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172
172
Chapter41 – 명화 (1)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어느덧, 테스트 키친 행사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뱅크시 셰프와 필상의 팀, 두 팀의 경연이 펼쳐질 테스트 키친 행사 시작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24시간 남짓뿐.
차츰 기일이 가까워짐에 따라, 대중들의 관심 역시 점차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제기랄.”
나직이 중얼거려 보인 뱅크시 셰프가 한차례 미간을 찡그려 보이고는, 손에 움켜쥐고 있던 푸드 매거진을 신경질적으로 내팽개쳤다. 그리고는 제 집무실 창 너머로 엿보이는 선샤인 코스트 해변의 백사장을 묵묵히 바라보며, 마음을 심란하게끔 하는 생각들을 천천히 정리해보기 시작했다.
영향력 있는 푸드 매거진 ‘아트 컬리넬리’를 통해 자신과 영 셰프의 소식이 처음 알려진 뒤, 이름난 여타 푸드 매거진들 역시 앞다투어 이번 대결과 관련된 소식을 다뤄대기 일쑤였다. 심지어는 요리와는 전혀 무관한 유명 일간지들조차, 한껏 흥이 오른 듯 이번 대결을 다룬 칼럼을 기재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홀리데이의 공식 회선은 마비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인터뷰 요청을 시작으로, 테스트 키친 당일에 펼쳐질 경연에 대한 촬영 문의 및 취재 문의가 끊일 줄 모르고 줄줄이 이어졌던 까닭이었다.
웹 반응은 어떻던가?
대다수의 커뮤니티가 이번 대결에 관한 이야기로 마냥 떠들썩할 따름이었다. 심지어 일부 대중들은 자신을 ‘늙은 악당’이라도 되는 양 헐뜯기 일쑤였다.
그는 이 점이 사무치도록 불쾌하게 여겨졌다.
과장을 조금 보태어 말하자면, 자신이 언론의 먹잇감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일생토록 요리 외의 수단으로 자신을 알리려는 셰프들을 증오했건만, 우습게도 자신이 그 꼴이 된 것 같아 좀처럼 견딜 수 없던 것이다.
그렇게 뱅크시 셰프가 잔뜩 구겨진 표정을 한 채로, 창 너머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던 찰나였다. 끼이익, 굳게 닫혀있던 집무실의 문이 살짝 열림과 동시에 말끔한 정장 차림의 중년 사내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셰프.”
이내 뱅크시 셰프가 화색을 해 보이며 그를 맞아주었다.
“찰스.”
외모가 수려한 편에 속하는 백인 사내였다. 눈썹은 마치 촉이 얇은 붓으로 정성껏 그려낸 것처럼 진하고 유려했으며, 눈빛 위로는 짙은 빛이 감돌았다. 턱은 날렵했으며, 콧대 위로는 우아한 곡선이 자리해 있었다.
이내 뱅크시 셰프와 한차례 악수를 나눈 그가 자연스레 집무실 중앙에 비치된 소파의 상석을 꿰차고 앉으며 되물었다.
“준비는 잘되어 가세요?”
중년 사내가 건네 온 물음에 뱅크시 셰프가 고개를 끄덕여가며 답했다.
“예, 진즉에 모든 준비가 완벽히 끝내뒀습니다. 홀리데이의 섬머 시즌 메뉴를 준비했을 뿐이죠. 늘 그래왔던 것처럼 오직 세 가지 요소, ‘맛’과 ‘예술성’. 또,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부족한 부분이 하나도 없으리라 단언할 수 있을 것 같군요.”
그 말에 중년 사내, ‘찰스 사치’(Charles Saatchi)가 만족스럽다는 듯 제 고개를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대기 시작했다.
그는 이곳 파인다이닝 홀리데이의 최고경영자이자, 영국 태생의 유명 ‘*잇 아트’(*Eat Art:예술 작품을 소비의 대상으로 생산하는 예술) 예술가였다.
그가 호주 선샤인 코스트 해변 한복판에 위치한, 상당한 규모의 파인다이닝 홀리데이를 인수할 수 있던 것은 ‘대표작’이 되어버린 십 분짜리 잇 아트 필름 덕이었다. 16컷으로 구성된 짧은 필름이 큰돈을 벌어다주기 무섭게, 미리 점찍어두었던 이곳 홀리데이를 인수해버렸다.
홀리데이의 전성기가 시작된 것은, 그가 최고경영자직을 차지한 뒤의 일이었다. 그는 예술가로서의 식견과 안목, 또한 오랜 활동 덕에 구축할 수 있던 아티스트 인프라를 앞세워 가차 없는 경영을 펼쳤다.
