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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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6 – High Risk, High Return (1)
대대적인 개회식 일정이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연단에 오른 것은 현 서울 시장이었다. 말끔한 정장차림을 한 채 연단에 오른 그가 이번 2013 서울시 전국 요리대회의 연혁 및 개최취지에 대한 연설을 늘어놓는 모습이, 앞쪽에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한참동안 송출되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길고 길었던 연설이 끝맺어지기 무섭게, 진행자가 큐 시트(Que Sheet)를 손에 쥔 채 연단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 2013 서울시 전국 요리대회의 결선 무대를 시작하기에 앞서 진행방식 및 심사규정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프로페셔널 부문의 경연이 먼저 진행되며, 연달아 영 셰프 부문의 경연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경연 진행방식은 두 개 부문 모두 동일합니다. 참가자들은 두 시간이라는 제한시간 내에···.
한참에 걸쳐 이런저런 설명을 마친 진행자가, 손에 쥔 큐 시트를 지그시 바라보며 다시금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 자, 그럼 이제 서울시 전국 요리대회 프로페셔널 부문 결선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호명되신 참가자분들께서는, 홀 중앙에 비치된 조리대로 나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진행자가 참가자들의 이름을 한 명씩 호명할 때마다, 무대 뒤편의 백 스테이지(Back Stage)에서 말끔한 조리복 차림의 참가자들이 한껏 비장한 표정을 한 채 걸어나오기 시작했다.
또, 그럴 때면 무대 뒤편 스크린에 현재 호명된 참가자의 사진과 더불어 간단한 이력사항이 함께 송출되었고 말이다.
– 참가번호 21번, 최용준.
이윽고, 스크린 위로 참가자 최용준의 이력사항이 나타나던 찰나. 장내에 한차례 큰 술렁임이 일었다.
[ 미국 ‘*CIA’(*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요리학교 수석 졸업. ] [ 뉴욕 유러피안 레스토랑 ‘더 가든’(The Garden) 1년 근무. ] [ 밀라노 이탈리안 레스토랑 ‘밤비노’(Bambino) 3년 근무. ]이내 좌석 맨 앞열에 앉아있던 업계 인사들이, 저들끼리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더 가든이면 뉴욕의 원 스타 레스토랑 아닌가요? 밤비노 역시 밀라노의 원 스타 레스토랑이고요.”
“여태껏 나온 참가자들 중 가장 커리어가 돋보이는 친구로군요. 이력만 놓고 본다면 유력한 우승후보인 것 같습니다만···.”
여타 인사들이 이런저런 견해를 주고받고 있던 그때, 아무런 말없이 잠자코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이가 한 명 있었다.
노경민 셰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모든 셰프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명망 높은 원로(元老) 셰프랄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특히 이번 대회의 심사위원 중 한 명인 강훈 셰프와 연이 아주 깊은 사이랄 수 있었다. 강훈 셰프가 해외 각지를 떠돌며 요리를 배우기에 앞서, 기틀을 다졌던 곳이 바로 노경민 셰프의 주방이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도제 방식으로 요리를 가르치고, 배운 사제지간이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였다.
“선생님, 오셨습니까? 먼 길 오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갑작스레 들려온 음성에, 노경민 셰프가 고개를 휙 돌려서는 목소리의 주인을 한 번 살펴보았다.
다름 아닌, 강훈 셰프였다.
“그래, 그래. 그나저나, 자네. 곧 결선이 시작될 텐데, 이렇게 자리 비워도 되는 건가?”
“실은 안 그래도 금방 돌아가봐야 합니다. 그래도 선생님께 인사는 올려야지요.”
“하하, 자네는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군. 못 다한 이야기는 할일부터 모두 마친 뒤에 나누기로 하고, 일단 돌아가보게.”
“예, 선생님. 이따가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강훈 셰프가 정중히 인사를 해보이고는, 다시금 심사위원 석으로 되돌아가려던 찰나였다. 한차례 “아.”하고 중얼거려 보인 노경민 셰프가 낮은 목소리로 물음을 건넸다.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야.”
“네, 선생님. 말씀하시죠.”
“예선부터 쭉 지켜본 자네 생각이 궁금하군.”
“어떤 생각 말씀이십니까?”
이내 노경민 셰프가 참가자 최용준의 이력사항이 잔뜩 기재되어 있는, 스크린을 턱짓으로 가리켜 보이며 되물었다.
“어떤가? 자네 생각에도 저 친구가 우승을 할 것 같은가?”
“글쎄요, 선생님.”
나직이 답해 보인 강훈 셰프가 저 멀리 허공을 지그시 바라보며, 다시금 뒷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분명 최용준 참가자 역시 예선이 진행되는 내내 훌륭한 요리를 선보였던 것 같습니다만, 희한하게도 정작 기대가 되는 친구는 따로 있습니다.”
