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163
163
Chapter39 – 기준 (1)
길고 길었던 디저트 코스의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디저트 메뉴는 앞서 선보였던 메뉴들에 비해, 훨씬 간략하다 못해 투박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간단하고 단출한 외형을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직사각형 형태의 나무 쟁반 위로, 여러 종류의 과일 꼬치가 한 개씩 놓여있는 상태였으니 말이다.
바나나 한 개를 통으로 꿰어 놓은 바나나 꼬치를 시작으로, 기다랗게 썰어 놓은 파인애플, 망고, 사과, 마지막으로 수박에 이르기까지···.
단, 생과일을 그대로 꼬치에 꿰어 내놓은 게 아니라 약간의 조미를 거친 뒤 토치 내지는 그릴을 이용해 한 번 구워낸 듯 보였다.
그렇게 퍼스트 말론과 그의 일행이 넋을 놓은 채, 과일 꼬치 메뉴를 들여다보고 있던 찰나였다. 바 테이블 앞을 지키고 서 있던 줄리아가 만족스럽다는 듯,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나직이 덧붙였다.
“마지막 디저트 메뉴의 이름은 ‘심플 이즈 베스트’(Simple is Best)입니다.”
자신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심플 이즈 베스트···.” 하고 중얼거려 보인 퍼스트 말론이 고개를 끄덕여가며 답했다.
“흠, 우선 외형과는 상당히 잘 어울리는 제목이로군.”
얼떨떨한 투로 답해 보인 그가, 끝내 재미있다는 듯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무래도 마지막 디저트 메뉴는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였다. 적지 않은 평론가 및 칼럼니스트들이 마지막 메뉴를 놓고 ‘디저트 코스의 기승전결을 지켜내지 못했다.’라는 내용의 평가와 함께 질타를 가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글쎄? 적어도 퍼스트 말론은 마지막 디저트 메뉴를 마냥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장장 한 시간이 넘도록 이어진 *오트 퀴진(*Haute cuisine: 프랑스 최고급 코스 요리) 형식으로 구성된 식사를 마친 뒤, 숨 돌릴 새도 없이 곧장 디저트 바로 걸음 하지 않았던가?
또 자리에 착석하기 무섭게, 자극적이고 강렬한 맛의 디저트를 몇 개나 연달아 맛봐야 했고 말이다.
물론 하나같이 훌륭한 맛을 지닌 메뉴들이었다지만, 그래도 식도와 위장에 유제품이 잔뜩 쌓인 것만 같은 거북한 기분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뮤즈 메뉴를 시작으로 크림이 듬뿍 들어간 살구 크림 슈, 애플파이, 머랭, 솜사탕을 곁들인 아이스크림, 마지막으로 초코 칩 쿠키 사이에 쫀득한 젤라또를 끼워 넣은 샌드 형식의 디저트 메뉴에 이르기까지···.
잠시 잊고 있던 포만감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려던 참이었다. 또, 또, 다음 메뉴로 어떤 디저트가 서비스되든 부담감을 느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말이다.
이런저런 요인을 감안해 봤을 때, 지금 막 서비스된 ‘과일 구이 꼬치’는 기승전결을 해쳤다기보단 오히려 완급 조절을 위한 묘책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훌륭한 마무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퍼스트 말론이 깊은 상념에 젖어 들어 있던 그때, 줄리아가 고급스러운 무늬가 각인된 받침대와 찻잔을 함께 내주며 확신에 가득 찬 어투로 재차 말문을 열었다.
“부디 마지막까지 즐거운 식사 되시길.”
“고맙네.”
잔 안으로 향이 몹시 깊고 진한 홍차가 잔뜩 담긴 상태였다. 어찌나 따뜻하게 데워둔 것인지, 후끈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상태였고 말이다. 이내 퍼스트 말론이 홍차 한 모금을 몹시 조심스레 들이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그의 입가 위로 은은한 미소가 떠올랐다.
“좋군.”
명백한 진심이었다. 마치 따뜻한 홍차가 지친 혀와 식도, 또 위를 달래주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으니 말이다.
