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130
130
Chapter31 – On the mainstream (4)
그 말이 끝맺어지기 무섭게, 장내에 찬물을 끼얹기라도 한 것처럼 장내에 짙은 침묵이 드리웠다. 이내 “큼, 흠.” 하고 괜히 헛기침을 해 보인 폴 보티즈 셰프가, 거치대 끝에 끼워진 마이크를 빼 들고는 재차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우선 기다려주신 참가자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전해야 할 것 같군요. 예선 역시 박빙이었습니다만, 32강의 경우 유독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엇갈린 팀이 많아 결과 발표가 늦어졌습니다.”
말을 마친 그가 삼삼오오 모여 서 있는 참가자들을 좌에서 우로, 천천히 한 번 훑어본 뒤 곧장 덧붙였다.
“발표가 많이 지연된 만큼 더는 지체하지 않고 곧장 발표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1번 시드 승리 팀입니다.”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우아하고 섬세한 요리를 선보여준, ‘올리비아&아바 셰프 팀’입니다. 승리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이내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자 폴 보티즈 셰프가 만류하듯 손바닥을 들어 올려 보이는 것으로 소음을 종식시키고는, 계속해서 다음 시드의 대결 결과를 발표해나가기 시작했다.
앞서 치러졌던 결과 발표에 비해, 몇 배는 더 속도감 있는 진행이었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장내에 연신 희비가 교차했다.
이따금씩 괄목할 만한 대단한 성과를 보여준 승리 팀을 발표할 때면, 기나긴 심사 총평이 따라오기도 했으나 그런 팀은 몇 되지 않았고 말이다.
그런 지금.
대부분의 팀들이 연단에 시선을 고정해두고 있는 중이었으나, 필상 팀은 연신 카메라와 연단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긴장하지 않은 것도 대결 결과가 발표되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 것도 아니었으나 자신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 ‘카메라’와 더불어, 지금 펼쳐지고 있는 광경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는 무수히 많은 시청자 탓에 마냥 연단만 들여다보고 있을 수는 없던 것이다.
[ 영 셰프,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 [ 그걸 알면 신이지. ] [ 그래도 이길 수 있지 않을까? ] [ 조금 애매한 것 같네. 양 팀 다 호평을 들었잖아? ] [ 사실 지더라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 [ 맞아, 그건 그래. 상대 팀 커리어를 고려해보면…. ]필상이 채팅 창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던 찰나였다. 이정준이 카메라를 바라보며 진중하기 그지없는 어투로 쏟아지는 질문에 대한 답을 꺼냈다.
“이길 수 있을 겁니다.”
한데, 뭐랄까? 그 어감이 사뭇 기이하게 느껴졌다. 마치 시청자들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하는 말인 양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
이내 잠시간 그런 이정준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던 필상이 그의 곁에 바짝 다가서서는, 어깨 위에 자연스레 팔을 두르며 덧붙였다.
“쁘띠의 말이 맞아요. 분명 우리가 이길 겁니다.”
그 말에 이정준이 고개를 살짝 돌려서는, 필상의 얼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닿기를 잠시. 이정준의 입가 위로 흐릿한 미소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사실 그 누구도 쉽사리 결과를 점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양 팀 모두 호평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을뿐더러, 양 팀 모두 어느 한 팀의 우위를 점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요리를 선보인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한데, 뭐랄까?
필상이 그렇게 말해주니 정말 그렇게 될 수 있으리란, 분명 이길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드는 듯했다. 상대 팀을 대표하는 셰프들이 어찌나 대단한 커리어를 지니고 있든, 자신들이 승리를 거머쥘 수 있으리란 확신 말이다. 필상의 말에는 그런 힘이 담겨있었다. 적어도 이정준이 느끼기에는 그랬다.
그때, 연신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다빈이 긴장감이 잔뜩 서려 있는 투로 말문을 열었다.
“이제 우리 차례에요.”