“그래?”
“네. 으레 짐작일 뿐이라지만, 만나보신다면 선생님께서도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어리고 당돌하지만 예의를 갖출줄 알고, 영리한데 심지어 탄탄한 실력까지 갖추고 있으니 말입니다.”
강훈 셰프가 무어라 몇 마디 설명을 더 덧붙이려던 찰나, 진행자의 굴곡 없는 목소리가 다시금 장내 곳곳에 비치된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 마지막 열 번째 결선 진출자입니다. 참가번호 41번, 정필상.
강훈 셰프가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짧게 말했다.
“양반은 못 될 친구인가 봅니다. 마침 나오네요.”
이내 노경민 셰프가 홀 앞쪽에 비치된 스크린을 먼저 바라보았다.
[ 일산 소재 한식당, ‘식구 백반’ 주방보조 근무 중. ]타 참가자들의 이력사항과 비교해보면, 초라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단출하기 그지없는 커리어다.
한차례 “식구 백반?”하고 낮게 중얼거려 보인 그가, 이번에는 자신의 조리대를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고 있는 참가자를 위・아래로 훑어보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채 스무살도 되어보이지 않는 마냥 앳된 얼굴의 소유자였다.
한데, 뭐랄까?
모든 게, 여타 참가자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흔들림 없는 눈빛에서는 일련의 기백이 느껴졌으며, 빳빳하게 다려진 흰색 조리복에서는 스스로가 품고 있을 요리에 대한 긍지와 신념이 느껴지는 듯 했으니 말이다. 또 비록 유별나게 잘생긴 얼굴은 아니라지만, 잘 훈련된 한 마리 세퍼트를 연상시키는 날카롭고 사나운 인상을 하고 있었다.
이내 조리대 앞에 다다른 참가번호 41번, 정필상 참가자가 제 나이프 키트를 열어서는 조리도구를 꺼내 늘어놓기 시작했다. 멀리서 한 눈에 보기에도 관리에 심혈을 기울인 듯, 모든 조리도구가 아주 예리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중이었다.
“선생님, 그럼 저는 일단 돌아가보겠습니다.”
“아아, 그래. 알겠네.”
“네. 모쪼록 즐거운 관람되십시오.”
정중히 인사를 해보인 강훈 셰프가, 심사위원 석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작성해주신 필요 식자재 전부 구비됐는지, 한 번 점검해보시겠어요?”
진행요원이 나직이 건네온 말에, “네.”하고 답해 보인 필상이 조리대 하단부에 설비되어 있는 냉장고 앞에 쪼그려 앉은 채로 이런저런 식재료를 꼼꼼히 점검해보기 시작했다.
다름 아니라 결선은 앞서 진행되었던 1・2차 현장예선과 달리, 필요한 식재료를 주최측에 전달하고 미리 구비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던 탓이었다.
“감사합니다. 완벽하네요.”
“건투를 빌겠습니다.”
이윽고, 한차례 길게 숨을 내쉬어 보인 필상이 제 두눈을 지그시 감은 채 다시금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대회가 시작되고 나면 어떤 순서로 움직여야 할지, 마지막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보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은 더더욱, 실수해선 안 된다.’
주최측에서 공지한 결선 주제는 ‘구색을 갖춘 코스요리’였다. 어찌 본다면 고난이도의 주제라지만, 달리 생각해본다면 그리 난이도가 높지 않은 요리랄 수도 있었다.
세 개의 요리를 전채 요리, 메인 요리, 디저트로 나누기만 해도 코스의 구색은 갖춰지는 셈이랄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나, 필상이 오늘 선보이려는 코스는 ‘*오트 퀴진’(*Haute Cuisine:완벽하게 준비된 요리, 프랑스의 최고급 코스 요리를 뜻하는 단어)이랄 수 있었다.
가볍게 입맛을 돋궈주는 식전주를 시작으로, 차가운 에피타이저, 수프, 따뜻한 에피타이저, 생선 요리, 육류 요리, 치즈, 마지막으로 디저트에 이르기까지. 구성에 포함된 요리의 가짓수만 무려 여덟 개에 달하는, 제대로 된 정찬을 선보일 요량이었던 것이다.
주어진 시간은 고작, 두 시간.
그 안에 자그마치 여덟개에 달하는 요리를, 제대로 된 맛으로 조리해내기 위해서는 계산대로 치밀하게 움직여야 할 것이다.
각각의 요리가 *오버 쿡(*Over cook:지나치게 익히는 것)되거나, 조리를 마친 뒤 오랜시간 방치하여 맛이 변질되지 않게끔 하기 위해서는 단 한 시도 긴장을 내려놓아선 안 되는 것이다.
