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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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35 – 은밀하게, 치밀하게 (1)
롱핀 조명이 그런 필상을 따라가며 비춰주었다. 이내 이정준이 멍한 얼굴로, 그런 필상을 빤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변화가 확실히 느껴졌다. 일단 반년 사이에 얼굴에 남아있던 앳기가 아예 사라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또 본래 가뜩이나 잘 훈련된 셰퍼드를 연상시키던 얼굴은, 족히 몇 배는 더 날카로워진 것처럼 보였으며, 무심해 보이는 두 눈 위로 서린 감정이 무엇인지 아예 짐작조차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다름 아닌 키였다. 고작 반년 사이에, 족히 몇 센티는 더 커진 듯 보일 따름이었으니 말이다.
“셰프….”
이윽고, 필상이 연단 위에 오르던 찰나. 장내 곳곳에서 술렁임이 일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의견들이 분분히 오갔다.
누군가는 필상이 보냈을 지난 반년간의 시간에 관해 이야기하느라 여념이 없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필상이 과연 미국 최고 권위 시상식이랄 수 있는 이번 행사의 갈라 디너를 진행할 능력이 있는 셰프인가에 대한 의문을 토로해댔다.
물론, 이와 같은 유의 부정적인 의문들은 주변에 있는 이들의 몇 마디 말에 의해 간단히 진압되었다.
“여전히 이런 멍청한 소리를 하는군. 조금 전, 코스를 맛볼 때까지만 하더라도 맛을 극찬하지 않았나?”
필상이 연단과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술렁임은 점차 고조되고 있을 따름이었다. 장내 곳곳에 설치된 기자들의 카메라는 연신 플래시를 터트려댔으며, 자리를 꿰차고 앉은 관객들은 두 눈으로 부지런히 필상을 쫓아가며 계속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눠대고 있을 따름이었다.
이번 달 아트 컬리넬리 매거진을 통해, 필상이 지난 반년간 돌연 은퇴를 선언했던 요리계의 교황 ‘폴 보티즈’ 셰프의 휘하에서 요리를 배웠다는 사실이 밝혀진 뒤.
대중들로부터 잠시 잊혀 있던 필상은 다시 수면 위에 올라설 수밖에. 아니, 화제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었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요소가 화제를 불러왔다.
그 말인즉슨, 요리계의 교황이라 불리는 거장 폴 보티즈 셰프가 돌연 은퇴를 선언한 이유는 오롯이 필상 때문이란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또, 파우스트는 오너 셰프인 필상이 자리를 비웠음에도 불구하고 굳건히 맨해튼 일류 파인다이닝으로서의 위치를 굳건히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는 뜻이기도 했고 말이다.
이윽고, 필상이 연단 위에 올랐다. 술렁임이 가라앉음과 동시에, 침묵이 드리웠다. 모두가 필상을 빤히 지켜보는 중이었다. 하나, 필상은 여전히 느릿하게 움직였다. 연단의 중심에 선 채, 진행자에게 마이크를 잠시 달라는 듯 제 손을 뻗어 보였다. 이내 진행자가 얼떨결에 제 핸드마이크를 건네주자, 반년 사이 한층 더 굵직해진 목소리로 “아, 아.” 하고 중얼거려 보인 필상이 장내를 천천히 한 번 둘러본 뒤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 오랜만이네요, 참고로 저는 오늘 꼬박 육 개월 만에 뉴욕 땅을 밟았습니다. 다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말을 마친 필상이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자, 장내 한 귀퉁이에서 외롭고 잔잔한 박수 소리가 들려오기를 잠시.
그렇게 불과 수초나 흘렀을까? 그 소음이 마치 신호라도 되었던 양,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이들이 하나둘씩 박수를 쳐대기 시작했다. 이내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장내를 꽉 채우기를 잠시.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인 필상이, 만류하듯 손바닥을 들어 올려 보이는 것으로 그 소리를 종식시켰다.
– 시상식의 대미를 장식할, ‘베스트 셰프 어워즈’ 부문 수상이 남아있으니 소감은 짧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정말 영광스럽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상을 거머쥐게 되었네요. 이 영광을 제가 사랑하는, 또 저를 사랑해주시는 모든 분께 돌리고 싶습니다. 이상입니다.
