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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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7 – 원 테이블 레스토랑 (4)
어느덧 늦여름에 접어들었기 때문일까? 연립주택이 즐비한 골목을 휘젓고 다니는 아침 바람이 꽤 서늘하게 느껴지는 듯 했다. 마냥 조용하기 그지없는 주택가 골목 안으로, 낡은 포터 트럭이 달달거리는 소리를 내가며 들어서기 시작했다.
끼이익-.
트럭이 멈춰선 곳은 다름 아닌 ‘식구백반’ 앞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트럭의 문이 열리더니,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 보이는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내리셨다. 그렇게 두분께서 가게 출입문 앞에 다다르던 찰나. 아버지께서 돌연 두 눈을 휘둥그레 떠보이시더니, 한차례 “어라···?”하고 낮게 중얼거려 보이셨다.
“응? 왜 그러세요?”
“이것 좀 봐.”
“이게 뭐에요?”
다름 아니라 가게 출입문에 붙어있는 A4용지 한 장 때문이었다.
[ 죄송합니다. 모처럼의 특별한 하루를 위해 금일은 영업을 하지 않습니다. 식구백반 장남 정필상 배상. ]그때 큼지막한 검정색 세단 차량 한 대가 모퉁이를 돌아서는 골목길 안으로 미끄러지듯 진입하더니, 끝내 두분 부모님 앞에 멈춰섰다.
이윽고, 운전석에서 말끔한 정장차림의 중년사내 한 명이 내려서더니 한껏 정중한 투로 인사를 건네왔다.
“안녕하십니까?”
그리고는, 곧장 손수 뒷좌석의 문을 열어주며 나직이 덧붙였다.
“제가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두분 부모님께서는 마냥 멍한 얼굴을 하신 채로, 그런 중년사내를 빤히 들여다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
한 편, 그 시각. 필상의 원 테이블 레스토랑 ‘파미에’(Famille) 안에는 꽤나 많은 이들이 모여있는 상태였다.
우선 필상과, 오늘 하루 필상을 돕게 된 강훈 세프. 그리고 이번 다큐멘터리의 촬영팀에 이르기까지.
“지금 막 부모님 픽업이 완료 됐다고 하네요. 부모님께서는 필상 씨가 이벤트 회사 측에 요청을 하신 정도로만 알고 계세요. 향후 일정을 말씀드리자면 헤어샵에 들렀다가, 인근 커스텀 테일러 양장점에 들러 말끔한 복장으로 갈아입으실 거예요. 그 다음엔 간단히 식사 후, 마사지 샵에. 마지막으로 프라이빗 룸에서 영화까지 한 편 관람하신 뒤에 레스토랑으로 오시게 될 겁니다. 그럼 아마···.”
말끝을 흐려 보인 담당 PD가 제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며 덧붙였다.
“오후 다섯시 무렵이겠네요.”
“넉넉하네요.”
한차례 덤덤한 투로 답해보인 필상이 팔짱을 낀 채, 머릿속에 널브러진 생각들을 정리해나가기 시작했다.
이제 불과 몇 시간 뒤, 원 테이블 레스토랑 파미에의 첫 영업이 시작될 것이다. 첫 번째 손님인 부모님을 시작으로, 두 시간의 간격을 두고 유명 평론가 두 팀이 방문할 예정이었고 말이다.
요리를 만드는 과정은 물론이고, 손님들이 서비스 된 음식을 맛보는 모습, 심지어 그 후에 내리게 될 객관적인 평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광경이 이번 다큐멘터리 안에 담기게 될 게 분명했다.
이내 한창 상념에 젖어들어 있던 필상이, 고개를 돌려서는 강훈 셰프를 바라보며 나직이 말을 건넸다.
“이제 슬슬 옷갈아입고 준비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예, 셰프. 그러시죠.”
짤막하게 답해 보인 강훈 셰프가 놀란 듯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필상에게, 나긋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왜 그래? 오늘은 네가 세프잖아? 나는 급하게 ‘*콜아웃’(*Callout:부족한 주방 인력을 일당 형태로 부르는 것)된 주방보조일 뿐이고.”
