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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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38 – 마음을 울리는 (4)
줄리아가 한껏 의기양양한 어투로 건넨 말에, 퍼스트 말론이 재미있다는 듯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이기에 이르렀다.
그녀의 입가 위로 피어오른 미소는 한없이 오만해 보였다. 몇 번이고 보았던 바 있는, 익숙한 미소였다.
자기애와 우월감을 빼면 시체나 다름없는, 하지만 실력만큼은 확실한 여타 유명 셰프들로부터 종종 목격할 수 있던 오만한 미소였으니 말이다. 줄리아의 미소는 그들의 미소와 완벽히 일치했다.
비록 한없이 오만하다지만, 충분한 근거가 있다. 그녀가 방금 선보였던 아뮤즈부쉬 메뉴와 더불어, 첫 번째 디저트 메뉴였던 살구 크림 슈가 근거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의 생각이 점점 깊어져 가고 있던 지금, 줄리아가 어느새 도로 살짝 흘러내린 조리복 소매를 강단 있게 걷어 올려가며 말문을 열었다.
“그럼 곧장 두 번째 디저트 메뉴를 준비해드리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녀가 한차례 제 아랫입술을 핥아냈다. 이제야 첫 번째 메뉴를 선보였으니, 앞으로도 몇 개의 메뉴를 더 선보여야 할 터였다. 고작 하나의 메뉴를 선보이는 사이에, 몇 무리의 손님들이 떠나갔으며 새로운 손님 무리가 찾아와 빈자리를 메웠다.
우습게도 오늘 디저트 바를 찾은 모든 손님들이 유명한 평론가 및 칼럼니스트였다. 그 말인즉, 오늘 하루 자신을 비롯한 모든 파티쉐들이 이곳 바 테이블 앞에서 보인 모든 움직임에 점수가 매겨지리란 뜻이기도 했다.
긴장감 탓에 입술이 바짝 메마르는 듯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평가를 받고 싶다는 생각이 일기도 했다. 테스트 키친을 준비하던 때, 영 셰프 ‘필상’이 자신에게 말했다.
‘줄리아, 평가를 겁내는 건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일이에요. 아무도 뉴욕타임즈를 읽지 않는 곳에서 보낸 시간들을 떠올리세요. 초콜렛, 육두구, 야자 설탕이 도처에 널린 곳에서 보낸 노력의 시간 말이에요.’
한차례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인 줄리아가, 빈 접시 한 개를 꺼내 들었다. 영 셰프는 어리다. 합법적으로 위스키의 맛을 즐기지도 못할 만큼이나 어리다. 하나, 그에게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피네스’(정교한 솜씨)가 느껴졌다.
그것은 단연 요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달콤한 향이 나는 러쉬 향수를 뿌렸으며, 일상생활에서도 불 앞에서 무언가를 요리할 때처럼 섬세하게 굴었다. 그의 말에는, 낮고 조곤조곤한 목소리에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끔 만들어주는 알 수 없는 힘이 담겨있었다.
그 증거로, 그와 함께 협업을 추진하게 된 이후로 그녀는 단 한 번도 부정적인 생각에 열을 올렸던 적이 없다. 우울한 감정에 중독되어 있던 나날이, 하찮게 느껴질 정도로 활력있는 생활을 이어나갔을 뿐.
그녀가 접시의 *림(*테두리) 부분에 갈색 질감을 지닌 젤리를 흩뿌려댔다. 대략 1cm 남짓한 크기의 입자가 고르지 않은 사각형 젤리였다. 젤리의 매끈한 표면이 빛을 받아 반들댔다.
“발효한 크림을 얼려 분리시킨 지방과 맥주, 그리고 탄산과 자몽을 혼합하여 만든 젤리입니다. 강렬한 단맛에 감춰진 은은한 산미(酸味)와 톡톡 쏘는 맛이 특징이죠.”
