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178
178
Chapter42 – 이면 (1)
테스트 키친을 가장한 ‘경연’이 모두 끝난 지금, 홀리데이의 홀 안으로 어수선한 소음이 끊이지 않는 중이었다.
“그간 영 셰프의 커리어 중 태반은 매스컴이 만들어줬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오늘 보니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군요.”
“그러니 말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명화를 고스란히 접시에 옮겨내는 용감한 시도를 하다니, 부디 영 셰프가 약간은 고루해진 아트 퀴진 계에 젊은 피를 수급해주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귀빈들이 간단히 제공된 커피를 즐기며 저들끼리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던 찰나였다.
제 두 귀를 한껏 쫑긋 세운 채로, 같은 테이블에 배정된 평론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어수룩한 인상의 사내가 주변 눈치를 한 번 살피고는 넌지시 말문을 열었다.
“혹시 A팀이 뱅크시 셰프가 이끄는 팀은 아니었을까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트 퀴진에 아예 조예가 없는 어린 셰프가 이토록 완성도 높은 코스를 선보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의 말이 끝맺어지기 무섭게, 바로 곁을 지키고 앉아있던 뚱뚱한 사내가 미간을 팍 찡그린 채로 답했다.
“이봐요, 선생. 그간 뱅크시 셰프의 아트 퀴진을 몇 번이고 경험해보지 않으셨습니까?”
“예, 그랬습니다만···.”
“그런데도 이런 억측을 펼치시다니요? 이번 경연이 블라인드 테스팅으로 진행되었다고는 하지만, 어떤 의미가 있었나 싶은 의구심이 강하게 드는군요. 아마 애피타이저 메뉴가 서비스되던 무렵, 오늘 이 자리에 초대받은 모두가 각 팀을 이끄는 셰프가 누구인지 알아차렸으리라 확신합니다.”
말을 마친 뚱뚱한 사내가 같은 테이블의 사내들에게 한 명, 한 명씩 눈짓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그렇지 않습니까?’ 하고 동조를 구하는 것처럼 보일 따름이었다.
이내 콧수염을 기른 중년 평론가가 헛기침을 몇 번 해 보이고는 조심스레 제 의견을 보탰다.
“동감하는 바입니다. 특히 뱅크시 셰프가 이끌었던 B팀의 코스는, 그가 지닌 특징이나 특색이 지나치게 또렷이 느껴지더군요. 물론 좋게 말했을 때 특징이고 특색이지, 사실상 *매너리즘(*mannerism:예술 창작에 있어 독창성을 잃는 일)이라 봐도 무방한 코스였던 것 같군요.”
그가 험담의 포문을 열자, 인근에 앉아있던 평론가들이 하나둘씩 뱅크시 셰프에 대한 독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고루하다. 지루하다. 질린다. 이제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자연스러운 세대교체의 과정일 뿐이다.
앞서 영 셰프의 단점을 찾아내고자 혈안이 되어, 되도 않는 억측을 늘어놓던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으나, 글쎄? 처음 이와 같은 의문을 제기했던 어수룩한 인상의 젊은 평론가는 이들의 대화에서 환멸을 느꼈다. 돌연 머리가 지끈거리더니 어지럼증이 치솟았으며, 속이 진탕하더니 매스꺼운 느낌과 더불어 울렁거림이 점점 더 심해졌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뱅크시 셰프를 거장이니, 노장이니 하는 단어들로 칭송해주며 승리를 확신하던 이들이 아니던가?
‘정말이지···.’
그렇게 그가 느끼고 있는 환멸감의 크기가 점점 배가되고 있던 찰나였다. 장내의 소음이 천천히 멎어 들기 시작했다.
다름 아니라, 파인다이닝 홀리데이의 최고경영자 ‘찰스 사치’가 다시금 홀에 모습을 드러냈던 까닭이었다.
