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37
37
Chapter11 – 같은 주제, 다른 요리 (1)
필상의 곁을 스쳐지나간 박찬혁 셰프가, 가까이 서있던 막내 작가에게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이 친구 누구에요? 신입 스태프인가?”
이내 잠시간 멍한 얼굴을 하고 있던 작가가, 고개를 한 번 세차게 내저어 보이고는 답했다.
“아뇨. 이번 주 게스트 셰프님이세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한차례 “셰프라고?”하고 중얼거려 보인 박찬혁 셰프가,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곧장 제 자리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내 그런 박찬혁 셰프를 빤히 바라보고 있던 필상이 저도 모르게 미간을 잔뜩 찡그려보이던 찰나였다.
“박 셰프님이 낯을 많이 가리셔서요.”
필상의 곁에 선 채, 어쩔 줄 모르고 있던 막내 작가가 어렵사리 꺼내든 말이었다. 필상이 별다른 답을 하지 않자, 그녀가 제 머리칼을 귀 뒤로 쓸어넘겨가며 재차 덧붙였다.
“절대 나쁜 분은 아니에요.”
“네, 그렇겠죠.”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해 보인 필상이 박찬혁 셰프를 뚫어지라 바라보기 시작했다.
어느새 제 자리 인근에 다다른 지라, 대기하고 있던 셰프 및 진행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는 상태였다. 자신에게 그랬던 것과는 달리, 사뭇 친절한 태도로.
박찬혁 셰프.
필상 역시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딱히 흠 잡을 데 없는 요리 실력은 물론, 비즈니스 감각까지 상당히 뛰어난 편인지라 유명 호텔 브랜드에 자신의 레스토랑을 입점시킨 뒤 한창 승승장구하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반짝일 뿐이다.
머지 않아 온갖 구설수에 휘말리며,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영광을 다 잃게 될 예정이었으니 말이다.
‘아마 외도가 시작이었지···?’
모델 출신 아내와의 이혼설이 불거지며 외도 사실이 밝혀졌고, 그 과정에서 묻혀있던 무수히 많은 사건들이 연달아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될 터였다.
이를 테면 자신의 레스토랑에 근무 중인 주방직원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던 것이나, 홀 웨이트리스 직원을 성추행 하는 등의 질타받아 마땅한 악행들 말이다.
뭐, 어쨌든 TV를 통해 보았던 유쾌하고 친절한 모습과는 상당히 상반되는 성격의 소유자임이 분명했다.
‘여러모로 재수없는 놈이네.’
단연 박찬혁 셰프 뿐 아니라, 지금 스튜디오 안에 있는. 혹은 곧 도착하게 될 셰프들 역시 거진 알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비록 알고 지낼 정도로 친밀했던 이들은 단 한 명도 없다지만, 웬만한 연예인 못지 않은 인지도를 지니고 있던 이들이었으니 말이다.
“정 셰프님···?”
“아, 네.”
정신을 다잡아 보인 필상이 괘념치 않는다는 듯 밝게 미소를 지어보이자, 막내 작가 역시 안심한 기색을 내비췄다.
“우선 프로그램 관련 설명부터 드릴게요. 혹시 저희 프로그램 시청해 보신 적은 있으신가요?”
“그럼요, 자주 챙겨보는 편이에요.”
“설명이 빠르겠네요. 아마 TV로 보셨던 것과 큰 차이가 없을 거예요.”
말을 마친 막내 작가가 “우선 따라오시겠어요?”하고 물어 보인 뒤, 몇 걸음을 앞서 걸으며 이런저런 설명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오늘 바로 촬영장으로 오신 거죠? 우선 간단한 메이크업부터 받으셔야 할 것 같네요.”
“네. 그런데 혹시 저 때문에 촬영 시작 시간이 지연되거나 하는 건 아닌가요?”
“아마 금방 마무리 될 거예요. 어차피 간단한 머리손질과 쉐딩 메이크업이 전부거든요.”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새 스튜디오 중앙. 즉, 셰프들과 진행자를 비롯한 출연자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있는 테이블 앞에 다다른 상태였다. 이내 막내 작가가 밝은 투로 필상을 설명해주었다.
“말씀 나누고 계신 중에 죄송해요. 다름 아니라, 이번 주 게스트 셰프님 인사 좀 시켜드리려고요.”
이내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필상에게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두 연예인 진행자야 마냥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필상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라지만, 셰프들은 영 탐탁치 않다는 듯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마 자신이 ‘셰프’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기엔, 지나치게 앳되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 짐작했다.