그녀의 말이 끝맺어지기 무섭게, 곁에 서 있던 파티쉐 한 명이 집게를 이용해 방금 막 튀겨낸 듯 보이는 애플파이 한 개를 집어 들어서는 접시의 정중앙에 올렸다. 표면에 묻어난 기름기를 살짝 털어냈음에도, 오일리(Oily)한 느낌을 떨쳐낼 수 없을 정도로 윤기 있는 외형을 하고 있었다.
이내 그녀가 곧장 접시의 정중앙에 놓인 애플파이 위에 시나몬 가루를 잔뜩 뿌려냈다. 그다음에는 색이 진한 황설탕과, 새하얀 슈가 파우더를 차례로 흩뿌려주었다. 그리고는 애플파이 위에, 다소 딱딱해 보이는 질감의 붉은 장미 꽃송이 한 개를 얹어내는 것으로 플레이팅을 마무리 지었다.
한차례 “오.” 하고 짧은 침음을 흘려 보인 퍼스트 말론이, 애플파이 위에 놓인 생화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생화는 아닌 것 같고, ‘*아이싱’(*Icing:케이크에 바르거나 장식하는 설탕 크림)인가?”
“초콜렛 베이스에, 라즈베리로 색을 내서 만든 장미꽃입니다.”
“그렇군. 장식 목적인 건가?”
“아뇨, 파이에 곁들이기 위함입니다.”
“곁들인다?”
“호기심을 해결해드리려면 플레이팅을 먼저 마무리해야 할 것 같은데요?”
“부탁하지.”
짤막하게 “네.” 하고 답해 보인 줄리아가 장미꽃 모양 아이싱 쿠키를 집어 들어서는, 제 손바닥 위에 얹었다. 그리고는 남은 한 손으로, 제 한쪽 손바닥 위에 놓인 아이싱 쿠키를 몇 번 연달아 힘껏 내리쳤다.
짝! 짝! 짜악-!
명쾌한 소음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그녀의 손 위에 놓여있던 초콜렛 장미가 가루가 되어서는 진눈깨비처럼 흩날려 애플파이 위에 안착하기 시작했다. 마치 입자가 크고 불규칙한 붉은색 파우더를 잔뜩 흩뿌려둔 모양새였다. 이윽고, 그녀가 손에 남은 가루를 가볍게 털어내며 덧붙였다.
“두 번째 디저트 코스 메뉴인, ‘젊음’입니다. 부드러운 잼으로 속을 꽉 채운 애플파이에 시나몬 파우더, 설탕, 라즈베리 초콜렛, 크림 맥주 젤리를 곁들였습니다.”
“젊음이라, 추상적인 제목이로군.”
“제목에 숨겨진 의도는, 두 분께서 시식을 모두 마치신 뒤에 천천히 말씀드릴까 하는데 괜찮을까요?”
“물론일세. 편할 대로.”
나직이 말해 보인 그가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 든 채로, 접시 위에 놓인 두 번째 메뉴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우선 플레이팅 자체만 놓고 봤을 때는 일반적인 느낌이었다. 여러 종류의 파우더를 흩뿌려놓은 애플파이 주변에, 젤리를 듬성듬성 흩뿌려 놓은 듯 보일 따름이었으니 말이다. 하나, 그 아쉬움을 퍼포먼스로 메꾸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정말 대단하군.’
이내 그가 포크를 이용해 접시의 중앙에 놓인 파이를 가볍게 톡톡 두드려보았다. 바삭한 질감이 포크 끝을 타고 손에 전해지는 듯했다. 한차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인 그가, 곧장 포크와 나이프를 이용해 파이를 잘라내기 시작했다.
사각, 사각. 한없이 듣기 좋은 소리와 함께 파이가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눅진하고 끈적한 질감의 잼이 흘러내렸다. 한데, 안에 든 잼의 색이 모호했다. 크림 샹티이를 살짝 섞어낸 것인지, 불투명한 연노랑빛을 띄고 있었다. 또한, 질감 역시 일반적인 잼에 비해 사뭇 뭉근해 보일 따름이었고 말이다. 뿐 아니라, 안으로 잘게 썬 사과 알갱이가 뜨문뜨문 섞여 있는 상태였다.
