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150
150
Chapter35 – 은밀하게, 치밀하게 (5)
다음 날, 파우스트의 영업이 시작되기까지 불과 한 시간 남짓밖에 남지 않은 이른 아침.
내부에 위치한 셰프 전용 집무실 안으로, 필상을 비롯한 관리자급 직원들이 모여있는 상태였다.
우선 필상은 소파의 상석을 꿰차고 앉은 채 서류를 검토하느라 여념이 없는 중이었으며, 에이전시 측 담당자 멜리와 홀 매니저 베니, 두 명의 수 셰프 이정준과 브래들리.
또, 마지막으로 파우스트의 분자요리 섹션을 다듬어주고 있는 갈라예프 셰프에 이르기까지···.
이제 파우스트의 2015 스프링 시즌 신메뉴 공개∙판매까지 고작 보름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던 터라, 어느덧 막바지에 다다른 재정비 현황을 보고받기 위해 다들 한자리에 모이게 된 것이다.
필상이 제 손에 쥐고 있던 볼펜을 딸깍거려대는 소리만이 장내에 무심하게 울려 퍼지기를 잠시.
서류 위에 제 시선을 고정해두고 있던 필상이 그제야 시선을 옮겨서는, 멜리를 바라보며 나직이 말문을 열었다.
“우선 스프링 시즌 대비 인테리어 리뉴얼 시안은 정말 만족스러운데요? 이번 2015 스프링 시즌 메인 컨셉인 ‘꿈의 도시에 찾아온 봄’이란 주제에 완벽히 부합하는 느낌이에요.”
이번 2015 스프링 시즌 준비를 시작하기도 전에 결심했던 일이 한 가지 있었다.
일류라 손꼽히는 여타 파인다이닝이 으레 그렇듯, 매 시즌 단순히 새로운 요리를 선보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공간이 지닌 분위기 자체에 변화를 주겠다는 목표를 품게 되었던 것이다.
폴 보티즈 셰프에게 요리를 배웠던 지난 육 개월간, 무수히 많은 국가의 유명 파인다이닝을 경험해 본 바 있는 필상이었다.
이번 스프링 시즌을 통해, 자신이 지난 육 개월간 맞이한 변화를 최대한 가감없이 드러내고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들끓었다.
그런 결심 덕에 이번 인테리어 리뉴얼은 단순히 내부 인테리어에 쓰인 소품을 변경하는 정도의 스케일이 아니었다.
덕분에 필상의 든든한 조력자 중 한 명이라지만, 파우스트 내부 인력은 아니랄 수 있는 멜리가 인테리어 리뉴얼과 관련된 업무를 도맡게 된 상황이었고 말이다.
“고맙지만, 꽤 멋쩍네요. 사실 제가 한 일이라고 해봐야 정해진 컨셉을 스페이스 디자이너분들께 전달해드린 게 전부거든요. 우선 3D 스케치 프로그램으로 재현한 예상 완성도부터 한번 확인해보시는 쪽이 좋을 것 같네요.”
이내 멜리가 제 아이패드 화면을 ‘꾹, 꾹.’ 눌러가며, 스케치 프로그램을 통해 재현한 예상 완성도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인테리어 리뉴얼 계획안을 글줄로 확인한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감상평을 한마디로 정리해보자면, 아름답다. 예상했던 것보다 족히 몇 배는 더 아름다웠다.
“정말 끝내주는데요···?”
필상이 엷게 떨리는 목소리로 건넨 물음에, 멜리가 제 고개를 몇 번 끄덕여 보이고는 답했다.
“그야 당연하죠. 명성이 자자한 스페이스 디자이너 네 명이 회의를 거듭한 끝에 탄생한 결과물이니까요. 몽환적인 분위기를 강조하는 와중에, 봄이라는 컨셉이 퇴색되지 않게끔 설계하셨다네요.”
“전반적인 느낌 자체가 좋기도 한데, 뭐랄까? 이런저런 소소한 아이디어들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사뭇 들뜬 어투로 말해 보인 필상이 다시금 액정 화면 위로 떠 있는 예상 완성도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우선 가장 큰 변화는 구도였다.
홀 내부에 자리한 테이블을 이번 시즌의 컨셉에 맞는 제품으로 변경하는 동시에, 식탁보, 식기, 심지어 배열 및 배치에도 변화를 줄 요량이었으니 말이다.
뿐 아니라, 조명의 변화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천장 조명의 조도를 전체적으로 다운시킨 뒤, 바닥에 조명을 매립할 요량이었던 것이다.
