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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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41 – 명화 (5)
[ 오, ‘반 고흐의 밤’이라. 이름은 웅장한 느낌인데, 별이 빛나는 밤을 모티브로 한 요리인 건가? ] [ 그런 것 같은데, 글쎄? 솔직히 잘 모르겠네. 컨셉을 조금 잘못 잡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 [ 내 생각에도 그래. 일반적인 그림도 아니고 엄청난 명화잖아? 그 느낌을 접시에 담아낼 수 있을지···. ]채팅창을 확인한 필상이 한차례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과연 비좁은 접시 안에 명화를 담아낼 수 있는가?’
자신 역시 코스를 구상하고 준비하는 단계에서 몇 번이고 고민했던 사항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약이 너무도 많다.
아트 퀴진에도 암묵적인 룰이 존재한다. 우선 원하는 색감을 내기 위해 인공 색소 따위를 사용하는 것은 명백한 반칙이다. 오직 천연 재료만을 사용해야 한다. 또한, 단순히 맛의 조화를 흩트리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결과적으로 황홀한 맛을 연출해내야 하는 상황이 아니던가? 만약 그 답을 찾아내지 못했더라면, 무리해서 코스에 포함시키지 않았을 터였다.
“세팅.”
필상의 말이 끝맺어짐과 동시에 이번 경연을 위해 합류한 ‘*스타주’(*단기 현장 실습생) 두 명이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명은 *드라이 에이징(*건식 숙성)을 마친 채끝살을 정성껏 구워내기 시작했으며, 다른 한 명은 냄비 몇 개를 부지런히 옮겨댔다. 냄비 안으로는 미리 만들어 둔 소스 몇 종이 담겨있는 상태였다.
이윽고, 필상이 “그만.” 하고 말해 보이자 스테이크를 구워내느라 여념이 없던 스타주가 노릇하게 익은 채끝살을 조심스레 건네주었다. 이내 필상이 나이프 한 개를 집어 들어서는, 스테이크의 겉면을 도려내기 시작했다. 밀도가 높아진 터라 먹을 수 없게 되어버린 표피를 벗겨내기 시작한 것이다.
[ 와, 손놀림 좀 봐. 역시 프로 셰프는 다르구나···. ] [ 당연하지. ] [ 조각가로 전향해도 되겠는데? ]박피 작업을 거의 마친 필상이 한차례 턱짓을 해 보이자, 냄비를 옮겨 나르던 스타주 한 명이 조리대 위에 직사각형 형태의 접시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곧장 접시의 크기와 완벽히 일치하는, ‘얇은 튀김’을 얹어냈다. 이내 채팅창 위로 실시간 채팅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 혹시 저게 뭔지 아는 사람? 뭘 바짝 튀겨낸 것 같기는 한데···. ] [ 그러게. 구색 갖추려고 못 먹을 걸 올려두지는 않았을 테고. ] [ 내 생각에는 ‘면’을 튀긴 요리 같은데? ] [ 어라? 그러게. ]잠시 빠르게 갱신되는 채팅을 들여다보고 있던 필상이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말문을 열었다.
“이번 요리의 캔버스 역할을 도맡게 될 ‘소면 튀김’입니다. 소면은 자국인 한국을 대표하는 면으로, 튀겨냈을 때의 식감이 일품입니다. 또한 튀겨냈을 때의 모양새 역시 고흐가 붓의 자루 혹은 갈대로 표면을 긁어내 연출한 화풍을 닮아있기에 얹어내고자 결심하게 됐죠.”
말을 마친 필상이 곧장 소면 위로 푸른색을 지닌 소스를 끼얹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브러쉬를 이용해 농도가 걸쭉한 소스를 이리저리 펴 바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놀라운 광경이 연출되기 시작했다. 푸른색 소스가 소면의 ‘결’을 따라 퍼져나가며, 순식간에 배경색이 채워지기 시작한 것처럼 보였던 까닭이었다.
[ 와, 잠깐만.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 [ 이게 말이 되는 건가? ] [ 아무리 생각해봐도, 영 셰프는 정말 미쳤어. ]이내 필상이 재차 간략한 설명을 덧붙였다.
“고흐가 밤하늘을 그릴 때 즐겨 사용하던 코발트블루 색을 연출하고자,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는지 모르실 겁니다. 블루베리와 레드와인, 또 콜리플라워를 적절한 비율로 혼합하여 만든 퓌레입니다. 맛 또한 훌륭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 같군요. 달콤함과 묵직함이 적절히 뒤섞이며 황홀감을 선사해주는 마법의 퓌레거든요.”
