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188
188
Chapter44 – 스타 셰프 (1)
널찍한 사각 접시 위로 담겨있는 것은 다름 아닌, ‘해변’이었다. 노릇하게 튀긴 빵가루를 이용해 연출해낸 모래사장과 더불어, 코발트블루 색 퓌레와 흰색 퓌레를 섞어 연출한 바다와 표면 위로 맺힌 윤슬까지···.
가장 압권인 대목은 그 중심부에 놓여있는 랍스터였다. 먹기 좋게끔 손질을 해둔 상태였으나, 껍질을 버리지 않고 본래의 형체대로 플레이팅해둔 상태였던 것이다.
“첫 번째 메인디쉬, ‘선샤인 코스트’입니다.”
“호주에서 영감을 얻었나 보군요.”
나직이 답해 보인 그가 곧장 포크를 집어 들자, 서버가 간략한 설명을 곁들여주기 시작했다.
“버터를 이용해 풍미를 배가시킨 랍스터 구이입니다. 잘 구워진 랍스터 속살 위로 빵가루를 입혀내신 뒤, 퓌레를 살짝 찍어 맛보시면 더 맛있게 드실 수 있으실 겁니다.”
고맙습니다, 나직이 답해 보인 퍼스트 말론이 곧장 랍스터 속살을 빵가루 위에 떨어트린 뒤 살살 굴려대기 시작했다. 표면에 맺힌 수분 덕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탱글탱글한 랍스터 속살의 겉면 위로 빵가루가 듬뿍 달라붙었다.
꿀꺽, 입안에 고인 침을 한 번 삼켜내 보인 그가 곧장 코발트블루 색채를 지닌 퓌레를 살짝 묻혀냈다.
그리고는 포크에 꿰뚫린 랍스터 속살을 잠시 들여다보다가, 곧장 제 입안에 쏙 집어넣고는 맛을 음미해나가기 시작했다.
파사삭, 파사삭.
그가 굳게 다문 입을 오밀조밀 움직일 때마다, 빵가루가 바스라지는 소리가 울려댔다. 그럴수록 퍼스트 말론의 입가 위로 피어오른 미소는 점차 짙어지는 중이었고 말이다.
‘역시···.’
말 그대로, 기대 이상의 맛이었다. 완벽하게 튀겨낸 빵가루 입자의 바삭한 식감과 쫄깃한 랍스터의 식감이 마치 본래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어우러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심지어 블루베리를 이용해 만든 듯 보이는 퓌레 역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듯했다.
일련의 산미와 은은한 단맛 덕에, 빵가루에 스며들어있던 기름기가 중화되는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화려한 외형, 화려한 식감, 화려한 맛···.’
충격을 금치 못하고 있는 것은 피오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예 넋을 놓다시피 한 채로, 막 서비스된 메인 디쉬를 맛보느라 여념이 없는 상태였으니 말이다.
다시금 정적이 내려앉은 테이블 위로 달그락, 달그락. 포크와 접시가 맞닿는 소리만이 쉼 없이 울려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두 사람이 시식을 마치고 입을 게워내고자 생수 몇 모금을 들이켜던 찰나였다.
“그럼 곧장 두 번째 메인 디쉬를 서비스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두 번째 케이크는, 마치 ‘케이크’를 연상케 하는 외형을 지닌 요리였다. 틀을 이용해 동그랗게 손질한 대구살, 매쉬드 포테이토, 마지막으로 푸아그라 스테이크에 이르기까지···.
색감이 엇비슷한 요리를 같은 모양, 같은 크기, 같은 두께로 잘 담아낸 형태였으니 말이다. 또한 맨 꼭대기에 놓인 푸아그라 스테이크 위로 생긴 그을음이나, 후추 입자 따위가 모래사장을 연상케 할 따름이었다.
“두 번째 메인디쉬 ‘햇살 아래 모래들’입니다. 포크로 썰어내듯 잘라, 세 개 요리를 한 번에 맛보시면 더욱 맛있게 드실 수 있으실 것 같네요.”
이내 두 사람이 서버의 설명대로 겹겹이 쌓아진 요리들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낸 뒤, 곧장 맛을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퍼스트 말론이 “하아.” 하고 묵은 숨을 내쉬어 보이고는 답했다.
“이거 정말 큰일이군요.”
그 말에 피오나가 “왜?” 하고 묻는 것 같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곧장 그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돌아가는 대로 기드 미슐랭(*미슐랭 가이드) 측으로 보내야 할 보고서와 연재 칼럼을 작성해야 할 텐데,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이 몇 개나 되겠습니까? 맛있다, 훌륭하다, 황홀하다, 아름답다···.”
그의 말에 피오나의 표정 역시 덩달아 심각해졌다.
“아, 정말 그렇네요···.”