아마 타 참가자들은 평균적으로 세 가지, 아무리 많아봐야 네다섯 가지 정도의 요리를 선보일 게 분명했다. 양보다 질을 택하는 게 더욱 유리하리란 심사위원들의 직접적인 언질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어려운 길을 택한 이유?
간단했다.
대상을 거머쥐더라도, 그냥 차지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실상 ‘셰프 정필상’의 데뷔전이나 마찬가지인 무대이지 않은가? 하등 쓸 데 없는 욕심일지 모르나, 화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타 참가자들을 찍어누르듯 압도적인 역량의 차이를 과시하고, 대상을 거머쥐며 화려하게 제 이름을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때.
– 자, 그럼 지금부터 2013 서울시 전국 요리대회 프로페셔널 부문의 결선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진행자의 우렁찬 외침이 장내에 울려퍼짐과 동시에, 스크린을 통해 남은 시간이 송출되기 시작했다.
[ 2:00:00 ] [ 1:59:59 ] [ 1:59:58 ]째깍, 째깍. 시간이 흐른다. 으레 그렇듯, 잠깐의 쉼도 없이 계속해서 흐른다. 이내 필상이 그제야 지그시 감고있던 두 눈을 떠보이고는, 필요한 식재료를 하나둘씩 꺼내 조리대 위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장내 곳곳에서 한차례 높고 낮은 술렁임이 일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세 명의 심사위원이었다.
“박 교수님? 왜 그러세요?”
박한솔 교수가 한껏 심각한 표정을 한 채, 필상의 조리대를 바라보고 있던 찰나. 이혜원 셰프가 걱정이 잔뜩 서린 투로, 조심스레 건네 온 물음이었다. 이내 박한솔 교수가 정신을 다잡기 위해, 제 고개를 몇 번 좌・우로 내저어 보이고는 답했다.
“아니, 그게··· 정필상 참가자의 조리대를 한 번 보시겠습니까?”
이내 다른 두 심사위원. 이혜원 셰프와, 강훈 셰프가 약속이라도 한 것 마냥 동시에 탄식을 흘려보였다.
다름 아니라, 필상의 조리대 위로 타 참가자들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종류의 식재료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던 탓이었다.
만약 후순에 조리해야 하는 터라, 아직 꺼내놓지 않았을 식재료까지 감안한다면 어떨까? 적어도 대여섯개 이상의 요리를 준비하고 있음이 분명해보였다.
“이건, 다소 무모한 결정이지 않았을까 싶네요.”
이혜원 셰프가 한참의 침묵끝에 꺼내 든 말이었다. 이는 현역 셰프조차 해낼 수 있을지, 없을지 장담할 수 없는 무모한 도전이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박한솔 교수 역시 마찬가지. 동조한다는 듯 고개를 몇 번 끄덕여 보이고는, 엷게 떨리는 투로 제 의견을 첨언했다.
“만약 가짓수를 채우기 위해 퀄리티가 떨어지는 요리를 잔뜩 넣는다면, 가능할 지도 모르겠죠. 하지만, 글쎄요? 득보다 실이 더 큰 결정임은 분명한 것 같군요. 수준 미달인 요리가 단 한 개라도 껴있다면, 입상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을 테니 말입니다.”
그 말에 강훈 셰프가 제 이마를 손으로 짚어보이며, 쓴 숨을 내쉬어보였다. 돌연 이마 한 편이 지끈거리는 듯 했던 탓이었다.
세 명의 심사위원들 중 필상에게 가장 많은 기대를 품고 있는 그였으나, 그런 그조차도 비관적인 결과를 점치고 있을 따름이었다.
‘대체 어째서 저런 무모한 결정을···.’
필상의 조리대 위에 늘어져 있는 온갖 종류의 식재료들 탓에 한차례 큰 파란이 인 것은, 업계 인사들이 주둔하다시피 하고 있는 객석 앞열 역시 마찬가지였다. 곳곳에서 독설에 가까운 신랄한 평들이 쏟아지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쯧. 보아 하니, 못해도 대여섯 개 가량의 요리를 선보일 생각인 것 같은데···.”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딱 그 꼴인 것 같군요.”
“과유불급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닐 텐데 말입니다.”
“어디 보자, 그나저나 저 당돌한 참가자 이름이···.”
그때, 원로 요리사 한 명이 “정필상.”하고 낮게 말해 보인 뒤 재차 덧붙였다.
“참가번호 41번, 정필상 참가자로군요.”
2013 서울시 전국 요리대회 프로페셔널 부문의 결선이 막 시작된 지금.
비록 마냥 고운 시선만 가득한 것은 아니었으나···.
장내에 있는 업계 인사들 중 태반이 필상만을 주시하고 있을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