이내 그가 포크로 먹기 좋게 썰어낸 애플파이를 ‘콕.’ 집어서는, 곧장 맛을 보기 시작했다.
정석적인 파이, 그 자체였다.
겉은 마냥 촉촉하고 바삭했다. 반죽 속을 꽉 메우고 있던 잼은 마냥 따뜻한 온기를 지니고 있었으며, 또 눈이 살짝 감길 정도로 달콤한 맛을 띠고 있었다. 아삭, 아삭. 이따금씩 안에 든 자그마한 사과 알갱이를 씹을 때면 시나몬 향이 입안에 확 퍼졌다. 일반적인 애플파이에 비해, 훨씬 고급스러운 느낌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어린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보편적인 맛이었다.
윗면에 뿌려둔 라즈베리 향 초콜렛 역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오독, 오도독. 새로운 형태의 텍스처를 선사함과 동시에, 더욱더 짙고 강렬한 단맛을 느낄 수 있게끔 해주었으니 말이다.
한데, 왜일까? 말미에 일련의 ‘쓴맛’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내 퍼스트 말론이 미간을 잔뜩 찡그린 채, 쓴맛의 근간을 추리해보았다. 이윽고, 그가 제 고개를 좌우로 내저어 보이고는 말문을 열었다.
“줄리아, 분명 마지막에 쓴맛이 느껴지는데 대체 어째서 쓴맛이 올라오는 것인지 당최 알 수가 없겠군.”
“거부감이 들던가요?”
“아니, 묘하게 균형이 맞는 기분이었네. 뭐랄까, *아포카토(*아이스크림 위에 진한 에스프레소를 얹어내는 디저트)와 엇비슷한 느낌이었다고 해야 할지···.”
그 말에 줄리아가 나직이 답했다.
“맞아요. 그런 맛을 내고 싶었어요. 달콤한 재료들이 일정한 균형을 맞춰 어우러지게 되면 쓴맛이 난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그 점이 젊음을 닮았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이름 짓게 된 거였고요.”
“역시 의도된 맛이었군. 그나저나 단맛을 내는 재료들로만 이루어진 디저트인데, 대체 어떻게 쓴맛을 낼 수 있던 거지?”
한차례 “간단해요.” 하고 답해 보인 줄리아가 곧장 말을 이었다.
“곁들인 젤리 때문이죠. 크림의 지방질과 탄산, 또 맥주와 자몽을 섞어 만들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첫맛은 달콤하지만, 마지막엔 톡 쏘는 씁쓸함이 올라오는 묘한 맛을 지녔죠. 또, 애플파이의 기름기를 중화시켜주는 역할도 해주더군요.”
퍼스트 말론이 고개를 끄덕여대던 찰나, 줄리아가 곧장 “또.” 하고 낮게 말해 보이고는 덧붙였다.
“애플파이의 반죽을 만들던 때, 위스키를 소량 섞여줬어요. 단순히 파이만 맛볼 때는 알 수 없지만, 젤리를 곁들이면 쓴맛이 강조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거든요. 거부감이 들지 않을 정도의 쓴맛을 연출하기 위해 고심했죠.”
“그런가? 말미에 올라오는 쓴맛이 조금 더 진했더라도, 딱히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은 느낌이었는데?”
“그래도 명색이 ‘젊음’이란 이름의 디저트인데, 그래도 시간이 겹겹이 쌓이면 미화될 수 있을 정도의 적당한 쓴맛을 지니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그 말에 퍼스트 말론이 “아···.” 하고 침음을 흘려 보였다. 어째서, 많고 많은 뉴욕의 파티쉐들 중 하필이면 줄리아를 선택한 것인지를 이제야 알 수 있을 듯했다.
