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164
164
Chapter39 – 기준 (2)
테스트 키친 행사가 끝났다. 하나, 행사에 참여한 인사들 중 그 누구도 자리를 떠나지 않은 채 장내를 순회 중인 필상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심지어 몇몇 비평가들은 랩탑을 꺼내든 채로, 일찌감치 집필을 시작한 상태였다. 비록 초대장을 수령하는 과정에서 서명한 ‘비밀유지 조항’ 탓에, 메뉴에 대한 언급은 할 수 없으나 외적인 부분에 대한 짤막한 언급 정도는 가능하다는 점을 이용하여 후기를 작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필상은 당당히 손님들과 대화를 나눴다. 장내에 자리한 이들 중 태반이 네임 벨류가 상당한 편에 속하는 이들이었으나, 필상은 추호도 주눅 들지 않았다. 허리를 한껏 곧추세운 채로, 또 어깨를 쫙 편 채로 느긋한 어투로 그들의 질문에 답해주고 있을 따름이었다.
다소 오만해 보인다는 느낌이 일 지경이었으나, 그 누구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필상이 오늘 선보인 코스를 감안해본다면,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던 까닭이었다.
이런저런 대화가 끝없이 오갔다. 비평가들은 필상이 ‘*아트 퀴진’(*Art cuisine)을 주도해나가는 셰프 반열에 올랐다며 한껏 치켜세워주며 이런저런 고상한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기 일쑤였다.
또, 여타 셰프들은 필상의 레시피에 관심을 보였다. 한없이 조심스러운 투로, 제 자존감을 지키고자 갖은 애를 써가며 넌지시 레시피의 비밀에 대해 캐물어 댔다. 한데 모두의 예상과 달리, 필상은 그런 여타 셰프들에게 제 레시피를 서슴없이 말해주었다.
“푸아그라의 최고 장점인 ‘녹아내리는 식감’을 강조하기 위해 조리 과정에 신경을 많이 기울이고 있습니다. 온도를 60도 정도로 세팅해 둔 오븐에서 대략 50분가량 익혀준 뒤, 필수적으로 삼 일 남짓한 숙성 시간을 거치고 있습니다. 또, 서비스될 때의 온도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편입니다. 입안에 넣었을 때, ‘녹아내린다.’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 말이죠.”
필상이 유려하게 건넨 설명에 셰프들이 고개를 주억대기 시작했다. 비록 특별한 비밀이 감춰져 있지는 않았으나, 영 셰프의 세심함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내 필상이 이런저런 비밀을 추가로 늘어놓기 시작했다. 젤리피케이션 기법을 이용해 만든 녹차 소스의 배합과 비율 등에 대한 설명이었다.
이내 셰프들이 급한 대로 필상이 불러주는 내용을 받아적기 시작했다. 휴대폰 메모장에, 항상 들고 다니는 수첩에, 혹은 급한 대로 냅킨에···.
그렇게 한참에 걸친 대화가 끝맺어지던 무렵, 필상과 두세 걸음쯤 되는 간격을 유지한 채 뒤를 따라다니고 있던 멜리가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필상, 이렇게 전부 다 알려줘도 되는 거예요?”
“상관없어요.”
“하지만, 레시피는···.”
멜리가 무어라 말을 이어나가려던 찰나였다. 필상이 한없이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은 채 나직이 답했다.
“바이올린을 켜는 법은 누구나 알아요. 멜리도 알고 있을 테고, 저도 알고 있죠. 활을 현에 가져다 대고 움직이면 소리가 나잖아요?”
“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있는 건 아니죠. 그건 다른 차원의 문제니까요.”
그 말에 멜리가 얼어붙은 듯, “아.” 하고 침음을 흘려 보였다. 반면, 필상은 계속해서 다음 테이블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자연스레 인사를 나눈 뒤, 적당한 태도를 유지하며 분위기를 주도해나갔다.
이내 그런 필상의 모습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던 멜리가 피식 미소를 지어 보였다. 폴 보티즈 셰프와 육 개월 남짓한 시간 동안의 여정을 마친 뒤, 여태껏 몇 번이고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은 뭐랄까?
불안함이나 조급함이 아예 사라진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따금 주고받는 말 몇 마디에서, 혹은 그때그때 필상이 선보이는 어휘 선정에서, 시선 처리에서, 또 태도에서 몇 번이고 그런 느낌을 받기 일쑤였던 것이다.
‘미슐랭···.’
그리 많은 시간이 흐르지도 않았는데, 미슐랭이란 이름이 이제 더는 꿈이라 칭하기도 모호할 정도로 가까운 곳에 와버렸다.
필상이 테스트 키친 행사 말미에, 2층 난간에 선 채로 했던 말처럼 이제 중요한 것은 ‘파우스트가 미슐랭 스타를 받을 수 있는가?’가 아니라 ‘몇 개를 받을 수 있는가?’의 문제였으니 말이다.