말을 마친 필상이 이번에는 잘 구워진 채끝살을 접시 한편에 얹어냈다. 그리고는 그 위로 캐비어를 듬성듬성 흩뿌린 뒤, 빈 공간을 블랙 트러플을 강판에 갈아 뿌려내는 것으로 채워냈다.
[ 맙소사, 캐비어에 블랙 트러플이라니. 일단 가격은 장난 아니겠는데? ] [ 그러게. 그나저나 이제 진짜 얼추 구색이 갖춰진 것 같네. ]이윽고 필상이 스타주 한 명에게 눈짓을 해보이자, 스타주 한 명이 노란색 퓌레를 군데군데 떨어트리는 것으로 ‘별’을 연출하기 시작했다. 한데, 별 한 개를 그려낼 때마다 냄비를 교체했다.
이내 필상이 재차 설명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별이 빛나는 밤에는 도합 열한 개의 별이 그려져 있습니다. 창세기 37장에 나오는 ‘열한 별’ 에서 영감을 얻어냈다는 설이 지배적이죠. 또한, 양자리의 별들과 금성. 달이 위치해 있다고들 말합니다. 모두 다른 별이니만큼, 같은 종류의 퓌레로 색을 연출하는 것은 그저 흉내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한차례 “그래서.” 하고 말해 보인 필상이 덤덤한 어투로 덧붙였다.
“저희는 노란색을 띠고 있지만, 각기 다른 맛을 지닌 열한 종의 퓌레를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치자, 진피, 샤프란, 단호박, 커리, 오렌지, 치즈, 파프리카, 리에종, 옥수수, 갈릭 머스타드에 이르기까지···.”
필상이 말끝을 대강 흐려 보이자, 채팅창 위로 온갖 감탄과 추측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 저게 가능해? 그나저나 저 많은 퓌레들이 다 뒤섞이면 그닥 훌륭한 맛은 느끼지 못할 것 같은데···. ] [ 저 많은 퓌레를 섞긴 왜 섞어? 섞지 않고 조금씩 찍어서 맛봐야지. 사실 몇 가지 퓌레가 섞일 염려가 있게끔 플레이팅 된 요리는 일반적인 파인다이닝에서도 우습게 찾아볼 수 있잖아? ] [ 그러게. 그나저나 정말 궁금하긴 하다. 저 많은 식재료들이 조화를 이룰 수는 있는 건가? 만약 조화를 이룬다면 어떤 맛이려나···. ]이윽고, 접시 위로 ‘별이 빛나는 밤’과 엇비슷한 형태의 요리가 완성된 상태였다. 열한 개의 별과 달, 불안정한 형태로 하늘까지 뻗어있는 사이프러스. 이대로 내놓더라도 분명 다들 감탄을 금치 못할 터였다. 하나, 필상과 팀원들은 여기서 그칠 생각이 없는 듯 보일 따름이었다.
필상이 손을 까딱거려 보이자 곁을 지키고 있던 스타주 한 명이 솔 부분이 아주 얇은 브러쉬와 더불어, 흰색 액체가 잔뜩 담긴 짤주를 건네주었다. 이내 필상이 흰색 짤주 안에 담긴 액체를 접시 위에 짜내며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고흐는 하이라이트 효과를 넣기 위해 화폭 위에 직접 흰색 물감을 짜낸 뒤, 붓으로 마무리했다고 하죠. 우리가 선보이려는 ‘별이 빛나는 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흰색 퓌레는 배와 크림을 혼합해 만든 퓌레입니다. 이렇게 곳곳에 떨어트리듯 짜낸 뒤···.”
뚝, 뚜둑. 눅진한 질감의 흰색 퓌레가 곳곳에 흩뿌려졌다. 이내 필상이 곧장 얇은 브러쉬를 이용해 자연스레 퍼트리기 시작했다. 완성도가 다시 한번 격상하는 순간이었다.
흰색 퓌레는 밤하늘의 구름이 되었다. 또한, 별과 달을 둥글게 감싸며 몽환적인 느낌을 배가시켜주었다. 이윽고 필상이 곧장 하얗고 노란 형형색색 치즈를 강판에 갈아 흩뿌리는 것으로, 명화 속 교회 첨탑과 건축물들을 대강 연출해내기 시작했다.
이윽고.
“드디어 완성이군요.”
말을 마친 필상이 벨을 울렸다.
띵-.
“서비스.”
채팅창은 이미 한바탕 난리가 난 상태였다. 여론은 두 개로 나뉘어있었다. 한 부류는 완성된 요리의 외형에 감탄을 금치 못한 채로 극찬을 늘어놓고 있는 이들, 그리고 다른 한 부류는 맛에 대한 염려를 어쩌지 못하는 이들.