당연한 반응이기도 했다. 비록 셰프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는 기간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라지만, 현역 셰프들 중 태반이 ‘*필드’(*주방을 일컫는 말)에서 수 년. 많게는 십수 년 이상을 구른 이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이야, 오늘 게스트 셰프님은 어린 셰프님이네.”
“그러게요.”
가장 먼저 인사를 건네 온 것은 두 진행자였다. 이내 필상이 고개를 한 번 숙여 보이고는, 사뭇 정중한 투로 짧게 자신을 소개했다.
“원 테이블 레스토랑 파미유를 운영하고 있는 정필상 이라고 합니다. 다시 없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가까이에 앉아있던 최영도 셰프가 “아!”하고 침음을 흘려 보인 뒤 나직이 물음을 건넸다.
“얼마 전에 딜리셔스 라이프 다큐멘터리 출연하셨던 분 맞죠? 제목이 뭐였더라? 영 셰프였나···?”
“예, 맞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내용이길래 2부작으로 나눠서 연달아 편성했나 하고 유심히 봤는데, 정말 인상깊게 잘 봤어요.”
말을 마친 최영도 셰프가 제 주변에 앉아있는 셰프들에게, 한껏 밝은 투로 간단한 설명을 덧붙였다.
“제가 이 친구 조금 아는데, 정말 잘 하는 친구에요. 지난 서울시 요리대회 프로페셔널 부문 우승자인데 호평도 자자하고, 운영 중인 원 테이블 레스토랑도 강훈 셰프님께 투자받아서 오픈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강훈 셰프라는 이름이 거론됨과 동시에, 일부 셰프들의 표정이 한껏 유들유들해진듯 보였다.
단순히 ‘강훈’이란 이름이 지닌 무게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의 눈에 들어 파격적인 후원을 받을 정도라면 적어도 기본 이상의 실력은 갖추고 있으리란 확신이 섰기 때문이었다.
이내 구석 한 편에 앉아있던 일식 셰프, 김영호가 “짝-.” 소리가 나게끔 손뼉을 마주쳐 보이고는 말을 받았다.
“나도 기억났다. 요즘 SNS 상에서 한창 화제인 친구 잖아요? 그 유행어도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내 최영도 셰프가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답했다.
“상식 아니에요?”
“아, 맞아.”
이내 김영호 셰프가 “크큭···.”하고 웃음을 흘려 보인 뒤, 재차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까 이 친구, 조두현 평론가 한테도 꽤 호평 받아냈던 걸로 알고 있는데?”
그 말에 장내의 분위기가 한층 더 고조되었다. 현재 스튜디오 안을 지키고 앉아있는 셰프들 중, 조두현 평론가로부터 호평을 들은 이는 고작 한둘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곳곳에서 “진짜?”, “정말?”하는 물음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몇몇은 스마트 폰으로 조두현 평론가의 지난 칼럼을 훑어보느라 여념이 없을 따름이었고 말이다.
이제야 셰프들이 은연중에 속에 품고 있던 의심들이 완전히 걷어진 듯 보였다.
혹시 든든한 배경과 연줄 덕에 셰프라는 타이틀을 손쉽게 얻을 수 있던 것은 아닐까 하는.
혹은 자격을 갖추지도 못한 주제에 그들에게 있어서는 노력의 산물이나 마찬가지인 프로그램의 출연 자격을 얻은 것은 아닐까 하는, 품어 마땅한 의심들 말이다.
반면, 딱 한 사람.
박찬혁 셰프 만큼은 여전히 무언가가 못마땅한 듯, 턱을 괜 채로 스튜디오 구석만 빤히 들여다보고 있을 뿐이었고 말이다.
이내 막내 작가가 싱글벙글 미소를 머금은 채로 재차 말문을 열었다.
“나머지 대화는 촬영 시작한 뒤에 자연스레 나눠주시면 어떨까요? 우선 메이크업부터 받으셔야 하는 상황이어서요.”
그렇게 대화가 일단락되고, 필상이 막내 작가의 뒤를 따라 다시금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였다. 돌연 묵직하고 날카로운 몇 마디 말이, 필상의 귀에 날아와 꽂혔다.
“PD님도 이런 식이면 곤란하지. 그래봐야 새파랗게 어린 앤데. 하여튼 요즘 쿡방 뜨면서 문제가 많다니까요, 이러다가 동네 분식점 아줌마도 셰프 소리 듣겠네···.”
박찬혁 셰프가 이죽거리는 투로 꺼내든 말이었다. 들으라는 듯 작지 않은 목소리로. 그와 더불어 곁에 있던 타 셰프들이 만류하는 소리 역시 함께 들려왔다.
