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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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12 – 방송의 힘 (2)
그렇게 스튜디오로 돌아오자 셰프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한 채, 연달아 이런저런 물음을 건네오기 시작헀다. 혹시 무슨 일 있었냐는 뉘앙스의 물음이 태반이었고, 필상은 연신 애매하게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 촬영 재개 시간이 점점 늦춰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십 분, 그 다음엔 삼십 분, 다시 한 시간. 이제 슬슬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심각한 분위기를 인지한 탓인지 단 한 사람도 불만을 표출하지 않고 있는 중이었고 말이다.
그로부터 다시 한참이 더 지났을 무렵, 담당 PD와 강훈 셰프가 다시금 스튜디오 입구에 나타났다.
“정 셰프.”
입구에 멈춰선 채 필상을 불러 보인 강훈 셰프가, 잠시 와보라는 듯 손짓을 해대기 시작했다. 이내 필상이 곧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서는, 강훈 셰프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일단 잘 해결 됐으니까, 걱정 않아도 될 것 같네. 일단 나머지 분량 녹화 마무리 지은 다음 전화해. 그때 간단하게나마 상황 설명해 줄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박찬혁 세프님은요?”
“일단 돌려보냈어. 오늘 여러모로 고생많았다. 녹화 끝날때까지 조금만 더 고생하고.”
잠깐만, 돌려 보냈다고? 확실히 잘 해결된 것 같기는 한데, 머리 위로 물음표 몇 개가 둥실둥실 떠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대체 어떤 대화가 오갔던 것이기에, 남은 분량 촬영조차 마치지 못한 채 떠밀리다시피 돌아가야 했던 것일까?
필상이 그렇게 상념에 젖어들어 있던 찰나, 강훈 셰프가 제 손목시계를 한 번 내려다보고는 재차 말문을 열었다.
“나는 다음 스케줄 때문에 슬슬 가봐야겠다.”
“네, 셰프님.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렇게 강훈 셰프가 스튜디오를 떠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금 촬영이 재개되었다.
가장 먼저 말문을 연 것은 진행자 김주성이었다. 박찬혁 셰프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오늘 남은 분량 녹화를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 뒤로는 전과 다를 바 없이, 마냥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촬영이 진행되었고 말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극히 순조롭게.
*
촬영을 마치고 녹초가 된 몸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에 오르기 무섭게, 곧장 강훈 세프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반복적으로 몇 번 울리기를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수화기 너머에서 강훈 셰프의 음성이 들려왔다.
– 녹화 잘 마쳤어?
한차례 “그럼요.”하고 답해 보인 필상이, 뒷좌석 창문에 머리를 기댄 채 재차 말문을 열었다.
“셰프님들하고 연락처 주고 받았고, 오늘 연예인 패널이었던 김성동 씨 번호도 받았어요. 다음에 파미유에 방문하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촬영 자체는 확실히 성공적이었다. 딱히 주눅드는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고, 이따금씩 최영도 셰프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타 출연자들을 몇 번이고 웃겨주곤 했으니까.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지만, 촬영이 끝난 뒤 담당 PD 역시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말이다. 모르긴 모르더라도, 적지 않은 분량을 차지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더군다나 채널 딜리셔스 라이프를 대표하는 프로그램인만큼, 방영이 되고 나면 작지 않은 파급효과가 있을 것 같은 기분좋은 예감이 들기도 했고 말이다.
– 그래? 잘 됐네. 혹시 정말 방문하게 되시거든 개인 SNS에 사진 좀 게시해 줄 수 있겠냐고 조심스레 부탁드려 봐. 효과가 상당한 편이거든. 그리고 PD님이 네 칭찬 많이 하시더라. 아마 앞으로도 게스트 셰프로 종종 출연할 수 있을 것 같던데?
“정말 그럴 수 있으면 좋겠네요. 녹화가 힘들긴 한데, 생각보다 재미있더라고요. 아무래도 방송 체질인가 봐요.”
말을 마친 필상이 잠시 틈을 두고는 조심스레 되물었다.
“저, 셰프님. 그나저나 박찬혁 셰프님은 어떻게 된 거예요? 실은 녹화 내내 마음 한 편이 불편했거든요.”