그런 찰스 사치의 등 뒤로는 오늘 훌륭한 요리를 선보였던 두 명의 셰프들이 나란히 선 상태였다. 우람한 체구의 노장 뱅크시 셰프와 더불어, 영 셰프라는 수식어가 한없이 잘 어울리는 젊은 동양인 청년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세 사람이 홀 중앙에 마련된 간이 무대 위에 차례로 올라서기 시작했다.
이윽고.
무대 위에 설치되어 있던 스탠딩 마이크 앞에 다다른 찰스 사치가 좌중들을 한 번 훑어본 뒤 말문을 열었다.
– 초대에 응해주신 귀빈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올리는 바입니다. 식사는 만족스러우셨는지 모르겠군요.
그의 말이 끝맺어지자 홀 곳곳에서 잔잔한 박수 소리가 새어 나오기를 잠시, 만류하듯 손바닥을 한 번 들어 올려 보인 찰스 사치가 느릿한 어투로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 테스트 키친 행사가 무사히 막을 내렸으니, 이제 슬슬 경연 결과를 결정해주셔야 할 것 같군요. 몹시 어려운 일이겠지만, 부디 아트 퀴진과 홀리데이의 미래를 위한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셨으면 할 따름입니다.
그 말이 끝맺어짐과 동시에, 다시금 장내 곳곳에서 잔잔한 술렁임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한데, 뭐랄까? 간간히 들리는 대화 내용만 놓고 보더라도, 오늘 대결의 승자가 진즉에 정해진 듯 보일 따름이었다.
“아트 퀴진과 홀리데이의 미래를 위한 선택이라, 이미 답이 정해진 것 같군요.”
“세상이 내버려 두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죠.”
“그나저나, 뱅크시 셰프는 안 됐군요.”
“어쩌겠습니까? 홀리데이의 전통적인 룰일 뿐이거늘.”
지척에서 들려온 소음들이 연단 위에 오른 이들의 귀에 닿지 않을 리 없었던 터라, 뱅크시 셰프의 표정이 연신 씰룩대는 중이었다.
마치 모두가 자신의 몰락을 바라고 있기라도 했던 것마냥, 신이 나서 떠들어대는 중이었다. 개중에는 ‘친구’니, ‘동료’니 하는 낯간지러운 말들로 관계를 포장했던 이들의 목소리 역시 더러 섞여 있었다.
‘더러운 놈들.’
그의 큼지막한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마치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대가로, 공개처형장에 끌려 온 사형수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우스웠다.
작금의 상황이, 자신의 처지가, 저들의 태도가, 모든 것들이 그렇다면 자신이 저지른 범죄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 와중에 홀리데이의 서버들은 부지런히 움직여댔다. 홀 곳곳을 순회하며, 초대받은 평론가들에게 펜과 투표용지를 나눠주었다. 슥, 스슥. 펜과 종이가 맞닿는 소리가 곳곳에서 울렸다.
몇몇 평론가들과 뱅크시 셰프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닿기도 했으나, 그조차도 잠시뿐이었다. 다들 딴청을 피우듯 그의 시선을 피한 뒤, 투표용지에 무언가를 적어 넣어댈 따름이었으니 말이다.
투표가 금세 완료되자, 오늘의 형 집행자랄 수 있는 찰스 사치가 한 치의 굴곡조차 없는 어투로 말문을 열었다.
– 투표가 모두 끝난 것 같군요. 두 셰프 모두 워낙 훌륭한 코스를 선보여주셨던 터라, 결정에 어려움이 있으셨을 텐데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지체 없이 곧장 개표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윽고 서버들이 자신들이 담당한 구역의 투표용지가 담긴 함을 든 채로, 한 명씩 연단 위에 올라섰다. 그렇게 지독한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찰스 사치가 곧장 제 손을 뻗어서는 투표용지 한 장을 꺼내 들어 확인한 뒤 입을 뗐다.
– 셰프 필상.
다시.
– 무효표.
다시.
– 셰프 뱅크시.
