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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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37 – 평가 (4)
분자요리 코스의 *대미(*大尾)를 장식할 마지막 요리는, 플레이팅이 상당히 독특한 편에 속했다.
아니, 겉으로 봤을 때는 요리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모양새를 띠고 있을 따름이었다.
우선 속이 훤히 비치는 기다란 원기둥 모양의 접시 안으로, 희뿌연 연기가 잔뜩 들어차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 밑면에는 천천히 타들어 가고 있는 로즈마리가 한 움큼 남짓 자리해 있는 상태였고 말이다.
‘흠, 훈연인가···?’
한눈에 보더라도, 로즈마리를 태운 연기로 요리에 향(香)을 입히겠다는 의도가 느껴지는 듯했다.
스멀스멀 피어오른 연기가 춤을 추듯 위로 솟구쳐서는, 뚫려있는 원기둥 윗면을 따라 천천히 새어 나오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한데, 놀랍게도 원기둥의 윗면에 놓인 벌집 모양의 철판에 놓여있는 것은 요리가 아니었다.
“돌멩이?”
조명 불빛을 머금은 채로, 한껏 반들대고 있는 돌멩이 몇 개가 놓여있을 따름이었으니 말이다. 보기 좋게끔 식용 꽃 몇 송이와 식용 금박을 흩뿌려두었으며 사이마다 솔잎을 꽂아 둔 상태였으나, 글쎄?
겉으로 봤을 때는 영락없는 돌멩이였다. 그러니까 수심이 얕은 계곡 바닥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단단하지만, 매끈하고 윤기 있는 돌멩이 말이다.
이내 전담 서버가 한차례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손끝으로 철판 위에 놓여있는 돌멩이를 가리켜 보이며 말했다.
“한번 드셔 보시겠어요?”
그 말에 잠시 머뭇대던 퍼스트 말론이 제 몫의 포크를 집어 들어서는, 그 끄트머리로 조심스레 돌멩이를 가볍게 콕 찔러보았다. 그 순간, 퍼스트 말론이 저도 모르게 “오.” 하고 짧은 침음을 흘려 보이기에 이르렀다.
다름 아니라, 포크 끄트머리가 마치 버터를 꿰뚫는 것마냥 부드럽게 돌멩이 속에 파고들었던 까닭이었다.
꿀꺽-.
입안에 살짝 고인 침을 삼켜내 보인 퍼스트 말론이, 제 입맛을 한 번 다셔보았다. 방금 전담 서버가 페어링해준 한국 전통주 탓일까?
지독하고 불쾌하기 그지없는 향미가 입안에서 가실 줄을 모르고 연신 맴도는 중이었다. 만약 입안에 남은 씁쓸한 기운이 아니었더라면, 조금 더 살펴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요리라도 좋으니, 입안에 욱여넣어 남아있는 불쾌한 향미를 걷어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후.”
한차례 짧게 숨을 내쉬어 보인 그가 곧장 포크로 집어 든 돌멩이를 한입에 ‘쏘옥-.’ 집어넣고는 조심스레 깨물었다.
그 순간, 그가 저도 모르게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과장을 조금 보태어 말하자면, 무방비 상태에서 갑작스레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예상한 것과 아예 상반되는 식감이 느껴졌던 탓이었다.
물컹.
돌멩이의 모습을 한 요리의 표면은 전혀 단단하지 않았다. 아니, 마치 젤리처럼 부드럽고 말캉했다.
또 상상 이상으로 고풍스러운 *향미(*香味)를 지니고 있을 따름이었다. 블랙 트러플 특유의 짙고 섬세한 향과 더불어, 훈연을 통해 덧씌운 로즈마리 향이 입안에서 서로 자연스레 뒤엉켰다.
안쪽에는 부드럽고 촉촉한 식감의 ‘*소고기 타르타르’(*steak tartare:생소고기를 갈거나 곱게 다져 만드는 요리, 육회와 흡사하다.)가 자리해 있었다.
별다른 반탄력 없이 으깨지고 짓뭉개지는 소고기 입자 사이에서, 여러 향신료의 향미가 잔뜩 느껴지는 듯했다. 케이퍼를 시작으로, 민트, 양파, 올리브, 소금, 후추, 그 밖에도 기타 등등···.
그 맛을 음미하고 있노라니, 문득 전담 서버가 시식에 앞서 의기양양한 어투로 늘어놓았던 말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마지막 분자요리 메뉴인 세 번째 메뉴의 맛을 본 다음이면, 자신들이 어째서 도수가 높은 한국 전통주를 페어링해준 것인지 이해할 수 있으리란 말 말이다.