– 박찬혁 셰프는 아마 오늘 이후로 ‘냉장고를 털어라!’에서 하차하게 될 거야.
이내 필상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떠보이며 되물었다.
“예? 하차요···?”
짧게 “응.”하고 답해 보인 강훈 셰프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 일단은 그렇게 하기로 협의 마친 상황이야. 딱히 변동사항이 있을 것 같지도 않고.
“혹시 어떻게 된 건지, 자세한 자초지종을 말씀해 주실 수는 없으실까요?”
– 간단하지, 뭐. 제작진 입장에서도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 같은 출연자를 품고 있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한차례 “음···.”하고 침음을 흘려 보인 강훈 세프가 뒷말을 덧붙였다.
– 사실 약간의 ‘협박’이 섞여있기도 했어. 예전부터 행실 탓에 이래저래 말이 많았던 친구인데, 알려지지 않은 불미스러운 사건이 여럿 있거든. 나야 워낙 어렸을 적부터 알고 지낸 터라, 그 사건들을 거의 다 알고 있고.
“협박이라, 셰프님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인 것 같은데요?”
– 아직 나에 대해 잘 모르나 보네. 나를 대표하고 상징해주는 단어 중 하나인데. 협박, 음해, 권모술수, 그 밖에도 기타 등등···.
장난스럽게 답해 보인 강훈 셰프가 재차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 사실 어렸을 때 찬혁이랑 같은 주방에서 요리를 배웠었어. 이런저런 일 때문에 관계가 악화됐고. 내가 먼저 수 셰프가 됐거든. 그 친구는 내가 돈으로 수 셰프 직을 샀다고 오해했고.
“아···.”
– 아무리 사이가 틀어졌다지만, 그래도 옛정을 생각해서 알고 있는 불미스러운 일들을 함구하고 있었거든. 실은 굳이 내가 떠벌리고 다니지 않아도 언젠가 알려지리란 확신이 있기도 했고.
잠시 숨을 걸러 보인 강훈 셰프가 재차 덧붙였다.
– 어쨌든, 간단해. 앞으로도 비밀에 부쳐줄 테니까, 프로그램에서 자발적으로 하차하라고 했어. 물론 내가 나서서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도 고정 출연 계약이 종료되는 대로 프로그램에서 튕겨져 나왔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오늘 일은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겠더라고.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 맞아. 사실 정 셰프 때문에 더 그런 것도 있어. 기회주의적인 발상이라지만, 박찬혁 셰프가 하차하고 나면 그 공석에 정 셰프가 앉게 될 지도 모를 노릇이잖아?
이내 필상이 “에이, 설마요.”하고 답해보였다. 아마 강훈 셰프 역시 농담삼아 건넨 말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다만···.
안타깝게도 냉장고를 털어라에 비정기적으로 출연하고 있는 게스트 셰프의 수만 자그마치 열 명에 달하는 상황이다. 인지도가 훨씬 높고 팬덤이 두터운 셰프들이 열 명이나 대기 중인데, 자신에게 곧장 기회가 주어질 리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필상이 상념에 젖어들어 있던 찰나였다. 느닷없이 도착한 문자메시지 탓에, 돌연 휴대폰이 부르르 몸을 떨어보였다. 이내 필상이 귀에 바짝 붙이고 있던 휴대폰을 살짝 떼서는, 발신자와 내용을 한 번 확인해보았다.
[ 남현철 PD님 : 정필상 셰프님, 혹시 시간 되실 때 통화 좀 할 수 있을까요? ]오늘 촬영했던 프로그램, ‘냉장고를 털어라!’의 담당 PD로부터 도착한 문자였다.
그때, 연달아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 남현철 PD님 : 통화 중이시네요. 다름 아니라, 혹시 고정 출연 의향이 있으신가 해서요. 메시지 확인 하시는대로 답신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메세지의 내용을 확인한 필상이, 화들짝 놀라서는 말을이었다.
“저, 셰프님. 죄송한데 혹시 조금만 있다가 다시 전화드려도 될까요? 방금 막 남현철 PD님께 연락이와서요.”
한차례 “남현철 PD님?”하고 되물어 보인 강훈 셰프가, 낮은 웃음을 흘려보이고는 답했다.