다시.
– 셰프 필상.
찰스 사치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고작 세 종류에 지나지 않았다.
셰프 뱅크시, 셰프 필상, 혹은 무효표.
그는 마치 기계라도 된 양, 단 한 치의 굴곡조차 없는 어투로 세 단어만을 반복해 말할 따름이었다.
단조로운 목소리가 흩어진 뒤면 장내에 도로 정적이 드리웠다. 개표 초반에는 엎치락뒤치락하는 느낌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박진감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일방적인 형태로 변질되었다.
셰프 필상, 셰프 필상, 셰프 필상···.
그렇게 개표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뱅크시 셰프의 낯빛은 점점 더 어두워져 가고만 있을 따름이었다.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선 젊은 동양인 셰프의 이름이 족히 두 배는 더 호명되었음이 분명했다. 확실해졌다. 패배다. 그것도 심지어 일생토록 맛본 패배를 통틀어 가장 굴욕적인 패배.
당장 현장에 있는 이들뿐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수만 명이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는 패배다. 쉽사리 잊혀지지 않을 패배였다. 한동안 여러 사람들의 입을 오르내릴 터였으며, 자신의 패배를 공공연히 떠들어대는 칼럼과 비평이 잔뜩 쏟아져 나와서는 웹 사이트 곳곳에 박제될 터였다.
그뿐이던가?
사랑하는 직장을 잃게 될 터였다. 그간 오랜 시간에 걸쳐, 힘겹게 쌓아 올린 명성에 금이 갈 터였다. 일생을 통째로 부정당하는 불쾌한 기분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생각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심장박동이 점점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얼굴은 화끈댔으며, 손발이 저려 왔다.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마음만 같아서는 당장 어딘가에 숨고 싶었다. 패배를 받아들일 테니, 개표를 멈춰달라 애원이라도 하고 싶은 심경이었다.
그런 와중에 하등 쓰잘 데 없는 생각들이 의식을 비집고 튀어나왔다. 만약 자신이 조금 더 골몰했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아니다.
바꿀 수 없는 결과다. 아무리 골몰했다 한들, 영 셰프가 선보인 ‘반 고흐의 밤’을 비롯한 여러 메뉴처럼 파격적인 요리를 선보이지는 못했을 터였다.
– 마지막 표로군요. 영 셰프.
이윽고, 마지막 표까지 모두 호명을 마친 찰스 사치가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필상에게 다가서며 입을 뗐다.
– 영 셰프, 승리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렇게 필상의 승리와, 뱅크시 셰프의 패배가 동시에 확정되었다. 이내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 지금. “끝났군”, 뱅크시 셰프의 바짝 말라붙은 입술 틈새를 비집고 나온 말이 허무하게 공중에서 흩어졌다.
*
“철수하지.”
주방으로 돌아온 뱅크시 셰프가 꺼낸 첫마디였다. 예, 셰프.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답해 보인 팀원들이 곧장 정리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선뜻 나서 말을 건네지 못했다. 뱅크시 셰프의 심경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이들이었던 까닭이었다. 이내 수 셰프가 긴 숨을 토하듯 내쉬어 보이고는 다가와 물었다.
“셰프, 괜찮으십니까? 죄송합니다. 어떤 위로의 말을 드려야 할지···.”
“쯧, 위로는 무슨. 새삼스레.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 곳이지 않나?”
덤덤한 어투로 답해 보인 뱅크시 셰프가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머금은 채, 빛이 바랜 제 조리용 칼을 하나씩 하나씩 키트에 반듯하게 꽂아 넣기 시작했다. 무심한 척하고 있었으나,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굳이 이곳에 머무를 필요가 없겠지. 우선 선샤인 코스트 인근의 저택을 내놓고 고향 인근의 집을 알아보는 게 좋겠어. 당분간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쉬어야겠어. 운동을 하고 음악을 듣고 책을 보면서. 아니면 고향에 자그마한 파인다이닝을 여는 것도 좋겠어. 아니지, 아니야. 아예 이번 기회에 은퇴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그러고 보니,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쉬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그때, 등 뒤편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뱅크시.”
