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16
16
Chapter5 – 영리한 야망 (1)
1.
영 셰프 부문의 2차 현장예선이 진행되는 내내, 필상은 강훈 셰프로부터 건네받은 명함만 하염없이 들여다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강훈···.’
그는 독보적이고 파격적인 행보로 업계종사자들은 물론이고, 대중들의 이목까지 잡아끌고 있는 젊은 셰프.
이탈리아에서 요리를 배운 바 있는 그는, 딱 서른이 되던 해 밀라노 현지에 자신의 레스토랑 ‘돌체 모멘트’(Dolce Moment)의 본점을 개업했다.
그 후로, 약 이년 가량의 시간이 흐른 지금.
돌체 모멘트는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무려 두 개의 별을 따내는 쾌거를 이룩했으며, 현지의 레스토랑들 중에서도 손에 꼽히곤 하는 유명 레스토랑으로 부상했다.
뿐아니라 기세를 몰아 얼마 전에 국내에 런칭한, 청담동 분점 역시 그의 이름값 덕에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중이었고 말이다.
‘밀라노, 청담, 그 다음은 뉴욕이었나···?’
만약 상황이 자신이 알고 있는 미래대로 흘러간다면, 강훈 셰프는 점차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더 큰 성공과 영광을 거머쥐게 될 예정이었다. 일찌감치 연을 쌓아둔다고 가정했을 때 득이 되면 득이 됐지, 적어도 실이 될 일은 없을 만한 인물인 셈.
단연 먼 훗날이 아니라, 지금 당장만 놓고 보더라도 그랬다. 국내 유명 셰프들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을 꼽을 때면 늘 다섯손가락 안에 꼽힐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한데, 그런 강훈 셰프가 도움을 주고싶다며 자처하고 나선 상황이다. 그것도 ‘심사위원이 아닌, 선배 요리사로서’라는 의미심장한 말까지 덧붙여가면서 말이다.
이내 필상이 시선을 옮겨서는, 한창 심사에 열중하고 있는 강훈 세프를 슬쩍 바라보았다.
고민이 점점 더 깊어진다.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들이 가득 차오르고 있는 중이었다. 과연 어떻게 해야 그와의 접점을 최대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생각들이···.
*
“우선 아직까지 이곳에 남아계신 참가자분들께, 진심어린 축하의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박한솔 교수 특유의 나긋한 목소리가 장내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느덧 영 셰프 부문의 2차 현장예선까지 모두 마무리된 것이다.
이내 필상이 고개를 두리번거려가며 장내를 한 번 살펴보기 시작했다. 불과 어제 아침까지만 하더라도 북적이던 조리실습실 안이, 지금은 마냥 휑하게만 느껴질 따름이었다. 달리 생각해보면 이와 같은 느낌을 받는 게, 사뭇 당연한 상황이기도 했다.
장장 백오십 명에 달하던 참가자가 고작 이틀새, 각 부문 별로 열 명. 두개 부문을 모두 합쳐봐야 고작 스무명 남짓한 인원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일단 다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대망의 결선만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니만큼, 고지가 멀지 않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부디 모든 참가자분들께서 끝까지 긴장을 내려놓지 않고, 결선에서도 스스로의 실력과 잠재력을 여과없이 드러내주셨으면 하는 바램 뿐입니다.”
말을 마친 박한솔 교수가 손에 쥔 ‘큐 시트’(Que Sheet)를 한 장 뒤로 넘겨보이고는, 다시금 설명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사락-.
“그럼 결선에 대한 설명을 짤막하게 드린 뒤, 금일 일정을 마무리짓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결선은 사전에 주최측 홈페이지를 통해 안내드린 대로, 딱 일주일 뒤인 다음주 일요일에 진행될 예정입니다. 장소는 ‘코엑스 인도양 홀’이며, 시상식은 경연 일정이 마무리된 직후 연달아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 뒤로도 이런저런 설명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가장 마음에 드는 대목은 앞서 진행된 1・2차 현장예선과 달리 티켓 판매를 진행하고, 공개적으로 진행하리란 대목이었다.