또, 장내 곳곳에 스모그 머신을 배치하여, 발치에 자욱한 연기가 감돌게끔 만들 요량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때, 멜리가 “아.” 하고 침음을 흘려 보이고는 덧붙였다.
“그리고 홀 중앙 빈 공간에 들어갈 분수대 말인데, 분명 만족스러워하실 거예요. 소더비 경매에서 백이십만 달러에 낙찰된 작품이거든요.”
“예? 얼마라고요···?”
“백이십만 달러요. 아마 실물을 보시면 납득하실 수 있을 거예요. 크리스탈 재질로 이루어진 데다가, 하부에서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는 형형색색 조명 덕에 절로 감탄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특히 중앙에 거치된 *모르페우스(*그리스 신화의 꿈을 관장하는 여신) 상은 형용이 불가능할 지경이죠.”
이내 필상이 미간을 잔뜩 찡그린 채 되물었다.
“그런 분수대를 어떻게 구하신 거예요? 설마 사 측 자금으로 구매하신 건 아니겠죠?”
“음,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사 측 비품이랄 수 있겠네요. 이번 스프링 시즌이 마무리되는 대로 반납하셔야 해요.”
“백이십만 달러나 하는 비품이라,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 상식선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인 것 같은데···.”
그 말에 멜리가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답했다.
“회장님께서 취미로 운영하시는 갤러리의 전시품이라고 말씀드리면 이해가 되실까요? 흔히 있는 일은 아니라지만, 가끔 빌리 반 소속 아티스트들의 전시회를 비롯한 행사에 회장님 갤러리에 잠들어 있는 작품들이 등장하곤 하거든요.”
“꽤 기분 좋은 일이네요. 그만큼 사 측의 신임을 얻었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잖아요?”
“네, 맞아요. 사실 저도 정말 승인이 떨어지리라곤 예상치 못했었어요. 이번 시즌 컨셉을 듣기 무섭게 모르페우스 분수가 떠올라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보고서를 올려봤거든요.”
“흠, 확실히 관심이 집중되기는 하겠네요.”
“그런데 문제는 공사에 필요한 시간이에요. 스프링 시즌 시작 이전에 일주일간 영업이 불가능할 거라던데요?”
그 말에 필상이 베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회의 마치는 대로 공사 기간 내 예약 손님들께 연락드려서 양해를 구하는 쪽이 좋겠네요.”
“보상 관련 문제는 어떻게 처리할까요?”
“우선 사전 예약금 전액 환불해드린 뒤, 예약 인원수에 맞게끔 무료 식사권 발송해드리겠다고 말씀드리세요. 또, 재예약을 원하시는 경우에는 우선적으로 예약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다고 꼭 설명드리고요.”
“예, 셰프. 알겠습니다.”
이내 필상이 손에 쥔 펜을 빙글빙글 돌려가며 재차 말문을 열었다.
“인테리어 리뉴얼 관련 문제는 모두 마무리된 것 같고··· 베니, 홀 상황은 어떤 것 같아요?”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는 조금 멋쩍은 부분이라지만, 홀 역시 준비를 완벽히 마친 것 같네요. 아시다시피 셰프께서 제공해주신 자료를 토대로 매뉴얼을 다시 설계했어요. 또 모든 직원들이 새로운 매뉴얼 및 미슐랭 심사단 대응책을 완벽히 숙지했고요.”
“어때요? 미슐랭 심사단의 마음을 확실히 사로잡을 수 있을 것 같으세요?”
“그럼요, 물론이죠. 제아무리 콧대 높은 미슐랭 심사단이라 한들, 직원들의 서비스 만족도 설문지에 별 다섯 개를 기록하실 수밖에 없을 거예요.”
한차례 “좋네요.” 하고 나직이 읊조려 보인 필상이 이번에는 갈라예프 셰프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분자요리 섹션은 어때요?”
이내 갈라예프 셰프가 어깨를 한 번 들썩여 보이고는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당연히 완벽하죠. 셰프께서 지시해주신 대로, 눈으로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텍스처와 맛을 느낄 수 있게끔 만드는 데 집중했습니다. 물론 ‘맛’에 초점을 맞춰둔 채로요.”
“사실 서운하실까 봐 으레 건넨 질문이었어요. 분자요리 섹션 정비가 완벽히 끝났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거든요.”
갈라예프 셰프를 ‘게스트 셰프’로 영입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그의 천성이랄 수 있는 완벽주의와 프로정신이 파우스트의 주방 안에서도 빛을 발했으니 말이다.
그가 이번 계약을 체결한 이후, 파우스트를 위해 창작한 레시피의 수만 하더라도 무려 열두 개에 달했다.
