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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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9 – 상승기류 (2)
언제, 어디서였더라?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으나 일전에 한 번 그런 말을 들었던 적이 있다. 인생은 잠들고 싶지 않은 밤과, 깨어나고 싶지 않은 아침의 무한한 반복이라는 말.
지금 필상은 푹신한 이불을 꽉 끌어안은 채로, 그 말에 절실히 공감하고 있는 상태였다.
“하아-.”
다큐멘터리 촬영 및 뒷정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기 무섭게, 뱀이 허물을 벗듯 걸쳐입고 있던 옷가지를 대충 바닥에 벗어던졌다. 그 다음엔 곧장 침상에 몸을 뉘였고 말이다.
아주 잠깐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뜬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한데, 어느덧 아침 여섯시. 이제 하루를 시작해야하는 시간에 접어든 상태였다. 비록 오늘 손님이 있을지, 없을지는 알 수 없다지만 정해둔 영업시간을 지키려면 이제 슬슬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애꿎은 시계만 노려보고 있던 필상이, 제 머리칼을 한 번 헝클어뜨려 보이고는 곧장 컴퓨터 앞으로 향했다. 우선 자신의 원 테이블 레스토랑 ‘파미유’의 홈페이지에 접속한 뒤, 오늘 예약한 손님이 있는지를 먼저 확인해 볼 요량이었던 것이다.
‘한 팀이라도 예약이 잡혀있으면 좋을 텐데···.’
촬영을 마친 다큐멘터리가 방영된 뒤라거나, 파미유를 주제로한 칼럼이 연재된 뒤라면 모를까···.
지금 당장은 예약손님을 기대하기가 힘든 상황이랄 수 있었다. 사실상 예약 손님이 한두 팀 있다 하더라도, 자신이나 부모님의 지인(知人)일 가능성이 농후했고 말이다.
딸깍-.
필상이 마우스 버튼을 한 번 클릭하자, 한차례 새하얘졌던 모니터 화면 위로 금일 예약현황이 나타났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잠시간 멍한 표정을 한 채 모니터 화면만 뚫어지라 들여다보고 있던 필상의 미간 위로, 서서히 짙은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다름 아니라, 제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던 탓이었다.
[ No.1 – AM 11:00 김승연 외 1명 ] [ No.2 – PM 01:00 최민기 외 2명 ] [ No.3 – PM 03:00 이재형 외 1명 ] [ No.4 – PM 05:00 김태형 외 1명 ] [ No.5 – PM 07:00 최민호 외 3명 ] [ No.6 – PM 09:00 이혜리 외 1명 ]오늘 예약된 손님만 하더라도 자그마치 여섯 팀이다. 혹시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닐까 싶은 마음에, 제 두눈을 연신 문질러보았으나 당연히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더군다나 여섯 팀은 자신이 직접 설정해둔 일일 최대 예약 팀 수였다. 말 그대로 “예약이 꽉 찼다.”고 표현하기에, 일절 부족함이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마냥 넋을 놓은 채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고 있기를 잠시. 지금은 멍청하게 앉아있을 때가 아니라, 곧 불어닥칠 태풍에 대비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휴대폰을 집어들어서는, 강훈 셰프에게 보낼 문자메시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 셰프님, 이른 시간에 정말 죄송합니다. 혹시 주무시고 계시지 않다면 잠시 통화 가능할까요? ]여섯 팀에게 각기 다른 메뉴로 구성된 코스를 선보여야 하는 상황이 아니던가? 분신술이라도 쓸 수 있는 것이라면 모를까, 혼자 감당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이라 단언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일단 ‘*콜아웃’(*부족한 주방 인력을 일당 형태로 고용하는 것)부터 요청하는 게 올바른 수순이라 판단한 것이다.
휴대폰 액정 위로 ‘전송이 완료되었다.’는 내용의 문구가 나타났음을 확인한 뒤에는, 곧장 예약손님들이 제출한 앙케이트 자료를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오늘 영업에 필요한 식재료 목록을 정리해가며, 어떤 요리를 선보일지에 대한 구상을 하기 위함이었다.
째깍, 째깍. 초침소리가 귀로 파고들 때마다, 목을 옥죄는 긴박감의 강도가 점점 더 거세지는듯 했다. 벼랑 끝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것 마냥 가슴팍이 간질거렸다. 하지만, 딱히 불쾌하다는 생각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유쾌했다.
‘옛날 생각 나고 좋네.’
아주 오랜 시간동안 그리워했던 기분 좋은 긴장감이었다. 프랑스 현지의 미슐랭 투 스타 레스토랑에서 ‘*수 셰프’(*부 주방장)로 근무하던 때, 매일 아침마다 느끼곤 했던.
