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155
155
Chapter37 – 평가 (2)
의도적으로 포크를 떨어트려 보인 퍼스트 말론이 속으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그렇게 불과 십 초도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선 채로, 홀 내부를 살펴대고 있던 서버 한 명이 다가와서는 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붙여왔다.
“실례하겠습니다.”
“아, 예.”
그리고는 곧장 퍼스트 말론과 그 일행의 옷매무새를 살펴 가며 조심스럽기 그지없는 어투로 되물었다.
“식기를 떨어트리신 것 같아서요. 행여나 옷에 묻지는 않으셨나요?”
“예, 다행히도요.”
“곧장 새것으로 교체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윽고 포크를 새것으로 교체해준 서버가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가자, 퍼스트 말론이 만족감이 서린 미소를 머금은 채 말문을 열었다.
“확인까지 칠 초 남짓 걸렸군요. 옷을 먼저 살펴보는 접객 태도가 눈에 띄었고 새 포크로 교체하는 데까지는 십오 초 남짓 걸렸네요.”
“여타 파인다이닝과 비교했을 때는 어떤 편인가요?”
“몹시 훌륭한 편입니다. 음악 및 대화 소리를 비롯한 소음 탓에 식기를 떨어트렸단 사실 자체를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거든요.”
말을 마친 그가 홀 내부를 천천히 한 번 둘러보기 시작했다. 일단 미슐랭 심사단의 서비스 관련 기초 평가 항목 중 하나인 ‘*포크 떨어뜨리기’(*Drop the Fork)는 무난히 통과한 셈이었다.
하나, 전반적인 서비스의 질에 대한 평가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진행해야 할 터였다. 한시적으로 질 좋은 서비스를 선보이는 정도라면, 그 어느 파인다이닝이든 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하나, 중요한 것은 ‘존속성’이다.
잘 보이기 위해 잠시 까치발을 들고 서 있는 것쯤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까치발을 든 채로 평생을 살 수는 없다. 미슐랭 심사단의 심사위원들이 평가 대상으로 지정된 파인다이닝에, 최소 서너 번 이상 방문하는 것 역시 이와 같은 서비스의 존속성을 확인하기 위함이었고 말이다.
‘어쨌든 지금은 합격이로군.’
이미 모든 테이블이 만석인 상황이었으나, 파우스트의 홀 직원들은 마냥 노련히 움직이고 있을 따름이었다. 이를테면 서빙이 지연된다거나 텅 빈 물잔을 체크하지 못하거나 하는 등의 실수는 전혀 보이지 않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그때였다.
어느새 두 사람이 앉은 테이블 앞에 다다른 서버가 재차 조곤조곤한 어투로 말을 건네왔다.
“빈 접시를 치워드리고 다음 메뉴를 서비스해드려도 될까요?”
“아, 예. 물론입니다.”
퍼스트 말론이 나직이 답해 보이기 무섭게, 홀 직원이 방긋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빈 접시를 회수해가며 질문을 건네왔다.
“앞서 서비스되었던 메뉴는 입에 맞으셨나요? 부족한 부분을 짚어 주신다면, 셰프께 말씀드린 뒤 조속히 시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에스프레소 잔에 서비스된 샐러드 말씀이시죠? 양이 적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딱히 흠잡을 데가 없는 것 같군요. 음식 재료 간의 조화도 훌륭했고, 대비되는 식감, 재료의 선도, 모든 게 완벽했습니다.”
한차례 “감사합니다.” 하고 답해 보인 서버가 이번에는 카트 위에 놓여있던 접시를 두 사람 앞에 각각 한 개씩 내려놓으며 말문을 열었다.
“수프 메뉴인 ‘트러플 전복 포리지’입니다. 셰프의 모국인 한국의 조리법에서 영감을 얻어 창안한 레시피인 터라, 기존의 포리지와는 조금 다른 느낌을 받으실 수 있을 것 같네요.”