제아무리 명망이 높은 셰프라 한들, 그의 기준에 차지 않는다면 한 시즌 만에. 혹은, 한 시즌도 미처 채우지 못한 채로 해고되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덕분에 무수히 많은 이들이 무려 3년째 홀리데이의 헤드셰프직을 꿰차고 있는 뱅크시 셰프를 ‘기염’이라 표현하곤 했다.
강인한 인상의 노장 셰프조차 긴장한 기색을 떨쳐내지 못하는 이유였다. 찰스 사치는 자신의 명성을 몇 배나 부풀려준 인물인 동시에, 자신이 거둔 명성을 단숨에 거둬들일 수도 있는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뱅크시는 찰스 사치를 존중하고 존경하는 한편으로, 두려워했으며, 그와의 독대를 거북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아마 그의 속을 읽을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과 덤덤한 어투도 한 몫 거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기묘한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아쉽네요. 셰프와 영 셰프가 합심하여 이번 시즌 메뉴를 구상했더라면 더 좋은 작품이 탄생했을 텐데요.”
찰스 사치가 별다른 굴곡 없는 투로 꺼낸 말에 뱅크시 셰프가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재차 되물었다.
“영 셰프를 게스트 셰프로 초빙하는 게 어떻겠냐는 안건이 나왔을 때, 제가 반대했던 것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예, 알고 있었죠.”
“한데, 강하게 밀어붙이신 이유가 궁금하군요. 지금과 같은 상황이 펼쳐지리라 예상치 못했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입니다.”
에둘러 질문을 건넨 뱅크시 셰프가 긴장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로, 제 아랫입술을 한 번 핥았다.
자신의 오너가 괜한 질문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굳이 물음을 건넨 이유는 자못 간단했다. 영 셰프를 이번 시즌의 게스트 셰프로 초빙하겠다는 안건이 나왔던 때, 자신이 격렬히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일을 추진한 것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던 까닭이었다.
사업부 측 사람들은 하나같이 ‘영 셰프의 스타덤을 빌려올 목적으로 초빙했다.’라고 떠들어댔으나, 뱅크시 셰프의 생각은 사뭇 달랐다.
아니,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찰스 사치는 여타 파인다이닝의 오너들과는 다르다. 그는 사업가로서의 성향보다, 예술가로서의 성향이 훨씬 더 두드러지는 인물이니 분명 다른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정적이 길어지기를 잠시.
찰스 사치가 제 손목에 채워진 몽블랑 사의 가죽 시계 끈을 만지작거려가며, 조곤조곤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호주 파인다이닝 업계는 비주류나 마찬가지잖아요? 호주 셰프들은 하나같이 자국에서 명성을 쌓은 뒤 프랑스나, 이탈리아, 혹은 뉴욕으로 떠나기 마련이죠. 혹은 그곳에서 실패한 셰프들이나 경쟁에 지친 노장들이 요리를 놓고 싶지 않은 마음에, 쉬엄쉬엄 지내고자 돌아오는 고향에 불과하죠.”
“예, 그렇죠.”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비록 순간적인 현상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호주 파인다이닝 업계가 이토록 주목받은 적이 있던가요? 아트 퀴진은 또 어떻고요? 미식조차 고상한 취미로 치부되는 시대에, 아트 퀴진이 대중들의 화두에 오르는 날이 오다니 정말 경이롭지 않습니까?”
그 말에 뱅크시 셰프가 한차례 “하.” 하고 탄식을 내뱉어 보이고는 연달아 되물었다.
“그럼 단순히 가십 거리를 만들기 위해 영 셰프를 초빙했다는 겁니까? 저를 땔감으로 삼아 매스컴의 관심을 받아낸 뒤, 그 관심으로 홀리데이를 더욱 빛나게끔 하기 위해서요?”
찰스 사치가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자, 뱅크시 셰프가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켜냈다.
괴짜라 불리는 예술가들이 으레 그렇듯, 찰스 사치에게 있어 ‘웃음’이란 절대 기쁨이나 즐거움을 표출하는 수단이 아니란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보인 행동이었다.
“셰프, 어째서 영 셰프를 싫어하시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고 계신 것 같군요.”
“예···?”
“게스트 셰프를 물색하던 도중, 뉴욕에서 열린 동료의 전시회에 다녀왔어요. 행사가 끝난 뒤 참석한 뒤풀이 자리에서, 넌지시 괜찮은 셰프가 없느냐 물었더니 한 친구가 ‘파우스트’와 관련된 칼럼을 보여주더군요.”
파우스트라는 상호가 거론되기 무섭게 뱅크시 셰프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가 금세 본래의 빛을 되찾았다. 이내 찰스 사치가 다시금 재미있다는 듯 피식 웃음을 흘려 보이고는 재차 말했다.