필상이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 오늘 선보일 요리들을 제 수첩에 적어내리고 있던 때였다. 책상 한 편에 놓여있던 휴대폰이 제 몸을 부르르 떨어대기 시작했다.
[ 강훈 셰프님 ]액정 위로 나타나 있는 이름을 한 번 확인한 뒤 곧장 전화를 받았다.
“셰프님, 이른 아침부터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 아냐, 무슨 일인데?
이내 필상이 손에 쥔 펜을 빙글빙글 돌려가며, 침착하기 그지없는 투로 본론을 꺼내들었다.
“다름 아니라, 혹시 셰프님의 레스토랑에 ‘콜아웃’을 요청할 수 있을까해서요.”
– 응? 갑자기 콜아웃은 왜···?
“저도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확인해보니까 오늘 예약이 꽉 차있더라고요.”
– 잠깐만, 뭐라고?
한차례 “네.”하고 짧게 답해 보인 필상이, 모니터 화면 위로 나타나있는 예약자목록을 바라보며 말을이었다.
“모든 손님들에게 일관된 코스를 내주는 것이라면 몰라도, 여섯 팀에게 각기 다른 메뉴를 선보여야 하는 상황이잖아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혼자서는 절대 무리에요.”
– 이제야 조금 인간미가 느껴지네. 그래서 몇 명이나 필요할 것 같은데?
“홀과 주방. 각각 한 명씩. 도합 두명이면 충분할 것 같아요. 혹시 가능할까요?”
– 응, 두 명 정도면 문제 없어. 따로 원하는 조건은 있고?
“일단 주방 인력은 ‘*쿡 헬퍼’(*Cook Helper:주방보조) 수준이어도 상관없어요. 어차피 식재료 밑작업이나 정리 같은 단순한 업무만 지시할 거라서요.”
– 그럼 홀 인력은?
“최소 캡틴 급 이상이었으면 하는데 가능할까요? 처음 발을 들인 레스토랑에도, 자연스레 녹아들 수 있는 센스있는 분이면 더 좋고요.”
레스토랑 홀 직원의 임무는 단순히 주문을 받고, 완성된 요리를 테이블 위로 날라주는 것 정도가 아니다.
그들은 레스토랑의 첫 인상이다. 그렇기에 해외 현지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는, 특히 미슐랭 쓰리스타를 목표로 두고 있는 곳들은 홀 직원들에게 엄격한 교육을 진행하곤 한다. 심지어 난이도 높은 입사시험을 치르는 곳도 더러 있고 말이다.
단연 맛뿐 아니라, ‘서비스’ 역시 좋은 레스토랑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데 있어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홀 직원의 형편없는 서비스 탓에, 괜한 비평을 듣는 일만은 면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 일단 스케줄 표를 봐야 알 것 같은데 어떻게든 맞춰보도록 할게. 그나저나 제대로 된 홍보도 안 했는데, 어떻게 예약이 꽉 찬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지인들이야?
“아뇨. 일단 지인들은 아닌 것 같은데, 저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잘 모르겠어요.”
– 흠, 다큐멘터리 티저 영상이라도 공개됐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 정도 반응은 잘 이해가 안 가는데···.
한차례 말끝을 흐려 보였던 강훈 셰프가, 잠시 틈을 두고는 재차 뒷말을 덧붙였다.
– 어떻게 된 상황인지는 내가 알아볼 테니까, 일단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는 게 좋을 것 같네.
“네. 감사합니다.”
통화를 마친 뒤, 필상이 곧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서는 집을 나설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제 몸으로 부딪혀야 할 시간이다. 그런 와중에도 초침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
자신의 원 테이블 레스토랑 ‘파미유’에 도착한 필상이 곧장 준비를 시작했다.
우선 인근 식당에서 거의 모든 식자재를 매입해 둔 상태였고, 미처 구입하지 못한 식자재는 배송업체 측에 발주를 넣었으니 늦어도 한두 시간 안에는 도착할 게 분명했다.
그렇게 필상이 한창 분주히 움직이고 있던 때였다. 돌연 주방 바깥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던 탓에, 필상이 잠시 제 손을 멈춘 채 홀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정신없네?”
다름 아닌, 강훈 셰프였다. 그런 강훈 셰프의 뒤로는, 콜아웃 인원인듯 보이는 두 사람이 서있는 상태였고 말이다.
한차례 “셰프님!”하고 반갑게 인사를 해보인 필상이, 강훈 셰프의 등 뒤로 서있는 두 사람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한 명은 이십대 중후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였고, 다른 한 명은 꽤 낯이 익은 앳된 얼굴의 소년이었다.
