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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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34 – 재회 (1)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피부에 닿는 바람의 온도가 바뀌었다. 기분 좋은 서늘함을 머금고 있던 바람이 한없이 날카로워졌다. 덩달아 계절 역시 변화를 맞이했다. 어느덧, 한겨울에 접어들었으니 말이다.
파인다이닝 장 조니의 셰프 집무실 안, ‘헤드 셰프 – 다빈’이란 글귀가 각인된 명패가 놓여있는 책상 앞으로 다빈이 앉아 있었다.
이내 손에 쥔 머그잔에 연신 입김을 불어대던 다빈이 쇼파에 앉아 있는 로버트를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정신 차리고 보니 벌써 겨울이네요. 올 한 해도 다 갔어요.”
“그러니까 말입니다.”
한차례 방긋 미소를 지어 보인 다빈이 제 협탁을 가볍게 톡톡 두드려가며, 지난 반년을 천천히 복기해보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자취를 감춘 필상과 달리, 그는 대외적인 활동에도 심혈을 기울였던 바 있었다. TV쇼에도 몇 번이나 출연했으며, 올 한 해야말로 가장 많은 매거진 인터뷰를 진행했던 해로 자리매김했으니 말이다.
또 파인다이닝 ‘장 조니’ 역시 성공적으로 이끌어나가는 중이었다. 대다수의 평론가가 다빈이 셰프로 부임한 뒤, 파인다이닝 장 조니에 찾아온 변화의 바람에 대한 칭찬을 침이 닳도록 늘어놓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그사이, 애석하게도 필상과는 단 한 번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필상이 폴 보티즈 셰프에게 요리를 배우겠다는 말을 끝으로 뉴욕을 떠난 직후, 우연처럼 폴 보티즈 셰프의 은퇴 소식이 대대적으로 공표되었다.
그게 끝이었다. 두 사람의 근황은 베일에 감춰졌다. 몇 번 정도 필상의 개인번호로 전화를 걸었으나, 연결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따금 장문의 메일을 보내면, 자신은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말란 정도의 간결한 답장이 돌아오기 일쑤였고 말이다.
“셰프?”
로버트의 부름에 간신히 정신을 다잡은 다빈이 “미안해요.” 하고 답해 보인 뒤 나직이 되물었다.
“그나저나 필상은 언제쯤 돌아올까요?”
“아마 곧 오지 않을까 싶네요.”
“이유는요?”
“연말이잖아요.”
그 말에 다빈이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몇 번 끄덕여 보였다. 맞다. 연말이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요리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행사랄 수 있는 JFB 재단 시상식’이 진행될 터였다. 또, 필상은 이번 시상식 ‘라이징 셰프 어워즈’(Rising Chef Award) 부문의 가장 유력한 수상 후보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중이었고 말이다.
“설마 필상이 시상식에 나타나지 않거나 하지는 않겠죠?”
한차례 “설마요.” 하고 답해 보인 로버트가 피식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말했다.
“라이징 셰프 어워즈는 데뷔한 지 3년이 되지 않은 신예 셰프들만 거머쥘 수 있는, 뜻깊고 영예로운 상패잖아요? 아무리 필상이라고 해도, 라이징 셰프 어워즈의 트로피는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을걸요?”
그 말에, 다빈이 무어라 답하려던 찰나였다. 책상 위에 올려둔 수화기가 울렸다. 이내 다빈이 만류하듯 손바닥을 한 번 들어 올려 보이고는 곧장 내선 전화를 받았다.
– 셰프, 손님께서 방문하셔서요.
“누구?”
– 파우스트의 쁘띠 셰프요.
“안으로 모셔주시겠어요?”
– 예, 셰프.
그렇게 짤막한 통화를 마친 다빈이 수화기를 내려놓던 찰나였다. 다빈이 로버트에게 무어라 설명을 해주기도 전에, 곧장 굳게 닫혀있던 집무실의 문이 활짝 열렸다.
“잘 지내셨어요?”
다름 아닌, 이정준이었다. 지난 수개월 사이 외형도, 실력도 한껏 변화해버린 파우스트의 젊은 셰프. 필상의 빈자리를 놀라우리만큼 잘 메워내고 있는 파우스트의 지휘자이자, 필상을 가장 그리워하고 있는 인물.
이내 로버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는 이정준과 한차례 포옹을 나눈 뒤, 조곤조곤한 어투로 물었다.
“쁘띠, 볼 때마다 남자다워지는 것 같군.”
“지난 주말에도 봤잖아요?”
“뭐, 어쨌든.”
이번에는 다빈이 밝은 어투로 물음을 건네왔다.
“그나저나, 이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한창 정리하고 있을 시간 아니에요?”
“오늘은 먼저 나왔어요. 이래저래 할 이야기가 많아서요.”
“할 이야기?”
고개를 끄덕여가며 “네.” 하고 답해 보인 이정준이 곧장 쇼파 한 자리를 꿰차고 앉으며, 재차 말문을 열었다.
“좋은 소식이 하나 있거든요.”