“흠, 한국 느낌의 포리지라 어떤 맛일지 기대되는군요.”
말을 마친 그가 제 앞에 놓인 접시를 빤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화려한 음각이 눈에 띄는 수프 전용 접시 안으로, 후끈한 김을 모락모락 뿜어대고 있는 포리지가 한두 국자가량 담겨있는 상태였다.
흰쌀을 시작으로, 포리지의 주재료인 납작 귀리, 치아 시드, 보리, 마지막으로 현미에 이르기까지···.
여러 곡물을 뭉근하게 끓여가며 간을 맞춰냈으리라 짐작되는 요리였다. 단, 점도 높아 보이는 액체가 투명한 색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우유 대신 물을 넣어 끓여냈을 게 분명했고 말이다.
“흠.”
짧은 침음을 흘려 보인 그가 포리지 위에 보기 좋게끔 가지런히 얹어진 가니쉬를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곱게 빻아 가루 낸 듯 보이는 깨와 더불어, 연한 색 덕인지 한없이 보드라워 보이는 전복 슬라이스. 또 얇고 기다랗게 다져낸 김 가루, 잣 알갱이 몇 개, 마지막으로 서로 다른 색을 지닌 기름 몇 방울을 교차적으로 떨어트려 놓기까지 한 상태였다.
구체적으로 형용할 순 없으나, 뭐랄까? 일련의 신비로움과 우아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기묘한 메뉴임이 분명했다.
“뭉근하고 부드러운 식감이 일품인 메뉴입니다. 위에 얹어진 가니쉬와 포리지를 잘 섞어낸 뒤 드시면 될 것 같네요.”
“포리지 표면에 떨어트려 둔 오일의 종류가 궁금하군요. 아무래도 서로 다른 두 종류의 기름을 떨어트린 것 같아서요.”
“눈썰미가 상당하시네요. 네, 맞습니다. 색이 진한 쪽은 한국 요리에 종종 쓰이는 편인 참기름입니다. 참깨에서 추출한 기름으로 고소한 향이 일품인 기름이죠. 함께 흩뿌린 연한 기름은 블랙 트러플 오일이고요.”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인 퍼스트 말론이 함께 서비스된 스푼을 집어 들어서는, 가니쉬와 포리지를 휘휘 저어 섞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제 아랫입술을 한 번 핥아내 보인 그가 곧장 포리지를 한 스푼 떠서 맛을 보았다.
“와.”
이렇다 할 구체적인 평이 아닌, 짤막한 감탄이었을 뿐이다. 하나, 서버는 모든 것을 눈치채기라도 한 양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마지막 말을 남기고는 곧장 그들의 테이블을 떠났다.
“즐거운 식사 되시길.”
이내 퍼스트 말론과 그의 일행이 묵묵히 포리지를 맛보기 시작했다. 한 스푼, 두 스푼, 세 스푼···.
전형적인 ‘동양풍 요리’임이 분명했다. 애초에 향과 맛이 전혀 자극적이지 않고 절제되어 있다는 점만 놓고 보더라도 그랬다. 또 그 절제된 향과 맛조차 전형적인 동양풍이었고 말이다.
거친 식감을 지니고 있어야 할 곡물들이 눅진하게 으깨져 나갔다. 까슬까슬한 느낌이 혀를 살짝 훑고 지나가기야 했으나, 그게 전부였다. 결국, 목구멍을 따라 보드랍게 넘어가는 느낌이 일품이었으니까.
마치 오랜 시간 뭉근하게 끓여내는 식으로 조리한 끝에, 식감 자체를 바꿔내는 데 성공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점도 높은 끈적한 수분이 각 재료와 향신료를 촘촘히 이어주는 접착제 역할을 해주는 것만 같았다. 한국 요리에 종종 쓰인다는 참기름의 향은 입가에 절로 미소가 피어오를 정도로 고소했으며, 트러플 오일 특유의 고풍스러운 향과 몹시 훌륭한 조화를 이루는 듯 보일 따름이었다.