이내 뱅크시 셰프가 고개를 돌려서는, 제 등 뒤편에 서 있는 폴 보티즈 셰프를 빤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어려운 일이겠지만, 지나치게 낙심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자네의 아트 퀴진 역시 훌륭했다고 생각하네. 다만···.”
“지금 저를 위로하시는 겁니까? 눈물 나게 고맙군요. 하지만 저는 패했고 규칙대로 이곳을 떠나게 됐죠. 그게 전부인 것 같군요.”
덤덤한 투로 답해 보인 뱅크시 셰프가 제 나이프 키트의 지퍼를 채우며, 진중한 투로 재차 말문을 열었다.
“셰프. 아니, 선배. 저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선배를 싫어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싫습니다. 목소리를 들으면 귀가 따끔거리고 얼굴을 마주하고 있노라니 역겨운 기분을 어쩔 수가 없군요.”
“이해하네. 이번 경연 역시 필상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이 아닌, 나에 대한 악감정 때문에 빚어진 일이지 않나? 자네는 여전히 내가 과대평가된 셰프라고 생각하는 것 같더군.”
“아뇨, 인정합니다. 만인에게 칭송받아 마땅한 훌륭한 셰프예요. 제가 선배를 싫어하는 이유는 하나뿐입니다. 선배는 제가 쿡 헬퍼이고 선배께서 제 오너이자 스승이던 때 나눴던 대화를 모두 잊지 않으셨습니까?”
“이보게, 뱅크시. 그건···.”
“관점의 차이겠죠. 다만, 셰프는 많은 돈을 벌기 시작한 이후로 변했고 저는 우리가 젊었던 적 매일 밤을 지새우며 나눴던 대화를 잊지 않았습니다. 저는 당시의 약속과 맹세를 지키고자 더 나은 아트 퀴진을 만들고자 골몰하며 살아왔어요. 다만, 결과가 썩 좋은 것 같지는 않군요. 새파랗게 어린 후배에게 밀려 사랑하는 직장을 잃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이내 폴 보티즈 셰프가 무어라 선뜻 답하지 못한 채, 제 입술만 옴짝달싹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뱅크시 셰프가 “철수.” 하고 말한 뒤, 먼저 주방을 나섰고 그의 팀원들이 그런 그의 뒤를 따랐다. 그때, 뒤에서 폴 보티즈 셰프의 노쇠한 음성이 들려왔다.
“자네는 좋은 동료였어. 많은 걸 배웠네. 비록 함께 아트 퀴진을 이끌어나가는 선구적인 셰프가 되자는 약속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뱅크시 셰프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 늙어버린 제 첫 사수이자, 오너. 동료이자 스승이었던 폴 보티즈 셰프를 바라보며 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저 각자의 길을 걸었을 뿐이겠죠. 케케묵은 감정들은 모두 주방에 남겨둔 채 떠나려 합니다. 경쟁과 저를 지켜보는 이들의 태도에 지쳤어요. 당분간 푹 쉴 겁니다. 그러니, 언제든 편히 연락주시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리고는 도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자꾸만 수십 년 전의 과거가 떠올랐다.
지금은 세계적인 셰프가 된 폴 보티즈 셰프가 발에 치이도록 많은 평범한 오너 셰프에 불과하던 때. 비록 경력과 실력은 부족하나 그 어떤 직원보다도 열성적이었던 자신과 함께 주방에서 밤을 새워가며 연구를 빙자한 수다를 떨어대던 때.
신이 나서는 어떤 셰프가 되고 싶은지에 대해 침을 튀겨가며 떠들어대던 때의 기억들.