“뭔데요?”
“셰프와 관련된 소식이에요.”
“셰프? 필상? 그럼 설마···?”
“네, 곧 돌아오실 것 같아요.”
말을 마친 이정준이 제 손에 말아쥐고 있던 매거진 한 권을 협탁 위에 내려놓았다. 오늘 오전에 막 발행된 ‘아트 컬리넬리 매거진’의 이번 달 발행호였다. 이내 다빈과 로버트가 나란히 앉은 채, 매거진의 메인 커버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두 사람의 얼굴 위로, 환하기 그지없는 미소가 드리웠다. 다름 아니라 매거진의 메인 커버 사진 때문이었다. 필상과 폴 보티즈 셰프, 두 사람이 등을 맞댄 채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사진이 메인 커버로 수놓아져 있는 상태였다.
그런 두 사람의 머리 위로는 “영 셰프, 요리계의 교황 폴 보티즈 셰프의 마지막 제자.”라는 글귀가 큼지막하게 각인되어 있는 상태였고 말이다. 이내 다빈이 제 아랫입술을 한 번 핥아내고는 되물었다.
“필상이 폴 보티즈 셰프의 밑에서 요리를 배우는 건, ‘비밀’이었잖아요? 이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혔다는 뜻인즉슨, 이제 정말 돌아올 때가 된 거군요?”
한차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인 다빈이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나직이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슬슬 돌아올 때가 되기는 했죠. 이제 곧 연말이기도 하고, JFB 시상식에도 참석하셔야 할 테니까요.”
그 말에 로버트가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답했다.
“그나저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필상도 무심한 타입이라니까요? 어떻게 된 게 정말 전화 한 통조차 없는 건지···.”
“저와 브래들리도 중요한 내용이 아니면 대부분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았어요. 들어보니까, 프랑스 리옹에만 계셨던 건 아닌 것 같아요.”
그 말에 다빈과 로버트가 이정준을 바라보기 시작하자, 이정준이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답했다.
“듣자 하니 곳곳을 돌아다니신 것 같던데요? 사실 저도 자세히는 몰라요. 셰프님의 에이전시 담당자를 통해 근근이 전해 들은 소식이 전부거든요.”
한차례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다빈이 사뭇 밝아진 어투로 재차 말했다.
“그래도 이제 파우스트나 필상과 관련된 소문들은 가라앉겠네요.”
“네. 그럴 것 같아요.”
필상이 프랑스 리옹에 위치한 폴 보티즈 셰프의 *생가(*生家)에서 요리를 배우고 있다는 사실은 측근들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덕분에 그사이 파우스트에 대한 이런저런 추측이 쏟아졌다. 루머가 루머를 낳고, 또 그 루머가 새로운 루머를 낳았던 것이다.
무수히 많은 이들이 지난 2014 베스트 듀오 셰프 챔피언십이 마무리된 이후 필상이 파우스트에 단 한 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을 시작으로, 꾸준히 진행하던 스트리밍 방송을 단 한 번도 진행하지 않았다는 점.
또 며칠 간격으로 근황 및 일상이 기록된 사진이 업로드되던 개인 SNS 활동조차 중단되었다는 점 등을 증거로 이런저런 추측성 기사와 칼럼, 혹은 게시물을 작성하는 이들이 수두룩했던 것이다.
소문의 형태와 종류는 각양각색, 그 자체였다.
필상이 사고로 입원해있다는 둥, 마약과 여색에 빠져 경영을 게을리하고 있다는 둥, 남모르게 결혼을 했다는 둥···.
빌리 반 측의 강경한 법적 대응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류의 소문들이 날이 갈수록 무성해지는 중이었다.
물론, 반대 여론 역시 존재했다.
실은 집무실에 틀어박혀 있을 뿐이지 여전히 파우스트를 지키고 있다는 의견을 시작으로, 심지어는 맨해튼 거리에서 필상과 마주친 적이 있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반대론을 펼치는 이들은 하나같이 파우스트가 여전히 성업을 이루고 있으며, 훌륭한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는 점을 자신들의 의견에 대한 증거로 내세웠다.
물론 그 뒤에는 이정준과 브래들리, 그리고 무수히 많은 직원의 노력이 존재했다. 모두가 필상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갖은 애를 써대고 있던 것이다. 이내 이정준이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화제를 전환했다.
“셰프님이야 이번 시상식 때 뵐 수 있을 테고··· 그나저나, 이번 시상식의 ‘갈라 디너’(*Gala Dinner:저녁 정찬)를 책임지는 셰프는 어떤 분이실까요?”
그 말에 다빈이 “아.” 하고 침음을 흘려 보이고는 답했다.
“그러게요. 올해는 발표가 조금 늦네요. 보통 이맘때쯤이면 갈라 디너쇼를 책임질 셰프가 누구인지 공개됐던 것 같은데.”
“분명 올해에도 명망 높은 셰프분께서 책임지겠죠?”