옳은 말이었다. 머금고 있는 요리 덕에, 한국 전통주가 혀 위에 남긴 불쾌한 여운이 어느새 싹 가셔버린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도수가 높은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자신조차, 한두 잔 정도를 더 들이켜고 싶다는 생각이 일 지경이었다. 이는 페어링받은 술과 요리가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는 증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입안에 머금고 있던 요리가 마냥 매끄럽게 식도를 따라 흘러내려 갔다. 이내 퍼스트 말론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한 채로, 허공을 들여다보고 있던 찰나였다. 바로 곁을 지키고 서 있던 전담 서버가 나직이 말문을 열어서는, 세부적인 설명을 덧붙여 말해주기 시작했다.
“젤리피케이션 기법을 응용하여 조리한 ‘블랙 트러플 젤’을 씌운 소고기 타르타르입니다. 보신 것과 마찬가지로, 훈연 기법을 통해 로즈마리 향을 입혀봤습니다.”
그 말에 퍼스트 말론이 제 고개를 천천히 끄덕여 보이고는 답했다.
“정말 훌륭하군요. 확실히 분자요리 코스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일절 부족함이 없는 요리였던 것 같습니다. 먹는 재미, 보는 재미, 또 조리하는 데 쓰인 향신료를 추리하는 재미까지···.”
이번에는 그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중년 사내가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타르타르의 맛이 조금 특별한 것 같군요? 뭐랄까? 생소한 맛의 향신료가 섞인 것 같다고 해야 할지···.”
이내 서버가 기다렸다는 듯 “맞습니다.” 하고 답해 보인 뒤, 조곤조곤한 어투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셰프께서는 중동식 소고기 타르타르랄 수 있는 ‘키베 나예’에서 모티브를 얻어 민트, 올리브유, 곱게 간 불구르를 살짝 섞었습니다. 또 에티오피아식 타르타르인 ‘카트포’처럼 허브 버터를 살짝 섞어주기도 했고요.”
“어쩐지, 전통적인 프랑스식 타르타르와는 거리가 있는 느낌이더라니···.”
나직이 중얼거려 보인 퍼스트 말론이 제 고개를 좌우로 몇 번이나 내저어 보이기에 이르렀다.
‘영 셰프···.’
그러고 보면, 파우스트의 모든 분자요리가 이런 식이었다. 영 셰프와 갈라예프 셰프가 머리를 맞댄 채 만든 분자요리들은, 모두 하나같이 뛰어난 맛을 지닌 탄탄하고 견고한 요리를 기틀로 삼고 있었다.
조금 전에 맛본 ‘블랙 타르트 젤을 씌운 타르타르’만 놓고 보더라도 그랬다. 애초에 핵심이랄 수 있는 타르타르만을 애피타이저 메뉴로 따로 선보였더라도, 극찬을 받았을 게 분명했다.
프랑스 전통 타르타르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느낌이라지만, 여타 타르타르에 비해 훨씬 더 섬세하고 깊은 맛을 지닌 요리였으니까.
더군다나 레바논식 조리법과, 에티오피아식 조리법을 섞었다는 점에서 더더욱 가산점을 주고 싶었다.
여러 국가의 조리법을 뒤섞었으나, 과하다는 느낌은 정말 추호도 들지 않았다. 애초에 필요한 요소만을 취했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또 영 셰프의 아이덴티티와 더불어, 파우스트라는 파인다이닝의 아이덴티티가 절절히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했고 말이다.
분자요리에 정통한 여타 셰프들의 파인다이닝과 비교했을 때는 어떤가? 훨씬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움과 혁신적임에 집중하고 있는 그들의 요리와 달리, 영 셰프가 선보인 분자요리는 마치 완성된 요리에 가니쉬를 얹어내는 것처럼, 이미 완성된 요리 위에 분자요리학을 가미해 ‘질’을 높인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서버가 다음 메뉴를 준비하기 위해 자리를 뜬 뒤에도, 퍼스트 말론은 여전히 침묵을 유지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이내 그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중년 사내가 마냥 조심스러운 어투로 되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혹시 무슨 문제라도···.”
“아뇨.”
짤막하게 답해 보인 퍼스트 말론이 눈치를 한 번 살핀 뒤, 목소리를 한껏 낮춘 채로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영업을 하지 않는, ‘*엘 보니’(*El Bony)에 처음 방문했던 때가 떠오르는군요.”
“아,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습니다. 최초의 분자요리 미슐랭 쓰리 스타 파인다이닝 말씀이시죠?”