이내 멜리가 터벅터벅, 천천히 걸음을 옮겨대고 있는 필상의 옆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다가 말문을 열었다.
“필상. 잠깐, 잠깐만요. 같이 움직이셔야죠.”
“혼자 두는 게 그렇게 불안해요?”
“비즈니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는 날이잖아요?”
“그래서요?”
필상이 장난기 어린 투로 건넨 물음에, 멜리가 제 정장 외투 안주머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들며 답했다.
“품위를 유지하셔야죠. 아트 퀴진을 대표하게 될 셰프께서, 비즈니스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셔서 되겠어요?”
“아트 퀴진은 무슨, 저는 그냥 돈이 되는 요리를 하는 것뿐이에요. 마침 아트 퀴진이 트렌드일 뿐이고.”
이내 두 사람이 티격대며 다음 손님들이 앉은 테이블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테스트 키친 뒤풀이의 주인공은 필상이었으나, 그렇다고 하여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필상에게만 주목된 것은 아니었다.
분자요리 섹션을 지휘하며 레시피를 다잡고 큰 공을 세운 ‘갈라예프 셰프’는 물론이고, 디저트 메뉴를 책임졌던 ‘줄리아’ 역시 무수히 많은 이들의 관심과 집중을 받았으니 말이다.
행사가 마무리된 것은 시간이 무려 자정에 달했을 무렵의 일이었다. 그렇게 하루가 흐르고, 다음 날 저녁. 파우스트의 간부급 직원들이 다시금, 셰프 집무실 안에 모였다. 다름 아니라, 어제 진행되었던 테스트 키친의 여파를 다 함께 확인해보기 위함이었다.
톡, 톡.
연신 제 집무실 의자 팔걸이를 두드려대고 있던 필상이 나직이 말문을 열었다.
“이제 스프링 시즌 시작까지 12시간 정도밖에 안 남았네요.”
그 말에 안에 자리해 있던 모든 이들이 우렁차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예, 셰프!” 하고 답해보였다. 테스트 키친 행사를 끝낸 뒤, 딱 하루간 마지막 휴식을 취하고 이틑날부터 스프링 시즌 영업을 시작할 요량이었던 것이다.
이내 필상이 멜리에게 눈짓을 해보이자, 멜리가 준비해 온 자료를 천천히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오늘 오전, 유명 평론가 ‘에밀 아자르’ 씨께서 게시한 글입니다. 파우스트는 단순한 레스토랑이 아니라 문화 운동이라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그 말에 장내에 모여있던 모든 이들이 한차례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뒤로도 이런저런 호평이 이어졌다. 뉴욕 파인다이닝의 왕좌를 차지하게 될 것, 하나같이 성공적인 맛, 거부할 수 없다, 뉴욕 미슐랭 가이드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적지 않은 수의 비평가들이 ‘비밀유지 조항’을 깨트리고는 자세한 내용을 수록하기도 했다.
“비밀유지 조항을 위배한 탓에 위약금을 지불해야겠으나, 직업정신을 지키기 위해 파우스트의 스프링 시즌 코스 메뉴에 대해 자세히 언급할 생각이다. 파우스트의 완성도 높은 코스는 ‘그곳의 셰프, 또 요리사들이 얼마나 요리에 미쳐있는가’를 면밀히 말해주었다. 하나의 코스를 축약해 둔 아뮤즈부쉬를 시작으로···.”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줄리아가 제 미간을 바짝 찡그린 채, 조곤조곤한 어투로 물음을 건넸다.
“그런데 비밀유지 조항을 이렇게 쉽게 깨트릴 수도 있는 건가요? 한두 명도 아니고, 일고여덟 명이 조항을 위배할 정도면···.”
그 말에 멜리가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답했다.
“셰프의 계략이었죠. 조항을 어길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설계해뒀거든요. 위약금을 정확히 명시하지 않았어요. 단순히 ‘소정의 위약금’이란 단어만을 넣어뒀을 뿐이죠.”
“맙소사, 그럼···?”
“물론 조항 위배에 대한 책임을 물을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눈치 빠른 비평가 및 칼럼니스트들에게 기회를 준 셈이죠. 또, 대중들의 입장에서도 덩그러니 공개되는 정보보다 베일에 감춰진 정보가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겠어요?”
이내 줄리아가 재차 되물었다.
“영 셰프의 아이디어였나요?”
“물론이죠.”
“정말이지···.”
그녀가 경외감 어린 눈으로 필상을 들여다보며 말끝을 흐려 보이던 찰나였다. 멜리가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다시금 테스트 키친 행사가 종료된 뒤로 게시된 파우스트 관련 평론들을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파우스트가 아닌 샵 인 샵 형태의 디저트 바 ‘레이첼의 꿈’에 대한 게시물들이 주를 이루기 시작했다.
