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193
193
최종장 – I will be back (1)
각국에서 개최된 시상식을 시작으로, 호주와 미국의 미슐랭 스타 수여식 행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연말 일정이 마무리되기 무섭게, 사업 확장을 위한 본격적인 행보가 시작되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어 말하자면, 정말 몸이 몇 개라도 부족할 것 같은 숨 가쁜 일정의 연속이었다.
투자자들과의 미팅이 끊일 줄 모르고 이어졌으며, 새롭게 론칭하게 될 파인다이닝의 인테리어 및 세부적인 콘셉트를 설정하기 위해 각 분야의 디자이너들과 거듭 회의를 진행해야 했다.
그뿐이던가?
내년에 론칭을 앞두고 있는 파인다이닝의 개수만 하더라도 자그마치 열 군데에 이르는 상황이었다.
하나, 필상은 획일화된 메뉴를 선보일 생각이 추호도 없던지라 파인다이닝별로 각기 다른 코스를 선보이고자 열을 올리는 중이었다. 앞으로 매 시즌마다 도합 열 개의 코스를 구상・설계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렇게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지내다 보니, 어느덧 다시 한번 새로운 계절 앞에 다다른 채였다.
“봄이네요, 벌써.”
옆자리에 앉은 채로, 스케줄이 빼곡히 적힌 다이어리를 점검 중이던 멜리가 덤덤한 목소리로 꺼낸 말이었다. 이내 필상이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나직이 답했다.
“그러게요.”
정신없는 연말 일정을 모두 마친지, 어느덧 세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눈 깜짝할 새에 흐른 시간이라지만, 가만히 멈춰 서 있던 건 아니다. 덕분에, 사업 확장 역시 별다른 탈 없이 막바지에 접어든 상황이었고 말이다.
“미국 내 세 개 주에 추가로 론칭하게 될 파인다이닝 허가는 모두 끝났어요. 점포 단위로 인수받은 상황인지라, 과정이 딱히 까다롭지도 않았고요.”
“다행이네요. 다른 국가는요?”
“신규 론칭 관련 절차는 한국이 가장 간단하던데요? 다음 주면 모든 절차가 끝날 것 같아요. 프랑스는 4월 중에, 밀라노와 런던은 6월, 일본은 8월 중에 마무리될 것 같고요.”
타악-.
말을 마친 멜리가 손에 쥔 다이어리를 덮으며 재차 덧붙였다.
“쉽게 말씀드리자면, 올해 안으로 열두 개 점포 모두 론칭 가능해요.”
“이변이 생길 확률은요?”
“글쎄요? 천재지변이 일어날 확률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요.”
한차례 씽긋 미소를 지어 보인 멜리가 재차 뒷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또, 파인다이닝 브랜드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한 회사 설립 역시 모두 마무리됐어요. 간단히, 모회사 격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네요. 세금, 인사, 세부 사업, 식재료 조달 등의 업무를 도맡아 처리하는 곳이 될 테고요. 대표님이 된 기분이 어때요?”
“무늬만 대표인데요, 뭘. 전문경영인 섭외는 어떻게 돼가고 있나요?”
이내 멜리가 “아!” 하고 침음을 흘려 보인 뒤 곧장 답했다.
“안 그래도 도합 여섯 명의 전문경영인 포트폴리오를 메일로 송부해뒀어요. 한번 검토해보시고 세 명으로 추려서 말씀해주시면, 미팅 일자를 조율해보는 방향으로 할게요.”
“고마워요.”
“파인다이닝 브랜드의 이름은 앞서 말씀해주셨던 대로 ‘식구’로 처리・전달해뒀어요. 이번 주가 지나고 나면, 브랜드의 이름을 바꾸기가 어려워지는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발음하기가 영 어려운 것 같아서요. 식구, 식구, 식구···.”
식구.
앞으로 전 세계 각지에 새롭게 문을 열게 될, 나만의 파인다이닝 브랜드가 지니게 될 상호명이었다.
