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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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38 – 마음을 울리는 (1)
푸아그라는 푸아그라였다. 하나, 적어도 그의 예측 범주 내에 있던 형태의 푸아그라는 아니었기에 꺼내 보인 말이었다.
*
원형 접시의 밑바닥에 푸르스름한 색의 얇은 젤리가 한 장 깔려있었고, 그 위로 동그랗게 빚어둔 ‘과자’ 한 개가 놓여있었다.
또, 그 위로는 얇게 튀기듯 구워낸 베이컨 한 장과 더불어 닭 껍질 한 장이 세로로 꽂혀있는 상태였고 말이다.
비록 생김새는 영락없는 과자라지만,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과자가 아니다. 이는 *테린(*Terrine:찐 고기 요리) 형태로 조리한 푸아그라를, 동그랗게 빚어낸 뒤 비스킷 가루를 입혀 구워낸 요리임이 분명했다.
“푸아그라?”
퍼스트 말론의 물음에 서버가 한 번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한 치의 막힘도 없는 어투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예, 맞습니다. 테린 틀에 넣고, 소금∙후추로 가볍게 밑간을 해준 뒤 60도 스팀 오븐에서 50분가량 익혀냈습니다. 그다음, 푸아그라의 맛을 제대로 느끼실 수 있도록 삼 일간 숙성을 거쳤고요.”
“정말 완벽한 조리법이로군요.”
나직이 답해 보인 퍼스트 말론이 의아한 얼굴을 한 채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는 중년 사내에게 설명해주었다.
“테린을 식힌 뒤 곧장 먹으면 푸아그라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죠. 아이스크림을 너무 딱딱한 상태로 맛봤을 때, 그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랄 수 있겠네요. 반면, 기다림의 시간을. 즉, 일련의 ‘숙성 과정’을 거치게 되면 풍미가 더욱 살아나게 되고요.”
“그렇군요. 그나저나 이번 메뉴 역시 양이 적은 것 같군요. 물론 ‘아쉬움’ 역시 맛의 일부이고 앞서 서비스된 메뉴의 가짓수가 많은 상황이라곤 하지만, 그래도 메인 디쉬 만큼은 양이 넉넉했으면 어땠을지···.”
그 말에 퍼스트 말론이 서버에게 되물었다.
“혹시 조리에 사용된 푸아그라의 양을 여쭤볼 수 있을까요?”
“모든 코스의 푸아그라는 육십 그램으로 통일되어있습니다.”
“역시.”
짤막하게 중얼거려 보인 퍼스트 말론이, 재차 중년 사내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늘어놓아 주었다.
“푸아그라가 제아무리 진미라고 한들 한 번에 백 그램, 이백 그램 정도를 먹게 되면 느끼함을 느낄 수밖에 없죠. 본래 육십 그램, 앞서 서비스된 코스의 양이 부실하다 싶은 경우 최대 칠십 그램을 내놓는 게 정량이고요.”
중년 사내가 그제야 알았다는 듯 ”아.”하고 침음을 흘러가며 고개를 끄덕여 보이던 찰나였다. 심각한 얼굴을 한 채 푸아그라 요리를 들여다보고 있던 퍼스트 말론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혁신적인 요리를 내놓겠다는 일념 탓에 본질을 망각하는 셰프들이 수두룩한 와중이지 않습니까? 영 셰프는 정말 영리하고 노련한 것 같군요. 꼭 지켜야만 하는 규칙들을 모두 엄수하는 와중에, 예측 범주 바깥에 있는 새로운 형태의 요리를 선보이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는 포크 끄트머리로 동그스름한 형태의 푸아그라 비스킷을 가볍게 톡톡 두드려가며 덧붙였다.
“우리가 곧 맛보게 될 ‘푸아그라 테린 비스킷’처럼 말이죠.”