이윽고, 송출되는 화면이 바뀌었다. 가장 먼저 필상 팀의 메인 디쉬를 서비스받은, 모 평론가들의 테이블이 고스란히 송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내 서버가 테이블 위에 접시를 내려놓으며 나직이 말했다.
“A팀의 메인 디쉬, ‘반 고흐의 밤’ 입니다.”
그와 동시에 원형 테이블을 꿰차고 앉아있던 네 명의 평론가들이 모두 입을 살짝 벌린 채, “아···.” 하고 침음을 흘려대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선뜻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 들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이미 장내에 자리한 이들 중 태반이 A팀이 필상이 이끄는 팀, 또 B팀이 뱅크시 셰프가 이끄는 팀이란 사실을 간파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더더욱, 다들 충격에 휩싸일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모두가 이번 경연을 ‘쇼’이자, 한낱 ‘비즈니스’라 여겼다. 그렇기에 일각에서는 홀리데이 역시, 상업 파인다이닝의 뒤를 쫓는 중이란 수근거림이 일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 애초에 주어진 시간이 짧았던 만큼, 또 필상이 아트 퀴진과 관련된 이력이 전무한 만큼 그저 흉내 내는 정도의 요리를 선보이는 게 고작이리란 의견이 지배적이기도 했고 말이다.
이내 백발이 수더분한 늙은 평론가 한 명이 조심스레 입을 뗐다.
“정말 충격적이군요. 어느 쪽이든, 명화를 고스란히 접시에 옮겨내리라곤 미처 예상치 못했는데 말입니다···.”
그의 평이 포문을 열기라도 한 듯, 타 평론가들 역시 줄줄이 머금고 있던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면 튀김이 캔버스 역할을 대체하고 있는 것 같군요. 황홀합니다. 면의 결을 이용해 ‘별이 빛나는 밤’의 비연속적이고 동적인 터치를 묘사할 줄은···.”
“첨탑과 건축물의 묘사가 아쉽지만, 이 정도만 하더라도 충분히 놀라운 것 같기야 합니다. 이 정도만 하더라도 아트 퀴진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작품이거늘, 이상을 바란다면 과욕이겠죠.”
“그나저나 이 코발트블루 색감은 어떤 식재료로 연출한 겁니까? 열한 개의 별과 달은? 곳곳에 퍼져있는 둘러싸고 있는 흰색 퓌레는?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이 솟은 검은색 삼나무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대목이 한둘이 아닌지라, 대체 무엇부터 여쭤봐야 할지 모르겠군요.”
그 말에 서버가 천천히 질문을 받은 순서대로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도합 네 가지 색 색감의 비결을 시작으로, 노란색 퓌레를 이용해 연출한 열한 개의 별과 달이 모두 다른 맛을 지니고 있다는 것.
삼나무의 정체가 캐비어와 곱게 간 트러플을 끼얹은 채끝살 스테이크라는 것. 또, 마지막으로 먹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우선 포크로 캔버스 역할을 대체하고 있는 면 튀김을 지그시 눌러 깨트려 보시겠어요?”
그 말에 평론가들이 하나같이 내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잔뜩 찡그린 채 포크를 집어 들었다. 작품이다. 그것도 아트 퀴진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될 게 분명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엄청난 작품. 자신들의 손으로 이 명화를 쏙 빼다 박아놓은 요리를 망쳐야 한다는 점이 사무치도록 못마땅할 따름이었다.
하나, 그리될 운명으로 탄생한 ‘요리’가 아니던가?
파직-.
포크로 지그시 누르자, 캔버스 역할을 대체해주던 소면이 으깨졌다. 그 과정에서 스테이크 위에 얹어져 있던 캐비어와 곱게 간 블랙 트러플이 우수수 떨어져내렸으며, 각기 다른 색과 질감을 지닌 퓌레들이 살짝 뒤섞였다.
“이제 부서진 소면 조각과, 캐비어, 트러플, 스테이크에 각기 다른 종류의 퓌레를 스푼으로 살짝 묻혀내신 뒤 드시면 될 것 같네요. 도합 열네 종의 퓌레를 곁들이셔야 하니, 잘게 써시는 게 좋을 것 같고요.”
그 순간, 실시간 채팅이 재차 우르르 쏟아지기 시작했다.
[ 뜸 들이지 말고 얼른 먹은 다음, 뭐라고 말 좀 해봐! ] [ 제발! ] [ 답답해 죽을 것 같다. 빨리, 빨리···.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가장 먼저 맛을 본 평론가 한 명이, 고개를 뒤로 젖혀가며 세차게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댔다.
“Jes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