 또 푹 쪄낸 랍스터 위로 집게살과 더불어, 특제 라임 거품 소스를 얹어주었습니다. 달착지근한 산미가 서서히 입안에 스며들 수 있도록요.”
그 말에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인 폴 보티즈 셰프가 덧붙였다.
“인상 깊은 아뮤즈부쉬였고, 완벽한 재해석이었습니다. 말씀을 듣기 전까지는 스시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했으니까요. 부디 이런 기발한 요리들로 코스가 꽉 메워져 있다면 정말 좋겠군요.”
한차례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인 필상이 심사위원들을 한 번 둘러보고는, 조심스레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첫인상을 잘 남긴 것 같으니, 마음 편히 다음 요리를 선보일 수 있을 것 같군요. 다음 메뉴는 에피타이저, 피망 소스와 자몽 퓌레를 곁들인 훈제 청어로 속을 채운 오징어찜 요리입니다.”
이내 에피타이저 메뉴를 조리한 다빈이 곧장 에피타이저 메뉴가 담긴 요리를 조리대 위에 차분히 내려놓았다.
대략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의 오징어찜 요리가 동그랗게 말아져 있는 상태였다. 또 접시의 바닥 부분에는 연분홍빛을 띤 자몽 퓌레가 흥건히 자리해 있는 상태였으며 접시의 *림(Rim:외곽) 부분에는 각각 녹색과 적색, 두 종류의 걸쭉한 피망 소스를 교차적으로 뚝뚝 몇 방울씩 떨어트려 놓은 상태였다.
“플레이팅은 굉장히 화려하군요. 마치 하나의 작품을 보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나직이 말해 보인 심사위원 한 명이 군침을 삼켜 보였다. 비록 아주 조금씩 맛보았다지만, 자그마치 서른한 팀이 선보인 코스 요리를 맛본 상태였고 지금은 서른두 번째 팀의 요리를 맛보고 있는 상태였다.
연이어 오일리(Oily)한 요리를 먹어댔더니, 눈앞에 놓인 담백한 찜 요리와 그 곁을 지키고 있는 상큼한 소스들에게 일련의 끌림을 느낄 수밖에 없던 것이다.
우선 외형은 완벽했다. 접시를 가득 메우고 있는 색의 조화 자체가 몹시 다채롭고 훌륭했으니까.
은근한 보랏빛을 띠고 있는 오징어는 잘 익은 듯 보였고, 바닥을 메운 연분홍색 자몽 퓌레는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입안이 상쾌해지는 것 같은 착각이 일 지경이었다. 또 녹피망과 적피망을 이용해 만든 듯 보이는 걸쭉한 소스는, 마냥 싱그러운 맛을 지니고 있으리란 기대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
이내 그가 포크를 집어 들어서는 그 끄트머리로 둥그스름하고 자그마한 오징어찜 한 개를 ‘콕.’ 찔러 집어 들고는, 자몽 퓌레를 조심스레 묻혀내기 시작했다. 맑은 질감의 퓌레가, 중력에 의해 한 방울씩 뚝뚝 떨어져 흐르는 중이었다. 그리고는 곧장 걸쭉한 피망 소스를 잔뜩 묻혀내기 시작했다.
이윽고, 퓌레와 소스를 잔뜩 묻혀낸 오징어찜 요리를 입안에 쏙 집어넣던 찰나였다. 그가 마냥 기분 좋은 미소를 한 번 지어 보였다.
‘상쾌하군.’
일단 오징어찜의 표면을 흥건히 적시고 있던 자몽 퓌레의 상큼한 맛이 혀를 코팅하듯 흘러내려서는 혀 밑에 고였다.
또 허기를 자극하고 식욕을 불러일으키는 맛이었다. 또 연달아 피망 소스의 싱그러운 맛이 입안에 ‘화악-.’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내 그가 기대감을 가득 품은 채, 혀 위를 지키고 있던 오징어찜을 조심스레 깨물어 보이던 순간이었다.
오징어 특유의 약간의 비릿함과 짭조름한 맛을 지닌 육즙이 터져 나와서는, 퓌레와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쫄깃한 질감, 상쾌함, 그리고 바다 내음. 그야말로 완벽하기 그지없는 삼중주가 귓가에 울리는 것만 같은 착각이 일기를 잠시.