이름의 유래는 간단하다. 아버지께서 운영하던, 테이블 몇 개짜리 자그마한 한식당, 식구 백반에서 따온 게 전부였으니 말이다. 파미유처럼 발음이 쉬운 외국어로 변화를 시켜볼까 고민하기도 했으나, ‘식구’라는 단어를 고스란히 옮겨 사용하고 싶다는 생각에 관뒀다.
조금 우습다지만, 그대로 사용해야 아버지의 뜻이나 의지를 그대로 계승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까닭에···.
‘아들, 항상 내 식구가 먹는다는 생각으로 요리하면 그게 바로 훌륭한 요리인 거야. 나는 항상 그런 마음으로 요리했어. 앞으로도 그럴 테고.’
톡, 톡. 뒷좌석의 푹신한 암 레스트를 손끝으로 두드려대던 필상이 아랫입술을 한 번 핥아내고는 말문을 열었다.
“그대로 진행해주시겠어요? 식구,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보다 의미 있는 상호명은 없을 것 같아서요.”
“네, 알겠습니다.”
“웹 커뮤니티나 전문가 반응은 어때요? 여전히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나요?”
필상이 창 너머를 빤히 들여다보며 꺼낸 말에, 멜리가 무어라 선뜻 답하지 못하고 제 입술만 옴짝달싹 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한차례 심호흡을 해 보인 그녀가 재차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네, 안타깝지만 아직까지는 그대로예요.”
이내 필상이 무어라 답하는 대신,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여대기 시작했다.
[ 칼럼리스트 조지 심 曰 “영 셰프의 결정이 아쉬운 이유는, 본인의 선택이 업계 전반에 끼칠 영향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점 때문. 대다수의 셰프들이 비즈니스에 눈독을 들이게 될 것.” ] [ 영 셰프의 사업 확대 계획 발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연신 끊이지 않는 이유는? 아쉽기 그지없는, 지나치게 성급한 결정에 대하여. ] [ 평론가 존 다니엘 曰 “젊은 셰프의 사업가 흉내일 뿐, 무리한 확대는 고통으로 돌아올 것.” ] [ 칼럼리스트 타미 피어슨이 밝힌 영 셰프의 사업 확정에 대한 부정적 견해? “돈에 혈안이 된 셰프는 별을 지키지 못한다. 모두가 그랬으니, 그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년 미슐랭 재평가 때는, 울상이 된 영 셰프의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이라 확신.” ]당장 기억에 남는 헤드라인만 꼽더라도 이 정도다. 심지어 측근들조차 염려의 말을 꺼낼 지경이었으니, 여론 상황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성싶다.
사업 확장이 급진적이었던 것도, 다소 성급한 느낌을 떨칠 수 없는 것도 여지없는 사실이다. 하나, 자신 있었다. 여태껏 사람들이 불가능하리라 말했던 일들을 수도 없이 해냈으니, 이번에도 해낼 자신이 있었다.
“괜찮아요.”
짤막하게 답해 보인 필상이 제 손바닥을 살짝 치켜든 채, 휙 뒤집으며 몇 마디 말을 덧붙였다.
“결과가 나올 쯤이면, 여론이 뒤집힐 겁니다. 손바닥 뒤집듯, ‘휙-.’ 하고 사무치도록 쉽게 말이죠.”
“믿어요. 믿는 것 외에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기도 하지만요.”
천연덕스러운 투로 답해 보인 멜리가 고개를 빼꼼 내민 채, 차량 앞 유리창 너머로 엿보이는 건물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벌써 도착했네요. 오늘은 밀라노 신규 지점 론칭 자금의 70퍼센트를 지원해주신 투자자···.”
“장 갈리아노 씨와의 미팅이죠? 취미는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 관람 및 아메리칸 바이크 라이딩이고요. 좋아하는 요리는 당연히 이탈리안, 그중에서도 살팀보카. 원활한 대화를 위해 진즉 프로필 숙지 마쳐뒀으니까, 딱히 걱정 않으셔도 될 거예요.”
