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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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41 – 명화 (2)
행사 시작 시간이 임박한 지금, 홀리데이의 내부 홀에 자리한 직원들은 마냥 분주히 움직이고 있을 따름이었다.
말끔한 유니폼 차림의 직원들이 지나가고 나면, 테이블 위로 깔린 식탁보가 말끔히 정렬되었다. 또 대리석 바닥은 반들반들 광을 내었으며, 비품 및 소품의 대열 역시 완벽히 갖춰졌다.
홀 매니저 그레이는 그 광경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지난 며칠 내내, 홀 테이블 배치 및 외관 관리에 심혈을 기울였으나 결국 행사 당일 다시 한번 재배치를 하게 된 터라 신경이 잔뜩 곤두서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번 테스트 키친 행사는, 지난 몇 년간 호주 파인다이닝 업계에서 벌어졌던 모든 일을 통틀어 가장 규모 있을뿐더러 큰 관심과 주목을 받는 행사였으니 말이다.
그때, 홀리데이의 최고경영자 ‘찰스 사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와 다름없이, 그의 곁으로 사업부 측 직원 몇 명이 서 있는 상태였다. 이내 그가 별도의 인사말조차 없이 대뜸 본론을 꺼내 들었다.
“그레이, 딜레이 없이 정해진 시간에 손님들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빌리 반 코퍼레이션 측 스태프들은요?”
그의 물음에 그레이가 “아.” 하고 중얼거려 보인 뒤 답했다.
“홀과 주방, 모두 카메라 설치를 마쳤다더군요. 지금 이미 영 셰프 팀 쪽 상황을 송출 중이라더군요.”
말을 마친 그레이가 슬쩍 시선을 옮겨서는, 찰스 사치의 표정을 묵묵히 살펴보기에 이르렀다. 그가 빌리 반 코퍼레이션 측에서의 촬영 요구를 수락해 줄 거라곤 미처 예상치 못했던 까닭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신 건지···.’
만약 홀리데이를 방송을 비롯한 미디어에 내보내고 싶었던 것이라면, 지난 수년간 족히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은 내보낼 수 있었을 터였다.
한데 각국을 대표하는 채널의 유명 프로그램 측에서 건네 온 촬영 제안은 한사코 거절하다가, 한낱 인터넷 개인 스트리밍 방송 송출에 대한 허가를 내어줄 거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왜 그렇게 뚫어지라 보시는 겁니까?”
“아, 다름 아니라···.”
“방송 송출을 허가해준 이유가 궁금하세요?”
“네, 맞습니다.”
이내 찰스 사치가 제 턱을 살살 어루만져대다가 답했다.
“예전에 들은 말인데 최고의 협상은 한쪽이 이득을 보는 협상이 아니라, 양측 모두가 아쉬움을 안고 돌아가는 협상이라더라고요.”
“예?”
“영 셰프에게 도움을 받게 될 테니, 그쪽도 어느 정도의 이득을 챙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게 예의이지 않을까 싶어서요.”
말을 마친 찰스 사치가 묘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손목시계를 한 번 내려다본 뒤에 덧붙였다.
“준비가 모두 끝난 것이라면, 이제 슬슬 입장을 시작하는 게 어떨까요? 귀한 손님들을 공연히 기다리게 하는 것보다야 나을 것 같은데.”
그 말에 그레이가 “예, 알겠습니다.” 하고 답해 보인 뒤, 곧장 출입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서는 대기 중이던 서버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입장이 시작되었고, 말끔한 차림을 한 귀빈들이 하나둘씩 파인다이닝 안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유명 평론가 및 칼럼니스트, 또 각자의 분야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입지를 쌓아올리는 데 성공한 아티스트, 취재를 위해 걸음한 언론사 및 매거진 측 인물들에 이르기까지···.
드넓은 홀 곳곳에 잔뜩 있던 테이블이 꽉 메워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분위기는 마냥 들떠있었으며, 또 어수선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배정된 테이블을 찾아 걷는 내내, 오늘 있을 승부에 대해 떠들어댔다.