“흠, 일리 있는 말씀이긴 한데··· 그래도 주방보조는 조금 그렇고, 일일 *수 셰프(*부 주방장)로 정정하는 편이 좋을 것 같네요.”
필상이 말이 끝맺어지던 찰나, 장내에 있던 이들이 잔잔한 웃음을 흘려보이기에 이르렀다. 이내 강훈 셰프가 필상의 어깨 위에 가볍게 손을 얹어보이며, 나직이 물음을 건넸다.
“그래도 셰프로서 주방에 발을 들이는 건 오늘이 처음이잖아? 떨리거나, 긴장되거나 하지는 않아?”
“글쎄요? 몇 번 거듭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저는 떨거나, 긴장하는 체질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인 강훈 셰프가, 제 몫의 조리복을 챙겨들며 재차 뒷말을 덧붙였다.
“필상아. 이제 앞으로 무수히 많은 이들이 오직 네 레스토랑 ‘파미에’를 기준으로 너라는 요리사를 평가할 거야. 네 현재를 평가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심지어 미래까지 멋대로 재단하고 확신하겠지. 아마 처음에는 견디기 버거울지도 몰라. 생각 외로 정말 힘든 일이거든.”
“네, 충분히 각오하고 있어요.”
짤막하게 답해 보인 필상이 재차 유려하게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무수히 많은 요리사들이 주방이 전쟁터와 같은 곳이라 말하지만, 정작 주방 바깥이 지옥과 같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는 언젠가 이곳으로 돌아오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차례 “주방으로.”하고 말해 보인 강훈 셰프가,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 되물었다.
“피에르 그레이 셰프가 남긴 명언이었나? 최연소로 미슐랭 쓰리 스타를 따내는 쾌거를 이룩했던.”
“네, 맞아요.”
말을 마친 필상이 한차례 심호흡을 해보이고는 재차 말문을 열었다.
“셰프님, 그동안 저는 이 전쟁터에 발을 들이는 상상을 수도없이 해왔어요. 병사가 아닌, 사령관으로 전장을 지휘하는 상상을요.”
그리고는 환한 미소와 함께 덧붙였다.
“평가받는 것은 하나도 두렵지 않아요.”
“그럼?”
“평가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 두렵죠.”
낮지만 울림이 있는 그런 목소리였다. 장내에 모든 이들이 넋이 나간 얼굴을 한 채, 필상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던 찰나.
한차례 “슬슬 시작하는 게 좋겠네요.”하고 말해 보인 필상이, 주방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대기 시작했다.
*
말끔한 검정색 조리복을 갖춰 입은 두 명의 요리사가, 고요하기 그지없는 주방 안에 발을 들였다.
“후···.”
한차례 심호흡을 해보인 필상이 주방 안을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대걸레로 닦아둔 주방 바닥의 물기는 바짝 마른 상태였고, 모든 스테인레스 재질의 식기류가 형광등 빛을 머금은 채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중이었다.
비록 아주 협소한 공간이라지만, 조리에 필요한 설비는 모두 갖춰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내 필상이 강훈 세프를 바라보며 한 치의 굴곡조차 없는 차분한 투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일단 오늘 선보일 요리는 전부 다 숙지해두셨죠?”
강훈 셰프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해보이자, 필상이 재차 조곤조곤한 투로 자신이 세워둔 계획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일단 디저트 용 반죽 숙성이나, 육류 및 어류 마리네이드처럼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작업만 먼저 해둘까 해요.”
“다른 작업들은?”
“어차피 한 번에 두 명내지 세 명 분의 요리를 조리하는 게 전부니까, 손님들이 매장에 방문하신 직후나 방문하시기 이전에 시간을 맞춰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더라고요.”
강훈 셰프가 고개를 몇 번 끄덕여보이던 찰나, 카메라 맨이 조심스러운 투로 물음을 건네왔다.