그 말을 끝으로, 퍼스트 말론이 곧장 포크에 힘을 실어서는 비스킷을 한입에 넣을 수 있을 만한 자그마한 크기로 썰어냈다. 바싹 튀겨진 표면의 비스킷 가루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한차례 입맛을 다셔 보인 그가 접시 바닥에 깔렸던, ‘녹색 젤리’를 포크 옆면으로 지그시 눌러서는 잘라낸 뒤 푸아그라 비스킷 위에 올렸다. 이윽고, 한차례 심호흡을 해 보인 그가 곧장 푸아그라 비스킷과 젤리를 한입에 쏙 집어넣고는 그 맛을 천천히 음미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퍼스트 말론이 지그시 감았던 두 눈을 떠 보이고는, 돌연 한숨을 내쉬어 보였다.
“하아-.”
이내 서버가 넌지시 물었다.
“입에 안 맞으시나요?”
“그럴 리가요.”
덤덤한 어투로 답해 보인 그가 접시 안에 남아있는 요리를 바라보며, 속을 읽을 수 없는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푸아그라 비스킷의 맛은 완벽했다. 한데, 완벽해도 지나치게 완벽했다. 겉면에 입혀진 비스킷 가루는 완벽했다.
푸아그라가 지닌 특유의 눅진하고 질퍽한 식감과 완벽한 대비를 이루며, 주재료의 맛을 한결 더 고결하게 느껴지게끔 만들어 주었으니 말이다. 또 셰프의 섬세함이 이번 요리에서 다시 한 번 빛을 발하기도 했다.
‘온도가 완벽해.’
방금 맛본 푸아그라는 입안에 넣었을 때 녹아내리는 느낌을 줄 수 있는 황금과 같은 온도를 맞춰냈다.
모두가 기본이라 말하는 대목이라지만, 여태껏 무수히 많은 파인다이닝을 방문하며 이토록 정확히 온도를 맞춰낸 푸아그라를 맛본 경험은 손에 꼽을 지경이었다. 그 말인즉슨, 절대 쉬운 일은 아니란 뜻.
그뿐이던가?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질감은 악마의 속삭임처럼 달콤하게 느껴졌다. 겉면의 비스킷 가루는 바삭했으나, 안쪽에 자리한 푸아그라는 마치 초콜렛 크림처럼 끈적하고 눅진하게 녹아내렸다.
또한, 조리법 역시 훌륭했다.
단연 푸아그라뿐 아니라, ‘송로버섯’이나 ‘바닷가재’ 등 자체적으로 강렬한 고유의 풍미를 지닌 요리를 조리할 때 반드시 엄수하여야 할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원칙이 한 가지 있다.
식재료의 맛을 망가뜨릴 여지가 있는 난잡한 조리법을 대입하지 말 것.
특유의 풍미가 잔뜩 살아있는 점을 놓고 봤을 때, 푸아그라 자체에는 소금∙후추 정도의 밑간 외에는 그 어떤 조미도 하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다만, 최상 품질의 푸아그라를 이용하여 맛을 배가시킬 수 있는 모든 원칙을 지켜가며 조리했을 뿐.
곁가지로 추가된 점이라고 해봐야 비스킷 가루와, 젤리피케이션 기법을 이용해 만든 녹차 소스 정도가 전부였다.
둘 역시 존재감이 두드러지기보다는, 마치 영화를 빛내주는 조연처럼 살짝 얼굴을 내밀었다 사라지며 조연 격인 주재료의 풍미를 족히 몇 곱절은 배가시켜주었고 말이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맛있군요. 천국을 연상케 하는 맛입니다.”
그 말에 중년 사내 역시 동조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가며 말했다.
“사실 그간 푸아그라가 세계 3대 진미로 꼽히는 이유가 늘 궁금했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군요···.”
“그렇습니까?”
“네. 진심입니다. 마치 훌륭한 맛과 향을 지닌 버터를 삼키는 것처럼, 미끈하게 목을 타고 흘러내려 가더군요.”
말을 마친 그가 제 입맛을 한 번 다셔 보이고는 덧붙였다.