시에서 주관하는 행사인만큼 보도를 위해 기자들도 참관할 터였고, 주최측과 교류가 있거나 여러 후원단체와 연이 두터운 업계 인사들 역시 참관할 터였다.
자고로 승리를 목격하고, 소문을 내줄 눈과 입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이지 않겠는가?
타 참가자들이야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필상의 입장에서는 두 팔 벌려 환영해 마땅한 상황임이 분명했다.
그때, 박한솔 교수가 가장 중요한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다음은 결선 진행방식 및 주제에 대한 설명입니다. 일단 제한시간은 도합 120분이며, 참가자분들께서는 제한시간 내에 구색이 갖춰진 ‘*정찬’(* 正餐:코스 요리)을 선보여주시면 됩니다.”
그 말이 끝맺어짐과 동시에 장내 곳곳에서, 한차례 높고 낮은 술렁임이 일기 시작했다. 사뭇 당연한 반응이기도 했다.
소위 말하는 ‘코스 요리’를 홀로 조리하고, 서비스한다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때, 한차례 만류하듯 손을 들어올려 보인 박한솔 교수가 다시금 몇 마디 설명을 덧붙였다.
“어렵게 생각하실 것 없습니다. 코스를 구성하고 있는 요리의 가짓수에 대한 제한은 없으니까요. 더 많은 요리를 내놓는다면 가산점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나, 퀄리티가 떨어지는 요리를 잔뜩 내놓아봐야 오히려 감점요인이 될 수도 있겠죠.”
말을 마친 박한솔 교수가 참가자들을 좌에서 우로 천천히 훑어본 뒤, 다시금 뒷말을 이었다.
“감히 조언을 드리자면, 스스로의 역량에 걸맞는 코스를 구성하시는 게 관건일 것 같군요. 아무쪼록 건투를 빌겠습니다. 이상으로 2013 서울시 전국 요리대회의 2차 현장예선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참가자들이 난감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지금, 오직 한 사람. 필상만큼은 득의의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을 따름이었다.
필상은 이조차도 기회라 여겼다.
‘돋보이기 딱 좋은 주제인데?’
무수히 많은 구경꾼들 앞에서 타 참가자들과 자신의 격차를 뽐내고, 역량을 유감없이 과시할 수 있는 기회.
또 나름 입지가 두터운 업계 인사들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찍어둘 수 있는 절호의 기회.
D-7
대망의 결선일이 마냥 기다려질 따름이었다.
2.
“아이고, 늦어서 죄송합니다. 시간이 시간이라 그런 것인지, 차가 정말 많이 막히더군요.”
박한솔 교수가 고급 한정식집의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서며, 사뭇 정중한 투로 건네 온 말이었다.
이내 프라이빗 룸 안에 자리해 있던 몇몇 사람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하하, 박 교수님 기다리느라 목이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괜찮습니다, 어서 앉으시죠.”
장내에 있는 이들 모두가, 이번 2013 서울시 전국 요리대회와 조금이나마 연관성이 있는 이들이랄 수 있었다. 심사위원진을 시작으로, 주최측 및 후원단체측 인사들. 혹은 이들과 꾸준히 교류 중인 업계 인사들에 이르기까지···.
오늘로 예선 일정이 마무리 되었다. 이제 결선이라는 거사만을 앞두고 있는 시점인 만큼. 다 함께 만찬을 즐기며, 이런저런 경과를 주고받고자 다들 한 자리에 모이게 된 것이다.
이윽고 박한솔 교수가 자연스레 빈 자리를 비집고 앉던 찰나였다.
바로 맞은편 자리에 앉아있던 중년사내, ‘김용태 PD’가 빈잔 한 개를 건네주며 격식없는 친근한 투로 말을 건네왔다.
“박 교수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그는 식생활 정보 및 요리 정보 등을 다룬 프로그램을 주로 제작・방영하는 케이블 채널 ‘딜리셔스 라이프’ 소속 PD로, 박한솔 교수를 비롯한 장내의 모든 이들과 꾸준히 교류해온 인물이랄 수 있었다.
“이야, 김PD. 오랜만이네?”