“예. 맞습니다. 최초였지만, 지금까지도 여전히 최고라는 평을 받는 곳이죠.”
나직이 답해 보인 그가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덧붙였다.
“파우스트의 분자요리 코스는 ‘엘 보니’를 닮았습니다. 지금은 은퇴한 셰프 엘 보니 역시 기틀이 되는 메인 디쉬를 오밀조밀 설계한 뒤, 그 위에 분자요리학을 덧씌워 요리의 재미와 질을 끌어올리는 방법을 즐겼죠. 영 셰프처럼요.”
“흠, 그랬군요···.”
“솔직히 정말 놀라울 따름입니다. 서비스된 세 가지 요리를 맛보는 내내, 분자요리에 정통한 여타 셰프들의 파인다이닝 코스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번 시즌, 파우스트의 분자요리 섹션을 보강해주었다는 갈라예프 셰프 본인의 파인다이닝 코스 메뉴보다도 훨씬 나았죠.”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영 셰프에게는 분자요리 역시 ‘수단’에 불과할 따름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깨달았습니다. 필요하다 판단하면 무수히 많은 국가의 조리법과 식재료를, 마음대로 가져다 쓰는 것처럼 말입니다.”
*
코스는 계속해서 전개되었다. 도미살과 허브 주스를 곁들인 버섯 라비올리, 수비드 기법으로 조리한 전복 슬라이스를 얹어낸 퀴노아 빠에야, 와사비와 우유를 섞어 만든 퓌레를 곁들인 고등어 뱃살 구이, 두툼한 연어로 감싼 랑구스틴 요리 등···.
국경을 넘나드는 다양한 종류의 요리들이 연달아 서비스되었다. 메뉴별로 각기 다른 주류를 페어링받은 데다가, 무려 십수 종 이상의 다양한 메뉴가 서비스된 상황이었다지만 다행히도 각 메뉴들의 양이 워낙 적었던 터라 포만감이 느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홀 매니저가 ‘셔벗’을 든 채 다가왔고 퍼스트 말론이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로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파인다이닝 코스 내에서 셔벗의 역할은, 이제 곧 메인 디쉬가 시작되리란 신호나 마찬가지였던 까닭이었다.
“무화과를 이용해 만든 셔벗입니다. 달큰한 맛을 살짝 걷어내고, 시원함과 산미에 집중한 것이 특징입니다.”
간략히 설명을 마친 그녀가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본 뒤에 나직이 되물었다.
“지금까지의 요리는 입에 맞으셨는지요?”
그 말에 퍼스트 말론이 “물론.” 하고 답해 보인 뒤, 제 몫의 자그마한 스푼으로 셔벗을 살짝 떠내며 설명을 덧붙였다.
“아뮤즈부터, 방금 전 맛본 연어 랑구스틴에 이르기까지. 모든 메뉴들이 가히 완벽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었던 것 같군요.”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지금까지 나온 메뉴만 하더라도 족히 열네 개에 달하는데, 앞으로는 몇 개 정도의 메뉴가 남은 겁니까?”
이내 베니가 조곤조곤한 투로 답했다.
“앞으로 세 종류의 메인 디쉬와, *프로마쥬(*치즈) 메뉴, 또 도합 세 종류의 디저트 메뉴가 남아있네요.”
“그럼 혹시 코스 가격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지금 맛보고 계신 스프링 시즌 디너 코스 같은 경우에는 인당 390불로 가격이 책정되어 있습니다.”
“그럼, 페어링은?”
“페어링 서비스까지 추가하신다면, 90불이 더 추가될 예정이고요.”
베니의 답이 끝맺어지기 무섭게, 퍼스트 말론이 피식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답했다.
“가격대가 꽤 높은 편이로군요.”
“네, 하지만···.”
베니가 무어라 항변하려던 찰나였다. 퍼스트 말론이 가볍게 한 번 손사래를 쳐 보이고는 나직이 답했다.
“괜찮습니다. 이 정도 완성도와 다양성이라면, 다들 얼마든 지불할 용의가 있을 테니까요.”
그때였다. 저 멀리서, 두 사람이 앉은 테이블 전담 서버가 카트를 끈 채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내 퍼스트 말론과 그의 일행, 두 사람이 한껏 집중한 채로 카트 위에 담긴 접시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윽고, 지척에 다다른 전담 서버가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그럼 첫 번째 메인 디쉬를 서비스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녀가 접시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던 찰나였다. 첫 번째 메인 디쉬의 정체를 확인한 퍼스트 말론이 고개를 내저어가며 나직이 중얼댔다.
“영 셰프, 정말 제정신이 아니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