“파우스트가 영업을 재개하고 나면, 이 푸아그라 요리 때문에라도 몇 번은 더 방문하게 될 것 같군요.”
이내 서버가 다시금 “그럼 즐거운 식사 되시길.” 하고 말해 보이고는 다시금 자리를 떠난 뒤, 두 사람은 말없이 남은 푸아그라 요리를 음미했다.
한입에 집어넣을 수 있을 것 같은 크기의 푸아그라를, 아주 작게 커팅해서는 몇 번에 걸쳐 맛봤다. 젤리화시킨 소스를 아주 조금만 묻혀서, 혹은 잔뜩 묻혀서, 묻히지 않고, 또 와인을 곁들여서···.
그럴 때마다 각기 다른, 하지만 동일하게 훌륭하고 고풍스러운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금세 접시를 비운 퍼스트 말론이 고개를 슬쩍 돌려서는 주방 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주방으로 달려가, 방금 맛본 푸아그라 요리를 한 접시만 더 내달라는 오더를 넣고 싶었으나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마 *알라까르트*(단일 판매 품목) 메뉴로도 판매하지 않겠지.’
영 셰프의 코스 설계 방식은 잔인하다. 먹는 이로 하여금, 아쉬움에 젖은 채 다시 파우스트에 걸음 할 수밖에 없도록 치밀한 설계를 거쳐 코스를 완성시켰다. 돌이켜 생각해본다면, 모든 메뉴들이 이런 식이었다.
그렇게 상념에 젖어 들어 있던 그가 돌연 “뭐···?” 하고 중얼거려가며, 고개를 휙 돌려서는 옆 테이블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다름 아니라, 옆 테이블에 앉은 평론가 두 명이 나누고 있던 대화의 내용이 들려왔던 탓이었다.
“어쨌든 파우스트는 실망이군요. 푸아그라는 제조 과정에서 거위와 오리를 학대하는 식품이잖아요? 비난하는 사람도, 금지하는 나라도 많은데 굳이 많고 많은 다른 식재료를 내버려 두고 푸아그라를 요리할 필요는 없었다고 봅니다.”
중년 사내 한 명이 거드름을 피워가며 꺼낸 말에, 맞은 편에 앉은 일행이 무어라 답하려던 찰나였다.
어느새 지척에 다가온 퍼스트 말론이 미간을 한껏 찡그린 채로 되물었다.
“쯧. 파우스트를 폄하할 요소가 없으니, 이제 별것도 아닌 이유를 가지고 시비를 거는군요. 동물복지를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진즉 ‘*비건’(*Vegan:완전 채식주의자)이 되셨어야죠. 그렇게 따진다면 돼지나 소, 혹은 생선 비롯한 다른 육류도 똑같은 지적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 뭐라고요···?”
“푸아그라는 문화의 차이일 뿐입니다. 또 거위와 오리 목에 튜브를 꽂아 먹이를 주긴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을 만큼 과량의 사료를 억지로 주입하지는 않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은 거위와 오리에게서는 질 좋은 푸아그라가 나오지 않거든요. 그래서 대부분 방목 사육을 하며 적정량의 사료로 사육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고요.”
막힘없이 말해 보인 퍼스트 말론이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덧붙였다.
“하기야, 뭘 알아야 그럴싸한 지적을 할 텐데 말입니다.”
그 말에 중년 사내가 기가 차다는 듯 “허···.”하고 헛웃음을 흘려 보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현재, 자신들에게로 향하고 있는 시선을 의식한 듯 괜히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말했다.
“처음 뵙지만, 적어도 그쪽 직업이 푸아그라 제조∙유통업자라는 사실쯤은 알겠군요.”
“설마요. 소개가 늦었군요. 퍼스트 말론입니다. 아마도 그쪽과 같은 미식 평론가죠.”
이내 ‘퍼스트 말론’이란 이름을 들은, 중년 사내와 그의 일행의 표정이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뉴욕이나 파리 등지를 비롯한, 파인다이닝 외식 문화가 발달한 지역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역 셰프 및 칼럼니스트라면 절대 모를 수 없는 이름이었던 까닭이었다.