“제가 한 잔 올리겠습니다.”
“그래, 그래.”
쨍, 한차례 두 사람의 술잔이 허공에서 맞닿으며 청량한 소리가 울려퍼지기를 잠시.
잔에 담긴 술을 단숨에 들이켜 보인 박한솔 교수가, 물 몇 모금으로 입가심을 해보인 뒤 장난기 가득한 투로 물었다.
“그나저나 우리 중에 제일 바쁜 김PD가 여기까지 왠 일이야? 혹시 계산해주러 온 건가?”
한차례 손사래를 쳐가며 “에이, 설마요···.”하고 답해 보인 김용태 PD가, 다시금 박한솔 교수의 빈 잔에 술을 채워주며 답했다.
“그냥 간만에 박 교수님 한 번 뵈러 온 거죠. 그간 뜸했잖아요?”
“됐네, 이 사람아. 그러지 말고, 말해 봐. 무슨 일인데?”
이내 김용태 PD가 룸 안쪽 구석 자리에 앉아있는 강훈 셰프를 턱짓으로 가리켜 보인 뒤, 속삭이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실은 강훈 셰프님 한 번 섭외해 볼 수 있을까해서, 없는 시간 쪼개가며 왔더니 말 꺼내보기도 전에 짤렸지 뭡니까?”
“섭외? 이번에 또 새 프로그램 하나 편성하는구나? 이야, 혼자 너무 잘 지내는 거 아냐?”
“아니에요. 기존 프로그램인데 슬슬 새 시즌 기획할 때가 되서요. 그 왜, 저희 채널 요리 오디션 프로그램 있잖아요.”
한차례 “아.”하고 침음을 흘려 보인 박한솔 교수가,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답했다.
“영 가물가물한데, 제목이 ‘그레이트 셰프’였나?”
“네, 맞아요.”
짤막하게 답해 보인 김용태 PD가 한차례 입맛을 다셔 보이고는 덧붙였다.
“들어보니까, 강훈 세프님은 이번 대회 일정 끝나고 얼마 안 지나서 다시 출국하실 예정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커리어며, 스토리며, 캐릭터성이며, 이번 시즌 심사위원 라인업으로 제격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쉽게 됐죠.”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인 김용태 PD가, 박한솔 교수 몫의 앞접시에 회 몇 점을 덜어주며 재차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혹시 박 교수님께서 조금 도와주실 순 없을까요?”
“내가?”
김용태 PD가 제 고개를 세차게 끄덕여 보이고는, 유려하게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심사위원이든, 출연자든 좋으니 주변에 적합한 분 계시면 다리 좀 놔주시면 안 될까해서요. 사실 이번 시즌까지 시청률 죽쒀버리면 프로그램 아예 폐지될 지도 모르거든요. 그래도 여러 아마추어 요리사들한테 이래저래 좋은 기회주겠다는 취지로 편성한 프로그램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폐지되면 여러모로 손해···.”
김용태 PD가 계속해서 무어라 말을 이어나가고 있던 찰나, 박한솔 교수가 사뭇 진중한 투로 되물었다.
“잠깐, 잠깐만. 자네 방금, 심사위원이든 출연자든 상관없다고 했지?”
“네, 그랬죠. 왜요? 혹시 괜찮은 분 계세요?”
곧장 답하지 않고 잠시 제 턱을 쓰다듬어가며 생각을 정리하던 박한솔 교수가, 미간을 살짝 찡그린 채 마냥 느릿한 투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심사위원은 잘 모르겠고, 참가자로는 아주 적합한 친구가 한 명 있거든. 자네 표현을 빌려서 말해보자면 실력 좋고, 스토리 좋고, 캐릭터성까지 뚜렷한 친구인 것 같은데···.”
일순 김용태 PD의 두눈이 일순 이채를 머금은 채 반들대기 시작했다. 꿀꺽, 입 안 가득 고인 침을 한 번 삼켜내 보인 김용태 PD가, 먹잇감을 포착한 매의 눈을 한 채 마냥 조심스러운 투로 되물었다.
“그래요? 누군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