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20
20
Chapter6 – High Risk, High Return (2)
째깍, 째깍.
홀 앞쪽 스크린을 통해 주어진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모습이, 고스란히 송출되고 있기 때문일까?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이전에 치렀던 1・2차 현장예선 때와 달리 묘한 압박감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인 듯 보일 따름이었다.
반면, 딱 한 사람.
필상 만큼은 사뭇 이야기가 달랐다. 조리를 시작하기에 앞서 콧노래를 흥얼거려가며 손부터 씻어내고 있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지난 며칠간 족히 수백, 수천 번 가량의 이미지 트레이닝을 거친 바 있었다.
결선 무대에 오른 자신이 행하게 될 모든 움직임에 일일히 순서를 매겼으며, 무수히 많은 연습과 상상을 반복한 것이다. 그렇기에, 강렬한 확신을 품고 있는 상태이기도 했다. 계산한대로만 움직인다면, 주어진 시간 내에 모든 요리를 끝마칠 수 있으리라는 강렬한 확신이.
툭, 툭.
손에 묻은 물기를 가볍게 털어내 보인 필상이, 손을 뻗어서는 오븐의 스위치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오븐을 160도로 예열해주기 시작한 것이다. 필상은 일단 코스의 디저트 메뉴로 선정해 둔, ‘*크렘 브륄레’(*Creme Brulee)를 가장 먼저 조리할 요량이었던 것이다.
크렘 브륄레.
프랑스의 대중적인 디저트 메뉴로 차게 식은 커스타드 크림 위에, 유리처럼 얇고 바삭한 설탕 토핑을 얹어내는 요리랄 수 있었다. 필상이 많고 많은 디저트 중 크렘 브륄레를 디저트 메뉴로 채택한 것은, 철저한 계산에 의거하여 내린 결정이랄 수 있었다.
일단 타 디저트 메뉴에 비해 조리에 소요되는 시간이 짧으며, 과정 자체가 단순한 편에 속한다. 뿐아니라, 크렘 브륄레는 차게 식혀 먹는 ‘콜드 디저트’(Cold desert)다.
뜨거울 때 제 맛이 나는 핫 디저트(Hot desert)와 달리, 조리가 타이밍을 고려할 필요 없이 먼저 만들어둔 뒤 방치해두었다가 그대로 접시에 옮겨담아 서비스를 해도 무방한 것이다.
단연 디저트 메뉴 뿐 아니라, 모든 메뉴가 확실한 계산에 의해 촘촘하게 설계된 상태였다.
각 메뉴를 조리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물론이고, 완성되는 타이밍, 심지어 각 메뉴 간의 조화 및 코스의 흐름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인들을 전부 다 고려하여 오트 퀴진을 구성한 것이다.
‘어디 보자···.’
우선 화구의 불을 아주 약하게 켠 뒤, 생크림을 담아낸 냄비를 위에 올려주었다. 크림을 한 번 따뜻하게 데워주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생크림이 어느 정도 따뜻하게 데워졌을 무렵, 바닐라 파우더를 넣어 향을 내는 기존의 레시피와 달리 오렌지 과즙과 ‘*제스트’(*Zest:곱게 간 오렌지・레몬) 껍질을 넣고 섞어주기 시작했다.
이는 마냥 달짝지근한 맛이 아닌, 약간의 산미와 더불어 상큼한 향을 내주기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
이윽고, 필상이 불을 끈 뒤 숨을 깊게 들이쉬는 것으로 향을 한 번 맡아보았다.
‘좋아.’
완벽했다. 오렌지 특유의 달짝지근한 향이, 생크림이 품고 있던 우유 비린내를 완벽히 잡아주고 있었다. 한차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인 필상이, 이내 짙은 주황빛을 띠고 있는 크림에 계란 노른자와 설탕을 적당량 넣어준 뒤 거품기로 빠르게 저어주기 시작했다.
탁, 탁, 탁, 탁-.
거품기와 스테인레스 재질의 보울이 맞닿을 때마다, 연신 둔탁한 소리가 울려퍼질 따름이었다.