한차례 입맛을 다셔 보이는 것으로 제 입술을 촉촉이 적셔 보인 그가, 이번에는 곧장 꼬치에 꿰인 구운 사과를 집어 들었다. 갈변 현상이 조금도 일어나지 않은 신선한 사과를 토치로 한 번 구워낸 뒤, 그 위에 꿀을 살짝 발라낸 다음 곱게 빻은 견과류를 입혀낸 듯 보일 따름이었다.
이윽고, 그가 사과 꼬치를 조심스레 한입 깨어 물자 ‘아삭.’하는 소리가 선명히 울려 퍼졌다. 기분 좋은 식감에 휩싸이기 무섭게, 사과 특유의 상쾌한 향과 맛이 물씬 새어 나와서는 입안을 가득 메웠다. 과즙이 머금고 있는 온기가 사뭇 낯설게 느껴졌으나, 이와 같은 이질감 역시 매력으로 다가왔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재미있는 디저트’였다. 곁에 입혀 둔 견과류는 오독오독 대는 소리와 함께 짓이겨지며 재미있는 식감을 선사해주었고, 구운 사과 표면에 발라두었던 꿀은 부족한 당도를 꽉 채워주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순식간에 사과 꼬치 한 개를 해치운 뒤, 다시금 홍차로 입을 가볍게 적신 그가 이번에는 수박이 꿰어진 꼬치를 집어 들었다.
그릴을 이용해 구워낸 것인지 일정한 간격에 맞춰 검은 줄이 새겨진 상태였다. 아삭, 다시금 따뜻한 과즙이 새어 나와 혀를 촉촉하고 끈적하게 적셔주었다. 구운 수박의 표면에 새하얀 슈가 파우더와 소금을 함께 흩뿌려 둔 것인지, 짭조름한 맛과 단맛이 훌륭하게 어우러졌다.
‘매력적이군.’
이내 그가 다른 과일 꼬치들 역시 차례로 맛보았다. 바나나, 망고, 파인애플에 이르기까지.
모두 하나같이 가열 과정을 거쳤을 때, 사뭇 다른 식감과 맛을 지니게 되는 메뉴들이었다. 마치 일련의 정제 작업을 거친 것마냥, 모든 메뉴가 허세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담백한 맛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나긴 코스의 마무리 디저트로 제격인 메뉴였다. 상쾌했으며, 부담을 덜어주었다. 오랜 식사 탓에 텁텁하고 찝찝해진 입안을 정화시켜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가장 마음에 드는 대목은 파티쉐의 기교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 있었다. 기술과 기교를 과시하는 동시에, 일련의 메타포를 담아내고자 고심한 듯 보였던 여타 디저트 메뉴들과 달리 마지막 메뉴에는 먹는 이에 대한 배려만을 담아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실력을 드러내지 못해 안달이 되어있다거나, 급급해 보인다는 인상을 주는 여타 농익은 파티쉐들의 디저트 코스와는 가히 격이 다르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여유 있는 메뉴 선정이라고 생각했다.
‘재미있군, 기교는 이미 보여줄 만큼 보여줬다는 건가?’
이내 퍼스트 말론이 제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로, 기분을 뒤숭숭하게끔 만드는 생각들을 정리해보기 시작했다.
줄리아. 레이첼의 곁을 꿰찼던 어린 *양녀, 빛나는 눈으로 레이첼의 곁을 지키던 어린 어시스트 파티쉐가 이토록 성장했다.
부모이자 스승이랄 수 있는 스승의 죽음에도 무너지거나 잠식당하지 않고 변화를 거친 뒤 뉴욕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심지어 이미 명성을 쌓아 올린 일류 파티쉐들과 비교했을 때에도, 사뭇 특별하다 느껴지는 요소가 잔뜩 깃든 디저트 메뉴를 준비한 채로 돌아왔다. 또, 격 높은 디저트를 선보이는 파티쉐들이 으레 지니고 있는 여유와 품격을 겸비한 채로 돌아왔다.
“디저트 코스는 입에 맞으셨습니까?”