곤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
코스는 매끄럽게 이어졌다. 두 개의 메인 디쉬 이후로 *프로마주(*치즈) 코스가 전개되었으며, 연달아 디저트 메뉴가 서비스되었다. 비록 디저트 코스의 경우 단품 메뉴 하나로, 단출하게 구성된 상태였으나 이 또한 큰 여파를 일으켰다.
“허···.”
다름 아니라, 디저트 메뉴 역시 바닷속을 연상케 하는 외형을 지니고 있던 까닭이었다.
조개 모양의 마들렌과 더불어, 불가사리 모양 초콜릿, 암초를 연상케하는 외형과 거친 질감의 검은색 아이스크림이 한 접시에 함께 서비스 된 것이다.
테이블 위로 이런저런 평가가 오갈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다.
파우스트의 디저트 섹션이 개별적으로 운영된다는 사실은, 사실상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레이첼의 꿈이란 상호하에, 필상이 아닌 젊은 파티쉐 ‘줄리’가 섹션의 총괄 셰프직을 도맡고 있다는 사실이 이미 진즉에 공개되었던 바 있으니 말이다.
비록 그녀가 지난 시즌에도 혁신적인 디저트를 선보이며 이름을 떨치는 데 성공하기야 했다지만, 불과 한 시즌 만에 이토록 큰 발전을 이루리라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었다.
탁.
티스푼을 내려놓은 퍼스트 말론이 짧은 신음을 끝으로 말문을 열었다.
“정말 놀랍군요. 이제 파우스트는 상업성과 예술성의 경계에 서 있는 느낌입니다. 애매하다는 뜻이 아니라, 두 가지 요소를 모두 담아낸 것 같은 느낌이라 해야 할지···.”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에요. 말론, 그나저나 혹시 외람된 질문 하나 드려도 괜찮을까요?”
“얼마든지요.”
“코스가 끝났으니 여쭤보는 건데, 기드 미슐랭 측으로 송부하게 될 보고서 말이에요.”
한껏 낮은 목소리로 물음을 건넨 그녀가 좌우를 한 번 둘러본 뒤 조심스레 되물었다.
“미슐랭 스타 항목에 기입하실 숫자가 궁금해서요.”
“진심이십니까?”
“물론, 평가단끼리도 비밀에 부쳐야 하는 사실이라지만···.”
“아뇨, 그런 뜻이 아닙니다.”
단호한 어투로 그녀의 말을 끊은 퍼스트 말론이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곧장 덧붙였다.
“파우스트가 거머쥐게 될 미슐랭 스타는 이미 정해진 것 같은데요?”
“혹시···?”
“쓰리 스타.”
짤막하게 답해 보인 그가 괜히 시선을 옮겨서는, 주방 쪽을 바라보며 나직이 덧붙였다.
“파우스트가 쓰리 스타를 받지 못하게 된다면, 기드 미슐랭은 공정성에 대한 의심을 사게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하기야···.”
“만약 파우스트가 투 스타를 받게 된다면, 이미 쓰리 스타를 받은 무수히 많은 파인다이닝들 역시 투 스타로 강등되어야겠죠. 쓰리 스타라는 점수 자체가 사라져야 할 겁니다.”
그의 말에 피오나 역시 미소를 머금은 채 답했다.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예요. 파우스트야말로, 또 영 셰프야말로 파인다이닝 업계 내에서 만큼은 ‘최고’의 기준이 될 자격을 갖추고 있는 곳인 것 같네요.”
*
마냥 정신없던 F/W 시즌 첫째 날 영업이 순식간에 막을 내렸다. 다시금 홀과 주방에, 또 디저트 바에 적막과 고요함이 드리운 것이다.
“축하드려요. 들어오는 길에 베니에게 들었는데, 최고 매출액을 갱신하셨다고요?”
방금 막 집무실에 들어선 멜리가 꺼낸 말에, 무너지듯 소파 위에 힘없이 앉아있던 필상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답했다.
“고마워요. 예상은 했지만, 정말 정신없는 하루였던 것 같네요. 첫날인지라, 주방에서 풀 타임 근무를 해야 했거든요.”
“수고 많으셨어요. 그나저나, 느낌이 어때요?”
그 말에 필상이 피식 미소를 지어가며, “미슐랭?” 하고 되묻자 멜리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필상이 세수하듯 제 얼굴을 쓸어내리며 답했다.
“실은 미슐랭 심사단이라 의심되는 팀이 한 팀 있었어요. 오픈과 동시에 방문한 팀인데 평론가 ‘퍼스트 말론’과 ‘피오나’, 두 사람이 함께 방문했더라고요.”
“확실히 의심스럽긴 하네요.”
두 사람은 접점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들이다. 서로 다른 매거진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음은 물론이며, 소속 에이전시 역시 전혀 연관성이 없는 곳이었으니 말이다.