또 갈라예프 셰프의 성향 덕에, 직원들은 초 단위로 기록된 조리과정 내의 변화 및 이상적인 온도 그래프까지 숙지해야 했고 말이다.
분자요리 섹션에서 근무 중인 직원들의 조리 숙련도야 말할 필요도 없는 대목이였다. 적어도 스프링 시즌 메뉴에 대한 숙련도 만큼은 완벽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었으니까.
이내 애꿎은 볼펜 끄트머리를 질겅질겅 씹어대던 필상이 제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재차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디저트 섹션을 제외하면 모두 완벽히 준비된 것 같네요.”
그 말에 멜리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여가며 되물었다.
“셰프, 원래 어제 자정 전으로 답을 듣기로 약속했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네, 그랬죠.”
“아직 확답을 못 들은 거예요?”
이내 필상이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답했다.
“어제 대화 나누던 당시의 분위기가 좋아서 분명 긍정적인 결정을 내려주실 거라고 확신했는데, 이쯤 되니 어떻게 될지 짐작할 수가 없네요.”
그 말에 장내의 분위기가 돌연 가라앉았다. 장내에 자리한 모두가 미슐랭 심사단으로부터 만족스러운 점수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모든 요소가 완벽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탓이었다.
그때, 갈라예프 셰프가 제 푸짐한 허리춤에 양손을 괸 채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샵 인 샵(Shop In Shop) 형태로 런칭하는 정도로는 성에 안 차는 거겠죠. 함께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기미가 안 보인다면 저희도 조속히 움직이는 쪽이 낫지 않겠습니까?”
말을 마친 갈라예프 셰프가 몇 마디 말을 추가로 덧붙이기 시작했다. 줄리아가 아니더라도 유능한 디저트 셰프는 수두룩하다는 점을, 시간이 촉박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이내 필상이 제 손목에 채워진 시계를 한 번 바라보고는, 차분한 투로 말문을 열었다.
“앞으로 딱 여섯 시간, 오늘 점심까지는 기다려보는 게 좋겠네요. 만약 그때까지도 확답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다른 디저트 셰프를 물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내키지 않는 대목이었으나, 달리 방도가 없는 터라 받아들여야 할 듯싶었다. 싫다는 줄리아 셰프를 억지로 끌고 와, 주방에 세워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한차례 “흠.” 하고 침음을 흘려 보인 필상이 팔짱을 낀 채로, 생각을 정리해봤다.
줄리아 셰프 이상의 가능성을 지닌 디저트 셰프가 누가 있는지, 아니면 파우스트의 디저트 섹션 재정비를 마음 편히 믿고 맡길 만한 셰프가 누가 있는지를 고민해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눈에 불을 켜고 찾으려면 찾을 수야 있겠으나, 애석하게도 당장 떠오르는 이름은 한 개도 없는 듯했다.
차츰 고민이 깊어져만 가고 있던 그때, 멜리가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재차 말했다.
“디저트 파트까지 모두 완성된 이후에는, 곧장 유명 평론가 및 칼럼니스트분들께 파인다이닝 초대권을 발송하도록 할게요.”
“네. 스무 명 정도가 좋겠네요. 열 명은 미국 내에서 활동하고 계신 분들로, 나머지 열 명은 해외에서 활동하고 계신 분들로 비율을 맞춰주시겠어요? 방문 일자를 조율한 뒤에는, 항공권도 마련해 드리는 방향으로 진행한다면 초대에 응하지 않는 분들이 그리 많지 않을 거예요.”
말을 마친 필상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우선 회의는 이쯤에서 마무리하면 될 것 같군요.”
소파에 모여 앉아 있던 이들이 다들 약속이라도 한 것 마냥, “예, 셰프.” 하고 답해보이던 찰나였다. 돌연 집무실의 문이 열리더니, 익숙하기 그지없는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름 아닌, 줄리아 셰프였다.
마치 본래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이라도 되는 양, 자연스레 모두에게 인사를 건네 보인 그녀가 필상의 바로 앞에 멈춰선 채 두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나직이 되물었다.
“으음, 표정을 보니 다들 저만 기다리고 계셨던 것 같네요?”
“답을 보류하다가 결국 거절하실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그 말에 줄리아가 제 고개를 좌∙우로 한 번 내저어 보이고는, 나직이 말을 이었다.
“나쁜 어른들 말투는 곧잘 흉내 내시던데, 어른들 연애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시나 봐요?”
“예···?”
“줄다리기는 기본이거든요. 수업료는 괜찮으니, 라커룸이 어디인지부터 알려주시겠어요?”
그 말에 필상이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되물었다.
“따라오시겠어요?”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