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184
184
Chapter43 – Under The Sea (2)
필상은 존 에프 케네디 공항에 착륙하기 무섭게, 대기하고 있던 세단 차량에 탑승했다.
간만에 돌아온 뉴욕은 여전했다. 짜증이 절로 치솟는 교통 체증을 시작으로, 무엇이 그리 급한 것인지 앞만 보며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는 행인들, 번쩍이는 불빛들···.
세단 차량의 뒷자리를 꿰차고 앉은 채, 연신 검게 코팅된 창 너머로 보이는 거리를 바라보고 있기를 잠시.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필상이 탄 차량이 파우스트가 위치한 6번가에 들어섰다.
익숙한 풍경이 창 너머로 펼쳐지기 시작하자, 이제야 돌아왔음이 실감이 나는 듯했다. 이내 필상이 괜스레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키고자 심호흡을 한 번 해 보이고는, 제 손목에 채워진 시계를 한 번 내려다보았다.
저녁 열 시.
다들 피곤이 역력한 몰골을 한 채로, 주방 마감 업무에 매진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단 차량이 파우스트 매장 바로 앞 대로변에 부드럽게 멈춰 섰다.
돌아왔음을 알릴 시간이었다.
*
쨍-.
얇은 스트레이트 잔 네 개가 허공에서 부딪히자, 안에 담겨있던 술이 가볍게 일렁이기를 잠시.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나직이 말해 보인 필상이 잔 안에 담겨있던 술을 가볍게 들이켜고는, 집무실 쇼파의 상석을 꿰차고 앉았다.
그런 필상을 기점으로 홀 매니저 베니와 수 셰프 이정준, 마지막으로 디저트 섹션의 총괄 셰프 줄리에 이르기까지. 이내 줄리가 피로감이 역력한 얼굴을 한 채로 되물었다.
“오늘은 좀 쉬시지 그러셨어요? 하여튼, 대단하시다니까. 돌아오신 첫날부터 업무 회의 소집이라니···.”
“안 그래도 오늘은 간단히 대화 나눈 뒤 끝낼까 해요.”
탁.
빈 잔을 내려놓은 필상이 양손을 깍지 낀 채로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다들 피곤하실 테니, 오늘은 간략히 정리한 내용만 말씀드리고 끝내도록 할게요.”
말을 마친 필상이 협탁 위에 놓여있던 갈색 서류 봉투를 턱짓으로 가리켜가며 덧붙였다.
“한 번씩 살펴보세요. 이틀 전에 간신히 작성을 마친, 이번 ‘F/W 시즌 기획안’이에요. 시즌 메인 컨셉을 시작으로, 인테리어 초안, 레시피 및 메뉴 구성까지 전부 다 담겨있어요.”
그 말에 다른 이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가히 살인적이라 해도 무방할 법한 스케줄 속에서, F/W 시즌 기획안 준비까지 끝냈으리라곤 미처 예상치 못한 듯 보일 따름이었다.
이내 한차례 “허···.” 하고 침음을 흘려 보인 이정준이 제 아랫입술을 한 번 핥아내고는 되물었다.
“대체 언제 처리하신 거예요···?”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요.”
“이러니까 이상한 소문이 돌죠.”
“이상한 소문?”
필상이 되묻자, 줄리가 끼어들어서는 답했다.
“뉴욕 요리사들 모이는 펍(Pub)에서 유행하는 농담이에요. 파우스트의 셰프 집무실에 비밀 통로를 거쳐야 들어갈 수 있는 지하실이 숨겨져 있는데, 그 안에 외계인이 납치되어 있다나 뭐라나···.”
이내 필상이 미간을 살짝 찡그린 채, “벌써 들킨 건가?” 하고 중얼대자 이정준이 장난스러운 투로 답했다.
“그만, 그만. 셰프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농담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단 말이에요.”
“알겠어요.”
낮은 웃음과 함께 답해 보인 필상이 제 길쭉한 다리를 꼬고 앉으며, 베니에게 넌지시 물음을 건넸다.
“그나저나, 요즘 업계 내에서 파우스트의 별명이 ‘*투 올 쓰리’(*Two or Three)라면서요?”
한차례 “예, 셰프.” 하고 답해 보인 베니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나직이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번 F/W 시즌의 완성도 및 성공도에 따라, 투 스타일지 쓰리 스타일지가 정해질 것이라는 의미의 별명 같습니다.”
