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196
196
최종장 – I’m back (4)
맨해튼 애비뉴 27번가에 위치해 있던 파인다이닝 ‘파우스트’는 업계 내에 전설적인 기록 몇 가지를 세운 뒤, ‘식구’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거듭난 상태였다.
비록 총괄 셰프직을 도맡고 있던 필상이 자리를 비운 지 어언 5년 차에 접어들었다지만, 식구 본점은 여전히 호황을 누리는 중이었다.
외식 업계 전체가 모두 주춤하던 때에도, 식구 본점만은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여전히 수개월 치의 예약이 꽉 차 있었으며, 평론가 및 칼럼니스트들. 혹은 일반적인 대중들마저 최고의 파인다이닝을 논할 때면, 어김없이 식구 본점을 세 손가락 안에 꼽히곤 했으니 말이다.
다만, 미슐랭 가이드에서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이름이 되었다.
헤드 셰프였던 필상이 더는 여타 미디어에 얼굴을 비추지 않을 것이며 기본적인 실무에만 주력하겠는, 사실상 ‘잠정적 은퇴 선언’이나 마찬가지였던 회견을 진행함과 동시에 보유하고 있던 미슐랭 스타를 모두 반납해버린 까닭이었다.
“영 셰프가 자취를 감춘 지도, 어느덧 오 년이 지났군요. 이제 와 돌이켜보면, 정말 현명한 선택이었던 것 같군요. 미슐랭 스타를 모두 반납하겠노라는 의사를 밝힌 뒤, 영 셰프는 아트 퀴진 셰프로서의 이미지를 더욱 굳건히 할 수 있었으니까요.”
“맞습니다. 미슐랭 스타를 신경 쓰지 않는 셰프라, 정말 낭만적인 일이 아닐 수 없겠죠. 누구나 목을 매는 커리어인데 말입니다.”
“만약 다른 셰프였더라면 ‘포기’쯤으로 여겼을 겁니다. 이따금 미슐랭의 평가에 지칠 대로 지쳐버린 셰프들이, 종종 미슐랭의 평가를 포기해버리곤 하니까요.”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다만 영 셰프의 경우에는 궤가 조금 다르겠죠. 영 셰프는 전 세계의 모든 셰프를 통틀어, 미슐랭 스타를 따내는 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셰프였으니까요.”
“동감하는 바입니다. 미슐랭 스타의 평가에 압박감을 느끼는 여타 셰프들과 달리, 영 셰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별을 지닌 셰프이자 미슐랭 역사상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별을 따낸 셰프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채였으니 말입니다.”
원 테이블을 기점으로 모여앉은 채, 침을 튀겨가며 대화를 나누고 있던 평론가들이 돌연 약속이라도 한 듯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내 콧수염이 무성히 자란 중년 평론가가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흠, 아무래도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군요.”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턱시도 차림의 중년인 한 명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제 속내를 털어놓았다.
“비록 욕심일 수도 있겠으나 영 셰프가 돌아왔으면 좋겠군요.”
그 말에 바로 옆을 꿰차고 있던 사내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했다.
“그게 욕심이라면 우리 모두가 욕심쟁이일 겁니다.”
이내 침체된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듯, 백발이 성성한 평론가 한 명이 애써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식구의 레시피는 필상이 구상하고 설계 중이라지 않습니까? 매 시즌 출시되는 신메뉴의 퀄리티가 그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듯하고 말입니다.”
“그렇기야 하지요. 하지만 고작 그 정도로 저희를 비롯한 대중들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을 리가요.”
“맞습니다. 끝까지 쓰이지 않은 전기(傳記)를 읽는 기분입니다. 마침표가 찍히지 않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지···.”
그때, 평론가 한 명이 공연히 제 턱을 만지작대며 낮은 목소리로 새로운 의문을 꺼내 들었다.
“지금으로부터 오 년 전, 영 셰프가 돌연 잠정적 은퇴를 발표한 이유라도 알 수 있다면 좋으련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건강이 악화되었다군요. 살인적인 스케줄 탓에 말입니다.”
“그렇습니까? 제가 암암리에 들은 바에 의하면,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던데···.”
“비밀리에 결혼을 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영 셰프의 자산이야, 쉽사리 추측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닐 테니···.”