다시금 우렁차기 그지없는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지기를 잠시,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인 필상이 곁눈질로 진행자를 바라보며 재차 말을 이었다.
– 음, 소감이 지나치게 짧았던 것 같군요. 만약 허락해주신다면 딱 다섯 분께 각각 한 개씩, 질문을 받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데 혹시 괜찮을까요?
그 말에 진행자가 어깨를 한 번 들썩여 보이고는, 고개를 천천히 주억거려댔다. 이내 필상이 손을 들어 올려 보이고 있는 기자 한 명을 가리켜 보이며, “말씀하시죠.” 하고 말해 보이던 찰나. 기자가 큰 목소리로 되물었다.
“아트 컬리넬리 매거진 인터뷰에는 육 개월간 자리를 비우셨다고 되어 있던데, 그사이 어떻게 파우스트가 성업을 이룰 수 있던 것인지 궁금하네요.”
이내 필상이 손가락을 “딱!” 소리가 나게끔 튕겨 보이고는 답했다.
– 간단해요. 프리미엄 디자이너 브랜드의 의류와 같습니다. 모든 제품을 오너 디자이너가 직접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값비싼 프리미엄 디자이너 브랜드의 의류를 구입하곤 하죠.
말을 마친 필상이 “왜?” 하고 되물은 뒤 곧장 덧붙여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 질적인 면에서 월등히 훌륭하리란 믿음이 있으니까요. 파우스트의 요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파우스트의 주방에서 탄생하는 모든 요리를 제가 직접 조리하지는 않아요. 자리를 비웠던 육 개월 동안은 그 어떤 요리에도 제 손길이 닿지 않았죠. 하지만 파우스트의 매출에는 변동이 없었습니다. 정말 감사하게도 파우스트의 요리가 여타 파인다이닝의 요리에 비해 질적인 면에서, 월등히 훌륭하리란 믿음을 품은 분들이 방문해주셨고 제 직원들은 멋지게 그 믿음에 보답해 준 덕이겠죠.
유려하게 말해 보인 필상이 “다음.” 하고 말해 보이자, 다시금 장내에 주둔하고 있던 기자들 중 한 명이 손을 들어 올려 보였다. 이내 필상이 질문해보라는 듯 턱짓을 하자, 그가 사뭇 격양된 투로 말문을 열었다.
“지난 반년간 폴 보티즈 세프에게 요리를 전수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내 필상이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답했다.
– 파우스트가 미슐랭 심사단의 심사 후보 파인다이닝 리스트에 등재됐습니다. 내년 11월에 발표될 미슐랭 가이드 미국 발행 호의 미슐랭 스타 파인다이닝 후보 목록에 파우스트의 이름을 올릴 겁니다.
필상이 막힘없이 술술 꺼내 보인 답에, 다시금 장내의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었다. 다시금 플래시 세례가 터져 나왔으며, 술렁임은 겉잡을 수 없이 배가되었다. 아직 미슐랭 심사단이 공표한 심사 후보 파인다이닝 리스트가 공개되지 않았던 탓이었다. 이내 필상이 “다음 분.” 하고 말해 보이던 찰나, 뚱뚱한 체구의 기자가 손을 번쩍 들어 올려 보였고 운 좋게 필상의 눈에 드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면 혹시, 지난 육 개월간 어떤 방식으로 폴 보티즈 셰프에게 요리를 전수받았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 질문에 필상이 처음으로 멈칫했다.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긴 한숨을 쉬어 보인 필상이 천천히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 정말 지옥 같은 스케줄이었습니다. 폴 보티즈 셰프와 함께 도합 13개 국가를 돌아다녔습니다. 정말 촘촘한 일정에 맞춰 생활했죠. 일 평균 네 시간을 잤고 실무와 이론을 익히는 데 힘을 썼습니다. 덕분에 각국의 식재료와 전통 요리, 조리법 등을 두루 익힐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파우스트의 관리직급 직원들과도 메일을 통해서만 연락을 주고받았죠. 사적인 대화는 없었습니다. 오로지 경영과 관련된 대화만을 나눴습니다. 오로지 더 나은 요리를 만들기 위한 노력만을 하며 지냈죠. 그게 다예요.