“그야 당연하죠. 다른 행사도 아니고 미국 내 최고 권위 시상식인 ‘JFB’ 잖아요? 분명 스타 셰프들 중 한 명일 텐데, 과연 누구일지···.”
“지난해에는 누구였어요?”
“미슐랭 스타를 열두 개나 가지고 있는 이탈리안 셰프, ‘마노디’가 갈라 디너를 책임졌었죠. 정말 환상적인 요리들로 구성된 간소한 코스를 선보였죠.”
그 말에 로버트가 끼어들어서는 말했다.
“듣기로는 JFB 시상식의 갈라 디너를 총괄할 헤드 셰프 책정 기준은 오직 하나라더군요. 그러니까, ‘명망 높은 셰프들에게도 강렬한 영감을 줄 수 있는가?’ 말입니다.”
“흠, 정말 어렵고 부담스러운 일이겠네요.”
“뭐··· 그 어려운 일을 해낼 수 없다면, JFB 시상식의 갈라 디너를 책임질 자격이 없다는 뜻인 거겠죠.”
두 사람이 이런저런 추측을 늘어놓고 있던 찰나. 협탁 위에 놓여있던 캘린더를 바라보고 있던 다빈이 나직이 말문을 열었다.
“그나저나 이제 딱 일주일 남았군요.”
그 말에 다빈과 이정준의 시선 역시 협탁 한 편에 놓여있는 캘린더로 향했다. 다음 주 토요일을 나타내는 칸에, 붉은 펜으로 그려놓은 동그라미와 별표 한 개가 그려져 있었다. 그 날이, 이번 JBF 시상식이 치러질 날이었다.
모두가, 필상과 육 개월 만에 재회하게 될 날이기도 했다.
*
그렇게 일주일이란 시간이 빠르게 흘러 어느덧 시상식 당일이 밝았다. 시상식이 진행되는 곳은 뉴욕시에 위치한, ‘골든팰리스 호텔’이었다. 미국 내 최고 행사라는 사실을 입증하기라도 하듯, 연회장 안으로 미국 요리계. 아니, 세계적으로 높은 인지도를 지닌 인사(人士)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정준 역시 마찬가지. 홀 매니저 베니, 그리고 필상의 에이전시 빌리 반 측 담당자인 멜리와 함께 ‘파우스트 in 맨해튼’이란 글귀가 각인된 명패가 놓인 테이블 한 자리를 꿰차고 앉아있는 상태였다.
한데, 뭐랄까? 이정준이 평소와 달리 마냥 초조해 보일 따름이었다. 손수건으로 연신 땀을 훔쳐가며, 고개를 두리번거려댔다. 평소와 달리 다리를 떨어댔고, 바지춤에 식은땀을 훔쳐내는 중이었다.
이윽고, 이제 곧 시상식이 시작되리란 안내방송이 흘러나오던 찰나였다.
“멜리,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이제 시상식까지 5분밖에 안 남았는데, 셰프는 왜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건데요?”
“잘 모르겠네요. 어제 마지막으로 연락했을 때에는 분명 늦지 않게 도착할 거라고 했었는데···.”
“잠깐, 잠깐만요. 만약 이러다가 수상 후보로 호명됐는데, 셰프께서 자리에 안 계시면 어떻게 되는 건데요?”
“아마 수상이 취소되겠죠. 협회 측에서도 감정이 상할 수 있는 문제니까···.”
멜리가 말끝을 흐려 보이던 찰나였다. 연회장 안을 돌아다니며 갈라 디너 메뉴를 서비스해주고 있던 서버가, 그들 테이블에 다가와서는 접시 한 개를 내려놓았다. 이내 멜리가 포크 한 개를 집어 들며 나직이 말했다.
“우선 갈라 디너 좀 드셔 보세요. 오늘이 아니면 영영 맛볼 수 없는 요리들이 될지도 모르잖아요?”
그 말에 이정준이 입을 꾹 다물었다. 하마터면 멜리에게 ‘음식이 넘어갈 리 있겠어요?’ 하고 신경질적인 투로 되물을 뻔했다. 멜리의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이내 이정준이 포크를 집어 들고는,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셰프는 대체 어디서 뭘 하고 계신 건지···.’
사실 이토록 연락되지 않으리라곤 짐작지 못했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강렬하다는 뜻이니, 고맙기도 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서운하기도 했다. 전화 한 번 하는 게 그토록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그때, 연단 위에 오른 진행자가 우렁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2014 JFB 시상식에 참석해주신 귀빈 여러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지금부터 시상식을 시작할 예정이오니, 귀빈 여러분들께서는 준비된 갈라 디너를 천천히 음미하시며 시상식을 관람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조바심에 제 아랫입술을 한 번 핥아 보인 이정준이 고개를 휘휘 내저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그리고는 곧장 손에 쥔 포크를 더욱 꽉 움켜쥐며 접시로 시선을 옮겼다. 그 순간. 이정준의 미간이 점차 좁혀지기 시작하더니, 끝내 저도 모르게 낮은 목소리로 중얼댔다.
“셰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