“하여튼 굉장하시다니까요? 그렇게 바쁜 와중에, 투자자분들 프로필 외울 시간이 있어요?”
그 말에 필상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은 채 답했다.
“덜 자고, 덜 쉬면 충분히 외울 틈이 생기더라고요.”
언제, 어디서였더라? 그런 글을 읽었던 적이 있다. 만약 지금의 삶이 실패로 점철된 첫 번째 삶 끝에, 간신히 다시 손에 쥐게 된 기회라고 생각한다면. 그래도 나태하고 게으르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냐는 내용의 글을.
두 번째 삶이다.
그것도, 실패로 점철된 첫 번째 삶 끝에 어떻게 얻은 것인지도 제대로 알아차릴 수 없는 특별한 두 번째 삶.
덜 자고, 덜 쉬는 것 따위는 힘들지 않다. 진짜 힘든 것은, 일하고 싶으나 하지 못하는 것이다. 노력하고 싶으나 그럴 수 있는 환경조차, 여건조차 없이 허우적대는 일일 것이다.
끼이익, 세단 차량이 약속 장소인 호텔 앞에 미끄러지듯 멈춰 섰다. 오십 만 달러를 호가하는 차량의 뒷문이 자동으로 열리자, 필상이 옷매무새를 한 번 가다듬고는 내려서며 덧붙였다.
“멜리, 약속 하나 할게요.”
“얼마든지요.”
“내년, 내후년 모두 기록을 세울 겁니다.”
“어떤 기록인데요?”
그 말에 필상이 차량에서 내려서며 답했다.
“내년에는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미슐랭 스타를 획득한 셰프가 될 겁니다.”
“내후년에는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슐랭 스타를 보유한 셰프가 되겠죠.”
“흠.”
잠시 상념에 젖어 들었던 멜리가 고개를 내저어가며 답했다.
“만약 필상이 아닌, 다른 사람이 말했더라면 궤변쯤으로 치부했을 거예요.”
“하지만 제 입에서 나온 말이고요.”
“맞아요. 그래서 정말 이뤄질 것 같아요.”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멜리가 진중하기 그지없는 눈으로 필상을 바라보며 읊조리듯 중얼댔다.
“정말, 정말로요.”
이내 필상이 호텔 정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시간은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흐르기 마련이다. 여태껏 늘 그래 왔으며, 큰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바삐 흐르는 시간 속에서 자신 역시 멍청히 멈춰 서 있을 일은 없다는 것이리라.
*
으레 역사란 게 그렇지 않던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신물이 나도록 지루하거나 반복적인 시간이 하루, 하루. 거듭 쌓이고 또 쌓여야만 역사란 이름으로 불리기 마련이다.
어느덧,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하루, 하루가 쌓이고 또 쌓여, 길다면 충분히 긴 시간이 귀 뒤로 밀려나게 된 것이다. 쏜살같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필상은 다시금 무수히 많은 일들을 해냈다.
[ 모두의 염려 속에 론칭된 영 셰프의 파인다이닝 ‘식구’, 호평과 극찬의 연속! ] [ 평론가 데이빗 칼 曰 “식구는 영 셰프의 집착과 광기를 맛볼 수 있는 파인다이닝. 지점별 메뉴가 모두 다르나, 어느 한 곳도 아쉽게 느껴지지 않는다.” ] [ 영 셰프의 파인다이닝 브랜드 ‘식구’, 미국 파인다이닝 브랜드 대상 수상 ] [ 영 셰프의 ‘식구’ 프랑스 지점 연이은 론칭. 파리 13구, 15구 및 리옹 지점에 이르기까지. ] [ 세계로 뻗어 나가는 파인다이닝 식구, 미국에서 시작하여 프랑스와 영국. 한국과 일본까지. ] [ 파인다이닝 브랜드 식구, 지점 확대 의사 밝혀 화제. 포르투갈과 스페인 지점 론칭에 힘쓰는 중. ] [ 영 셰프, 2016년 미슐랭 스타 총결산! 한 해 만에 도합 18개의 미슐랭 스타를 확보하며,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미슐랭 스타를 획득한 셰프’ 등극! ] [ 영 셰프, 올해로 취득 미슐랭 스타 개수 도합 24개 달성!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별을 가진 셰프 확정. ]인생이 타이쿤 게임을 닮았다는 생각에 젖어 들기에 부족함이 없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오늘이 정점이라는 생각에 잠들면, 더 높은 궤도에 오른 내일이 기다리고 있기 일쑤였다. 누군가가 전성기를 물으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할 수 있었다.