“필상 씨, 그나저나 메뉴판이 조금 휑한 것 같던데요? 더군다나 가격도 꽤 높은 것 같고, 코스 구성에 대한 설명만 있을 뿐이지 어떤 메뉴가 포함되어 있는 것인지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은 아예 없더라고요.”
카메라 맨의 말대로였다. 홀 테이블 위에 놓인 자그마한 메뉴판에는 오직 하나의 메뉴만이 적혀있을 뿐이었으니 말이다.
[ 파미에 오트 퀴진 – 119,000 원. ]여타 레스토랑처럼 런치와 디너의 구분이 나누어져 있지도 않았으며, 가격도 꽤 센 편에 속했다. 심지어 아래로 적힌 설명은 더욱 간결했고 말이다.
[ 1. 식전주와 한입요리 – 2. 콜드 에피타이저 – 3. 수프 – 4. 핫 에피타이저 – 5. 생선을 활용한 메인요리 – 6. 육류를 활용한 메인요리 – 7. 디저트 – 8. 치즈 – 9. 차 혹은 커피, 그리고 과자 ]순서에 대한 설명만 있을 뿐, 테이블 위에 올라오게 될 요리에 대한 설명은 아예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내 필상이 한차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코스의 다채로운 구성을 감안해본다면 그리 높은 금액은 아닐 겁니다. 이 정도 금액을 지불했지만, 행복한 식사였다. 손님들께서 그런 생각을 하실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죠.”
“흠, 그렇군요. 그럼 코스를 구성하는 메뉴에 대한 설명이 기재되어 있지 않은 이유는 뭔가요?”
“예약하신 손님의 취향과 기호에 맞춰 메뉴에 변동을 주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을 받게 될 예정인데, 예약신청 페이지를 보면 예약자가 원하는 요리 종류를 고를 수 있도록 되어있거든요. 취향이나 기호에 맞춰서 원하는 식재료를 골라주시면, 맞춰서 코스를 설계하는 형식인 셈이죠.”
말을 마친 필상이 재차 덧붙였다.
“뭐, 예약을 하시지 않은 손님들 같은 경우에는 제가 임의로 선정한 그날의 코스를 맛보게 되실 테고요.”
한차례 “오···.”하고 침음을 흘려 보인 카메라맨이, 재차 고개를 갸웃거려 가며 되물었다.
“그 정도 정성이라면 확실히 지불하는 금액이 아까울 것 같지는 않네요. 그런데 과정이 상당히 번거롭지 않을까요?”
“까다로운 일이겠지만 그래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잖아요? 이 정도 고집을 피울 게 아니었더라면, 원 테이블 레스토랑 대신 테이블을 대여섯개라도 구겨넣어둔 소규모 레스토랑을 개업했겠죠.”
말을 마친 필상이 귀찮다는듯 재차 되물었다.
“더 궁금하신 것 없죠?”
마지못해 “네···.”하고 답해 보인 카메라맨이 몇 걸음 뒤로 물러서자, 필상이 곧장 오늘 선보일 요리들을 위한 밑작업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필상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촬영팀 일동이, 저도 모르게 높고 낮은 감탄을 흘려보이기 시작했다. 다름 아니라, 요리에 대한 기반지식이 그리 두텁지 않은 촬영팀이 보기에도 움직임이 상당히 노련해보였던 탓이었다.
자신이 해야 할 모든 일에 순서를 매겨두기라도 한 것 마냥 유려하게 해나가는 와중에, 이따금씩 강훈 셰프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곤 했다. 이내 카메라맨이 강훈 셰프에게 다가가서는 조심스레 물음을 건넸다.
“강훈 셰프님이 보시기엔 어떠세요? 오늘 하루 성공적으로 손님들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짤막하게 답해 보인 강훈 셰프가 화구 앞에 선 채, 무언가를 열심히 끓여내고 있는 필상을 곁눈질로 바라본 뒤 재차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지난 2013 서울시 전국 요리대회 결선 무대 심사가 끝났을 때, 박한솔 교수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유명 맛 칼럼리스트, 박한솔 교수님 말씀하시는 거 맞죠?”