그 말에 필상이 고개를 ‘휙-.’ 하고 돌려서는 연단을, 아니. 연단 위를 지키고 있는 폴 보티즈 셰프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길 수 있다.’
그때, 폴 보티즈 셰프가 꾹 다물고 있던 입을 떼서는 느릿한 어투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드디어 비공식적 내기로 인해 가장 큰 화제가 되었던, 또 심사위원들이 곤란을 겪을 정도로 박빙이었던 두 팀 간의 대결 결과 발표를 앞두게 되었군요. 의견이 잔뜩 엇갈렸던 터라, 이견을 좁히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던 ‘필상&다빈 셰프 팀’과 ‘호세&제레미 셰프 팀’의 대결 결과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우선 양 팀 모두 훌륭한 요리를 선보였다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고 싶군요. 사실 예선 때부터 비슷한 경험이 더러 있었습니다만, 어느 한 팀을 떨어트려야 한다는 사실이 이토록 괴로운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이내 필상이 시선이 멀찍이 떨어진 곳에 서 있는 호세 아빌레 셰프에게로 향했다. 그 역시 필상을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미슐랭의 품격’을 보여달라 요구했던 바 있었다. 미슐랭의 품격, 고작 두 어절짜리 단어 탓에 필상은 고민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미슐랭의 품격이란 대체 무엇인가? 호세 아빌레 셰프는 자신의 코스를 통해 스스로가 말한 품격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요리를 대하는 진정성 있는 자세와 무한한 애정. 더 나은 맛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노고라도 감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뜨거운 열정. 비록 그의 요리를 맛보지는 못했다지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뜨거운 것들이 그의 요리 속에 한가득 담겨있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던 것이다.
그럼, 자신은?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름의 정답을 담아낸 요리를 선보였다. 기본적으로 맛이 뛰어나고 먹는 이를 향한 배려가 담겨있는, 더 나은 맛을 위한 순수한 집착과 농밀한 고민이 담겨있는 요리로 꽉 채워진 코스.
최선이었다. 다시 조리하던 때로 되돌아가더라도, 대등하거나 조금 못한 요리를 선보이는 게 고작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이내 필상이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호세 아빌레 셰프의 말 몇 마디가. 또, 그의 존재가 자신에게 좋은 자극이 되어주었음이 분명했던 까닭이었다. 이내 호세 아빌레 셰프 역시 덩달아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역시 엇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는 듯 보일 따름이었다. 그렇게 두 셰프가 시선을 주고받고 있던 찰나였다.
폴 보티즈 셰프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말문을 열었다.
“어렵게 가려낸 승리 팀은 ‘필상&다빈 셰프 팀’입니다.”
그와 동시에 각 팀에 소속된 요리사들의 얼굴 위로 한차례 희비가 교차했다. 여태껏 경연 상대로 만났던 팀 중, 가장 강력한 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들이었다. 가장 괄목할 만한 쾌거를 이룩한 시점이니, 더더욱 노골적으로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채팅 창 역시 마찬가지.
[ 역시 나폴레옹 크레이지 영 셰프! 이길 줄 알았어! ] [ 오만 달러 세이브! ] [ 우승까지 가자! ] [ 거봐, 이길 거라고 했지? ] [ 와, 이번엔 진짜 의외인데? ]반면, 호세 아빌레 셰프 팀에 소속되어 있는 요리사들은 안타까운 기색을 미처 숨기지 못한 상태였다. 저들끼리 심심한 위로의 말을 주고받아가며, 폴 보티즈 셰프가 늘어놓고 있는 심사 총평에 귀를 기울이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분명 양 팀 모두 서로가 갖추고 있는 명망에 걸맞는 훌륭한 요리를 선보였다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이들 두 팀의 대결이야말로, 우열을 가려내는 데 있어 가장 큰 어려움을 겪었고 말입니다. 양 팀의 요리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담겨있었습니다. 적어도 저희가 느끼기엔 그랬던 것 같군요. 하지만.”
