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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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44 – 스타 셰프 (3)
“이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인데···.”
말을 마친 필상이 연신 헛웃음을 흘려대기 시작했다. 기대조차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적인 아트 퀴진 파인다이닝을 논할 때면 늘 몇 손가락 안에 꼽히곤 하는 홀리데이라지만 어째서인지 일정 시기를 기점으로 더는 미슐랭 가이드에 등재되지 않던 곳이었으니 말이다.
“그간 홀리데이가 미슐랭 가이드에 수록되지 않은 이유는, 셰프 뱅크시 때문이었다네요.”
“그 말은···?”
그 말에 멜리가 “네, 맞아요.” 하고 답해 보이고는, 몇 마디 설명을 덧붙였다.
“셰프 뱅크시께서 홀리데이의 총괄 셰프직을 도맡음과 동시에, 홀리데이는 보유하고 있던 미슐랭 스타를 모두 반납했어요. 물론 도합 세 개, 만점이었고요.”
이내 필상이 입가에 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제 고개를 천천히 끄덕여대기 시작했다.
뱅크시 셰프다운 판단이자 결정이었다. 아마 미슐랭 심사단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또 휘둘리지 않고 본인만의 아트 퀴진을 선보이겠노라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있었을 테니까.
그렇게 침묵 속에서 생각이 이어지기를 잠시, 필상이 돌연 “아.” 하고 침음을 흘려 보인 뒤 재차 말문을 열었다.
“그나저나 의아하네요. 제가 지휘한 시즌은 한 시즌밖에 되지 않는데, 미슐랭 스타 평가 및 수여 기준에 충족이 되긴 하는 건가요?”
“그야 물론이죠. 콧대 높으신 미슐랭 가이드의 심사단분들께서 평가하는 건, 셰프의 한 해가 아니라 파인다이닝의 한 해니까요.”
말을 마친 멜리가 제 옆머리칼을 귀 뒤로 쓸어넘겨 보이고는 의기양양한 투로 덧붙였다.
“더군다나, 필상께서도 아시다시피 미슐랭은 공정하고 정확해 보이고 싶어 안달이 난 집단이잖아요? 그러니, 더더욱 홀리데이에게 최소 두 개 이상의 별을 줄 수밖에 없겠죠.”
“무슨 뜻이에요?”
“압도적인 결과를 보여주셨잖아요? 만약 홀리데이가 미슐랭 스타를 받지 못한다면, 미슐랭 가이드 호주는 공정성을 잃게 될 거예요.”
그 말에 필상이 어깨를 으쓱거려 보이고는, 능청스레 “하긴.” 하고 답해 보였다.
홀리데이의 F/W 시즌이 엄청난 성과를 거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큰 화제가 된 것은 물론이며, 특히 시그니처 메뉴였던 ‘반 고흐의 밤’ 같은 경우에는 홀리데이 역사상 가장 많은 알라까르트 판매고 기록을 갈아치우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어쨌든, 그간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제가 보기에는 이제야 진짜 보상이 돌아오기 시작한 것 같네요.”
“글쎄요? 제게는 그저, 일에 몰두할 수 있는 현재야말로 최고의 보상인 것 같네요.”
한차례 피식 미소를 지어 보인 멜리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여가며 “그래요?” 하고 되물었다. 기묘한 낌새를 눈치챈 필상이 게슴츠레 뜬 눈으로, 그런 멜리를 빤히 들여다보던 찰나.
“그렇게 생각하신다니 정말 다행이네요. 실은 살인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연말 스케줄을 대체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걱정이었는데 편히 말씀드릴 수 있겠어요.”
“네? 그게 무슨···?”
“우선 요리계의 오스카 시상식이랄 수 있는 JFB 협회 시상식에서 네 개 부문의 수상 후보로 등재되셨다는 건 이미 알고 계셨죠? 아, 미슐랭 가이드 뉴욕의 미슐랭 스타 수여식 일정도 알고 계셨을 테고요.”
“네, 그런데요?”
꿀꺽, 말을 마친 필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감을 어쩌지 못한 채 입안에 고인 침을 한 번 삼켜냈다.
“실은 호주 파인다이닝 셰프 협회 시상식, 트립 어드바이져 시상식, 아트 컬리넬리 시상식 등. 네 개 일정이 더 잡혔거든요. 더군다나, 미슐랭 가이드 호주 측의 미슐랭 스타 수여식 행사에도 참여하셔야 할 테고요.”
불과 수 초 남짓한 시간 만에, 해야 할 일이 몇 배나 늘어버린 상황이었다. 갑작스레 유입되기 시작한 정보 탓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눈만 꿈뻑거리고 있던 찰나.
한참을 고민하던 멜리가 어렵사리 골라낸 위로의 말 몇 마디를 건넸다.
“그래도 전용 걸프스트림 여객기 덕에 이동이 고되지는 않을 거예요.”
