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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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31 – On the mainstream (5)
일순, 세상이 멈춘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세상이 아예 멈춰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정말 아무런 소음도 들리지 않았던 탓이었다. 쉽사리 형용할 수 없는 감정 탓에 심장이 터질 듯 빠르게 뛰어대는 중이었다.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몇 번이고 다시 확인해보았다. 애꿎은 눈을 연신 감았다 떠봐도, 또 몇 번을 거세게 문지른 뒤 다시 확인해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분명히 파우스트의 이름이 목록에 등재된 상태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폴 보티즈 셰프가 건넨 짤막한 축하의 말이 귓가에 깊게 파고들었다.
“축하하네.”
그제야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마치 멈춰있던 세상이 다시 제대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 꽉 막혀있던 귀가 다시금 제 기능을 하기 시작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해야 할까?
“예, 셰프. 감사합니다.”
나직이 답해 보인 필상이 거친 숨을 몰아쉬어가며, 손에 쥐고 있던 팸플릿을 도로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가슴 속에서 여러 감정이 마냥 복잡하게 뒤섞이고 있는 중이었다. 지난 시간의 노고에 대한 서글픔을 시작으로, 꿈에 가까워졌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기쁨, 또 어쩌면 주어진 기회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할지도 모르리라는 두려움과 더불어 이제 다시 한번 인생이 큰 변화를 거치고 궤도에 오르게 되리란 막연한 기대감에 이르기까지···.
그런 필상을 잠자코 들여다보던 폴 보티즈 셰프가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가볍게 움켜쥐고 있던 머그잔을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탁, 그리고는 온화한 시선으로 필상을 들여다보며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의외로군. 이토록 기뻐할 줄은 몰랐는데 말일세. 사실 자네도 진즉부터 예측하고 있던 일이지 않은가?”
“글쎄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저 막연하게···.”
잠시 말끝을 흐려 보였던 필상이 천천히 시선을 옮겨서는, 폴 보티즈 셰프의 두 눈을 뚫어지라 바라보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
“어쩌면 될 수도 있겠다, 딱 이 정도로만 생각했던 게 고작인 것 같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제게 있어 미슐랭은 그저 모른 척 미루고 있던 숙제나 마찬가지였던 것 같군요. 언젠가 대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또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직시하는 것이 어렵고 귀찮아 애써 모른 체하는 숙제 말입니다.”
한차례 “그렇군.” 하고 답해 보인 폴 보티즈 셰프가, 제 고개를 천천히 끄덕여대기 시작했다. 필상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딱 절반 정도만 이해할 수 있었다.
분명, 한때는 그 역시 ‘미슐랭 가이드’라는 성스러운 이름에 압도당하거나 주눅 들곤 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나, 애석하게도 지금은 그 당시의 기분을 떠올릴 수 없었다. 아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며, 그 기억 위로 침전물이 겹겹이 쌓여버렸다. 그 당시 느꼈던 감상들은 기억의 수면 밑바닥, 저 깊숙한 곳에 가라앉아 버린 상태였고 말이다.
이내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재즈의 스윙이 두 사람 사이로 내려앉은 정적을 파고들기를 잠시. 폴 보티즈 셰프가 다시금 말문을 열어서는, 드리워있던 침묵을 깨 보였다.
“필상, 내가 보기에 이건 그저 ‘약속된 승리’에 불과했던 것 같군. 자네는 빌리 반 코퍼레이션과 에이전시 계약을 체결한 첫 번째 셰프라는 이유만으로, 뉴욕 파인다이닝 업계에 정식적으로 데뷔하기 전부터 큰 관심을 받지 않았나?”
“예, 그랬죠.”
“그 이후로는 언제 문을 닫지 않아도 이상할 게 없어 보이던 허름한 레스토랑을, 족히 몇 달은 기다려야 간신히 들어설 수 있는 일류 파인다이닝으로 변화시켰지. 또 그 과정을 담아낸 다큐멘터리는 꽤나 큰 호응을 거뒀고 말일세.”
그 말에 필상이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애써 덤덤한 어투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사실 그 정도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투데이 쇼에서 미슐랭 가이드를 향한 도발의 메시지를 전했던 것도, 이번 대회에 출전하고자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도 미슐랭의 관심을 얻기 위함이었고요.”
고개를 몇 번 끄덕여 보인 폴 보티즈 셰프가 제 손에 쥔 머그잔을 가볍게 빙글빙글 돌려가며 덧붙였다.