“제가 본 칼럼은 파우스트의 메뉴가 아니라 ‘인테리어’에 관한 내용이었어요. 모르페우스 상이 거치된 분수대, 시즌 컨셉에 완벽히 부합하는 조명 및 소품 배치 등 여러모로 눈에 띄는 곳이더군요. 함께 첨부된 사진으로 본 파우스트는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곳이었죠. 듣자 하니 아트 인 디자인(Art in Design)에서 꼽은 ‘아름다운 파인다이닝 Top10’ 후보로 꼽혔다더군요. 홀리데이와 함께 말입니다.”
“그건 어차피 영 셰프가 아니라, 에이전시 측에서 섭외했을 스페이스 디자이너들의 작품이지 않습니까?”
“예, 그렇겠죠. 하나, 초안은 영 셰프가 잡았다더군요. 홀리데이를 제외한 파인다이닝 중, 그토록 황홀한 느낌을 연출해 낸 파인다이닝은 파우스트가 처음이었어요. 분명 감각적인 셰프일 거라 생각하고, 메뉴에 대한 칼럼을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같이 호평 일색이더군요. 첨부된 사진들은 뭐랄까? 요령은 없지만, 영감만큼은 차고 넘치는 젊은 예술가의 작품을 보는 것 같았어요. 홀리데이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법한 인물이라고 판단했죠.”
“하지만 결국 협동이 불가능하다면···.”
뱅크시 셰프가 재차 무어라 말을 이어나가려던 찰나였다.
“한 명은 떠나야겠죠.”
짤막하게 답해 보인 찰스 사치가 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덧붙였다.
“아마 내일 저녁 무렵이면 어느 쪽이 떠나게 될지 알 수 있을 것 같군요.”
그 말에 뱅크시 셰프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보탬이 되지 않는 셰프는 필연적으로 자리를 잃는다. 아니, 보탬이 되더라도 홀리데이에 더 큰 영광을 선사해줄 만한 자질이 될 수 있을 만한 셰프가 나타나면 떠나야 한다. 모든 판단은 최고경영자인 찰스 사치가 내린다.
이것이 홀리데이의 방식이다.
하나, 아무렇지 않은 듯 덤덤한 표정을 유지할 순 없었다. 주름이 자자한 입가가 씰룩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끝까지 머금고 있으려던 말이 입술 사이를 비집고 나와 바닥에 ‘툭-.’ 떨어졌다.
“영 셰프가 떠나게 될 겁니다.”
그 말에 찰스 사치가 나직이 답했다.
“기대했던 답변이로군요.”
“별말씀을.”
말을 마친 뱅크시가 곧장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서는, 집무실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복도 모퉁이를 돌아 주방으로 향하는 내내, 애꿎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또, 꽉 말아 쥔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진즉 노년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같은 성미를 어쩌지 못하고 치기 어린 말을 뱉은 게 후회되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속이 마냥 후련하기도 했다.
태생부터 매정했을 게 분명한 찰스 사치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뱅크시는 진심으로 그를 존중했다. 그는 훌륭한 경영자인 동시에 예술가다. 그의 안목은 이미 입증되었으며, 그의 경영 방식을 존중했기에 홀리데이의 초대를 받았을 때 더할 나위 없이 기뻐했음이 분명했다. 다만,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모든 원망이 영 셰프와 폴 보티즈 셰프에게로 향했다.
영 셰프의 재능은 부정할 수 없었다. 다만, 지나치게 빠른 성공을 거둔 그에게 관록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실무에 대한 경험 역시 부족했을 것이다. 주관조차 확립하지 못했을 시기에 맛본 성공 탓에, 주변에 포진해있는 승냥이 같은 어른들의 선택에 의해 살아왔을 터였다. 그런 꼬맹이가, 아트 퀴진을 설계할 식견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자신이 그를 과소평가한 게 아니라, 찰스 사치가 그를 과대평가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폴 보티즈···.’
은퇴를 번복하고 끼어든 늙은 여우 같은 셰프 폴 보티즈 역시 마찬가지. 실력은 뛰어나지만, 아트 퀴진에 대한 조예를 지니고 있을 리 만무했다. 흉내는 낼 수 있을지 몰라도, 제대로 된 작품을 단기간에 완성시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리라 확신했다.
그런데, 자꾸만 살얼음판을 걷는 것마냥 위태위태한 느낌이 들었다. 이유 모를 불안감을 잠재우고자, 걸음을 옮기는 내내 속으로 곱씹었다.
절대 지지 않는다. 절대로.
그렇게, 대망의 테스트 키친 행사 당일이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