물론, 큰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
“줄리, 셰프님 관련 기사 보셨어요?”
파우스트 내부에 입점해있는 디저트 바, ‘레이첼의 꿈’에서 근무 중인 막내 파티쉐가 건네온 물음이었다. 이내 질문을 받은 줄리가 어깨를 한 번 들썩여 보이고는 되물었다.
“관련 기사가 한둘이어야지.”
그 말에 막내 파티쉐가 “그렇네요.” 하고 나직이 답하고는, 조물대고 있던 반죽을 치대기 시작했다. 꾹, 꾹. 힘을 주어 누를 때마다, 주근깨가 가시지 않은 그녀의 뺨이 씰룩였다. 이내 그런 그녀를 잠시간 빤히 바라보고 있던 멜리가 조심스레 되물었다.
“그나저나, 어떤 기사?”
이내 막내 파티쉐가 반죽을 괴롭히는 손을 멈추지 않은 채, 굴곡 가득한 목소리로 힘겹게 답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아까 브레이크 타임 때 봤는데, 셰프께서 지휘 중이신 호주 아트 퀴진 파인다이닝 있잖아요?”
“홀리데이?”
“네, 홀리데이가 2015 미슐랭 가이드 호주의 쓰리 스타 파인다이닝으로 선정됐다던데요?”
“뭐? 정말?”
화들짝 놀라 답해 보인 줄리가 곧장 밀가루가 덕지덕지 묻은 제 손을, 앞치마에 거칠게 문질러 닦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선반 위에 덩그러니 내려두었던 제 스마트 폰을 집어 들어서는, 관련 기사를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 영 셰프, 쓰리 스타 셰프 등극. 파인다이닝 업계 역사상 최초로 미슐랭 등재 첫해에 ‘여섯 개의 별’을 거머쥘 수 있을까? ] [ 평론가 톰 스미스 曰 “지극히 영 셰프다운 행보일 뿐.” ] [ 영 셰프의 홀리데이, 총괄 셰프 부임 첫해에 미슐랭 가이드 호주 쓰리 스타 파인다이닝 등극 확정. ]이내 줄리가 흐뭇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기사에 첨부된 사진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호주의 이름난 파인다이닝을 운영 중인 명망 높은 셰프들 틈바구니 속에서, 활짝 미소 짓고 있는 필상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을.
그렇게 줄리가 스마트 폰을 도로 선반 위에 내려놓으려던 찰나였다. 미확인 메시지 알람을 발견한 줄리가 다시금 손을 꼬물거려,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메세지의 내용을 확인해보기 시작했다.
[ 필상 : 방금 미슐랭 가이드 호주, 미슐랭 스타 수여식 일정 마치고 전용기 탔어. 다음 일정 때문에 이륙 대기 중. ] [ 필상 : 아, 홀리데이 말인데 쓰리 스타 파인다이닝으로 등재됐어. 아직도 믿기질 않네. 그리고 며칠 안 봤더니, 엄청 보고 싶은 거 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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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상 : ❤ ]이내 줄리가 함박웃음을 머금은 채, 중얼대듯 낮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있잖아, 하트는 대체 어떤 사람이 만든 걸까?”
그 말에, 여전히 반죽을 치대고 있던 막내 파티쉐가 답했다.
“글쎄요? 아마 굉장히 로맨틱한 사람이 만들었겠죠?”
*
필상의 호주 일정은 장장 일주일에 걸쳐 진행되었다. 미슐랭 가이드 호주 측의 ‘미슐랭 스타 수여식’을 시작으로, 호주 내 권위 있는 푸드 매거진 및 협회에서 주관하는 시상식을 바삐 오다녀야 했으니 말이다. 물론, 한 번 시상식에 참여할 때마다 족히 두세 개가량의 트로피를 거머쥐기 일쑤였고 말이다.
[ 홀리데이의 쓰리 스타 등극 이후 멈추지 않는 영 셰프의 행보. 트립 어드바이져 In 오스트레일리아 시상식, 영 셰프 3관왕 차지. ] [ 영 셰프의 아트 퀴진 다이닝 홀리데이, 아트&다이닝 매거진 선정 베스트 아트 퀴진 파인다이닝 등극. ] [ 영 셰프, 호주 파인다이닝 협회 시상식 3개 부문 석권. ]전용기의 푹신한 시트 위에 몸을 누이다시피 한 채, 보도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따끈따끈한 기사들을 살피고 있던 찰나였다.
멜리가 휘파람을 한 번 불어 보이고는, 필상이 앉은 자리 앞에 마련된 간이 책상 위에 잘 정리된 서류철 몇 개를 내려놓으며 어물쩍 뜬금없는 축하의 말을 건넸다.
“필상, 축하드려요. 오늘로 호주 일정은 모두 끝이네요. 미슐랭 쓰리 스타 상패에, 온갖 시상식 트로피에, 선반이 꽉 차겠는데요?”
“이 서류들은 뭔데요?”