잠시 말을 멈춘 심사위원, 폴 보티즈 셰프가 참가자들을 쭉 훑어본 뒤 힘 있는 목소리로 덧붙여 말했다.
“어떤 요리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는지만을 기준으로 놓고 평가하기로 합의했고, 결국 근소한 차이로 필상&다빈 팀이 승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승리 팀에게는 진심 어린 축하를, 패배 팀에게는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하는 바입니다.”
이내 이정준이 필상에게 달려들어서는 와락, 품에 안긴 채 잔뜩 격양된 투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역시 셰프님 말씀대로 됐어요!”
“고생 많으셨어요.”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다빈 역시 마찬가지였다. 돌연 “와우!” 하고 괴성을 내질러 보인 뒤, 두 눈을 크게 뜬 채로 기쁨 어린 말을 늘어놓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셰프! 우리가 다시 한번 해냈군요!”
그렇게 필상&다빈 팀의 16강 진출이 확정되었다. 이내 필상이 반들거리는 눈을 한 채로, 연단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앞으로 딱 네 번.
네 번만 더 승리한다면, 이번 대회의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을 수 있을 터였다. 또 그 뒤로 따라오게 될 모든 영광의 주인이 될 수 있으리라.
*
심사 결과 발표가 마무리됨과 동시에, 실시간 스트리밍 송출 역시 중단되었다. 여타 셰프들과 사적인 대화를 나누고, 첫 대면을 하는 광경마저 내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필상은 여러 셰프들로부터 축하의 말과 더불어, 응원과 격려의 말까지 건네받았다. 다름 아니라, 불과 세 시간 뒤쯤에 다시금 16강 경연이 치러질 예정이었던 탓이었다. 그때, 다빈이 다소 우중충한 얼굴을 하는 로버트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기, 로버트. 혹시 어디 아파요?”
“저는 아파본 적이 없습니다.”
“표정이 많이 어두운데.”
“다만, 마음은 아프군요.”
의미심장한 어투로 꺼낸 말에 다들 의아함 가득한 얼굴로 로버트를 들여다보고 있던 찰나였다. 아직 자리를 떠나지 않고, 여타 셰프들과 대화를 나누던 호세 아빌레 셰프가 다가와서는 나직이 말을 건넸다.
“영 셰프, 수고 많으셨어요. 덕분에 가장 빠르게 탈락한 우승 후보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얻게 된 것 같네요.”
“설마요.”
“조금 전까지 저와 악수를 나눴던 셰프들이 전부 다 그런 뉘앙스로 말하던데요? 셰프께서는 기필코 우승하셔야 합니다.”
말을 마친 호세 아빌레가 능글맞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덧붙였다.
“그래야 제 패배에 대한 당위성이 생기니까요.”
“노력해보죠.”
“어쨌든, 좋은 승부였어요.”
“오만 달러를 잃으셨는데도요?”
“잃다니요? 좋은 곳에 쓰게 된 거죠.”
이내 호세 아빌레가 잠시 틈을 두고 덧붙였다.
“속은 조금 쓰리지만요.”
“많이 배웠습니다.”
필상이 악수를 청하자, 그가 필상의 손을 꽉 맞잡으며 답했다.
“언제든 제 파인다이닝 ‘필 하모닉 디너’에 방문하신다면, 가장 좋은 테이블 한 개를 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영광이네요.”
“다시 중요한 경연을 펼치셔야 하는 상황이신 만큼, 더는 시간을 빼앗고 있을 순 없을 것 같군요. 어쨌든, 건투를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간략히 대화를 마친 필상과 호세가 서로 맞잡고 있던 손을 놓던 찰나였다. 호세 아빌레 셰프의 등 뒤편에 서 있던 수 셰프, 에이미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끔 은밀하게 로버트에게 쪽지 한 장을 건네주었다.
