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170
170
Chapter40 – 홀리데이 (3)
– 벌써 한바탕 싸우셨다면서요?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멜리의 목소리에, 필상이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되물었다.
“싸운 것도 아니에요. 그나저나, 그 소식이 벌써 뉴욕까지 도착했어요?”
– 사실 수정 구슬로 필상을 지켜보고 있거든요.
“무섭기도 해라.”
– 대체 어쩌려고 그러신 거예요?
이내 필상이 커피포트로 끓인 물을 컵 안에 쪼르르 따라 넣으며 나직이 답했다.
“별 다른 방법이 없었어요. 꼬장꼬장한 늙은이가 저한테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저는 얼굴 마담일 뿐이니까, 손 놓고 구경만 하다가 약속된 돈을 받아서 돌아가라고 했다니까요.”
– 그것도 나쁘지 않은 제안인 것 같은데요? 안 그래도 휴식이 부족하셨다면서요? 선샤인 코스트의 절경을 감상하면서, 푹 쉬다가 돌아오시는 것도···.
“설마 진심이신 건 아니죠? 만약 휴식이나 돈이 목적이었더라면, 굳이 호주가 아니라 뉴욕에 머물렀을 거예요. 저는 어디까지나, ‘아트 퀴진 셰프’로서의 명예를 위해 여기까지 온 거라고요.
말을 마친 필상이 컵 속에 담긴 녹차 티백을 가볍게 살살 흔들어가며 되물었다.
“그럼 그 이후의 이야기도 들으셨어요?”
– 아뇨.
“한 판 붙기로 했어요.”
– 주먹다짐으로요?
한차례 “설마요.” 하고 답해 보인 필상이 웃음기 서린 투로 되물었다.
“셰프답게, ‘요리’로 붙어야죠. 만약 주먹다짐으로 붙는 거였더라면, 로버트여도 감당할 수 없을 걸요?”
– 맙소사, 그 정도에요?
“실제로 한 번 보시면 이해하실 수 있으실 거예요.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더 큰 것 같더라니까요? 실루엣만 봤을 때는, 장밀 ‘곰’이나 다름없어요. 팔·다리야 그렇다 치더라도, 목이 어찌나 두꺼운지···.”
이죽거리는 투로 말을 이어나가던 필상이 말끝을 살짝 흐려 보이고는, 제 몸을 살짝 부르르 떨어보였다. 그가 치솟은 분기를 어쩌지 못하고 털이 복슬복슬 자란 큼직한 주먹을 꽉 말아쥐던 때, 필상은 저도 모르게 단단한 바위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공성병기와 다를 바 없는 파괴적인 외형의 주먹이었다. 아마 한 대, 제대로 얻어맞는다면 안와골절은 물론이고 숨 쉬는 법조차 잊게 될지 모를 지경이었다.
– 흠, 궁금해지는데요? 그런데도 용케 언쟁을 벌이셨네요? 조심하세요. 여러 개의 보험 상품에 가입되어 있지만, 목숨은 하나뿐이잖아요?
“예, 그렇죠.”
– 만약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다면 법적 처리를 도울 수야 있겠지만, 뭐가 됐든 숨이 붙어있어야 의미 있는 일들이기도 하고요
“정말 눈물 나게 고맙네요. 가슴 깊이 새겨듣도록 할게요.”
– 잘 생각하셨어요, 건강이 최고의 재산이라잖아요? 어쨌든, 그래서 뱅크시 셰프와는 어떤 방식으로 맞붙게 된 건데요?
멜리의 물음에 필상이 “아.” 하고 작게 중얼거려 보이고는, 설명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간단해요. 앞으로 딱 10일 뒤에, 홀리데이의 VIP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테스트 키친’ 행사가 잡혀있다더라고요.”
– 행사에 참석한 고객들에게, 뱅크시와 필상. 두 셰프 중, 누구의 아트 퀴진이 더 훌륭한지를 평가받는 형식이겠네요? 필상에게 너무 불리한 조건 아니에요? 시간도 촉박한데다가, VIP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테스트 키친 행사라면 당연히 다들 뱅크시 셰프에게 우호적이지 않을지···.