함께 아트 퀴진을 논하던 것은 잠시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난한 오너 셰프에 지나지 않았던 폴 보티즈의 파인다이닝은 입소문을 타며 유명해졌다. 또 폴 보티즈 셰프는 금세 태도를 고쳤다.
더는 아트 퀴진에 대해 골몰하지 않았다. 금세 상업적인 요리만을 선보이는 곳으로 변질되었으니까.
저토록 낯짝이 두꺼워 숨 쉬는 것처럼 말과 태도를 바꿔대는 평론가들의 눈치를 살펴 가며, 더 많은 부와 명예에 집착하는 요리를 내놓는 곳으로 말이다. 사업가라도 되는 양 매거진 인터뷰에, 방송국에, TV쇼 따위에 얼굴을 비추며 이름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댔다.
따지고 보면 폴 보티즈에게로 향해있던 오랜 원념 탓에 빚어진 일이다. 진즉에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는 사실을 오래도록 받아들이지 못해 빚어진 일이다. 그 여파로 인해 명성과 직장을 동시에 잃었다. 불명예스러운 은퇴를 맞이하게 되었다.
다만, 후회는 없었다.
어차피 시간을 되돌린다 한들 결과는 바뀌지 않을 터였다. 영 셰프의 천재적인 재능에 맞서 이길 자신도, 폴 보티즈 셰프에 대한 분노를 억누를 생각도, 또 영 셰프가 걸어올 치기 어린 승부를 피할 생각도 없었다.
몇 번이 되풀이된다 한들 마찬가지일 터였다.
그렇게 뱅크시와 그의 팀원들이 홀 중앙에 접어들자, 장내에 자리해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들에게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평론가, 기자, 친분이 두텁던 아티스트들, 오너 찰스 사치, 필상에 이르기까지···.
이윽고, 뱅크시 셰프가 필상의 바로 앞에 잠시 멈춰 섰다.
“영 셰프, 정말 훌륭하더군.”
“과찬이십니다.”
“하지만 절대 잊지 말게.”
말을 마친 뱅크시 셰프가 평론가들을 쭉 둘러본 뒤 덧붙였다.
“지금 나를 손가락질하며 수근대고 있는 이들 모두가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입이 닳도록 내 칭찬을 늘어놓던 이들이야.”
“그렇습니까?”
“그래. 자네라고 해서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비참한 상황을 겪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는 사실을 항상 잊지 말게.”
“새겨듣겠습니다.”
“이곳은 한낱 신기루에 불과한 곳이야. 모든 명성이 허상에 불과한 곳이지. 새로운 부품이 나타나면 자네는 대체될 거야. 그저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게 가장 흥미롭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곳이지.”
한차례 “그럼.” 하고 말해 보인 뱅크시 셰프가 나직이 덧붙였다.
“경치 좋은 곳에서 자네의 몰락을 기도하겠네.”
나직이 말해 보인 뱅크시 셰프가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제 친구였던 평론가들과 아티스트들을 바라보며 나직이 중얼댔다.
“머저리들, 다시는 보지 말자고.”
그렇게, 그와 팀원들이 홀리데이를 나섰다. 아주 잠깐 가라앉았던 분위기는 금세 복구되었다. 들뜬 분위기 속에서, 모두가 벌 떼처럼 필상의 주위에 몰려들어 칭찬의 말을 늘어놓을 따름이었다.
반면, 필상은 속을 읽을 수 없는 눈을 한 채로 뱅크시 셰프가 나선 문을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이곳이 한낱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모든 명성이 허상에 불과하다는 말이.
정말 모든 게 신기루와 같을까?
아직은 해결할 수 없는 의문이 머릿속을 꽉 메운 상태였다. 일련의 죄책감 역시 잔잔히 일렁이는 중이었다. 자신의 회귀와, 그 이후의 행보가 많은 이들의 삶과 운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지만, 석연치 않게 느껴지는 것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어려운 싸움 끝에 힘겹게 거둔 승리라지만, 마냥 찝찝하게 여겨질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