딱히 내색하는 이는 없었으나, 다들 하나같이 ‘투 올 쓰리’라는 별명에 만족하는 중이었다. 그렇기에 베니 역시 약간은 의기양양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별명 속에 담긴 의미를 풀어준 것이었고 말이다.
하나, 필상의 반응은 달랐다.
못마땅하다는 듯 미간을 찡그린 채로 고개를 몇 번 끄덕이더니, 분기 탓에 엷게 떨리는 목소리로 답할 뿐이었다.
“이번 F/W 시즌 시작과 동시에, ‘투 올 쓰리’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은 치워버리는 게 좋겠네요.”
싸늘한 목소리가 허무하게 흩어지기를 잠시, “잘 들어요.” 하고 말해 보인 필상이 잠시 틈을 두고는 덧붙였다.
“우리는 무조건 세 개의 별을 받아내야만 하며, 무조건 ‘최고’라는 평가를 이끌어 내야만 해요. 그 외의 평가는 모두 한낱 모욕이자 수치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 말에 모두가 말없이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 본래 일과 연관된 영역에서의 욕심이라면, 좀처럼 주체하지 못하곤 하는 필상이었다.
한데, 오늘은 뭐랄까?
그 정도가 전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열정으로 반들대던 두 눈이, 이제는 광기로 반들대는 게 아닐까 싶은 착각마저 일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말인데, 저 역시 이번 F/W 시즌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어떤 외부 스케줄도 소화하지 않고 준비에만 몰두할 생각입니다.”
“셰프. 그래도 만약 일정보다 조금 빠르게 준비를 마칠 수 있게 된다면, 파급력 있는 TV 프로그램 몇 개에 얼굴을 비추는 정도는···.”
베니가 무어라 말을 이어나가려던 찰나, 필상이 고개를 한 번 내저어 보이고는 답했다.
“아뇨. 설령 준비가 빠르게 끝난다고 하더라도, 남는 시간은 보완 및 개선에 쏟을 예정입니다. 무조건 쓰리 스타를 받아내야 해요. 괜한 변수를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쓰리 스타를 향한 집념과 집착이 느껴지는 말에, 베니 역시 마지못해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유명 TV 프로그램 및 영향력 있는 매거진과의 사전 인터뷰가 훌륭한 마케팅 수단인 것은 맞지만, 적어도 ‘최연소 미슐랭 쓰리 스타 셰프의 파인다이닝’이란 타이틀 만큼의 마케팅 효과를 지니고 있지는 못할 테니 말이다.
“참고로 미슐랭 쓰리 스타는 시작일 뿐이에요. 만약 그렇게 파우스트가 내년도 ‘미슐랭 가이드 뉴욕’의 쓰리 스타 파인다이닝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면···.”
말끝을 흐려 보였던 필상이 속삭이듯 말했다.
“내년 한 해 안에, 제 이름을 걸고 영업하는 파인다이닝의 수를 최소 열 곳 이상으로 확장할 생각입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파우스트는 다시금 새로운 시즌 준비를 위한 휴지기에 접어들었다.
주말을 끝으로 영업을 중단하고 새로운 콘셉트에 부합하는 인테리어를 갖추고 소품을 제작하기 위한, 또 코스의 디테일을 다잡기 위한 본격적인 준비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그렇게 하루, 하루, 또 하루.
무려 한 달이란 시간이 속절없이 흘렀다. 파우스트의 내부는 완벽히 가려진 채였다. 그사이, 파우스트에 대한 궁금증은 점점 더 과열되어갈 따름이었다.
“저 안에 대체 뭐가 숨겨져 있으려나. 대체 뭘 숨겨 뒀길래, 저렇게 꽁꽁 숨겨 두고 있는 걸까···.”
나직이 말해 보인 ‘데일리 파인다이닝 매거진’ 측의 기자, 멀린이 제 카메라 조리개를 만지작대기 시작했다.
며칠째 파우스트 매장 앞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는 그였으나, 애석하게도 쓸 만한 정보는 단 한 개도 건지지 못한 상태였다. 다름 아니라 통유리 벽을 따라 빈틈 하나 없이 설치된, 암막 커튼 탓이었다.
이내 그의 곁을 지키고 있던 타 매거진 측 기자가 철수 작업에 전념해가며 이죽거리는 투로 답했다.
“대단한 걸 준비해뒀으니, 이 고생을 시키는 거 아니겠어? 어차피 내일이면 다 알게 될 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
그 말에 멀린이 피식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답했다.
“그래, 내일이면 다 알 수 있겠지.”
그렇게, 어느덧···.
파우스트의 F/W 시즌, 첫 번째 영업일이 밝았다.