영 셰프는 이번 테스트 키친을 통해, ‘*아트 퀴진’(*Art Cuisine) 셰프 대열에 합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비록 직접적으로 그런 말을 꺼내거나 하지는 않았으나, 그의 코스는 맛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그 사실을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이고 예술적인 메뉴들의 연속이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아티스트 성향의 파티쉐였을 것이다. 뉴욕이란 이름의 땅이 만들어내는 묘한 긴장감과 경쟁심리에 중독되어 있는 상업적인 파티쉐가 아닌, 일련의 메타포가 담긴 디저트를 요리할 수 있는 파티쉐···.
‘아트 퀴진의 마무리를 장식할 파티쉐로는 제격인 것 같군.’
이윽고, 그녀가 곧장 다음 디저트 메뉴를 선보였다. 원형으로 구워낸 머랭 쿠키 위로, 실처럼 얇게 뽑아낸 초콜렛. 또 정체를 알 수 없는 오일 몇 방울과 물을 분사한 게 전부인 디저트였다.
“세 번째 디저트는 ‘발리니스 머랭’입니다. 인도에서 얻은 영감을 통해 만든 디저트 메뉴죠. 머랭은 디저트의 전형이지만, 당최 달기만 한지라 식탁에 오를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인도산 야자 설탕을 이용해 단맛을 줄여봤습니다. 유구한 역사 속에도 단맛이 덜한 머랭은 없었지만, 인도산 야자 설탕 덕에 머랭이 지닌 최고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었죠.”
말을 마친 그녀가 재차 설명을 덧붙였다.
“제 이름이나, 당시 운영하던 파인다이닝의 이름을 붙이지 않았어요. 영감을 준 지역의 이름을 땄죠.”
“그래서 발리니스 머랭이로군.”
“네. 그리고 그곳의 풍경을 연출하기 위해 힘썼습니다. 샤프란 시럽으로 노을 질 무렵의 따스한 느낌을, 또 표면에 소금물을 분사해 바다 안개와 엇비슷한 질감을 묘사해봤죠.”
그 뒤로도, 몇 가지 디저트 메뉴가 연달아 서비스되었다. 크리미한 질감을 지닌 보드라운 아이스크림 위에 솜사탕을 얹어낸 ‘첫사랑’이란 이름의 디저트, 또 끈적하고 쫄깃한 식감의 초코 칩 쿠키 사이에 쫀득쫀득한 젤라또를 끼워낸 ‘틈’이란 이름의 디저트 메뉴 등···.
모두 하나같이 균형 잡힌 식단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하지만 짙고 강렬한 즐거움을 선사해주는 디저트 메뉴였다. 코스가 전개되면 전개될수록, 메뉴들의 플레이팅 역시 점점 더 화려하고 과감해졌다.
퍼스트 말론은 포만감까지 잊어가며 디저트를 맛보는 데 집중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점점 더 자극적인 맛을 지닌 요리로, 또 또렷한 철학이 느껴지는 요리로 나아가고 있던 까닭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아쉽지만, 대망의 마지막 메뉴를 선보일 차례로군요.”
그 말에 퍼스트 말론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여가며 냅킨으로 제 입가를 살짝 닦아내던 찰나였다.
탁.
줄리아가 곧장 마지막 디저트 메뉴가 담긴 접시를 내려놓았고, 그와 동시에 퍼스트 말론의 이마 위로 깊은 주름이 패였다.
그렇게 접시 위에 담긴 마지막 디저트 메뉴만 뚫어지라 들여다보고 있기를 잠시, 퍼스트 말론이 고개를 들어 올리며 드리워있던 무거운 침묵을 깼다.
“줄리아, 정말 많이 달라졌군. 예전에 레이첼의 어시스트 파티쉐로 일하던 때가 떠오르지 않을 지경이야.”
엷게 떨리는 목소리에서, 그의 말 속에 담긴 명백한 진심이 절절히 느껴지는 듯했다. 이내 그가 마지막 디저트 메뉴 위에 시선을 고정해 둔 채로 조심스레 제 몫의 포크를 집어 들었다.
단연 영 셰프뿐 아니라, 줄리아 역시 ‘올해의 주인공’이 될 것이란 강렬한 확신을 품은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