저도 모르게 잠시 멈칫했던 필상이 다시 자연스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속에서는 찬 불이 끓어오르는듯 했으나, 굳이 앞에서 내색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던 탓이었다.
그렇게 스튜디오를 벗어나, 복도에 접어들던 찰나. 막내 작가가 다시금 이런저런 설명을 덧붙여주었다.
방송국 내부 분장실에서는 촉박한 시간 탓에 메이크업 자체에 큰 신경을 써주지 않는 편이니, 앞으로 다른 프로그램을 촬영할 때에는 가급적 미리 샵에 들러 머리손질과 메이크업을 마친 뒤 촬영장에 오는 편이 훨씬 나으리란 내용이었다.
“아! 그리고 저희 프로그램 같은 경우에는 격주 단위로 2주에 한 번씩. 한번에 두편 분량을 촬영하는 터라 촬영시간이 꽤 긴 편이에요.”
“보통 일이 아니겠는데요?”
“네. 첫 촬영때는 다들 많이 힘들어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두시는 게 좋을 거예요. 대본은 숙지하셨죠?”
“그럼요. 달달 외워뒀어요.”
그 뒤로도 여러 설명들이 이어졌다. 녹화 진행 방식 및 휴식시간, 경연과 관련된 자질구레한 규칙들, 심지어 각 셰프들의 성격 및 특징에 관한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한참동안 쉼없이 이런저런 설명을 늘어놓던 막내 작가의 설명이 끝난 것은, ‘분장실’이란 문패가 걸려있는 문앞에 다다른 뒤의 일이었다.
“우선 메이크업부터 받으신 뒤에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대기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쉬고 계시면 저희 스태프가 호출해 줄 거예요.”
말을 마친 막내 작가가 분장실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이윽고 한차례 “감사합니다.”하고 답해 보인 필상이 곧장 안을 향해 걸음을 옮기려다가, 잠깐 걸음을 멈춘 채 작가에게 나직이 되물었다.
“저, 작가님. 혹시 제가 대전 상대를 지목할 수 있을까요? TV로 봤을 때는 보통 게스트 셰프들이 대전 상대를 직접 지목했던 것 같아서···.”
“그럼요, 물론이죠. 아마 미리 고민해두시는 게 좋을 거예요. 다들 선뜻 지목하지 못하고 한참동안 망설이시기 일쑤더라고요. 아시다시피 출연하시는 셰프님들 모두 워낙 쟁쟁하신 분들이잖아요?”
“네, 준비하는 내내 신중히 고민해보도록 할게요.”
나직이 답해 보인 필상이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해보인 뒤, 곧장 분장실 안으로 들어섰다.
지목하기가 어려울 거라고?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인 듯 했다. 이곳 스튜디오 안에 첫 발을 내딛던 순간부터, 결정을 마쳤다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
얼마 지나지 않아, 녹화가 시작되었다. 이미 몇 번이고 합을 맞춰본 두 명의 진행자들과, 셰프들이 간단한 담소를 나누는 형식으로 ‘오프닝’ 분량을 촬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연달아 냉장고를 들고 온 두 명의 연예인 패널들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다.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개그맨 ‘남현철’과, 아이돌 그룹 출신 싱어송라이터 ‘김성동’이었다.
그런 지금, 필상은 이미 촬영에 임할 준비를 마친 채로 스튜디오 뒤편에서 대기하고 있는 상태였다.
“김주성 씨의 소개 멘트가 끝나면, 무대 양 옆에서 스모그가 뿜어져 나오면서 자동문이 열릴 거예요. 자연스럽게 입장하시고 빈 자리에 앉으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자동문 너머 스튜디오의 분위기가 잔뜩 고조되었을 무렵, 진행자 ‘김주성’ 특유의 쾌활하고 명랑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자, 그럼 오늘의 특별 게스트 셰프를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게스트 셰프는 혜성처럼 갑작스레 나타나, 기존 셰프들의 입지를 위협하고 있는 어린 셰프입니다!”
이번에는 또 한 명의 진행자, ‘이돈우’가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낭만 가득한 원 테이블 레스토랑의 오너 셰프이자, SNS스타로 급부상한 어린 셰프입니다. 상식 아니에요? 화제의 중심에 서있는, ‘정필상 셰프’를 소개합니다-!”
이내 굳게 닫혀있던 자동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함과 동시에, 무대 양 옆에 설치된 장치에서 희뿌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한차례 “후우-.”하고 길게 숨을 내쉬어 보인 필상이, 긴장감을 최대한 숨긴 채 스튜디오 안을 향해 저벅저벅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