그 여파로 맑은 크림이 보울 바깥으로 흘러넘칠듯, 말듯 아슬아슬하게 일렁이고 있는 중이었으나 단 한 방울조차 바깥으로 튀지 않고 있는 상태였고 말이다.
필상이 마냥 바삐 움직이고 있던 제 손을 멈춘 것은, 짙은 주황빛을 띠고 있던 크림이 노른자와 완벽히 뒤섞이며 은은한 연주황빛으로 변했을 무렵의 일이었다.
새끼손가락 끝에 크림을 살짝 묻혀 맛을 보았다. 부드럽고, 달콤하며, 상큼했다. 자신이 의도하고자 했던 맛, 그 자체였다. 이내 필상이 완성된 크림을 마지막으로 체에 몇 번 걸러주고는, 자그마한 원형 용기에 옮겨 담은 뒤 곧장 예열해 둔 오븐 안에 집어넣었다.
이제 약 삼십 분간 오븐에서 노릇하게 구워준 뒤, 완성된 커스타드 크림의 윗면에 흑설탕을 솔솔 뿌리고 토치로 녹여주는 ‘마무리 작업’만 거치면 디저트는 완성이랄 수 있었다.
‘일단 하나 끝.’
필상이 한차례 “후-.”하고 길게 숨을 내쉬어 보이고는, 스크린을 통해 송출되고 있는 남은 시간을 확인해보았다.
[ 1:46:55 ]십오분 만에 손이 꽤 많이 가는 편에 속하는 디저트 메뉴를 끝냈으니, 나름 무난한 시작이랄 수 있었다. 이내 필상이 잠깐 숨 돌릴 새도 없이, 곧장 다음 메뉴 조리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사실 오트 퀴진에 포함되어 있는 모든 메뉴를 완벽에 가까운 상태로 선보이기 위해 지켜야 할 규칙은 사뭇 간단했다.
– 차게 먹는 요리를 가급적 먼저 조리하고, 따뜻하게 먹어야 하는 요리를 최대한 늦게 조리할 것.
단, 예외가 존재하기도 한다. 오랜 시간을 들여야지만 비로소 맛이 깊어지고 풍미가 살아나는 메뉴의 경우, 우선순위에 놓는 것이 좋다.
이를 테면 ‘*마리네이드’(*고기, 생선, 등을 요리하기 앞서 와인, 올리브 오일, 식초, 과일, 주스, 향신료 등에 절여 놓는 것) 작업이라든지, 육수를 우려야하는 국물요리 등이 그랬다.
‘우선 마리네이드부터.’
첫 번째 메인 요리의 주재료인 농어 필렛과, 두 번째 메인 요리의 주재료인 채끝살을 마리네이드하기 시작했다.
두 재료 모두 ‘스테이크’가 되어 각각 생선요리 코스와, 육류요리 코스로 선보여질 예정이었다.
우선 농어 필렛을 접시에 옮겨담은 뒤, 한 번 유심히 살펴보았다. 눈처럼 새하얀 빛을 띠고 있는 것은 물론, 한창 제철이라 그런 것인지 살이 통통하게 잘 올라있는 상태였다.
‘훌륭하네.’
이내 필상이 농어 필렛의 표면에 올리브 오일을 코팅하듯, 골고루 묻혀주기 시작했다. 또 그 위로 레몬즙, 후추, 바질 등의 향신료를 솔솔 뿌려주었다. 단, 소금은 뿌리지 않았다. 농어 필렛 자체가 짭조름한 맛을 지니고 있는 터라, 간이 과해질 우려가 있던 탓이었다.
그 다음엔 곧장 채끝살 마리네이드를 시작했다. 위에 뿌려준 향신료의 종류와 가짓수에만 차이가 있었을 뿐, 채끝살 마리네이드 역시 농어 필렛과 동일한 과정을 거쳤다.