“놀랍도록 자극적인 디저트의 향연이었다. 위스키와 솜사탕을 접목시킨 디저트 메뉴를 보던 때, 디저트가 거둔 진보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스토리텔링을 접목시킨 메뉴들이 인상 깊었으며, 몽환적인 플레이팅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내년쯤이면 아트 인 디자인(Art In Design) 어워즈의 순위권에서 그곳 파티쉐의 이름을 확인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연달아 극찬이 이어지던 무렵, 줄리아가 벅차오르는 감정을 어쩌지 못하고 “후.” 하고 길게 숨을 내쉬어 보이기에 이르렀다. 이내 그 모습을 빤히 지켜보고 있던 갈라예프 셰프가 짓궂은 투로 되물었다.
“왜 그러세요? 설마 이 정도 칭찬에 감정이 벅차오르는 건 아니겠죠?”
그 말에 줄리아가 어깨를 들썩여 보이고는 답했다.
“테스트 키친 행사의 여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사실 이 정도로 눈에 띄는 효과가 나타날 거라곤 생각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제 디저트를 사랑해줄 거라곤 미처 예상치 못했었거든요. 뭐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그저 여태껏 해온 대로, 디저트를 만들었을 뿐인데 하루아침에 인생이 바뀐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해야 할지···.”
말끝을 흐려 보인 그녀가 이번에는 필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셰프, 진심으로 고마워요.”
“뭐가요?”
필상이 퉁명스레 건넨 물음에 그녀가 할 말을 잃고 입술만 옴짝달싹대기 시작했다. 무엇이 고마운 것일까? 자신에게 기회를 준 게? 아니면? 우울의 수렁에서 꺼내준 게? 아니면? 잊고 싶던 얼굴의 평론가들을 마주한 채 허둥대던 때, 다가와서는 위로의 말을 건네준 게?
그렇게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줄리아가 고개를 가볍게 몇 번 내저어 보이고는 나긋한 어투로 답했다.
“모든 게요.”
영 셰프가 만들어준 기회다. 그리고 그 기회를 붙잡는 데 몰두하다 보니, 자연스레 중독되어 있던 우울 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마터면 무너질 뻔했던, 테스트 키친 행사 당일에도 마찬가지였다. 영 셰프가 무심한 듯 다가와 건네주었던 몇 마디 말 덕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래서, 모든 게 고마웠다. 진심으로. 반면, 필상은 여전히 무뚝뚝한 어투로 일관할 따름이었다.
“아뇨. 줄리아의 디저트가 필요했을 뿐이에요.”
이내 장내의 분위기가 사뭇 싸늘해졌다. 다름 아니라, 필상의 표정이 마냥 어둡다는 사실을 모두가 눈치챘던 까닭이었다. 거두어들인 수확을 생각했을 때,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이었다.
멜리도, 줄리아도, 갈라예프 셰프도, 이정준도 모두 그런 필상의 눈치만을 살펴대고 있을 따름이었다. 이내 필상이 조심스레 자리를 일으켜서는, 집무실 한편에 놓여있던 수납장 안에서 위스키 한 병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먼지가 살짝 내려앉아 있는 컵에 술을 따라 넣었다.
장내에 자리한 모두가 필상이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또 그 누가 술을 권하더라도 나이를 운운하며 완곡히 거절해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놀람을 금치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나, 필상은 마냥 자연스레 움직일 따름이었다. 잔 안에 위스키를 잔뜩 따라 넣고는,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는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은 채, 낮은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망한다는 건 추한 일이에요. 추해지고 싶지 않은데···.”
그 누구도 섣불리 답하지 않았다. 그저 필상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이내 필상이 쓴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덧붙였다.
“오늘 확실히 알았어요. 이제 저는 실수를 이해받을 수 없는, 그 누구도 제 실수를 용납해주지 않는 곳에 들어섰다는 것을요.”
이내 멜리가 애써 자연스러운 투로 되물었다.
“좋은 일이잖아요? 그만큼 많이 올라왔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아직 말씀드리지 못한, 흥미로운 제안이 한 가지 있는데···.”
그녀가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말을 이어나가고 있던 찰나. 필상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곧장 그녀의 말을 잘랐다.
“맞아요. 좋은 일이죠.”
말을 마친 필상이 “그리고.” 하고 중얼거려 보인 뒤 재차 덧붙였다.
“고독한 일이죠.”
희한한 일이었다. 일이 잘 풀리면, 잘 풀릴수록. 또 꿈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자꾸만 회귀 이전의 삶이 떠오르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형용할 수 없는 불안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자꾸만, 부정적인 생각들이 치솟기 일쑤였다.
그런 지금, 줄리아가 필상을 뚫어지라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이번에는 자신이 아닌 필상이, 단정 지을 수 없는 음울함과 불안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던 까닭이었다.
영 셰프에 대한, 아니. 그의 주변에 놓인 모든 것들에 대한 극찬이 쏟아지고 있는 와중에, 기이하게도 집무실 안으로는 미묘한 기류만이 흐르고 있을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