그렇게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퍼스트 말론이 그의 귓가에 대고 나직이 속삭였다.
“이따금씩 미식 평론가가 해야 할 일이 ‘비평’뿐이라고 생각하는 머저리 같은 동료들이 보이더군요. 치태가 가득 낀 입으로는 뭘 먹어도 그저 그렇게 느껴지겠지만, 직업 정신을 지키려는 최소한의 노력은 하셔야죠.”
“그건···.”
“파우스트가 비평받아 마땅한 요소를 지적하신다면야, 저 역시 수긍했을 겁니다. 그런데 푸아그라와 동물복지를 엮어가며 80년대에나 먹히던 수작을 부리신다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을 것 같군요.”
그때 서버 한 명이 다가와서는 긴장감이 역력한 어투로 되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지···.”
“아뇨. 괜찮습니다.”
정중히 답해 보인 퍼스트 말론이 고개를 살짝 숙여서는 인사를 해 보인 뒤, 다시금 제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메인 디쉬가 담겨있을 카트와 함께, 자신들의 테이블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전담 서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태껏 살면서 방문해 본 파인다이닝 중 몇 곳이 자신을 완전히 매료시켰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여타 파인다이닝에 매료될 때마다, 지금과 비슷한 기분에 휩싸이곤 했다.
분명히 존재할 결점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지만, 결점이 없기를 바라는 모순적인 감정으로 파인다이닝을 대하곤 했었으니 말이다.
한차례 심호흡을 해 보인 그가, 이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름 아니라, 전담 서버가 다음 메뉴가 담겨있을 카트와 함께 자신들의 테이블을 향해 다가오고 있던 까닭이었다.
*
세 번째 메인 디쉬는 채끝살을 이용한 스테이크였다. 이 또한 진부한 메뉴처럼 느껴질 수 있다지만, 글쎄?
영 셰프는 무려 네 종류의 소스와 더불어, 세계 각지에서 공수해 온 열두 종류의 소금을 함께 내주었다.
물론, 완벽했다.
비록 앞서 맛보았던 푸아그라 비스킷처럼 고결한 맛까지는 아니었다지만, 품격 있는 레스토랑에서 으레 맛볼 수 있을 법한 잘 조리해낸 요리였으니 말이다.
이윽고, 전담 서버가 다가와서는 나직이 되물었다.
“식사는 만족스러우셨나요?”
“네. 물론입니다.”
안도한 듯 한차례 고개를 끄덕여 보인 서버가 턱짓으로 홀 왼편을 가리켜 보이고는 되물었다.
“디저트 메뉴는 자리로 준비해드릴까요? 아니면, 신설된 ‘디저트 바’에서 직접 체험해보시겠어요?”
“예? 디저트 바···?”
“네. 디저트 메뉴는 다른 셰프께서 준비해주실 예정이시거든요. 자리로 준비해드릴 수도 있지만, 될 수 있으면 디저트 바를 체험해보셨으면 해서요.”
그 말에 퍼스트 말론이 제 일행을 한 번 쳐다보자, 맞은 편에 앉아있던 중년 사내가 고개를 한 번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좋습니다. 디저트 바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서버의 안내를 받아가며, ‘디저트 바’로 이동하는 내내. 서버가 이런저런 설명을 덧붙여주었다. 앞으로 영업을 재개하게 되면, 디저트 코스만을 따로 즐길 수 있도록 디저트 바를 운영할 것이며 파우스트와는 독립된 공간으로 분리될 것이란 내용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서버가 제 자리에 멈춰 서며, “여기에요.” 하고 말해 보이던 찰나. 몇 평 남짓한 공간으로 꾸려진 디저트 바의 입간판을 확인한 퍼스트 말론이 넋이 나간 듯, 엷게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댔다.
“레이첼의 꿈···.”
레이첼, 퍼스트 말론 역시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