“아뇨. 그 점은 별로 걱정 안 해요. 경연 자체가 ‘*블라인드 테스팅’(* Blind Testing) 형식으로 진행될 예정인데다가, 홀리데이의 VIP 손님들은 문화예술에 조예가 깊거나 입지가 굳건한 예술인들로 구성되어 있잖아요?”
– 그런데요?
“순진한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분들이 단순히 ‘정’이나 ‘의리’ 따위를 운운해가며 편파적으로 뱅크시 셰프의 손을 들어주지는 않을 것 같네요. 다만, 시간이 촉박하다는 점이 마음에 걸릴 뿐이죠.”
단 기간에 코스를 설계 및 구상하는 일이라면 자신 있었으나, 글쎄? 이번에는 아예 다른 분야라 해도 과언이 아닌, ‘아트 퀴진 코스 메뉴’를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이 아니던가?
아직 이렇다 할 메뉴 하나조차 짜놓지 못한 상황인 만큼, 고작 열흘이란 시간 안에 코스 한 개를 선보여야 한다는 점이 마냥 부담스럽게 여겨질 따름이었다.
– 필상, 혹시 남은 기한을 조금 더 늘려볼 수는 없겠죠?
멜리가 조심스레 건네 온 물음에, 필상이 아랫입술을 한 번 핥아내고는 답했다.
“사실 당장 코스 설계를 시작해야 하는데, 갑작스레 다툼이 생긴 상황이잖아요? 아마 열흘이란 시간이 뱅크시 셰프가 제게 베풀어줄 수 있는 최선의 호의였을 거예요. 잠간 언뜻 본 게 전부라지만 ‘딜’을 즐기거나, 승부에 유리한 쪽으로 판을 설계하는 악취미가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거든요.”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잠시 침묵을 유지하던 멜리가 사뭇 비장한 어투로 되물었다.
– 부딪히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거네요?
“바로 그거죠.”
– 필상, 절대 지면 안 돼요.
“그러고 싶어요.”
– 좋아요. 그럼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을 말씀해주시겠어요?
“음.”
짧게 침음을 흘려 보인 필상이 녹차 한 모금을 들이켜고는, 혀를 천천히 굴려가며 그 향과 맛을 천천히 음미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한차례 긴 한숨을 내쉬어 보인 필상이 조곤조곤한 어투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멜리, 뱅크시 셰프에게는 오랜 시간 합을 맞춰온 ‘팀’이 있잖아요? 각 섹션 별 최고 전문가들이 모인 팀 말이에요.”
그 말에 멜리가 “네, 그렇죠.” 하고 답해보였다. 필상의 말 대로였다. 뱅크시 셰프에게는, 항상 그의 곁을 지키는 셰프 군단이 주둔해있다.
뱅스시라는 셰프의 경력과 연륜, 실력과 예술성 넘치는 퀴진에 매료되어 곁을 지켜주는 충직한데다가 실력까지 뛰어난 셰프 군단이다. 아마 그들 중 태반이 당장 홀리데이를 떠나, 어딘가에 자신만의 파인다이닝을 개업해도 손색이 없을 터였다. 더군다나, 그간 함께해 온 시간 덕에 합 역시 척척 맞을 테고 말이다.
그런 점을 감안해본다면, 자력으로 맞서기에는 버거운 상대랄 수 있었다.
“저도 그런 팀이 필요해요. 하지만 시간이 촉박하죠. 제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각 분야 최고의 셰프들을 수소문해 주시겠어요?”
– 비록 과연 필상을 도와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떠오르는 이름이 몇 개는 되는 것 같네요. 장 조니의 다빈이라든지, 갈라예프, 아니면 줄리아 등···.
“문제는 오늘 안에 무조건 이야기를 끝내야 할 것 같다는 점이겠네요. 그리고 내일이 저물기 전에는, 다들 호주 행 비행기에 탑승해야겠죠. 그래야 모레 아침에는 호주에 도착할 수 있을 테니까요.”