누가 이길 것이다. 질 것이다. 아무도 결과를 알 수 없는 이야기가 잔뜩 오갔다. 홀 매니저 그레이는 귀를 쫑긋 세운 채로, 그들의 대화를 엿듣는 데 온 힘을 쏟았다. 놀랍게도, 현장에 있는 이들 중 태반이 뱅크시 셰프의 승리를 점치고 있었다. 웹상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뱅크시 셰프가 이길 거야. 그는 저력 있는 셰프고 아트 퀴진이라는 한 우물을 파왔잖아? 일생에 걸쳐서 말이야.”
“당연한 소리. 영 셰프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한들, 월 스트리트의 졸부들을 상대해 먹고 사는 장사치에 불과하겠지.”
“예술에 대한 조예가 있을 리 있나?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어쨌든 결정권은 우리에게 있기도 하고.”
“그나저나 찰스 사치 씨도 정말 너무하는군. 공격적인 경영방식 덕에 홀리데이가 점점 더 발전할 수 있는 거겠지만, 내가 만약 셰프 뱅크시였더라면···.”
그런 와중에 아티스트 친분으로 이 자리에 초대받은, 특히 뱅크시 셰프와 친분이 두터운 이들의 목소리가 점차 과열되었다. 일부는 필상을 ‘월 스트리트에서 굴러 들어온 괘씸한 돌’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평론가 및 칼럼니스트들은 그런 이들에게 노골적인 시선을 보냈으나, 그 누구도 괘념치 않는 듯 보일 따름이었다.
오가는 대화를 엿듣고 있던 그레이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찡그려 보였다. 지나치게 편파적인 대화가 오갔다.
영 셰프가 누가 보더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대단한 ‘작품’을 내놓지 못한다면, 당연히 패배를 맞이하게 될 게 분명해 보였다. 뱅크시 셰프를 존경하고 가급적 그가 승리를 거둔 뒤 주방에 남아주기를 바랐으나,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찰스 사치가 홀 중앙에 비치된 낮은 연단 위에 올랐다. 이따금 섭외하곤 하는 소규모 오케스트라를 위해 마련된 넓지도, 비좁게 느껴지지도 않는 무대. 그 중앙에 멈춰 선 찰스 사치가 비치된 스탠딩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댄 채로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 안녕하십니까? 홀리데이의 최고경영자이자, 여러분의 친구인 찰스 사치입니다. 우선 먼 곳에 걸음해주신 귀빈분들께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함과 동시에, 장내를 떠돌던 어수선한 소음이 아예 종식되었다. 그렇게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찰스 사치가 입가에 묘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 본래는 홀리데이의 섬머 시즌 메뉴를 선보이고 피드백을 받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습니다만, 앞서 전달 드렸듯 의미가 사뭇 달라졌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추후 홀리데이의 주방을 책임지게 될 헤드 셰프가 정해질 예정입니다. 오롯이, 여러분의 선택에 의해서요. 부디 홀리데이를 위한 공정한 선택을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편히 대화 나누고 계시면, 아뮤즈부쉬 메뉴를 서비스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찰스 사치가 도로 연단 아래로 내려왔다. 잠시 정지되었던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자리를 지키고 앉은 이들은 고고한 척, 허리를 꼿꼿이 편 채로 다시금 오늘 있을 승부에 대한 대화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평화로웠다. 마치 폭풍전야처럼.
*
반면 주방 안은 마냥 혼란스러울 따름이었다. 쇠를 긁는 것 같은 뱅크시 셰프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머저리 같은 놈들! 그렇게 굼뜨게 움직였다간, 테스트 키친 행사가 모두 끝난 뒤에야 아뮤즈부쉬를 완성할 수 있겠군!”
그런 와중에 ‘챙! 챙!’, 연신 스테인리스 재질의 식기들이 서로 맞닿는 소리가 울려댔다. 모든 화구가 불을 뿜어댔다. 오븐은 붉은 조명과 후끈한 열기를 동시에 내뿜어댔으며, 그의 팀에 소속된 요리사들은 하나같이 분주히 움직였다.