이제 차츰 시간이 흐를수록 표면에 뿌려둔 온갖 향신료들이 올리브 오일과 함께 속살 깊이 스며들며, 맛과 향. 또 풍미까지 골고루 배가될 것이다. 또한 올리브 오일로 한차례 표면을 코팅해둔 터라 변색이 일어나지 않으며, 수분이 말라붙지 않아 더욱 먹음직스러운 외형으로 조리될 터였고 말이다.
이로써 메인요리를 위한 준비도 끝.
이내 필상이 곧장 국물 요리인 수프를 끓여낼 준비를 시작했다. 필상이 채택한 수프 메뉴는 ‘콩소메’라 불리는 국물이 맑은 수프(Clear Soup)였다. 많고 많은 수프들 중, 하필 콩소메를 수프 메뉴로 채택한 이유 역시 지극히 합리적이고 계산적이랄 수 있었다.
콩소메 수프는 묽고 걸쭉한 느낌의 크림 수프들과 달리, 냄비 앞에 달라붙은 채로 눌러붙지 않게끔 휘저어줄 필요가 없었다. 그저 약불 위에 올려놓은 채 뭉근하게 끓도록 방치해두기만 해도,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맛이 깊어지는 것이다.
우선 냄비에 육수 역할을 해줄 브라운 스톡(Brown Stock)을 담아낸 뒤, 불을 올리고 끓여주기 시작했다. 그 다음 샐러리, 양파, 당금, 잘게 다진 쇠고기 등의 재료를 흰자와 잘 섞어준 뒤 끓이고 있는 육수 안에 한 번에 넣어주었다.
이제 이대로 내버려둔 채, 제한시간이 끝나기 전까지 약불에서 뭉근하게 끓여주다가 내주기 직전 체에 몇 번 걸러내기만 하면 된다. 말 그대로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은 것이다.
‘이제 두개 끝.’
필상이 다시 한 번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이제 고작 이십분 남짓한 시간이 흘렀을 뿐이라지만, 디저트와 수프 메뉴를 끝마쳤다. 비록 아직 마무리 작업이 남아있는 상태라지만, 불과 일이 분 남짓한 시간이면 모두 끝낼 수 있을 게 분명했으니 말이다.
또한 오트 퀴진의 초미를 장식하게 될 식전주는 주최측에 요청해 받아둔 샴페인을 잔에 따라 내주는 게 전부이고, 디저트 직전에 선보이게 될 ‘*프로마주’(*치즈) 역시 미리 구비해 둔 완제품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내주기만 하면 된다. 그 말인 즉, 사실상 네 가지 메뉴를 모두 마친 상황이나 마찬가지인 셈.
이제 남은 메뉴는 네 가지 뿐이랄 수 있었다. 차가운 에피타이저와, 따뜻한 에피타이저 메뉴. 또 생선을 활용한 메인 요리와, 육류를 활용한 메인요리에 이르기까지.
또, 남은 시간은 한 시간 사십 분 남짓. 언뜻 보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꽤 있는 듯 보인다지만, 아직 긴장을 내려놓기에는 한참 시기상조인 시점이다. 메인 요리에 곁들일 퓌레도 만들어야 하고, 플레이팅을 위한 준비도 미리 해두어야 할 테니 말이다.
이윽고, 필상이 다시금 마냥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째깍, 째깍-.
그런 지금 역시, 남은 시간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을 뿐이었다.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장내 곳곳에서 조리를 마쳤음을 알리는 벨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조리를 모두 끝마친 참가자들이 하나둘씩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심사가 시작되자, 지루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던 관람객들이 자세를 고쳐앉은 채 스크린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세 명의 심사위원들이 참가자들의 음식을 시식하는 모습을 방송용 8mm카메라가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고, 그 광경이 스크린을 통해 그대로 중계되기 시작한 탓이었다.
심사위원들이 전보다 더욱 엄격한 잣대를 세워둔 채 심사에 임하고 있던 것일까? 아니면, 참가자들이 결선이라는 이름이 선사하는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이런저런 실수를 보인 탓일까?
긍정적이지 못한 평가가. 아니, 독설에 가깝다 해도 과언이 아닐 비평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을 따름이었다.