그때였다.
“아쉽지만 모두 오답이네요.”
등 뒤에서 들려온 낭랑한 목소리에, 그들 모두 화들짝 놀라서는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니라, 한때 필상의 연인으로 알려졌던 바 있는.
하나, 지금은 필상에 관한 이야기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는 유명 셰프 ‘줄리’였다.
이내 그녀가 뚱뚱한 평론가 한 명을 턱짓으로 가리켜 보이고는, 신경질적인 투로 덧붙였다.
“모두 사실과 아예 다른 내용이라지만, 결혼이라니요? 누구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반죽하듯 주무르다가 220도로 예열된 오븐에 넣고 구워버리고 싶네요.”
말을 마친 그녀가 인위적인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셰프의 밤’ 행사가 한창 진행 중인 연회장 안쪽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또각, 또각. 그녀가 한 걸음씩, 걸음을 옮겨댈 때마다 날카로운 구두 굽 소리가 그녀의 뒤를 따르는 중이었다.
‘필상은 여전하네···.’
필상이 업계에서 자취를 감춘 지 무려 오 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하나, 다들 여전히 필상을 잊지 못한 채 상사병을 앓고 있음이 분명했다. 웹 커뮤니티에는 여전히 필상과 관련된 게시물들이 잔뜩 게시되었으며, 여타 평론가 및 칼럼니스트들 역시 화제가 동날 무렵이면 필상에 관한 이야기를 화두에 올리고는 시간을 죽이기 일쑤였다.
오 년.
그사이, 그녀 역시 많은 변화와 발전을 이룩한 상태였다. 전 세계 각지에 위치한 파인다이닝 ‘식구’의 모든 지점에, 샵 인 샵 형태로 론칭되어 있는 그녀의 디저트 파인다이닝 레이첼의 꿈을 기점 삼아 2년 전 자신만의 디저트 파인다이닝 브랜드 ‘필 굿’(Feel Good)을 새롭게 론칭했다. 물론, 필 굿의 ‘필’은 필상의 이름에서 따온 셈이었고 말이다.
다행히,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파리 20구 내에 위치한 ‘필 굿’ 본점이 미슐랭 쓰리 스타를 거머쥐며, 자력으로 디저트 셰프 및 파티쉐로서의 가치를 완벽히 입증해내는 데 성공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그녀 역시 하루빨리 필상이 돌아와 주기를 바랄 따름이었다.
자신이 이뤄낸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알음알음 전해 듣기야 했겠으나, 직접 보여주고 설명해주고 싶었다.
‘필상···.’
잠시 상념에 젖어 들어 있던 그녀가 이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는 모두가 궁금해하는 신비주의 셰프, 필상의 근황을 두세 달에 한 번이나마 전해 들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측근 중 한 명이었다. 두세 달에 한 번씩, 짧게나마 통화를 주고받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얼마 전 필상으로부터, 몹시 희망적인 내용의 몇 마디 말을 전해 들은 바 있었다.
–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다시 주방으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르겠어. 얼마 전, 한국에 남아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졌거든. 감정을 추스르는 대로 돌아가려고 해.
적어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지 모르겠단 불안감이 해소된 상태였다. 돌아올지도 모른다.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업계의 전설’이, 본래 지키고 있었어야 할 자리로.
주방으로···.
*
“셰프, 죄송합니다.”
양 뺨에 주근깨가 잔뜩 돋아있는, *쿡 헬퍼(*Cook Helper:주방 보조)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건넨 말에 주변에 서 있던 요리사들의 타박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정신 똑바로 안 차려? 여기가 어딘 줄 알아? 최고의 파인다이닝, 식구 본점이라고. 다시 한번 그런 실수를 했다간, 당장 쫓겨날 테니까 각오 단단히 해두는 게 좋을 거다.”
“머저리 같으니라고···.”
“국자로 두들겨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네가 아직도 단기 현장 실습 나온 대학생인 줄 알아? 어떤 미친놈이 *스톡(*육수)을 버리는 실수를 해?”
마감 시간에 흔히 벌어질 법한 해프닝이었다. 내일 사용할 육수를, 아직 일이 손에 익지 않은 쿡 헬퍼가 몽땅 버려버린 것이다.