잠시 그의 얼굴을 뚫어지라 바라보고 있던 필상이, 낮은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이정준 참가자···?”
다름 아니라, 지난 2013 서울시 전국 요리대회 주니어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던 바 있는 ‘이정준’이었다. 현장예선이 시작되기에 앞서 필상과 언쟁 아닌 언쟁을 벌였던 바 있는.
이내 강훈 셰프가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답했다.
“두 사람은 서로 구면이지? 이쪽은 오늘 홀 콜아웃 인원인 김정아 씨.”
소개가 끝맺어지자 김정아가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인사를 건네왔다.
“셰프님,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짤막하게 답해 보인 필상이 이정준과, 강훈 셰프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되물었다.
“설마 오늘 주방 콜아웃 인원이 이정준 씨에요?”
이내 강훈 셰프가 고개를 한 번 주억거려 보이고는, 특유의 나긋한 목소리로 답했다.
“응, 얼마 전에 돌체 모멘트 주방에 취직했거든. 정준이 말고는 딱히 빼올만한 인원이 없더라고. 그리고 쿡 헬퍼 수준이어도 상관없다며?”
“네, 그건 그런데 이정준 씨는 아직 학생이지 않아요···?”
“너랑 비슷해. 고등학교 자퇴 처리하고 요리에 전념하다가, 지난 해에 검정고시 졸업장 취득했어.”
강훈 셰프의 설명이 끝맺어지자, 이정준이 돌연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덧붙였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내 떨떠름한 표정으로 “예.”하고 답해보인 필상이, 제 앞머리칼을 한 번 쓸어올려 보이고는 사뭇 상투적인 투로 덧붙였다.
“이정준 씨, 오늘은 부디 서로 얼굴 붉힐 일 없었으면 좋겠네요.”
“일전에는 제가 정말 죄송···.”
“괜찮습니다. 시간이 촉박하니까 우선 옷부터 갈아입으세요.”
본래 서로 불같이 화를 내며 싸우다가도, 자연스레 풀어지곤 하는 곳이 주방이다. 지난 번 이정준의 태도가 내심 마음에 들지 않지도 않았고, 썩 반갑게 느껴지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이전에 있던 일을 마음에 담아두는 편도 아닌데다가 상황이 긴박한지라 내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정준이 조리복을 챙겨든 채 화장실로 향하자, 강훈 셰프가 조심스레 물음을 건네왔다.
“정 셰프, 혹시 정준이랑 무슨 일 있었어?”
“아뇨, 그냥···.”
딱히 좋은 일도 아닌데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 대강 얼버무리자, 강훈 셰프가 뭔가 잊고 있었다는 듯 “아, 맞다.”하고 중얼거려 보인 뒤 다시금 말문을 열었다.
“오늘 예약 말인데 아무래도 ‘조두현 평론가’ 덕분인 것 같더라. 어제 자정 무렵에, 개인 홈페이지랑 SNS에 파미유 관련 칼럼을 게시하셨는데 반응이 예사롭지가 않아.”
“네? 관련 칼럼을 써주시기로 약속하긴 했었는데, 그래도 분명 보름 정도는 걸릴 거라고 하셨는데···.”
“알고 있을지 모르겠는데 기준이 엄격하기로 유명한 양반이잖아? 더군다나 올해 들어서는 긍정적인 내용의 칼럼을 연재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거든. 극찬까지는 아니더라도, 간만에 호평 가득한 칼럼을 연재했는데 나한테 투자받은 열일곱 살 셰프가 운영하는 원 테이블 레스토랑이라니까 읽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호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지 않겠어?”
유려하게 말해 보인 강훈 세프가 제 스마트 폰을 만지작 거려가며 나직이 덧붙였다.
“칼럼 링크 보냈으니까 시간 날 때 한 번 살펴봐. 어쨌든, 나는 이제 슬슬 돌아가봐야겠다.”
“네, 셰프님. 도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됐어. 혹시 무슨 일 있으면 곧장 연락하고.”
말을 마친 강훈 셰프가, 쭈뼛쭈뼛 곁을 지키고 서있던 김정아를 바라보며 “정아 씨, 고생해요.”하고 말해 보인 뒤 곧장 레스토랑을 나섰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조두현 평론가가 연재했다는 칼럼을 확인해보고 싶었으나, 시간이 지나치게 촉박했다.
이내 필상이 곧장 김정아에게 미리 적어두었던 코스 구성표를 건네주며 나직이 말했다. 단순히 요리의 이름 뿐 아니라, 조리에 쓰인 식재료와 원산지 및 먹는법에 대한 상세한 설명까지 기록되어 있는 표였다.
“우선 이것부터 외우시겠어요? 각 팀 별로 서비스 될 코스 구성이 전부 다른지라 전부 외워두셔야 할 거예요.”