이내 뱅크시 셰프가 한차례 심호흡을 해 보이고는, 곁눈질로 필상 팀이 사용하고 있는 섹션(Section:구역)을 살펴보았다.
‘한심하긴···.’
필상 팀의 요리사들이 한창 조리에 열을 올리고 있는 중이었다. 아직은 밑 작업 단계나 마찬가지인지라, 어떤 요리를 준비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지만 적어도 치열함이 느껴지지는 않음이 분명했다.
우선 이번 경연을 위해 은퇴를 번복한 폴 보티즈 셰프는 조리에 가담하지 않으려는 듯, 팔짱을 낀 채 뒤로 물러서서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을 따름이었다.
그렇다고 하여 지휘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같은 팀 셰프들의 동선을 방해하지 않는 위치를 점한 채로, 조리하는 광경을 방관하고 있는 게 전부였으니 말이다.
‘쯧, 이번 경연이 끌게 될 관심을 증폭시키기 위해 은퇴를 번복했던 거로군···.’
단연 그뿐 아니라, 타 셰프들 역시 마냥 느릿하고 여유롭게 움직이고 있을 따름이었다. 심지어 헤드 셰프랄 수 있는 ‘영 셰프’는, 제 앞에 설치된 카메라를 힐끔힐끔 바라보며 주부들이나 챙겨볼 법한 프로그램에 출연한 패널 요리사처럼 굴어대고 있었다. 조리에 관한 시시콜콜한 팁과 노하우를 늘어놓았으며, 제 실시간 방송을 시청 중인 이들과 되도 않는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노라니, 허무함 탓에 실소가 새어나올 지경이었다.
‘포기한 건가? 아니면, 애초부터 이번 경연에 진심으로 임할 생각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던 건가?’
아무래도 그들에게 있어 이번 대결은 ‘쇼’(Show)에 불과한 듯 보였다. 명예를 지켜내고자, 생사가 달려있기라도 한 양 치열하게 준비했던 자신과 팀원들의 노력이 허무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팀원들 역시 그 사실을 의식하고 있는 듯, 반감이 가득 서린 눈으로 그들 팀을 힐끔힐끔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고 말이다.
이내 뱅크시 셰프가 모두에게 들으라는 듯, 목에 핏대를 세운 채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쯧, 정말이지 낯짝도 두껍군. 미디어가 좋긴 좋아. 저런 놈들도 스스로를 셰프라 떠들어대며, 부와 명성을 거머쥘 수 있는 세상이잖나? 그 누구도 오늘 경연을 ‘승부’라고 생각하지 말도록, 우린 우리 일을 한다!”
이내 그의 팀원들 역시 들으라는 듯, 우렁차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예, 셰프!” 하고 답해보였다.
그 소리가 어찌나 쩌렁쩌렁했던 것인지, 갈라예프 셰프가 미간을 잔뜩 찡그려가며 필상에게 속삭이듯 되물었다.
“영 셰프,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순 없잖아? 없는 구호라도 만들어서 외쳐야 하는 거 아냐?”
“신경 쓰실 것 없어요. 정 내키지 않으시면, 뱅크시 셰프에게 대표로 한 말씀 하시든가요.”
그 말에 갈라예프 셰프가 곁눈질로 뱅크시 셰프의 우람한 몸을 위에서 아래로 한 번 훑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제 몸을 부르르 떨어대고는 신경질적인 어투로 애꿎은 다빈을 책망했다.
“제기랄, 다빈! 듬직한 로버트는 어디에 두고 혼자서 온 거야?”
“장 조니를 아예 비울 순 없잖아요?”
“그럼, 너 대신 로버트를 보냈어야지!”
이내 팀원들이 약속이라도 한 양 웃음을 터트려댔다. 이내 필상이 카메라 옆에 부착된, 아이패드 화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화면 위로 실시간 스트리밍을 시청 중인 시청자들의 채팅이 빠르게 갱신되고 있는 와중이었다.