한 참가자의 배추말이 푸아그라를 맛본 이혜원 셰프가, 입안에 머금고 있던 음식물을 냅킨에 잘 감싸 버린 뒤 차가운 투로 말했다.
“김동현 참가자, 푸아그라의 비릿함과 뻑뻑함을 극대화 시키려는 의도였다면 성공인 것 같네요.”
이내 강훈 셰프 역시 벌레라도 씹은 것 마냥 잔뜩 구겨진 표정을 한 채 제 의견을 덧붙였고 말이다.
“지나치게 오버 쿡 됐군요. 오버 쿡은 그렇다치고, 푸아그라를 배추로 감싼 이유를 알 수 없네요. 배추 자체가 나이프를 거부하는 느낌입니다. 애초에 잘 썰어지지 않으니, 입에 넣기 전부터 거부감이 드네요. 물론 예상했던 그대로의 식감이에요. 심지어 배추의 숨이 잘 죽지 않은 터라, 이파티 끄트머리의 굵은 잎맥이 몹시 거슬리네요. 최악입니다.”
비평을 면치 못한 것은 다음 참가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두현 참가자는 코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군요. 메뉴들이 전혀 조화롭지 못해요. 무겁고, 무겁고, 또 무겁군요. 먹는 이가 느끼게 될 부담에 대해서는 아예 고려하지 않으셨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네요.”
그렇게 심사위원들이 점차 지쳐가고 있었다. 비록 손가락 두세마디 만한 크기의 음식을 서너 종류씩 맛보는 게 전부라지만, 그 짤막한 식사를 벌써 몇 번이나 반복한 상황이었다. 약간의 포만감과, 짙은 더부룩함을 느낄 수밖에 없던 것이다.
이내 강훈 셰프가 제 외투에 부착된 마이크를 손으로 꽉 감싸쥔 채, 나직이 말문을 열었다.
“다 떠나서 참가자들의 메뉴가 너무 많이 겹치는 것 같네요. 저는 이제 연어 에피타이저만 봐도 구역질이 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이혜원 셰프가 낮게 “크큭.”하고 웃음을 흘려보인 뒤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저는 푸아그라요. 조리법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것 같은데, 대체 다들 왜 그렇게까지 푸아그라에 집착하는 걸까요? 정말 도통 알 수가 없네요.”
동조한다는 듯 고개를 몇 번 끄덕여 보인 박한솔 교수가, 미간을 살짝 찡그린 채 제 의견을 꺼내들었다.
“레스토랑에서의 실무 경험이 있는 참가자들을 제외하고나면, 대부분 코스 요리에 대한 이해 자체가 부족한 것 같군요. 우려했던 대로 참가자들에게 꽤나 버거운 주제였나 봅니다···.”
미식을 기대하지는 않았으나, 적어도 고행이 되리라곤 추호도 예상치 못했었다. 이내 이혜원 셰프가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나직이 말문을 열었다.
“그나저나 이제 몇 명 남았죠?”
그때, 강훈 셰프가 짧게 답했다.
“한 명 남았군요.”
그 말에 이혜원 셰프가 “아···.”하고 탄식을 흘려 보인 뒤, 아쉬움이 잔뜩 서린 투로 말했다.
“역시 역부족이었나보네요.”
연달아 심사를 진행해야 하는 터라 미처 신경을 기울일 겨를이 없었다. 이내 세 심사위원이 약속이라도 한 것 마냥, 한 사람을 향해 시선을 옮기기 시작했다. 다른 아홉명의 참가자가 모두 조리를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벨을 울리지 못한 딱 한 명의 참가자에게로.
그렇게 세 사람의 시선이 마지막 참가자, 필상에게 닿기 직전이었다.
띠이잉-.
마지막 참가자의 벨이 울렸다.
“조리 완료됐습니다.”
다름 아닌, 필상이 울린 벨이었다. 이내 심사위원들이 필상의 조리대 바로 앞에 다가섰다. 가장 먼저 물음을 건넨 것은 다름 아닌, 박한솔 교수였다.