한편, 연이은 타박에 쿡 헬퍼가 눈물까지 글썽이던 그때였다.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던 식구 본점의 젊은 동양인 헤드 셰프. 다름 아닌, ‘이정준’이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아깝지만, 어쩔 수 없죠. 그나마 내일 사용할 스톡이라서 다행이네요. 다시 끓이도록 하세요.”
“죄송합니다.”
“앞으로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면 괜찮습니다. 하역장에서 담배 한 대 태우고 돌아오신 뒤, 손 깨끗이 씻고 다시 끓이도록 하세요.”
“예, 셰프.”
이정준은 식구 본점의 시그니처 아이템이랄 수 있는 검은색 *화이츠(*조리복) 차림을 한 채였으며, 목둘레에는 셰프를 상징하는 하얀색 스카프를 둘러맨 상태였다.
이정준 역시 어느덧 이십 대 초중반에 접어든 상태였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나, 달라진 것은 단연 얼굴에 남은 애티가 가신 것뿐이 아니었다. 손등 위로는 훈장이랄 수 있는 자잘한 자상과 화상 흉터가 부쩍 늘어난 상태였으며, 서 있는 자태며, 눈빛이며, 모든 요소들이 그간 이정준이 지나쳐 온 셰프로서의 시간을 증명해주는 듯했으니 말이다.
쿡 헬퍼가 하역장으로 이어지는 주방 뒷문을 박차고 나서자, 이정준이 곧장 쿡 헬퍼를 잔뜩 타박했던 *쿡(*정식 요리사)들을 돌아보며 재차 말문을 열었다.
“여러분 덕분에 ‘나쁜 경찰과 착한 경찰’ 작전이 먹힌 것 같기야 한데, 그래도 신임 요리사들이 실수했을 때 지나치게 꾸짖지는 않아 주셨으면 좋겠네요.”
“셰프, 아무리 그래도 저런 머저리 같은 실수를 하면 혼쭐이 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쿡 헬퍼의 책임은 선임인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또 여러분의 책임은, 수 셰프의 책임이겠죠. 마찬가지로 수 셰프의 책임은, 아니. 주방 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제 책임이고요.”
말을 마친 이정준이 어깨를 한 번 들썩여 보이고는 되물었다.
“다들 쿡 헬퍼 시기를 거치셨잖아요? 더군다나 저 친구는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식구 본점에 입사한 엘리트고요. 아마 학교에서는 최고의 실력자였을 걸요?”
그 말에 주방 안으로 잔잔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기를 잠시, 이정준이 재차 몇 마디를 덧붙였다.
“안 그래도 불과 몇 달 뒤면 주방이 사실 지옥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회의감 속에서 매일을 살게 될 텐데, 동료 격인 우리라도 힘이 되어줘야 하지 않겠어요?”
“셰프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어차피 견딜 놈은 견딥니다. 못 견딜 녀석들은, 곁에서 어떻게 해줘도 못 견디고요.”
“저는 식구 본점이 견디지 못할 사람도, 끝까지 함께 갈 수 있는 곳이면 좋겠어요. 아마 잠시 자리를 비우신 ‘진짜 셰프’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을까 싶네요.”
여타 쿡들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여가며, “예, 셰프···.” 하고 답해 보이던 찰나였다. 홀로 음식을 내어주기 위해 터놓은 작은 창구에서, 익숙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쁘띠?”
이내 이정준이 고개를 휙 돌려서는, 목소리의 주인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홀 매니저 ‘베니’였다. 식구 홀딩스 리미티드의 교육팀으로 발령이 난 까닭에, 파우스트를. 아니, 식구 본점을 떠났던 그녀가 수개월 만에 돌아온 것이다.
한차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인 그녀가 제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여가며 나른한 투로 덧붙였다.
“이제 정말 셰프 태가 나는 것 같은데요?”
“그럼요.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까요.”
“혹시 잠깐 시간 내주실 수 있으세요?”
“얼마든지요.”
“고마워요. 답례로 좋은 소식을 드릴게요.”
말을 마친 그녀가 제 손에 들린 봉투를 흔들어 보였다. 다름 아니라, 빌리 반 코퍼레이션 측의 로고가 각인된 종이봉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