– 흠, 일정이 상당히 촉박하네요. 일단 최선을 다 해볼게요.
“그리고 조리를 도와줄 요리사 몇 명을 색출해서 보내주시겠어요? 정식 쿡이든, 쿡 헬퍼든, *스타주(*단기 현장 실습생) 상관없어요.”
말을 마친 필상이 긴 한숨을 내쉬어 보이고는, 식어가는 녹차를 천천히 들이켜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마냥 복잡했다.
자신을 도와 줄 실력 있는 셰프를 물색하는 작업이 뜻대로 풀린다 하더라도, 이틀 뒤 아침에야 호주에 도착할 게 분명했다. 그렇게 된다면, 테스트 키친 행사까지. 아니, 뱅크시 셰프와의 경연까지 남는 기한은 고작 팔일 남짓이 아니던가?
‘팔일이라···.’
확실히 짧은 시간이다. 여타 일반적인 코스를 구상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마냥 생소하게 느껴지는 아트 퀴진 코스를 설계하기엔 마냥 촉박한 기한이랄 수 있었다. 그때, 멜리가 재차 물음을 건네왔다.
– 예, 셰프. 알겠습니다. 다른 도움은 필요 없으시겠어요?
“한 가지만 더 부탁드릴게요.”
– 뭔데요?
“다시 큰 판을 벌여보는 게 좋겠어요.”
– 예를 들면요?
“간단해요. 이번 경연을 방송으로 송출할 수 있게끔 해주세요.”
그 말에 멜리가 화들짝 놀라서는 “예?” 하고 되물었다.
“멜리, 홀리데이 사업부 측을 어떻게든 설득해주세요. 저와 뱅크시 셰프의 경연을 방송으로 송출시킬 수 있도록요.”
– 질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해두시는 게 좋지 않겠어요? 필상의 첫 패배를 수십만 명이 지켜보게 될 수도 있잖아요?
“상관없어요. 상대는 수십 년 동안 아트 퀴진을 연구해 온 셰프니까요. 더군다나 팔일 만에 준비한 코스로 이기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지 않겠어요? 하지만 만약 악조건을 극복하고 승리를 거둔다면···.”
– 뱅크시 셰프가 그간 아트 퀴진 셰프로 살아오며 차곡차곡 쌓아올린 명성을, 너무나도 손쉽게 훔쳐 올 수 있겠죠. 그러니까, 크게 한 탕 해보자는 거군요?
그 말에 필상이 곧장 “빙고.” 하고 답하자, 멜리가 사뭇 격양된 어투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다시금 강도 높은 배팅을 하게 되리란 생각에 감정이 한껏 들뜬 듯 보일 따름이었다.
– 그런데 과연 콧대 높은 홀리데이 사업부 측에서 방송 송출을 승인해줄지 잘 모르겠네요. 적자와 흑자의 경계를 오가며 오랜 시간 유지되고 있는 곳이잖아요? 아마 일반적인 업장이었더라면, 진즉에 폐점을 했겠지만···.
“홀리데이의 실질적인 최고경영자가 음식과 연관성이 있는 예술작품을 만드는 ‘*누보 레알리스트’(*Nouveau Realist:신 사실주의자) 아티스트기 때문에 유지될 수 있죠. 홀리데이는 사실상 그의 개인 뮤지엄을 위한 보조 시설로 시작되었고, 지금도 홍보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으니까요.”
– 그래요, 정확히 알고 계시네요. 물론 시도야 해보겠지만, 그런 사람이 과연 방송 송출을 허락해줄 지가 미지수네요.
“우선 한 번 도전해보고 안 된다면, 방송 송출은 포기하고 경연이 끝난 뒤에 곳곳에서 경연과 관련된 후일담을 떠들어대고 다니는 수밖에 없겠죠. 매거진, TV쇼, 개인 스트리밍 방송 채널 등···.”
– 알겠어요. 일단 시도해보도록 할게요.