“정필상 참가자가 가장 늦었군요. 차라리 메뉴의 가짓수를 줄이고, 조리시간을 단축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비록 한입 크기의 음식이 담겨있는 게 전부였다지만, 무려 사십 접시 가량을 먹었어요. 맨 마지막 순서라는 점이 아주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 말에 필상이 사뭇 덤덤한 투로 되물었다.
“글쎼요? 잘하면 오히려 가장 강렬한 인상을 심어드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이번에는 강훈 셰프가 나직이 물었다.
“그나저나 대체 어떤 요리를 몇 가지나 준비하신 겁니까?”
이내 필상이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답했다.
“도합 여덟 개 메뉴로 구성된 오트 퀴진(Haute Cuisine)입니다.”
그 말에 장내 곳곳에서 높고 낮은 술렁임이 일기 시작했다. 예상하고 있던 바였다. 이내 필상이 객석을 한 번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이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주목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었다.
한데, 뭐랄까?
불신과 편견이 가득 담겨있는 눈빛들 뿐이었다. 바로 앞에 선 채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는 심사위원들 역시 마찬가지. 제 턱을 쓰다듬어가며 “오트 퀴진이라···.”하고 중얼거려 보인 강훈 셰프가, 스산한 투로 말했다.
“행여나 풍부한 구성에 초점을 맞춘 터라, 요리의 질이 떨어지지는 않았을지 염려되는군요.”
염려가 아닌 확신에 가까워보였다. 뭐,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편견이 짙어야, 반전을 줬을 때의 충격이 더욱 커지는 법이니까. 한차례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인 필상이, 샴페인 세 잔을 연거푸 따라내며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우선 첫 번째 코스인 아페리프트, ‘식전주’입니다. 포만감 탓에 속이 더부룩하실 것을 감안하여, 도수가 높지 않고 탄산이 함유된 샴페인으로 준비했습니다.”
이내 심사위원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 마냥, 필상의 두 눈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이토록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썼으리라곤 미처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아페리프트, 즉 식전주의 주된 목적은 본격적인 식사에 앞서 입맛을 돋구기 위함이랄 수 있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필상의 식전주 채택은 지극히 훌륭하다고 볼 수 있었다. 다른 상황이었더라면 모를까, 거듭된 심사 시식 탓에 청량감이 간절했던 심사위원들을 대상으로 내놓기에는 말이다.
이윽고, 세 명의 심사위원이 식전주를 모두 비워내던 찰나. 필상이 곧장 차가운 에피타이저가 담긴 접시를 내주며 말했다.
“두 번째 코스, 차가운 전채요리 ‘청포도 무스를 곁들인 캐비어 카나페’입니다. 코스의 밸런스를 고려하여, 부답스럽지 않은 요리로 준비해봤습니다.”
얇은 크래커 위로, 연두색 색감의 걸쭉한 청포도 무스가. 또 그 위로 윤기를 머금고 있는 검정 캐비어와, 민트 잎사귀가 놓여있는 상태였다.
이내 멍한 얼굴로 첫 번째 에피타이저를 바라보고 있던 강훈 셰프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설마 일부로 가장 마지막 순서를 공략한 건 아니겠지···?’
차가운 전채요리 역시 산미에서 비롯된, ‘상쾌함’에 초점을 맞춘 듯 보이는 요리였던 탓에 품게 된 생각이었다.
마치 거듭된 시식에 의해 지쳐있는 자신을 배려해주기 위한 선택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의도한 것일까? 아니면, 한낱 우연의 일치인 것일까?
‘코스가 더 전개되다보면 알 수 있겠지.’
치솟는 호기심을 억눌러 보인 강훈 셰프가 카나페를 조심스레 집어들고는, 필상의 두 눈을 빤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내 필상과, 강훈 셰프.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딱뜨리던 찰나, 강훈 셰프가 손에 쥐고 있던 카나페를 제 입안에 ‘쏙-.’ 집어넣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아무런 말없이 한참동안 캐비어 카나페의 맛을 음미하는데 집중하고 있던 강훈 셰프가, 한차례 헛웃음을 흘려 보이고는 나직이 중얼댔다.
“허, 맙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