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3
3
Chapter2 – 변화의 조짐 (1)
1.
꿀꺽-.
침을 한 번 삼켜내 보인 필상이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빤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정말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장장 십수 년에 달하는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오게 된 지도, 어느덧 오늘로 일주일째다. 하지만, 필상은 여전히 자신에게 일어난 ‘회귀’라는 이름의 기현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달리 생각해본다면 응당 당연한 일이었다. 이는, 상식만 가지고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마치 기나긴 잠에서 깨어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자신이 회귀 이전에 겪었던 모든 일들이 한낱 ‘꿈’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정말 꿈이었던 거라면, 다시는 꾸고싶지 않은 악몽쯤 되겠네.’
고개를 몇 번 내저어 보이고는 곧장 노트를 펼쳤다. 메모를 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것. 필상의 오랜 습관이었다. 그렇게 애꿎은 볼펜 끄트머리만 질겅질겅 씹어가며, 펼쳐둔 노트를 하염없이 째려보고 있기를 잠시.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은 더 이상 하지 말자.’
머리를 싸맨 채 고민을 거듭한다 한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게 분명했다. 설령 고민의 고민을 거듭한 끝에, 자신이 어떻게 과거로 돌아오게 된 것인지에 대한 ‘이유’나 ‘원리’를 밝혀낼 수 있다고 쳐보자. 그럼, 그 다음에는? 다시 회귀 이전으로 돌아갈 방법을 간구하기라도 할 것인가? 절대 아니다. 하루 하루가 생지옥이나 마찬가지였던 그 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정말 추호도 없었으니 말이다.
‘마음 편히 받아들이자. 이건 기회야.’
못 다 이룬 채 포기해야 했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이자, 후회로 얼룩졌던 삶을 수정할 수 있는 기회다. 그토록 갈망하던 기회를 손에 넣었으니, 쓸 데 없는 고민에 시간을 할애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 지에 대해 고민하는 게, 백배는 옳은 일이리라.
‘계획. 그래, 일단 계획부터 한 번 세워보는 게 좋겠어.’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인 필상이, 곧장 노트 위에 무언가를 적어내리기 시작했다.
슥, 스슥-.
– 우선, 지금은 2013년 5월 11일이다.
장장 이십년에 달하는 시간을 거슬러, 자신이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하고 있던 시기로 돌아오게 됐다. 과장을 조금 보태어 말하자면, 정말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나이다. 다시금 펜을 쥔 손을 움직여서는, 무언가를 적어내리기 시작했다.
슥, 스윽-.
– 1. 세계 최고의 셰프 되기.
못 다 이룬 채 포기해야 했던 꿈이다.
과연 이번에는 이룰 수 있을까?
고민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할 수 있어, 무조건.”
비록 과정이 험난할 것 같기야 하다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이룰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만약 다시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자신은 이전의 삶에서 쌓아둔 ‘경험’이란 무기를 지니고 있는 상황이지 않은가?
그동안 여러 레스토랑의 주방을 거치며 오랜 시간동안 부딪히고, 깨졌으며, 그 과정 속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적어도 전생에 비해서는 수십 배. 아니, 족히 수백 배는 훨씬 더 유리한 선상에서 출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지.’
어영부영 중간쯤 가는 요리사를 목표로 두고있는 것이라면 모를까, 자신은 지금 ‘세계최고의 셰프’를 꿈꾸고 있다. 앞으로 자신이 경쟁하게 될 상대는 귀여운 또래 요리사 지망생들이 아니라,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유명 셰프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이내 필상이 다시금 상념에 젖어들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과연 어떤 길이 가장 쉽고, 빠르게 꿈에 다가갈 수 있는 효율적인 길인 것일까?
일단 다시금 레스토랑에 말단 직원으로 입사한 뒤, 바닥부터 차근차근 올라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명성을 쌓고, 세계무대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커리어는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개업한 레스토랑을 성공적으로 운영했다는 이력이다. 언제든 쉽게 대체될 수 있는 부품. 즉, 직원으로 일했던 이력은 사실상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단 직접 돈을 모아 레스토랑을 개업하는 건 지나치게 비효율적이야. 아니,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겠지.’