오징어찜과 함께, 보드랍게 짓이겨지고 으깨진 훈제 청어가 제 존재감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여타 훈제 생선들과 비교했을 때 몇 배는 더 강렬한 향이 입안에 진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훈제 청어는 특유의 비릿함 탓에, 그 향을 감춰줄 수 있는 식재료들과 함께 섞어낸 뒤 빵에 발라 먹는 게 정석적인 조리법일 정도였으나 글쎄?
자몽 퓌레와 피망 소스가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기 때문인지, 비릿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듯 느껴질 따름이었다.
이윽고.
제 입안에 머금고 있던 요리를 모두 삼켜낸 심사위원이 세차게 떨리는 눈을 한 채로, 필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 시간 동안 족히 백여 종에 달하는 요리를 맛봤는데도 불구하고, 이 요리는 한 조각 더 맛보고 싶을 지경이네요. 담백하고, 상쾌한 맛입니다. 마치 어쩔 수 없던 폭식에 대한 위로를 받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지···.”
이내 심사위원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이런저런 칭찬의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저는 일단 접시 위에 펼쳐진 색감 자체가 정말 마음에 들더군요. 셰프의 미적 감각이 여실히 드러나는 플레이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동감하는 바입니다. 이 정도면 플레이팅과 관련된 내용을 다루는 푸드매거진의 메인 커버로도 손색이 없겠어요.”
“저는 맛이 정말 훌륭했던 것 같군요. 훈제 청어를 오징어로 감쌀 용감한 생각을 하더니, 두 재료가 결합되었을 때 생성될 최고의 약점을 너무도 잘 감췄어요. 물론 비린 맛이 조금 느껴지기야 했습니다만 거부감은 전혀 들지 않았던 것 같군요.”
“맞습니다. 딱 기분 좋은 정도의 비릿함이었죠. 해산물을 엮어 만든 요리들이 으레 그렇듯, 눈을 감으면 항구도시의 풍경이 펼쳐지는 정도의 비릿함 말입니다.”
그때, 연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던 폴 보티즈 셰프가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영 셰프.”
“예.”
한차례 “큼, 흠.” 하고 괜히 헛기침을 해보인 그가, 제 안경을 살짝 추켜올려 보이고는 입안에 머금고 있던 물음을 조심스레 꺼내 들었다.
“자몽 퓌레와 피망 소스 역시 제 역할을 톡톡히 한 것 같기야 한데, 단순히 그 두 가지만으로 훈제 청어의 비린내를 잡은 건 아닌 것 같군.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그 비밀을 알려줄 수 있겠나?”
필상이 별생각 없이 비밀을 털어놓으려던 찰나였다. 폴 보티즈 셰프가 주변에 선 심사위원들의 눈치를 한 번 살핀 뒤 재차 몇 마디 말을 덧붙였다.
“이건 심사위원이 참가자에게 건넨 질문이 아닐세.”
“예?”
“한 사람의 셰프가, 동료에게 건넨 질문이지.”
그 말에 다들 놀란 눈을 해보이던 찰나였다.
“내키지 않는다면 편히 거절해도 좋네. 아무리 동료라 해도 모든 영업 기밀을 공유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일세.”
나직이 말해 보인 폴 보티즈 셰프가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 지금,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폴 보티즈 셰프뿐인 듯 보일 따름이었다.
필상은 잔뜩 놀란 얼굴을, 또 여타 심사위원들은 경악을 금치 못한 얼굴을, 또 조리는 물론이고 심사까지 모두 받은 뒤 경연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필상 팀의 심사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여타 세프들은 부러움에 젖은 얼굴을 하고 있을 따름이었으니 말이다.
어찌 본다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폴 보티즈는 요리계의 교황이나 마찬가지인 인물이며, 그런 그가 이번 대회에 참가한 모든 셰프들을 통틀어 ‘동료’라 지칭한 이는 필상이 처음이었으니까. 아니, 단연 이번 대회뿐 아니라 그가 동료라 지칭하는 셰프들의 수는 전 세계의 모든 셰프를 통틀어 열댓 명이 될까 말까 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