이따금 느껴지는 깻가루의 오밀조밀한 입자, 연신 ‘파사삭-.’거리며 바스러지는 짭조름한 김 가루, 마지막으로 겉은 야들야들하고 촉촉하나, 속은 오돌오돌 대는 거친 식감을 잃지 않은 전복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의 손이 멈춘 것은 접시가 바닥을 보인 뒤의 일이었다. 이번 메뉴 역시 그 양이 상당히 적은 편에 속했다. 챙, 챙. 애꿎은 접시 바닥을 긁어대고 있던 퍼스트 말론이 헛웃음을 머금은 채 스푼을 내려놓았다.
“제기랄, 아쉽군요.”
그 말에 중년 사내가 미간을 살짝 찡그린 채 물음을 건네왔다.
“흠, 아무래도 입에 맞지 않으셨나 보군요?”
스스로에게는 일생 맛본 포리지를 통틀어 단연 최고랄 수 있었으나, 글쎄? 도합 열두 명으로 구성된 뉴욕 미슐랭 가이드의 심사단 중에서도, 유독 까다롭고 고상한 입맛을 보유하고 있기로 악명이 자자한 ‘퍼스트 말론’의 기대치에는 부응하지 못했을 수도 있으리란 생각에 건넨 물음이었다.
이내 퍼스트 말론이 제 턱을 살살 만지작거려가며, 나긋한 어투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아뇨, 훌륭합니다. 동양 요리 특유의 이색적이고 생소한 맛을 자세하게 풀어내는 데 성공한 완벽한 요리입니다. 곡물들의 식감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점도 훌륭했고, 가니쉬 선택도 눈에 띄더군요. 단순히 요리의 외형을 가다듬기 위함이 아니라, 맛이 지닌 공백을 메우는 느낌이더군요.
“예, 맞습니다. 단순히 장식의 용도를 넘어서, 그 이상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는 것 같더군요. 특히 빻아둔 곡물가루와 두 종류의 오일의 식감 및 향미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 같네요.”
“사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동양 국적의 셰프들이 괄시받던 시절이 있지 않습니까? 동양 국적의 셰프들은 하나같이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져 있으니, 그렇지 않은 셰프들에 비해 둔감한 미각을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고 정통 퀴진이나 이탈리안 푸드에 대한 이해도도 부족했고요.”
“사실 저는 지금도 몇몇 셰프분들을 제외한다면, 동양 셰프의 파인다이닝에서의 식사를 즐기지는 않습니다. 스스로가 맛있게 먹을 수 없는 요리를, 어떻게 맛있게 만들 수 있겠냐는 의문이 지배적이거든요.”
덤덤한 투로 말해 보인 중년 사내가, 어깨를 한 번 가볍게 들썩여 보이고는 “물론, 영 셰프는 당연히 열외겠죠.”하고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이내 고개를 몇 번 끄덕여 보인 퍼스트 말론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한데 영 셰프는 자신의 국적을 완벽한 장점으로 승화시켰어요. 그는 아시아권 국가에서 자란 덕에, 동양풍 요리에 대한 조예가 깊습니다. 얄팍한 노력 끝에 동양풍 요리에 대해 학습한 여타 셰프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죠.”
“그런데요?”
“그런데 노력이 수반된 학습의 영향 덕에, 그의 요리가 지닌 국적이 희미해지지 않았습니까? 나폴레옹이란 별명은 괜히 얻은 게 아니에요. 심지어 하나의 요리 속에 몇 개 국가의 조리법과 식재료가 지닌 장점만을 혼합하기도 하죠. 스스로를 동양풍이라 주장해가며, 힘든 식사를 강요하는 이기적인 파인다이닝의 셰프들이 선보이는 코스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군요. 동양 요리와 식재료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고 학구열을 품게끔 하는 세밀하고 섬세한 요리에요.”