“그랬겠지. 한데, 잘 생각해보게. 자네도 알다시피 이번 대회에 출전한 셰프들은 하나같이 화려한 커리어를 지닌 셰프들이야. 자네와는 다르게, 미슐랭이란 단어에 그닥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도 수두룩한 상황이고 말이야. 한데, 어째서 자네가 가장 큰 관심과 주목, 그리고 밀도 높은 응원을 받고 있을 수 있는 걸까?”
“그건···.”
“대중들이 기다리던 ‘지니어스’이기 때문이야. 무수히 많은 셰프, 심사위원, 대중이 자네처럼 젊고 천재적인 요리사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었지. 그들에게 있어 자네는 동경과 선망의 대상이야. 스트리밍을 시작으로, 심야 토크 쇼, 웹진, 뉴스, 온갖 매체들이 다 자네의 업적을 떠들어 대느라 바쁘지 않은가?”
한참 동안 입을 꾹 다물고 있던 필상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하나, 입술만 옴짝달싹하고 있을 뿐, 차마 그 어떤 말도 뱉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멋쩍은 마음 때문이 아니었다. 돌연 생각이 깊어지기 시작했던 탓이었다.
“간단히 생각하게. 자네는 지금 메인스트림 마켓을 횡보하는 셰프들 중 ‘가장 잘 팔리는 셰프’ 반열에 오른 걸세. 미슐랭 가이드 입장에서 생각해 봤을 때도, 관례니 형식이니 하는 고루한 단어를 들먹여가며 다루지 않기에는 아쉬운 소스인 셈이지.”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것인지 알 것 같군요.”
“하지만 마냥 기뻐할 일은 아닐 걸세. 지금과 비슷한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최고’로 기억되어야 할 테니까. 비록 가혹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자네가 꼭 알아두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네. 만약 자네가 언제, 어떻게든 발을 헛디디게 된다면···.”
말끝을 흐려 보인 그가 재차 덧붙였다.
“지금 자네를 사랑하는 이들 중 절반은 자네를 떠날 거야.”
그 말에 필상이 얼어붙기라도 한 것처럼, 잠자코 폴 보티즈 셰프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사실이었으며, 또 이미 알고 있는 일이었다. 다만, 타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사실이 사뭇 놀랍게 여겨졌을 뿐.
“예,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제게 열광하는 이유는, 제 행보와 승률 때문일 테니까요.”
“잘 알고 있군. 맞아. 자네가 한 번 발을 헛디딜 때마다, 자네에게 열광하는 이들이 절반씩 나가떨어질 거야. 그 비범한 재능 덕에, 단 한 번의 실수. 또, 단 한 번의 패배조차 용납될 수 없는 사람이 된 거지.”
폴 보티즈의 시선이 필상의 얼굴로 향했다. 날카롭지만, 아직 애티가 전혀 가시지 않은 얼굴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두 가지 감정이 뒤섞였다. 부러움, 그리고 안타까움.
그의 재능은 분명 먹음직스럽고 탐나는 외형을 띠고 있다. 하나, 앞으로 펼쳐질 나날은 극히 고단할 터였다. 본래 오르는 것보다, 자리를 지키는 것이 몇 곱절을 더 어려운 법이다.
영 셰프는 분명 불과 수년 안에 원하는 위치에 오를 수 있을 터였고, 그때부터는 자신의 왕좌를 지키기 위한 불안하고 고된 싸움을 영위해야 할 터였다.
매일 외줄 타기를 하는 불안한 심정으로 스토브 앞에 서야 할 것이며, 평론가들의 서슬 퍼런 글줄에 휘둘리고 대중들의 싸늘한 반응을 걱정하며 밤잠을 설치게 될 게 분명했다.
본인이 그랬던 것처럼.
아직 법적 성인조차 되지 못한 어린 요리사가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고단한 시련임이 분명했다. 반면, 놀랍게도 영 셰프의 반응은 단호하고 덤덤하기 그지없을 뿐이었다.
“뭐가 됐든,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부품 같은 요리사로 남는 것보다야 수십 배. 아니, 수백 배는 낫다고 봅니다.”
“무슨 뜻인가…?”
“말씀드린 그대로예요. 언제, 누구로든 대체할 수 있으며 기억되지 않는 요리사로 남는 것보다는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불안에 떨며 사는 게 훨씬 나을 겁니다.”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바람직한 태도로군. 맞아, 받아들이는 편이 훨씬 낫겠지. 그나마 다행인 점을 꼽아주자면, 내가 자네의 승리를 위해 일조하는 ‘아군’이 되어주리란 점일 테고 말이야.”