한차례 “네, 맞습니다.” 하고 답해 보인 강훈 셰프가 재차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때 하신 말씀이, ‘정필상 참가자는 훌륭한 셰프가 될 자질을 가지고 있다.’ 였거든요? 이게 애매모호한데 사실 훌륭한 요리사가 될 자질과, 훌륭한 셰프가 될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말에는 큰 차이가 있거든요.”
“흠, 말씀하신대로 애매모호한 감이 있네요. 부연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셰프는 주방을 지휘하는 사람이에요. 오케스트라의 마에스트로(Maestro)와 같은 맥락인 거죠. 사실 단순히 ‘요리만 잘하는 사람’은 지천에 널려있어요. 하다못해 국내만 놓고 보더라도 족히 수천 명은 될 걸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다 셰프가 될 수는 없어요. 요리에 대한 재능은 지니고 있지만, 아직 셰프가 될 자질은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죠.”
이내 말을 마친 강훈 셰프가, 잠시 틈을 두고 재차 말을 이었다.
“사실 저도 박한솔 교수님 말씀에 적극 동감하는 바에요. 필상이, 아니. 정필상 셰프는 요리에 대한 재능은 물론이고, 지휘자로서의 자질까지 갖추고 있어요. 뭐랄까? 통찰력이라고 해야 하나? 아주 오랜 시간 주방에 서보지 않고서는, 좀처럼 기를 수 없는 감각을 타고 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쉽고 간단히 표현하자면···.”
그리고는 카메라 렌즈를 뚫어지라 바라보며 덧붙였다.
“천재에요.”
*
PM 4:50
파미에의 첫 번째 손님인 ‘부모님’의 예약시간인 다섯시까지, 고작 십 분 가량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그런 지금.
사전에 모든 준비를 끝마쳐 둔 필상은 주방 조리대에 기대어 선 채, 연신 홀쪽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이내 카메라맨이 다시금 다가와서는 나직이 물음을 건넸다.
“부모님을 레스토랑의 첫 번째 손님으로 모시자는 건 필상 씨의 아이디어였잖아요?”
“네.”
“혹시 짤막하게라도 지금 심정이 어떤지에 대해 들어볼 수 있을까요?”
한차례 “음···.”하고 침음을 흘려보인 필상이, 씽긋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답했다.
“오늘 방문하실 손님들 중 제일 떨리는 손님이에요. 사실 부모님께 제대로 된 정찬을 대접해드린 적이 없거든요.”
“그럼 이번이 처음인 거예요?”
“네. 그래서 그런지 기분이 싱숭생숭하네요. 떨리기도 하고, 조금은 기대되기도 하고. 여튼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요.”
부끄러운 일이라지만, 회귀 이전의 삶 속에서는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께 제대로 된 정찬을 대접해드렸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제대로 된 오트 퀴진을 대접해 드리는 것은 두 번의 삶을 통틀어 이번이 처음인 셈이었던 것이다.
그때, 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스태프 한 명이 나직이 말문을 열었다.
“이제 1분 뒤에 도착하실 예정이라시네요. 강훈 셰프님은 홀에서 대기해주시면 될 것 같은데요?”
접객 및 주문. 또 서비스를 비롯한 홀 업무는 강훈 셰프가 담당하고, 조리 업무는 모두 필상이 담당하기로 정해 둔 상황이었다. 이내 강훈 셰프가 한차례 “잘 해보자.”하고 말해 보인 뒤 곧장 주방을 나섰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출입문 상단부에 부착된 종이 울리더니, 연달아 강훈 셰프 특유의 낮고 차분한 음성이 들려왔다.
“어서오십시오. 우선 외투 및 짐부터 받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파미에의 첫 번째 손님인 ‘부모님’이 도착 하셨으니, 원 테이블 레스토랑 파미에의 첫 영업이 시작된 셈이었다.
한차례 심호흡을 해보인 필상이 곧장 조리복 소매를 걷어 올리고는 ‘*스토브'(화구) 앞에 섰다. 그런 필상의 두 눈 위로 또렷하기 그지없는 이채가 서려있는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