줄리아가 대뜸 건네온 물음에, 퍼스트 말론이 상념에서 깨어났다.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지어 보인 그가 제 외투를 챙겨 들며 나직이 답했다.
“혁신적이야. 아마 많은 파티쉐들이 자네의 영향을 받을 걸세. 예전, 레이첼이 그랬던 것처럼···.”
퍼스트 말론이 말끝을 흐려 보임과 동시에, 영원할 것만 같은 침묵이 그들 두 사람 사이에 내려앉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자네도 뉴욕에서, 아니 세계 각지에서 많은 파티쉐들에게 영향을 주게 되겠지.”
그 말을 끝으로 퍼스트 말론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마음 같아서는 조금 더 자리를 꿰차고 앉은 채, 그녀와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디저트 바의 입구에 줄지어 서 있는 여타 손님들 탓에 차마 그럴 수 없었던 까닭이었다. 외투를 챙겨 든 퍼스트 말론이 주변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장내는 마냥 혼란스러웠다. 파티쉐들은 분주히 움직였으며,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서로에게 해야 할 일을 일러주었다. 고성이 오가는 주방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으나, 분주한 기색을 감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나, 줄리아는 여전히 요지부동.
제자리를 지키고 선 채, 또 씁쓸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퍼스트 말론을 들여다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렇게 작지만, 어지러움을 야기하는 소음 속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맞닥뜨리기를 잠시. 줄리아가 애써 상투적인 투로 답했다.
“호평 감사합니다.”
퍼스트 말론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자, 줄리아가 그제야 다시금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해야 할 일이 태산이었다. 스테인리스 재질의 보울에 담긴 크림을 휘핑했으며, 또 오븐 안에서 익어가고 있는 케이크의 상태를 점검해댔다.
퍼스트 말론이 그런 그녀의 모습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던 찰나였다. 일행인 중년 사내가 나직이 말을 건네왔다.
“이제 슬슬 홀 테이블로 돌아가서 테스트 키친 행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게 좋겠군요. 대망의 셰프 감사 인사와 더불어, 대면이 남아있으니 말입니다.”
나직이 “그러시죠.” 하고 답해 보인 퍼스트 말론이 앞장서서 디저트 바를 나섰다. 그리고는 채 몇 걸음을 옮기기도 전에, 잠시 제 자리에 멈춰 서서는 도로 디저트 바를 돌아보았다.
디저트 메뉴는 ‘마침표’와 엇비슷한 역할을 해주었다. 완벽한 코스 메뉴에 걸맞는, 흠잡을 데 없는 마무리 역할을 해냈으니 말이다. 이내 퍼스트 말론이 고개를 한 번 내저어 보이고는 작게 말했다.
“올해, 뉴욕 파인다이닝 업계에 큰 변화의 바람이 불겠군요.”
오늘 테스트 키친 메뉴를 모두 맛본 인물이라면, 누구도 자신의 의견에 대해 반박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
그로부터 삼십 분가량의 시간이 흘렀을 무렵, 테스트 키친 행사가 모두 마무리되었다.
행사에 참여한 외식업계 인사들은, 다들 하나같이 배정받은 테이블을 떠나지 않고 일행과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는 중이었다.
다름 아니라, 테스트 키친 행사의 대미를 장식할 ‘셰프의 감사 인사’가 진행되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지켜보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테스트 키친 행사가 모두 마무리되고 나면, 비록 긴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눌 순 없겠으나 적어도 궁금한 사항 한두 개쯤은 무리 없이 물어볼 수 있을 만한 시간이 주어질 게 분명했던 까닭이었다.
한데, 뭐랄까? 장내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는 웅성거림 속에 담긴 분위기가 사뭇 기묘했다.
우선 현역 셰프들은 기이한 경계심과 질투심을 품은 채로,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어떤 질문을 건네야, 영 셰프의 레시피에 감춰진 비밀을 자연스레 파헤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밖에 없었다.
또 독설로 유명한 비평가들은 영 셰프가 선보인 퀴진이 지닌, ‘단점’을 모색하기 위해 머리를 맞댄 채 회의를 거듭하는 중이었다. 당장은 눈에 보이는 결점이 존재하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유명 평론가들과 동행한 자본가들은 영 셰프를 아군으로 만들기 위한 방책을 떠올리고자, 머릿속 계산기를 부지런히 두들겨대는 중이었다.