장장 8년이란 시간 동안, 매달 백만 원이라는 금액을 꼬박꼬박 저축한다 한들 9600만원을 모으는 게 고작이다. 그래봐야 채 1억이 안 되는 것이다. 설령 죽기 살기로, 이를 악 문채 모은 1억이란 돈이 수중에 있다 해도 마찬가지다.
그 정도 푼돈으로는, 그럴싸한 레스토랑을 개업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 이태원이나, 가로수길, 강남을 비롯한 수도권 내 주요상권의 경우 기본 권리금자체가 평균적으로 2억 원대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니까.
고로, 직접 돈을 모아 레스토랑을 개업하는 건 불가능.
‘결국 답은 하나 뿐인 건가?’
필상이 다시금 노트에 무언가를 적어내렸다.
– 2.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수억 원 가량의 투자금을 끌어올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해지기.
유명해 져라, 그럼 똥을 싸도 박수를 쳐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앤디 워홀’이 했다고 믿는 말이다. 실제로 앤디 워홀은 저런 말을 한 적이 없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저 말이 틀린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당장 자신이 알고 있는 미래만 놓고 보더라도 그랬다.
‘TV쇼에 출연한 뒤 인생이 바뀐 셰프들이 한둘이 아니었지.’
스스로를 상품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일단 유명세를 갖추고 나면 거액의 투자금을 끌어오기가 훨씬 더 수월해진다. 다행히, 시기가 나쁘지 않다. 마침 한창 쿡방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는 중이다. 대중들의 요리에 대한 관심도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으며, 국내 유명 셰프들의 인지도와 영향력 역시 덩달아 상승하고 있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셰프와 엔터테이너를 결합한, ‘셰프테이너’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했을까?
현재 손에 쥐고 있는 여러 카드들을 영리하게 잘 활용한다면, 생각보다 손쉽게 인지도를 얻어낼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이를 테면 전생의 경험을 통해 얻은 성취를, 재능으로 포장해 버린다든지···.
‘일단 이 부분은, 더 시간을 두고 천천히 고민해보자.’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은 따로 있었다.
다름 아닌, 학교.
현재의 자신은, 아직 고등학교 1학년 1학기조차 끝마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 말인 즉, 앞으로 무려 2년 반에 달하는 시간을 학교에 묶여있어야 한다는 뜻이나 마찬가지.
낮은 목소리로 연신“학교, 학교, 학교···.”하고 중얼대던 필상이, 다시금 노트 위에 무언가를 적어내기 시작했다.
슥, 스슥-.
– 3. 최대한 빠르게 부모님을 설득하고, 학교 자퇴하기.
아직 자신이 나아갈 방향이 정해진 것은 아니라지만, 그렇다고 해도 성인이 될 때까지 학교에 묶여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고등학교 졸업장이야, 검정고시로 취득하면 그만이니까. 문제는 부모님을 어떻게 설득하냐는 것인데···.’
뭐, 눈 한 번 꼭 감은 채로 온갖 생떼를 다 부린다면 어떻게든 그만둘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신연령이 마흔에 근접하는 와중에 방바닥에 대(大)자로 드러누워서는 “엄마, 아빠! 나 학교가기 싫어! 무조건 그만둘 거야!”하고 떼를 쓸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나마 다행인 점은 두 분 부모님이, 그리 꽉 막힌 분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 부분도 천천히 고민해보자. 충분히 납득하실 수 있을 만한 결과물을 보여드린다면, 예상보다 쉽게 허락해주실 지도 모르니까···.’
한창 상념에 젖어들어 있던 필상이, 돌연 고개를 돌려서는 벽면에 거치된 시계를 한 번 바라보았다. 어느덧 저녁 일곱시, 부모님의 식당 ‘식구백반’이 한창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을 바쁠 시간대였다.
‘잠깐이라도 나가서 도와드려야겠다.’
결심을 굳힌 필상이, 제 노트 위에 글귀 한 줄을 추가로 적어넣었다.
슥, 스슥-.
– 4. 후회가 남지 않는 인생 살아가기. (가장 중요!)
그리고는 노트를 제 책상 서랍에 잘 넣어둔 뒤 곧장 집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