– 아무래도 둘 중 하나인 것 같은데? 다시 게스트 셰프로 섭외 하려는 거 아니면, 고정 출연 섭외 제안이겠네.
“네, 맞아요. 일단 통화를 해봐야 알겠지만, 고정 출연 의향이 있냐고 물어 보시네요.”
– 그래? 잘 됐네. 냉장고를 털어라는 격주 녹화니까 딱히 스케줄이 부담되지도 않을 테고, 영향력도 상당한 편이고···.
이내 필상이 제 아랫입술을 한 번 핥아 보이고는 되물었다.
“반가운 제안이긴 한데 사실 조금 갑작스럽네요. 이렇게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될 줄은 몰랐거든요. 적어도 게스트 셰프로 몇 번 정도 정도 더 섭외해서 지켜본 뒤에, 천천히 고정출연 이야기를 꺼낼 줄 알았는데···.”
– 뻔하지, 뭐. 아마 미리 침 발라두려는 걸 거야. 괜히 미적대면서 간 보고, 뜸 들이다가 방송 몇 번 더 나가고 몸값만 잔뜩 올라버리면? 어차피 제작진 쪽에서 고스란히 떠 안아야 하는 손해잖아? 더군다나 앞서 잡혀버린 타 스케줄 탓에 고정 출연에 대한 확답을 못받게 될 수도 있고 말이야.
“글쎄요? 녹화 내내 분위기가 좋았던 건 사실인데 설마 방송 몇 번만으로 상황이 그렇게까지 달라질까요?”
말을 마친 필상이 “혹시···.”하고 조심스레 말문을 열어 보이고는, 낮은 목소리로 입안에 머금고 있던 물음을 건넸다.
“셰프님께서 따로 PD님께 부탁하신 건 아니죠?”
마음 한 편이 불편했던 터라 넌지시 꺼낸 물음이었다. 냉장고를 털어라의 고정 출연자 자리가 탐났던 것이야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지만, 자력이 아닌 강훈 셰프의 도움으로 그 자리를 꿰차고 싶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 역시 아직 나를 잘 모르네.
덤덤한 투로 답해 보인 강훈 셰프가 낮은 웃음을 흘려 보이고는 몇 마디를 덧붙였다.
– 내 입으로 직접 말하기 조금 그렇지만 참고로 나는 청탁이나, 뇌물, 비리, 그 밖에도 기타 등등.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단어들과는 거리가 먼 대쪽같은 사람이야.
“협박이나 음해. 권모술수 등의 어두컴컴한 단어들과는 가깝다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 어두컴컴한 단어와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단어들이 언뜻 보기에는 비슷해 보일지도 모르곘는데, 그래도 엄연히 따져보자면 명백한 차이가 있다고. 어쩼든, 그 쪽은 내 취향이 아니야.
말을 마친 강훈 셰프가, 잠시 틈을 두고는 능글맞은 투로 재차 뒷말을 이었다.
– 돼지와 소가 같은 육류인 건 맞지만, 소를 좋아하는 사람이 무조건 돼지도 좋아하리란 법은 없잖아?
적어도 강훈 셰프의 개입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란 확신이 들고 나니 마음이 한 결 홀가분해지는 듯 했다.
“다행이네요. 그럼 우선 PD님과 통화 마친 뒤에, 다시 전화 드리도록 할게요.”
– 아냐, 나도 이제 레스토랑 들어가봐야 하거든. 그냥 문자로 간단히 결과만 알려줘.
통화를 마친 필상이 곧장 남현철 PD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기를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수화기 너머에서 마냥 쾌활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네, 정 셰프님. 연락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금 잠시 통화 가능하신 거죠?
“그럼요. 그나저나 고정 출연이라니요?”
– 일단 강훈 세프님께 상황은 전해 들으셨죠? 아시다시피 박찬혁 셰프님께서 피치 못할 사정으로인해 갑작스레 하차하게 되신 터라, 공석이 한 자리 생겼습니다.
“네. 거기까지는 알고있어요.”
– 덕분에 녹화가 종료되기 무섭게 ‘제작진 긴급 회의’가 소집 됐었는데, 거의 만장일치로 정필상 셰프님을 차기 출연자로 섭외하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와버려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