이내 필상이 다음 기자를 지목하자, 그가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 성공적인 배움의 시간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말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예.” 하고 답해 보인 필상이 곧장 말문을 열었다.
– 파우스트의 다음 코스 메뉴가 제가 행했던 노력을 증명해 줄 겁니다.
그렇게 마지막 질문을 앞두고 있던 찰나였다. 필상의 시선이 흔들렸다. 다름 아니라, 손을 번쩍 들어 올린 채 자신을 뚫어지라 바라보고 있는 이정준과 눈이 마주쳤던 탓이었다. 이내 필상이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손끝으로 이정준을 가리켜 보이며 되물었다.
– 쁘띠, 어떤 질문을 하고 싶으시죠?
이윽고, 이정준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장내에 한차례 큰 술렁임이 일기를 잠시. 헛기침을 두어 번 해 보인 이정준이 마냥 환한 얼굴을 한 채 말했다.
“셰프, 돌아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그 말을 하려고 기회를 빼앗은 거예요?
“아뇨.”
짤막하게 답해 보인 이정준이 곧장 되물었다.
“셰프께서는 우리 파우스트가 미슐랭 심사단으로부터 몇 개의 별을 따내실 거라고 생각하시죠?”
우리라는 대목에 유독 힘을 주어 말해 보인 이정준이, 진중하기 그지없는 눈을 한 채 필상을 들여다보고 있던 찰나였다.
필상이 제 미간을 잔뜩 찡그린 채로, 짜증이 잔뜩 서려 있는 투로 말했다.
– 정말 의미 없는 질문이로군요.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기를 잠시, 고개를 좌우로 몇 번 내저어 보인 필상이 장난기 가득한 어투로 뒷말을 덧붙였다.
– 그야 당연히 세 개죠. 쁘띠, 잘 보세요. 불과 수개월 안에, 우리가 파인다이닝의 기준이자 규칙이 될 겁니다.
말을 마친 필상이 트로피와 상패를 품에 안은 채 멀뚱멀뚱 서 있던 스태프에게 손짓을 해 보이자, 그가 다가와서는 품에 안고 있던 트로피와 상패를 필상에게 건네주었다.
이내 제 몫의 부상을 모두 건네받은 필상이 트로피에 조심스레 키스를 한 번 해 보이고는, “감사합니다.” 하고 재차 덧붙인 뒤 곧장 연단 아래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한편, 장내에 주둔하고 있던 기자들. 또 평론가 및 칼럼니스트들은 랩탑을 무릎 위에 올린 채로, 정신없이 타이핑을 해대는 중이었다.
누구보다 빨리, 필상이 화려하게 복귀했음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
시상식이 끝난 뒤, 필상은 진행된 에프터 파티에 참석하지 않고 곧장 파우스트 내부에 위치한 집무실로 향했다.
선반 한편에 놓여있던 2014 베스트 듀오 셰프 챔피언십 트로피 옆에, 오늘 수상한 트로피와 상패를 나란히 뒀다. 그 옆에는 지난 2013 서울시 전국 요리대회의 트로피와 상패가 나란히 놓여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줄지어 서 있는 트로피와 상패를 들여다보고 있던 필상이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말했다.
“몇 개만 더 모으면 훨씬 그럴싸해 보이겠는데요?”
그 말에 멜리가 고개를 내저어 보이고는 되물었다.
“보통은 이 정도로도 만족하지 않나요?”
“제가 보통 셰프는 아니잖아요?”
“못 본 새 더 능글맞아지신 것 같네요?”
“조금 더 남자다워진 게 아니라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내저어 보인 멜리가 나직이 말문을 열었다.
“필상. 그래도 쁘띠 준이나, 다빈, 로버트를 비롯한 이들과 잠깐이라도 시간을 보내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번 시상식 갈라 디너를 준비하느라, 지난 며칠 동안 하루 평균 두 시간밖에 못 잤어요. 사실 지금도 당장 잠들 수 있을 지경이라고요. 어차피 앞으로 쭉 함께 있을 텐데, 그런 시간은 내일부터 천천히 가지더라도 괜찮지 않겠어요?”