*
[ 이번 F/W 시즌 역시 혁신적일 거야. 지난 시즌과 달리, 영 셰프가 방송에 아예 얼굴 한 번 비추지 않고 있잖아? 분명 주방에서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거겠지. ] [ 글쎄? 반대로 생각해 볼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 지난 시즌들만큼 준비가 순조로웠더라면, 굳이 효율적인 마케팅 수단을 포기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은데. ]스륵-.
[ 너희가 아무리 폄하해 봤자, 파우스트는 투 올 쓰리(Two or Three) 파인다이닝이야. 장담하는데, 구두 굽으로 짓이긴 리조또 따위를 내놓지 않는다면 미슐랭 투 스타는 확정일걸? ]스륵-.
[ 싸우지 마, 머저리들아. 어쨌든, 필상이 대단한 건 사실이잖아? 매 시즌마다 컨셉과 메뉴에 변화를 주는 파인다이닝이 또 어디 있겠어? ] [ 왜 없어? ‘엘 불리’ 있잖아. 물론, 얼마 못 가서 경영 부진 문제로 폐업했지만. ] [ 맞아. 그 점은 정말 대단하지. 대부분의 쓰리 스타 파인다이닝들도 짧게는 일 년, 길게는 이삼 년에 한 번씩 메뉴를 교체하곤 하니까···. ]스륵-.
이내 제 휴대폰 화면 위로 떠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을 훑어보느라 여념이 없던, ‘중년 여성’이 나직이 말문을 열었다.
“확실히 파우스트의 이번 F/W 시즌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가 정말 엄청나긴 하네요. 업계 역사상 이토록 강한 조명을 받았던 셰프가 있었는지 의문이 들 지경이에요.”
현재 도합 네 개의 메이저급 매거진에 푸드 칼럼을 연재 중인 ‘피오나’였다. 다만, 오늘 그녀가 파우스트를 찾은 목적은 평론 및 칼럼 저술을 위한 취재 때문이 아니었다.
심사.
그녀 역시 내년에 발행될 ‘2014 미슐랭 가이드’의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으니 말이다.
이내 그녀의 곁을 꿰차고 있던 중년 남성이 나직이 답했다.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영 셰프의 등장 이후로 셰프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발전이 가속화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제 ‘문화’로 자리매김해가는 느낌이지 않습니까?”
지난번 파우스트의 S/S 시즌 테스트 키친 당시 몹시 후한 평가를 내렸던 바 있는, 미슐랭 측 심사위원 ‘퍼스트 말론’이었다.
“맞아요. 영 셰프와 빌리 반 코퍼레이션이 거둔 성공 덕에, 셰프 매니지먼트 및 에이전시 산업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네요.”
“뭐, 아직 영 셰프와 빌리 반의 독주를 막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셰프와 기업은 찾아볼 수 없지만요.”
말을 마친 퍼스트 말론이 제 턱을 살살 어루만져가며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그나저나 이번에는 저 암막 커튼 뒤로, 어떤 풍경이 감춰져 있을지 정말 궁금하군요.”
그 말에 피오나 역시 동조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댔다. 무수히 많은 이들이 파우스트의 매장 앞에 길게 줄지어 서 있는 지금조차, 통유리 벽을 통째로 가리고 있는 암막 커튼이 걷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어쩌면, 앞으로도 걷어질 일이 없을지 모른다. 가려진 파우스트의 내부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는 것은, 안에 들어선 이들에게만 허락된 일일 지도 모를 노릇인 것이다.
그렇게 매장 앞에 줄지어 서 있는 모두가 기대감을 감추지 못한 채, 저들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던 찰나였다.
“어? 입장이 시작됐나 봐요.”
줄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음을 인지한 피오나가 한껏 들뜬 목소리로 꺼내 보인 말이었다. 입장은 신속히 이루어졌다. 입구에 선 직원 한 명이 예약 번호와 이름을 확인하면, 대기하고 있던 서버가 배정된 테이블로 안내해주는 식이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피오나와 퍼스트 말론의 차례가 돌아왔고 그들을 담당하게 된 서버가 한껏 예를 갖춘 채 말했다.
“지정된 테이블로 안내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윽고, 그들이 다시금 변화를 맞이한 파우스트의 홀에 첫걸음을 내딛던 순간.
“역시···.”
“와우···.”
두 사람이 약속이라도 한 양, 동시에 탄성을 흘려 보였다. 다름 아니라, 눈앞에 펼쳐진 경이로운 풍경 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