연신 칭찬을 늘어놓던 퍼스트 말론이 “하지만.” 하고 말해 보인 뒤, 심드렁한 투로 몇 마디 말을 덧붙였다.
“물론 장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단점을 발견하셨군요?”
“그야 물론이죠!”
사뭇 격양된 투로 답해 보인 퍼스트 말론이 눈치를 살피듯 좌우를 한 번 둘러보고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호소하듯 말을 이었다.
“양이 적잖아요, 양이.”
한차례 호쾌한 미소를 지어 보인 중년 사내가 제 고개를 살짝 비스듬히 기울여가며 나직이 되물었다.
“지금까지 서비스된 메뉴들로 파우스트를 평가한다면, 어느 정도 점수를 받을 수 있을지가 궁금하군요.”
“흠, 글쎄요.”
짤막하게 답해 보인 퍼스트 말론이 진중한 표정을 한 채로, 장내를 천천히 한 번 둘러보기 시작했다.
우선 분위기 및 인테리어는 완벽했다. 단순히 ‘그럴싸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파인다이닝 고유의 아이덴티티와 시즌 컨셉을 완벽히 발산하고 이해시키는 데 성공했으니 말이다.
사실 홀 중앙에 비치된 분수가 소더비 사의 경매에서 얼마에 낙찰되었는지는, 그와 전혀 상관없는 문제였다. 하나, 조형물들이 해내고 있는 역할 및 방문객들로 하여금 느끼게 하는 감상들은 명백한 평가 항목이랄 수 있었고 말이다.
심지어 프라이빗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견고한 테이블 배치 간격, 섬세하게 설계했을 조명, 부담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인력 배치, 오직 파우스트에서만 볼 수 있을 것 같은 우아한 외형의 식기들에 이르기까지···.
외형적인 부분은 가히 완벽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었다.
‘우선 인테리어 및 분위기는 만점.’
그다음은 직원들의 서비스에 있었다. 모든 직원 한 명, 한 명이 상당히 뛰어난 업무 숙련도를 갖추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허둥대지도, 말을 더듬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모든 직원이 와인을 비롯한 온갖 주류에 대해 풍성한 지식을 갖추고 있음이 절절히 느껴졌다.
하나, *페어링(*음식과 어울리는 술을 함께 서비스해주는 것)은 고용된 전문 소믈리에들이 직접 해주는 섬세한 면모 역시 마음에 들었고 말이다.
맛은 어떤가?
코스를 축소시켜 놓은 것 같은 느낌의 아뮤즈 부쉬를 시작으로, 진부한 느낌의 샐러드를 새로운 시도 및 발상으로 풀어낸 애피타이저 메뉴, 마지막으로 방금 맛본 수프 메뉴 트러플 전복 포리지에 이르기까지···.
사색에 잠겨있던 퍼스트 말론이 마냥 조심스러운 어투로 말문을 열었다.
“이대로라면 투 스타. 아니, 쓰리 스타도 문제없을 것 같군요.”
“진심입니까?’
“물론입니다. 다만, 끝까지 코스의 완성도가 유지되었을 때의 일이겠죠.”
“허···.”
그때였다.
“다음 메뉴가 준비되었는데, 빈 접시를 회수한 뒤 다음 메뉴를 서비스해드려도 괜찮을까요?”
어느새 지척에 다가온 홀 서버가 건네온 물음에, 두 사람이 동시에 “예.” 하고 답해 보였다. 이내 홀 서버가 조속히 빈 접시들을 회수한 뒤,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말문을 열었다.
“이번 메뉴는 분자요리에 정통한 ‘갈라예프 셰프’와의 콜라보레이션 키친을 통해 창안해 낸 분자요리로, 이번 스프링 시즌 디너 코스의 시그니처 메뉴랄 수 있는 품격 있는 메뉴입니다.”
말을 마친 그녀가 다음 애피타이저 메뉴가 담긴 접시를 내려놓던 찰나, 두 사람의 눈이 동시에 화등잔만 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