이내 필상이 시선을 옮겨서는 창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선샤인 코스트 해변의 백사장을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해변에 위치한 호텔 최상층에 위치한, 팬트 하우스 룸을 제공받았다. 하룻밤 숙박비만 하더라도 한화 수백만 원에 달하는 훌륭한 곳이다. 홀리데이 사업부 측에서 자신을 어찌나 신경써주고 있는 것인지, 단번에 깨달을 수 있는 대목이었다.
뿐 아니라, 모든 게 완벽했다. 약속받은 페이, 직원들의 업무 숙련도, 하다못해 파인다이닝 홀리데이의 인테리어에 이르기까지.
비록 자신을 노골적으로 적대시하는 홀리데이의 총괄 셰프 ‘뱅크시’의 태도가 마음에 걸렸으나, 그것도 잠시 뿐.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따름이었다. 그 조차도, 자신의 명예를 위한 먹잇감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한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대체 어째서 자신을 이토록 싫어한단 말인가? 단순히 어린 나이에 얻은 성공을, 혹은 재능처럼 보이는 실력을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것일까? 이내 필상이 고개를 좌우로 내저어 보이기에 이르렀다.
‘아냐, 아냐···.’
그가 보낸 세월과 축적한 연륜을 감안해 본다면, 고작 그 정도 이유 때문에 자신을 싫어하는 것은 아닐 터였다.
그럼? 진심으로 자신만의 아트 퀴진을 구축하고 싶은 마음에? 그것도 아닌 듯 보였다. 제작년과 작년에는, 각각 두 명의 셰프와 함께 콜라보레이션 키친을 통해 훌륭한 아트 퀴진 코스를 선보이지 않았던가? 왜 하필 자신에게만 ‘얼굴 마담’이란 단어를 운운해가며, 선을 긋고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낸 것일까?
좀처럼 풀리지 않을 것만 같던 이 의문은, 우습게도 불과 반 나절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말끔히 해결되었다.
*
– 흠, 아무래도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인 것 같군.
아트 퀴진과 관련된 *자문(*諮問)을 구하기 위해, 스승 ‘폴 보티즈’ 셰프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간략히 설명하기 무섭게 대뜸 돌아온 말이었다. 이내 필상이 엷게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레 되물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 간단하네.
한차례 짤막하게 답해 보였던 폴 보티즈 셰프가 낮은 웃음을 흘려 보이고는 재차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 꽤 오래 전부터 내가 자신이 얻었어야 할 명성과 명예를 빼앗고 있다며 징징거리던 녀석이거든. 아직도 열등감을 품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덩치는 크고 온갖 고고한 척은 다 하는데, 사실 속이 좁은 녀석이야. 좋게 봐주려 해도 도무지 좋게 봐줄 수가 없는 녀석이지. 까마득한 후배 주제에 어찌나 예의를 모르는지···.
“음, 자세한 실정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두 분 사이에 일련의 문제가···.”
– 그래. 자네가 내 제자라는 사실이 알려졌으니, 애초부터 탐탁지 않게 여겼을 게 분명하네. 애꿎은 화풀이를 하려고 그토록 텃세를 부린 거겠지. 나이를 그렇게 먹고서도, 젊었을 적 성미를 고치지 못하니 원···.
말끝을 흐려 보인 폴 보티즈 셰프가 곧장 한 마디를 덧붙였다.
– 은퇴 발표 이후 적적하던 참에 잘 됐군. 당장 호주로 넘어가겠네. 그래, 어찌 보면 차라리 잘 됐어. 이참에 그 녀석, 아주 혼쭐을 내줘야겠네.
필상이 당황한 기색을 미처 숨기지 못하고 “예? 오신다고요···?” 하고 되묻던 찰나, 폴 보티즈 셰프가 퉁명스러운 어투로 되물었다.
– 왜? 혹시 그 녀석이, 내가 자네를 도우면 안 된다는 조건이라도 내세웠나? 그런 게 아니라면? 아무런 문제도 없는 상황인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