[ 그나저나 상대 팀은 파이팅 넘치는 것 같은데? 대화 내용은 잘 안 들리는데, 뭔가 엄청 결연한 각오로 임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 [ 그러게, 꼭 잘 훈련된 군인들 같은데? 이봐, 영 셰프. 혹시 일찌감치 포기하거나 한 건 아니지? ] [ 상대가 상대인 만큼 쉽사리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네. 준비 기간도 부족했을뿐더러, 상대가 아트 퀴진 계의 거장이잖아? 전의를 상실해도 이상할 게 없다고 봐. ] [ 그래. 하지만 맞서는 쪽도 무패 행진 중인 영 셰프잖아? 영 셰프가 지는 거 본 적 한 번이라도 있는 사람? ] [ 맞아. 그리고 원래 셰프의 성격이나 성향에 따라, 주방의 분위기가 달라진다고 들었어. ]필상이 무심한 눈으로 채팅 내용을 확인하고 있던 찰나였다. 돌연 홀 매니저, 그레이가 주방 안에 모습을 드러내더니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이제 곧장 아뮤즈부쉬 서비스해주시면 될 것 같군요.”
이제 시작이다. 이내 필상이 카메라 렌즈를 노려보며, 제 조리복 소매를 천천히 걷어 올렸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상황이 꽤 열악했습니다. 코스를 구상하고 준비할 시간도 열흘밖에 되지 않았을뿐더러, 팀원들과 합을 맞춰볼 여유도 없었죠. 심지어 경연을 펼치게 될 주방 리허설조차 해보지 못했어요.”
말을 마친 필상이 “하지만.” 하고 나직이 말해 보인 뒤 곧장 덧붙였다.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봅니다. 그럼 지금부터 저희가 준비한 아트 퀴진 코스, ‘회귀’를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곧장, 새하얀 접시 한 개를 꺼내든 뒤 “세팅.” 하고 말해보였다. 이내 갈라예프 셰프가 그릴에 구워낸, 골프공만 한 크기의 새까만 구(球) 형태의 덩어리 몇 개를 접시 위에 내려놓았다.
이내 본격적인 서비스 준비가 시작되었다. 필상을 돕고자 객원 셰프들과 함께 호주에 걸음한 파우스트의 쿡 헬퍼급 직원들이 접시를 펼치기 시작했으며, 갈라예프 셰프는 그 위에 구 형태의 덩어리를 빠른 속도로 얹어냈다.
그게 전부였다.
색을 내기 위한 파우더를 흩뿌리거나, 가니쉬를 얹는 등의 노력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었으니 말이다.
띵-.
필상이 벨을 울리자 서버들이 접시를 든 채 홀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한편, 그런 지금 채팅창은 한바탕 난리가 난 상태였다.
[ 저게 대체 뭐야? ] [ 글쎄···? ] [ 숯덩이 아냐? ]음식을 서비스받은 귀빈들 역시 마찬가지 미간을 잔뜩 찡그린 채, 포크로 새까만 구 형태의 요리를 찔러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렇게 말하자면 조금 그렇지만, 뭐랄까? 입맛이 떨어지는 외형이로군요.”
“흠, 확실히 외형은 별로로군요. 어떤 식재료로 조리한 요리인지 짐작할 수가 없으니, 더욱 거부감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때, 서버가 나직이 말문을 열었다.
“A 팀의, 첫 번째 아뮤즈 부쉬 메뉴인 ‘포인트’ 입니다. 포크와 나이프를 이용해 겉면을 도려내신 뒤 드시면 될 것 같네요.”
이내 조곤조곤 불만을 호소하던 귀빈 일행이 제 몫의 포크와 나이프로 단단한 질감의 겉면을 썰어내기 시작했다.
마치 조각을 하는 것처럼, 섬세한 손놀림을 필요로 했다. 그렇게 바짝 말라붙은 겉면을 썰어내던 찰나.
“허···.”
다들 탄식을 흘리느라 급급할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