“아, 예! 알겠습니다!”
“네. 저는 준비할 게 많아서 주방에 가볼게요. 혹시 잘 모르겠으시면 언제든 편히 여쭤보셔도 좋아요.”
필상이 다시금 밑재료 준비에 열중하기 시작하던 찰나, 환복을 마친 이정준이 주방 안에 들어섰다. 이내 필상이 그런 이정준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나직이 말했다.
“간단한 작업만 거들어주시면 되니까 어렵지는 않을 거예요. 우선 조리대 위에 오늘 선보일 메뉴 정리해 둔 종이 있으니까, 살펴본 뒤 적어둔 순서대로 처리해주시면 돼요.”
“예, 알겠습니다.”
강훈 셰프에게 억지로 끌려오는 내내, 필상이 지난 일을 빌미로 삼아 듣기 거북한 말을 연발할 것을 걱정하고 있던 이정준이었다. 한데, 아무래도 완벽한 오산인 듯 했다. 필상은 그저 묵묵히 제 할일을 해나가고 있을 뿐이었으니 말이다.
이내 이정준 역시 제 할일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필상이 말했던 대로 식자재를 분류하고, 다듬는 정도의 난이도 낮은 업무가 전부였다. 그나마 난이도가 높은 업무를 꼽아보자면 생선을 손질하는 것 정도랄까? 이 마저도 여턔껏 몇 번이고 해본 바 있는 손에 익은 업무였지만 말이다.
이정준이 제 칼을 부드럽게 움직여가며, 농어를 다듬는데 집중하고 있던 찰나였다.
“틀렸어요.”
필상이 느닷없이 건네 온 말에 이정준이 “예?”하고 되묻자, 필상이 고개를 한 번 내저어 보인 뒤 설명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이정준 씨, 모든 생선류는 가급적 세워둔 상태로 보관하는 겁니다. 저렇게 눕혀두면 살이 물러지고 혈액이 몰려서 완전히 맛이 가버리거든요.”
“아, 죄송합니다.”
“잠깐 칼 좀 빌려주시겠어요?”
이내 이정준이 제 손에 움켜쥐고 있던 칼을 필상에게 조심스레 건네주었다.
“잘 봐두세요. 자꾸 그렇게 손으로 생선을 만지작대면 체온 때문에 신선도가 떨어집니다. 그럼 애써 신선한 생선을 골라 온 의미가 사라지지 않겠어요?”
“유의하겠습니다.”
“생선 손질은 하나만 기억하면 됩니다. 최소한의 접촉으로 필레를 만든다고 생각하시면 되요. 손이든, 칼이든 생선과 접촉하는 횟수를 최대한 줄이는 거죠.”
말을 마친 필상이 사뭇 진중한 표정을 한 채, 농어 손질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이전 서울시 대회때에도, 필상이 연어를 손질해내는 과정을 한 번 지켜봤던 바 있는 이정준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모든 동작이 물흐르듯 이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툼한 농어 필레 몇 덩어리가 완성되었다. 이내 필상이 칼을 도마 위에 조심스레 내려놓으며 나직이 덧붙였다.
“이건 기본입니다. 다음부터는 조심하세요.”
“예, 셰프.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저런 가르침들이 연달아 이어졌다. 이정준이 새로운 식재료 손질을 시작할 때마다, 필상이 다가와서는 잘못된 점을 지적해주었던 것이다. 비록 날이 선 말을 일삼지는 않았으나, 어딘가 예민하고 날카롭게 느껴지는 태도들이었다.
이내 이정준이 떨리는 눈으로 필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자신 역시 다른 친구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놀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즐기던 때부터 칼과 팬을 잡고 스토브 앞에 서있었다.
한데, 왜일까?
이정준은 지금 필상으로부터 좀처럼 따라잡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아득한 간극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보유하고 있는 지식의 갭이, 또 움직임에서 느껴지는 노련함의 농도가 아예 달랐다. 마치 두껍고 높은 벽이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한데, 여태껏 필상이 보여주었던 모든 것들을 차마 ‘재능’이라 치부해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면, 자신이 보내온 노력의 시간들이 너무나도 무의미해지는 것 같아서···.
‘제기랄.’
이정준이 한차례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여지없는 완패였다. 힘이 빠지는 한 편으로, 아주 오랜 시간동안 잊고 지넀던 ‘경쟁심’이 꿈틀거리기도 했다. 기이한 감정에 휩싸인 채 , 홀 벽면에 거치된 시계를 한 번 바라보고는 다시금 제 할일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어느덧, 첫 번째 예약손님의 방문이 코앞으로 도래한 시점이었던 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