내일이라고, 모레라고. 아니, 뭉뚱그려 미래에 있다고. 아직 진짜 전성기는 오지도 않았다고.
[ 영 셰프, 필상. 2017년 미슐랭 스타 총결산. 도합 열네 개의 별을 추가로 거머쥐다. ] [ 영 셰프, 포보스지에서 꼽은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셰프 리스트 1위 등극! 추산 연 수익 8000만 달러 이상! ] [ 서른여덟 개의 미슐랭 스타를 거머쥔 셰프, 필상. 올해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별을 보유한 셰프 등극 확정. ]그렇게 모두가 정점에 이르렀다 말해주던 때에, 나 스스로도 그렇게 확신할 수 있게 된 때, 모든 수치와 지표들 역시 정점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실감시켜주던 때.
이변(異變)이 찾아왔다.
*
달그락, 달그락.
경기도 일산에 위치한 자그마한 연립 주택 안, 두 남녀가 식탁에 마주 앉은 채 묵묵히 식사를 이어나가는 중이었다.
널찍한 거실 벽면 위로는 젊은 셰프의 성공사를 담아낸 기사들을 스크립해 둔 액자가, 빼곡히 걸려있는 상태였다.
다름 아닌, 필상의 본가(本家)였다.
“필상이 녀석, 이번에는 한국에 들어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랬죠.”
“저번에 보니 바짝 야위었더만···.”
“아무렴, 밥 챙겨 먹을 시간이나 있겠어요?”
나직이 답해 보인 어머니가 아버지를 올려다보며 재차 되물었다.
“요즘은 조금 어때요?”
“뭐가?”
“괜찮은 것 같아요?”
어렵사리 건넨 물음에, 아버지께서 “것 참.” 하고 답해 보인 뒤 신경질적인 투로 답했다.
“그냥 건망증이라니까 그러네. 나이 먹고 하다 보면, 이따금 깜빡깜빡할 수도 있는 거지.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해?”
“그래도···.”
“걱정할 거 없어. 특히 필상이 녀석한테는 절대 말하지 말고. 가뜩이나 힘들 텐데, 괜히 걱정거리 안겨줘서 뭐하겠어?”
말을 마친 아버지께서 식탁 한 편에 놓여있던 BMW 7 시리즈의 차 키를 꼭 움켜쥔 채, 꼼지락꼼지락 만져대기 시작했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했으나, 실은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내에게도 미처 말하지 못했다지만, 얼마 전에는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잊은 탓에 두 시간을 바깥에서 벌벌 떨어야 했으니 말이다.
‘하아-.’
숨을 한 번 내쉬어 보인 그가 다시금 수저를 움켜쥐며 되물었다.
“여보, 그나저나 필상이 녀석 말이야.”
“네.”
“이번에는 한국에 들어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물음에 왈칵, 어머니의 눈시울이 물들었다.
“네.”
짤막하게 답해 보인 그녀가 잽싸게 눈에 고인 물기를 훔쳐내고는, 덤덤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래야죠. 이번에는 꼭 들어와야죠.”
달그락, 달그락. 다시금 거실 안에 정적이 드리웠다. 그저 식기 맞부딪히는 소리만이 잔잔히 울릴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