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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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2 – 변화의 조짐 (2)
2.
“아이고, 아들!”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계산대 앞에 서계시던 어머니께서 부리나케 달려나오셔서는 물었다.
“집에서 쉬고 있지, 뭐하러 나왔어?”
무어라 답하려던 찰나였다. 어머니께서 두 눈을 게슴츠레 떠 보이시고는, 낮은 목소리로 물음을 건네오셨다.
“알겠다! 용돈 받으러 왔구나? 또 PC방 가려는 거야?”
“아뇨, 그게….”
필상이 손사래까지 쳐가며 무어라 답하려던 때였다. 어머니께서 돌연 앞치마 주머니 속에 손을 ‘푹.’ 찔러 넣으시더니, 구깃구깃하기 그지없는 만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건네주시며 재차 말씀하셨다.
“아들, 노는 건 좋다만 밥은 꼭 챙겨먹어야 한다?”
이내 필상이 한차례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래, 맞아. 그러고 보니, 전생에서는 용돈이 필요할 때가 아니면 가게에 좀처럼 얼굴을 비추지 않았었지.’
그렇게 제 손에 쥐여진 지폐만 하염없이 들여다보고 있기를 잠시. 이내 필상이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차분히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어머니, 그게 아니라 가게 일 좀 도와드릴까 해서 온 거예요.”
“으, 응? 가게 일을…?”
“네. 어차피 집에 있어봐야 빈둥빈둥 시간만 죽일 텐데요, 뭐.”
말을 마친 필상이 가게 안을 한 번 둘러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비좁은 식당 안이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중이었다.
비록 *웨이팅(*waiting:입장 대기)이 있을 정도까지는 아니라지만, 가격대비 꽤 괜찮은 식사를 할 수 있는 백반집으로 동네에 소문이 자자한지라 점심저녁 시간대에는 늘 이렇게 손님이 몰리기 일쑤였던 것이다.
“아이고, 우리 아들. 기특하기도 해라. 정말 다 컸네, 다 컸어. 저녁은? 아직 안 먹었으면 네 아버지께 말씀드려서….”
“아녜요, 괜찮아요. 있다가 식사하실 때 같이 먹으면 될 것 같아요. 그나저나 제가 어떤 일을 도우면 좋을까요?”
말을 마친 필상이 일거리를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하자, 한차례 “음….”하고 침음을 흘려 보이신 어머니께서 재차 답하셨다.
“아들, 마음은 정말 고마운데 어쩌지? 아들이 딱히 도울만한 일이 없을 것 같은데?”
“예? 손님이 이렇게 많은데요?”
“응. 주문이 잔뜩 밀려있어서 그렇지 보다시피 홀은 한가하거든. 정 돕고싶으면 잠깐 쉬다가, 이따가 손님들 우르르 빠질 때 정리나 조금 거들어주면 될 것 같은데?”
이내 필상이 고개를 살짝 갸웃거려 보이고는 되물었다.
“그럼 주방 일을 거들어 드리면 되지 않을까요?”
“글쎄? 딱히 네가 도울 일이 있을지 모르겠네.”
어머니께서 나긋한 투로 꺼낸 말에, 필상이 저도 모르게 “아.”하고 탄식을 흘려보였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아버지께 정식적으로 요리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3학년에 들어섰을 무렵의 일이었다.
어영부영 학창시절을 흘려 보내다시피 하다가, 그 즈음이 되어서야 진로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그러던 도중 아버지께 요리를 한 번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근근히 가게 업무를 거들며 요리를 배워나가기 시작했고 말이다.
돕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그럴 명분이 없었다. 괜히 도와드리겠다고 억지를 부려봐야, 오히려 불안해하실 게 분명했고 말이다.
‘쩝, 도와드리지 못해 아쉽지만 아무래도 오늘은 별 수 없겠네.’
3.
저녁 아홉시 무렵에 들어서자 손님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지막 손님이 계산을 마치고 가게 바깥으로 나서던 찰나. 어머니께서 빈 테이블 한 개를 꿰차고 앉으시며, 말문을 여셨다.
“에구구….”
이내 필상이 그런 어머니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조심스레 되물었다.
“어머니, 매일 이렇게 일하시려면 정말 힘드시겠어요.”
“아냐, 그래도 오늘은 아들 덕에 편하게 일했잖아?”
말을 마친 어머니께서 흐뭇한 미소를 머금으신 채, “아들, 고마워.”하고 덧붙이셨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전생에서는 단 한 번도 부모님의 가게 일을 거들어드린 적이 없었다. 요리를 배우기 시작한 이후에야 근근이 나와 조금씩 일을 도왔을 뿐.
‘앞으로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나와서 도와드려야겠다.’
그때, 막 주방바깥으로 나온 아버지께서 나직이 말을 건네오셨다.
“아들, 오늘 정말 고생 많았다. 이제 저녁 먹어야지?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뭐든 말만 해.”
이내 잠시 고민하듯, “음….”하고 침음을 흘려대던 필상이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저, 아버지. 혹시 오늘 저녁은 제가 준비해도 될까요?”
“응? 네가?”
“네. 그냥 하루쯤은 제가 대접해드리고 싶어서요.”