“단연 두 사람이 접점이 없다는 점뿐 아니라 무조건 2인조로 움직인다는 규칙, 와인 페어링과 생수 주문, 응대에 대한 집착 등. 의심 가는 부분이 한둘이 아니더라고요.”
“반응은 어땠는데요?”
이내 멜리가 대답을 기다려가며, 제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어대기 시작했다. 사업 규모 확장을 위해서라면 최소 두 개의 미슐랭 스타, 또 원활한 투자금 유치를 위해서는 세 개의 미슐랭 스타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물론 첫해에 쓰리 스타를 받아내는 게 어찌나 힘든 일인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필상이라면. 또 필상이 기획하고 구상한 코스라면 첫해에 쓰리 스타를 받아낼 수 있으리란 믿음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해 있던 것이다. 그렇게 멜리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오매불망 대답을 기다리고 있던 찰나.
“모든 일은 예정대로.”
“그럼···?”
“이변이 없는 한, 쓰리 스타일 거예요.”
“확신하실 수 있어요?”
“제가 쓰리 스타를 받지 못하면 난리가 날 걸요?”
으스대듯 말해 보인 필상이 장난스러운 어투로 덧붙였다.
“그만큼의 역량을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그 말에 한차례 “좋아요.” 하고 답해 보인 멜리가 제 옆구리에 끼고 있던 서류봉투를 꺼내 들며 답했다.
“실은 저도 좋은 소식을 들고 왔거든요.”
“어떤 소식이요?”
“한번 확인해 보시겠어요?”
이내 필상이 서류 봉투를 집어 들어서는, 그 안에 담긴 A4용지 묶음 몇 개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필상의 얼굴 위로 옅은 미소가 피어오르더니, 다물어져 있던 입술 틈새에서 환호가 터져나왔다.
“맙소사!”
다름 아니라, 안에 담긴 서류 전체가 분점 론칭과 관련된 투자 계약서였던 까닭이었다.
“우선 미국에 세 곳은 사실상 투자금 유치에 성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에요. 각각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플로리다 세 개 주에요.”
“그리고요?”
“또 런던, 프랑스, 밀라노와 로마, 필상의 자국인 한국의 서울까지 분점 론칭 계획을 세우고 있고요.”
“부디 계획대로 될 수 있다면 좋겠는데요.”
“만약 파우스트가 쓰리 스타를 받게 된다면, 투자금 유치에는 무리가 없을 거예요.”
말을 마친 멜리가 깊은 상념에 젖어 들었다. 필상은 이미 네임 벨류를 지닌 셀럽의 수준을 넘어섰다. 최고의 우량주이자, 황금 알을 낳는 거위나 마찬가지가 되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미슐랭 심사 첫해에 쓰리 스타를 받아내며, 화려하게 기드 미슐랭에도 이름을 올리게 된다면?
투자금 유치 관련 문제야 별다른 어려움 없이 해결할 수 있을 게 분명했고 말이다.
이내 멜리가 “다만.” 하고 말해 보인 뒤, 제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투자를 통한 론칭은 대부분 2년 내지 4년 단위로 이뤄져요.”
“예, 그런데요?”
“만약 필상이 감당하지 못한다면, 무리해서 일궈낸 파인다이닝 제국이 짧은 시일 안에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뜻이죠.”
그 말에 필상이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답했다.
“멜리, 지금까지 제가 누리고 있는 삶 자체가 모래성일지도 몰라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늘어놓았다지만, 뼈가 있는 말이었다. 회귀라는 기현상을 축복이라 생각했다.
하나, 어쩌면 장자의 제물론에 나오는 호접지몽처럼 한낱 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 현상 자체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으니 말이다. 물론, 더는 이 부분에 관한 고민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 상태였고 말이다.
이내 필상이 확신에 가득 찬 투로 덧붙였다.
“어차피 모래성일지도 모르는 삶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멋진 모래성을 한번 지어보고 싶네요.”
“그 말인 즉, 감당하실 수 있다는 뜻인가요?”
네, 무조건. 짧게 답해 보인 필상이 나직이 덧붙였다.
“할 수 있어요.”
이내 멜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덤덤한 투로 답했다.
“말씀하신 대로 추진하겠습니다. 아마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정신없는 삶이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환영하는 바예요. 말씀드렸잖아요? 기왕 시작한 거, 누구도 깰 수 없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최고의 스타 셰프가 되겠다고요.”
말을 마친 필상이 쇼파 등받이에 제 뒷목을 누인 채, 두 눈을 지그시 감고는 천천히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미 이룰 수 없을 것만 같던 꿈의 실현이 코앞에 다가왔다. 아주 오만한 말이라지만···.
더 이상 꾸지 못할 꿈은 없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