필상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들여다보자, 폴 보티즈 세프가 어깨를 한 번 들썩여 보이고는 재차 입을 뗐다.
“전에 약속하지 않았나? 자네가 미슐랭 쓰리 스타를 손에 거머쥘 수 있도록 도움을 주겠다고 말일세.”
말을 마친 폴 보티즈 셰프가 제 손목시계를 한 번 들여다보고는, 재차 커피 한 모금을 들이켰다.
“그럼 지금부터 자네가 당장 내년에 미슐랭 쓰리 스타를 거머쥐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차례로 알려주도록 하지. 우선, 여태껏 해왔던 것처럼 남은 경연에 진지하게 임하도록 하게.”
“예, 그야 당연히 그래야겠죠.”
“문제는 그런 와중에, 자네만의 ‘팀’(Team)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병행해야 한다는 점일 거야. 비록 어려운 일이라지만, 가능하다면 각 섹션마다 모든 걸 믿고 맡길 수 있는 유능한 요리사를 한 명씩 배치해두는 편이 좋을 거야. 쓰리 스타의 기준은 딱 하나니까.”
폴 보티즈 셰프가 잠시 틈을 두고 덧붙였다.
“완벽함.”
그 말에 필상의 표정이 한층 어두워졌다. 주변에 있는 믿음직한 요리사라고 해봐야, 몇 명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우선 확실한 카드는 이정준뿐이었다. 연달아 떠오른 ‘다빈’은 이번 대회가 끝나는 대로 장 조니를 운영하는 데 전념하게 될 터였고, ‘로버트’는 그런 다빈의 주방을 지키게 될 터였으니 말이다.
당장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봐야 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였다. 이내 필상이 고개를 몇 번 끄덕여 보이고는 “그다음은요?” 하고 조심스레 되묻자, 폴 보티즈 셰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다음을 논하기에 앞서, 우선 당장 눈앞에 있는 일부터 처리하는 게 우선이겠지.”
“우승이요?”
“그래.”
“좋습니다, 우선 트로피를 앞에 가져다 놓은 뒤에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죠.”
*
앞서 만났던 호세&제레미 팀이 워낙 강팀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16강에서 맞붙게 된 올리비아&아바 팀과의 상성 자체가 워낙 유리했던 것일까? 그날 오후 치러진 16강전은 우스우리만큼 쉬운 대결이었다.
“축하드립니다! 승리 팀은 필상&다빈 팀입니다!”
다들 이번 대회의 모든 경연을 통틀어, 가장 컨디션이 좋은 듯 보일 따름이었다. 필상 본인, 다빈, 심지어 이정준과 로버트마저도.
자신이야 파우스트가 내년도 미슐랭 가이드 심사 후보로 파우스트가 포함되었다는 사실 덕에 힘을 얻었다지만, 다른 세 사람은 어떤 이유에서 저토록 힘을 얻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특히 ‘로버트’의 경우 여태껏 봐온 모습들 중 가장 힘이 넘쳐 보일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후에 조심스레 물으니 다빈과 이정준은 우승이 가까워졌기 때문이라 답했으며, 로버트는 뜻을 알 수 없는 말을 중얼댔다.
‘여자나 아이와 한 약속은 무조건 지켜야 하니까요.’
어쨌든, 그렇게 며칠이란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엇비슷한 생활의 반복이었다. 신물이 나도록 연습했고 코스를 설계했으며, 남는 시간에는 파우스트의 경영 관련 문제에 집중했다. 그렇게 한 주, 또 한 주, 다시 한 주가 흘렀고….
어느덧.
[ 필상&다빈 팀, 2014 베스트 듀오 셰프 챔피언십 결승전 진출 확정. 대망의 결승 상대는 강력한 우승 후보, ‘피어슨&하드먼 셰프 팀’ ] [ 2014 베스트 듀오 셰프 챔피언십 결승 티켓, 판매 개시 15초 만에 전 석 매진. 주최 측 관계자 曰, “이례적인 티켓 파워, 영 셰프의 힘.” ] [ 이번 2014 베스트 듀오 셰프 챔피언십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다? 두 스타 셰프와 신예 셰프들의 대결 화제. ]대망의 결승 당일의 아침이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