“아아, 이 서류들이요? 그냥 뭐, 별거 아니에요. 우리의 늠름한 걸프스트림 여객기가 미국 상공에 접어들기 전에, 필상께서 무조건 결재를 마쳐주셔야 할 서류들이에요.”
이내 필상이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고는, 정장 외투 안주머니에서 만년필 한 자루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입으로 뚜껑을 연 뒤, 곧장 서류 검토 작업을 시작했다.
시상식 이후 대외적인 스케줄과 관련된 서류들도 더러 존재했으나, 태반이 유치된 투자금으로 론칭하게 될 파인다이닝 관련 서류들이었다. 사업 규모 확장을 위한 투자금 유치 역시 막바지에 접어든 상태였다. 전생에서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거액이 모였다.
아직은 숫자에 불과해 감흥이 크지 않다지만, 내년 한 해가 가기 전에 세계 곳곳에 위치한 파인다이닝의 모습으로 변하게 될 터였다. 아마 그때쯤이면 정말 ‘확-.’ 와닿겠지.
사각, 사각.
펜촉과 종이가 맞닿으며 기분 좋은 소음이 연신 울려 퍼지기를 잠시, 필상의 옆자리에 턱을 괴고 앉아있던 멜리가 넌지시 말을 건네왔다.
“이제 가장 중요한 일정이 남아있네요.”
그 말에 필상이 잠시 손을 멈춘 채로, “미슐랭 아메리카?” 하고 되묻자 멜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홀리데이의 미슐랭은 부가 수익이었을 뿐이잖아요? 웃긴 이야기라지만 미슐랭 호주와 아메리카 사이에는 분명한 격차가 존재하기도 하고요.”
이내 필상이 제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요리계의 바이블이랄 수 있는 미슐랭 내에서도, 발행 국가에 따라 우위가 나눠진다. 물론, 일류라 인정받는 곳은 대부분 요리의 발전을 인정받는 국가였다. 이를테면 프랑스, 이태리, 미국 등···.
물론 그 우위 탓에 미슐랭 아메리카 측의, 미슐랭 스타 수여식이 조금 더 중요하게 느껴지기야 했으나 글쎄?
객원 총괄 셰프로 투입되었던 ‘홀리데이’보다 처음부터 애착을 가지고 일궈 온 ‘파우스트’의 미슐랭 스타 수여식 쪽에 조금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은, 사실상 어쩔 수 없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사실 미슐랭 가이드 호주 측의 미슐랭 스타 수여식은 별 긴장감이 없었던 것 같네요.”
“그래 보였어요. 쓰리 스타 파인다이닝으로 호명되셨을 때 반응 말인데, 거짓말 조금 보태자면 ‘터미네이터’인 줄 알았다니까요?”
옅은 미소를 머금어 보인 필상이 재차 답했다.
“처음부터 제 손으로 일궈 온 파우스트에 더 애착이 가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번 미슐랭 가이드 아메리카 측의 미슐랭 스타 수여식에 제가 ‘전설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여부가 달려있잖아요?”
만약 미슐랭 가이드 아메리카 측으로부터도 쓰리 스타를 받게 된다면, 파인다이닝 업계 역사상 최초로 미슐랭 가이드 등재 첫해에 여섯 개의 별을 받은 셰프로 기록될 터였다.
그 말에 멜리가 위로의 뜻으로 몇 마디 말을 건넸다.
“걱정 마세요. 파우스트가 쓰리 스타를 받는다는 데, 제 전 재산을 걸 수도 있거든요.”
“걱정 안 해요, 다만 기다림의 시간이 괴로울 뿐이죠. 저도 전 재산을 걸 수 있거든요.”
그 말에 졌다는 듯 고개를 내저어 보인 멜리가 타박하듯 덧붙였다.
“됐으니까, 서류 검토 업무에 집중하셨으면 하네요. 이대로라면, 미국 상공에 도착하기 전까지가 아니라 여객기가 지구 몇 바퀴를 돌 때까지도 못 마치실 것 같거든요.”
“Yes, Sir.”
장난스레 답해 보인 필상이 다시금 산더미처럼 수북이 쌓인 서류를 검토해나가기 시작했다.
미슐랭 가이드 아메리카의 미슐랭 스타 수여식이 진행될 뉴욕을 향해 날아가는 여객기 안에서, 정장 외투의 가슴 포켓 라인에 쓰리 스타 셰프를 상징하는 ‘3’이란 숫자가 각인된 별 모양 훈장을 매달아 둔 채로.
바삐 손을 움직이던 필상이, 비행기 창 너머로 보이는 광활한 밤하늘의 풍경을. 아니, 창에 투과되어 흐릿하게 비치는 제 모습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가슴팍에 달아 둔, 미슐랭 훈장이 빛을 받아 반들댔다.
스타 셰프.
염원하던 꿈을 이룬 느낌은 뭐랄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공복감, 그게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