나직이 “정 그러시다면야….” 하고 중얼거려 보인 멜리가, 제 미간을 살짝 좁힌 채 재차 말문을 열었다.
“그나저나 조금 서운하네요. 어떻게 정말 연락 한 번 안 할 수가 있죠?”
“미안해요.”
“갈라 디너를 총괄하는 헤드 셰프직 제안을 받으셨다는 것 정도는 말씀해주실 수 있었잖아요?”
“아뇨.”
짧게 답해 보인 필상이 재차 덧붙였다.
“아무도 모르게 등장하고 싶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멜리가 정말 모두에게 그 사실을 숨길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한차례 “그건….” 하고 말해 보인 뒤, 입술만 옴짝달싹 대던 멜리가 체념한 듯 답했다.
“뭐, 쁘띠가 슈렉의 고양이 같은 눈을 한 채로 물어봤더라면 이실직고했겠죠.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쳐 두죠. 그나저나, 이번 시상식의 ‘갈라 디너’ 직은 대체 어떻게 따내신 거예요?”
“주최 측에 지난 반년간 폴 보티즈 셰프께 요리를 배웠다는 사실을 흘렸어요. 또 폴 보티즈 셰프께서 직접 이런저런 영향을 행사해주기도 하셨고요.”
말을 마친 필상이 코를 한 번 찡긋거려 보이고는 되물었다.
“권력이 이렇게 짜릿한 줄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렇죠?”
“맙소사. 나쁜 어른이 돼서 돌아올 줄은 몰랐는데….”
“아직은 법의 보호를 받는 미성년자예요.”
“하지만 지금 나쁜 어른처럼 굴어대고 있잖아요?”
이내 필상이 무어라 답하는 대신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협탁 위에 놓인 서류를 빤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또 멜리는 그런 필상을 빤히 바라보는 중이었고. 뭐랄까? 달라진 외형 탓에, 은근한 이질감이 솟구치는듯했다.
물론 전이라고 해서 어수룩하거나 불완전한 느낌을 받았던 것은 아니라지만 한껏 성숙해진 외형 탓인지, 아니면 은근히 달라진 것 같은 분위기 탓인지 범접할 수 없는 강렬한 느낌을 받고 있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멜리가 재차 물었다.
“이런저런 섭외가 한가득인데, 스케줄은 언제부터 잡을까요?”
“모레부터요.”
“잘 생각하셨어요. 못해도 하루 정도는 푹 쉬셔야죠.”
“아뇨, 내일 하루는 파우스트의 상태를 살피고 바로잡는 데 쓸 겁니다.”
“안 쉬어도 괜찮겠어요?”
“일하는 게 쉬는 거예요.”
이내 고개를 한 번 내저어 보인 멜리가 조심스레 되물었다.
“마음이 너무 급하신 거 아녜요?”
“멜리.”
사뭇 진중한 투로 말해 보인 필상이 가방 속에서 서류 봉투 한 장을 꺼내서는, 멜리에게 건네주며 재차 뒷말을 이었다.
“미슐랭 심사단으로부터 세 개의 별을 받을 수밖에 없을 만큼, 완벽한 전력을 준비해뒀어요. 당장에라도 일하고 싶어 몸이 근질거려 죽겠다니까요?”
“하기야… 철저히 준비해두신 ‘완벽한 전략’이 있으시니까, 그토록 규모 있는 시상식에서 이슈가 될 수밖에 없는 위험한 발언을 늘어놓으셨겠죠.”
말을 마친 멜리가 눈썹을 한 번 튕겨 보이고는, 안에 든 서류의 내용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멜리가 저도 모르게, “허….” 하고 짙은 침음을 흘려 보이고는 경외심이 가득 서린 눈으로 필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다름 아니라, 미슐랭 심사단의 행동 패턴 및 심사 기준. 높은 점수를 받아낼 수 있는 세세한 팁과 노하우가 빼곡히 기록되어 있던 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