가게 안으로 돌연 정적이 내려앉기를 잠시. 어머니께서 환한 미소를 머금으신 채, 사뭇 밝은 투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래, 한 번 해봐.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아들이 차려주는 밥을 먹어보겠어?”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 한차례 호탕한 웃음을 흘려 보이시고는, 고개를 끄덕여가시며 말씀하셨다.
“녀석, 기특하긴. 아빠가 도와줄까?”
“아뇨. 혼자 한 번 해볼게요.”
“흠, 화구 쓰는 법은 알고?”
“네, 어깨너머로 진즉 다 배웠죠.”
“위험하니까 조심해야 한다.”
“그럼요, 걱정 붙들어 매세요.”
마냥 의기양양한 투로 답해 보인 필상이, 두 분 부모님을 한 번씩 번갈아 바라본 뒤 되물었다.
“혹시 드시고 싶으신 메뉴 있으세요?”
이내 어머니께서 피식 미소를 지어 보이시고는, 낭랑한 목소리로 답했다.
“글쎄? 아무거나 상관 없으니까, 제일 자신있는 메뉴로 한 번 해봐.”
두 분 부모님 모두 필상이 차려줄 ‘저녁상’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지는 않은 듯 보일 따름이었다. 아니. 기대는 커녕 엉성한 김치볶음밥이나, 검게 그을린 계란프라이 정도를 내줄 것이라 확신하고 있는 중이었다.
4.
주방 안에 발을 들인 필상이 한차례 긴 숨을 내쉬어보였다. 주방에 들어선 게 얼마 만이더라? 비록 정확한 기간을 헤아릴 수는 없다지만, 아주 오랜만이라는 것 만큼은 확실했다. 회귀 이전의 삶에서는 미각을 잃은 뒤로 단 한 번도 주방에 발을 들이지 않았고, 회귀를 겪은 뒤에도 정신을 추스르고 상황을 파악하는데 여념이 없었던 터라 미처 요리를 해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낯설게 느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아늑하게만 느껴질 따름이었다. 뭐랄까? 마치 정말 오랜 여행을 마친 뒤, 다시 ‘집’으로 돌아온 것만 같은 기분이라고 하면 적합하지 않을까?
“어디 보자….”
작게 중얼거려 보인 필상이 냉장고 문을 열고는, 천천히 재료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저 간단히 한 번 슥 둘러본 게 전부인데, 이런저런 요리의 레시피들이 머릿속에 연쇄적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늘은 가급적 간단한 요리를 하는 게 좋겠지?’
괜히 처음부터 고난이도의 요리를 선보였다가, 둘러댈 말을 찾느라 고생하고 싶지 않았던 탓이었다. 이내 필상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재료를 꺼내기 시작했다.
이곳 식구백반의 인기 메뉴인 ‘김치찌개’와, 매일 밑반찬으로 나가곤 하는 ‘계란말이’를 선보일 요량이었다.
우선 화구의 불을 켠 뒤, 팬을 올리고 기름을 살짝 둘렀다. 기름이 어느정도 달아올랐을 무렵, 곧장 돼지 목살과 잘 익은 김치를 넣자 “치이익-.”하고 듣기 좋은 소리가 울렸다. 이내 필상이 정성스레 목살과, 김치를 볶아내기 시작했다.
이는 아버지께 전수받은, 김치찌개 비법 중 하나였다.
– 필상아, 처음부터 물을 넣고 김치를 끓이면 무를 수밖에 없어. 김치 특유의 아삭한 식감을 끝까지 살리려면 미리 한 번 볶아내고 짧게 끌여내는 게 좋아.
돼지 목살 역시 마찬가지.
– 목살을 한 번 볶아내지 않고 끓이면, 조리시간이 길어질 뿐더러 기름기가 과해져. 김치와 함께 한 번 볶아낸 뒤, 다시 끓여내야 찌개의 기름기도 적당해지고 조리시간도 단축되지.
목살과 김치가 어느정도 노릇하게 익었을 무렵, 필상이 뚝배기에 물을 받아서는 화구 위에 올렸다. 그리고는 곧장 칼을 손에 쥐었다. 물이 끓어오르기에 앞서, 찌개에 넣을 밑재료를 모두 손질해두기 위함이었다.
‘오랜만이네.’
고무재질의 ‘*그립’(*Grip)부분이 손에 착 감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본래 칼질은 자전거 타기나, 수영과 엇비슷한 맥락이랄 수 있다. 머리는 잊어도, 몸은 절대 잊지 않는다.
우선 찌개에 넣을 두부 반 모를 네모 반듯하게 썰어냈다. 그 다음에는 마늘을 손바닥으로 세게 찍어눌러 으깼고, 마지막으로….
기다란 대파를 어슷하게 썰어내기 시작했다.
타다다다다다다닥-.
도마와 칼이 빠르게 맞닿으며, 듣기 좋은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하던 순간. 홀 테이블에 앉은 채 쉬고있던 필상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약속이라도 한 것 마냥 주방 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여보, 이거 칼질하는 소리 맞죠?”
“그, 그런 것 같은데….”
한차례 말끝을 흐려보였던 아버지가, 이내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 마냥 주방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윽고, 주방 안에 들어서던 순간.
“허….”
저도 모르게 감탄 어린 침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