장내를 한차례 살펴본 평론가 로맹 가리가 고개를 한 번 내저어 보이고는, 제 맞은편에 앉아있던 조엘 르뷔숑 셰프에게 말했다.
“오히려 적이 늘어난 것 같군요.”
“예, 그럴 수밖에요.”
짤막하지만, 뼈가 있는 답이었다. 조엘 르뷔숑 역시, 여타 셰프들과 다르지 않았다. 질투와 경외심에 휩싸였다. 영 셰프가 고작 육 개월이란 시간 안에 이뤄낸 발전에 대한 시기를 어쩌지 못하는 중이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레시피야 아무래도 좋으니, 자신이 품고 있는 저열한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영 셰프와 대면할 때만큼은 어떻게든 감추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장내에 존재하던 웅성거림이 점차 덩치를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다름 아니라, 파우스트 내부를 비추고 있던 조명이 서서히 ‘페이드아웃’(Fade-Out)되기 시작했던 까닭이었다. 또, 잔잔히 흘러나오던 클래식 음악 역시 종료되었다.
그 순간.
장내 바텐에 설치되어 있던 조명 불빛 한 줄기가 파우스트의 2층을 비춰주었다. 조명 불빛이 향하는 곳에, 말끔한 톰 포드 정장을 차려입은 영 셰프가 서 있는 상태였다. 이목구비가 또렷한 장신의 동양인 청년, 그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첫 말을 꺼내 들었다.
“우선 파우스트의 테스트 키친 행사 참여를 위해 먼 걸음 해주신 귀빈 여러분께 감사 인사를 올리는 바입니다.”
나직이 말해 보인 영 셰프, 필상이 잠잠한 어투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제 공백에 대한 온갖 루머들을 종식시키겠습니다. 오늘 맛보신 코스 메뉴의 퀄리티가 바로, 제가 지난 육 개월간 자리를 비우고 세계 각지를 떠돌았던 이유입니다.”
오만함이 가득 느껴지는 어투였으나, 귀빈들은 잔잔한 박수 세례로 화답해 줄 뿐이었다. 그렇게 다시금 침묵이 내려앉기를 잠시, 필상이 장내를 좌에서 우로 한 번 훑어본 뒤 나직이 덧붙였다.
“여러분께서 오늘 보셨다시피 파우스트가 맞이한 숙제는 단순히 ‘미슐랭 스타를 따내는가? 혹은, 못 따내는가?’의 문제가 아닌 것 같군요.”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그저 ‘세 개를 모두 따내느냐? 혹은, 두 개에 머무르느냐?’ 정도겠죠. 이상입니다. 앉아계시면 제가 개별적으로 인사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필상이 곧장 모습을 감췄다. 홀 1층 한편에 주둔하고 있던 기자들의 플래시가 번쩍이는 섬광을 뿜어댔다. 잠시나마 엄숙함이 드리워있던 장내는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영 셰프가 턱을 치켜든 채 꺼낸, 말 몇 마디가 만들어낸 여파랄 수 있었다.
“하여튼.”
홀 한편에 선 채, 필상의 연설을 지켜보고 있던 에이전시 측 직원 멜리가 고개를 몇 번 내저어가며 꺼낸 말이었다. 숨죽인 채, 난간을 올려다보고 있던 직원들 역시 마찬가지. 모두 하나같이 필상의 연설에 웃음 짓고 있는 중이었다.
하나, 귀빈들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넋이 나간 얼굴을 한 채로, 여전히 필상이 모습을 드러냈던 2층 난간 쪽을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몇몇 평론가들은 치솟는 전율을 어쩌지 못한 채 몸을 부르르 떨어댔다. 모든 일이 불과 얼마 전, 어린 셰프가 인터뷰에서 밝혔던 대로 처리되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던 탓이었다. 그가 말했던 대로, 파우스트가 뉴욕 파인다이닝의 ‘기준’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