로버트가 무어라 말을 건네려는 듯 입술을 옴짝달싹 대던 찰나, 그녀가 “쉿.” 하고 말해 보인 뒤 곧장 호세 아빌레 셰프의 뒤를 따라 바깥으로 나섰다. 이내 로버트가 조심스레 받아든 쪽지를 펼쳐보았다.
[ 807호. ]이내 “잠시.” 하고 말해 보인 로버트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서는 연회장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
끼이익-.
문이 열리며, 불 꺼진 호텔 스위트 룸의 전경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커튼까지 쳐 있는 상태였던지라, 한 치 앞도 식별하기 힘든 어둠이 내리 앉아 있는 상태였다. 이내 로버트가 “에이미.” 하고 나직이 말해 보이던 찰나였다.
“오셨어요?”
쇼파를 지키고 앉아있던 에이미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가운을 차려입고 있는 그녀의 실루엣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내 로버트가 제 가슴을 ‘탁, 탁.’ 두드려가며, 진중하기 그지없는 투로 중얼댔다.
“살면서 이토록 가슴 아픈 승리는 처음이로군요.”
“아뇨, 기쁨을 만끽하셔도 좋아요.”
“기쁨 대신, 당신의 슬픔을 나누는 쪽을 선택하겠소.”
“저야말로.”
말을 마친 에이미가 제 각진 뿔테 안경을 벗으며 답했다.
“슬픔 대신 기쁨을 나누도록 하죠.”
“이런.”
두 사람이 어둠 속에서 눈을 맞추고 있기를 잠시, 로버트가 제 아랫입술을 끈적하게 한 번 핥아내고는 되물었다.
“감당할 수 있겠소?”
“그쪽이야말로.”
짤막하게 답해 보인 에이미가 제 가운의 허리끈을 풀며 재차 되물었다.
“16강 경연까지 불과 몇 시간도 남지 않았잖아요?”
“내게는 한 시간의 자유가 있소.”
“그리고요?”
“뜨거운 마음.”
말을 마친 로버트가 그녀를 향해 달려들어서는, 번쩍 들어 올린 채 침실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한편, 그런 지금. 필상은 호텔 인근의 비좁은 카페에서 우연히 마주친 심사위원, 폴 보티즈 세프와 독대를 나누고 있던 참이었다.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비록 찾기 힘든 곳에 위치해 있지만, 커피 맛은 아주 훌륭한 곳이지.”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어 발품을 판 보람이 있네요.”
“우연에 이끌렸군. 맞아,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꿀 만한 중요한 일들은 대부분 이런 식이지. 안 그래도 자네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네.”
말을 마친 그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는 아메리카노를 한 입 들이켠 뒤 덧붙였다.
“제안을 하나 하고 싶군.”
“어떤 제안이요?”
“이번 대회가 끝나면.”
잠시 뜸을 들여 보인 그가 어깨를 한 번 들썩여 보인 폴 보티즈 셰프가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곧장 준비를 시작했으면 하네.”
“준비요?”
“미슐랭 쓰리 스타를 위한 준비 말일세.”
말을 마친 그가 제 품 안에서 팸플릿 한 장을 꺼내서는 건네주었다. 다름 아니라, 미슐랭 가이드 심사단에게 제공되는 내년도 미슐랭 가이드 심사 후보로 등재된 파인다이닝 리스트였다.
“본래대로라면 유출해선 안 될 자료라지만, ‘명예 심사단’에 위임되었네.”
“예…?”
“심사단에게 주어진 후보 리스트고.”
이내 필상의 시선이 팸플릿 위로 줄줄이 기재되어 있는, ‘후보 파인다이닝 목록’으로 향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필상의 얼굴 위로 환한 미소가 드리웠다. 다름 아니라, 리스트의 말미쯤, 나타나기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던 상호가 기재되어 있던 탓이었다.
[ 파우스트 – 맨해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