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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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13 – 기회는 늘 위기 속에서 (2)
이내 송승철이 당황한 기색을 미처 감추지 못한 채, 어색한 미소를 흘려 보이고는 나직이 되물었다.
“허허, 정필상 셰프님. 반응이 지나치게 날카로운 것 같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서로가 윈&윈(Win&Win)할 수 있을 지에 대한 방안을 제시해 드린 것 뿐인데···.”
“글쎼요? 제가 듣기에는 레스토랑을 개업해 줄 테니 헤드 셰프로 일해달라는. 아니지, 허수아비 얼굴 마담 역할을 맡아달라는 말씀으로밖에 안 들리더군요.”
말을 마친 필상이 한껏 여유로운 태도를 유지한 채, 입가에 냉소를 머금어 보였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자신을 얕보고, 쥐락펴락 하려 했던 투자자 송승철의 태도가 마냥 같잖게 느껴졌던 탓이었다.
‘어딜 감히···.’
회귀 이전의 삶 속에서, 프랑스 현지의 미슐랭 투 스타 레스토랑 메종 드 조엘의 *수 셰프(*부 주방장)로 근무하던 때. 매일 식사를 마친 뒤, 자신을 조용히 호출하여 투자의사를 밝히곤 했던 이들 중 태반이 소위 말하는 거물급 투자자들이었다.
자신의 가슴 근육을 조금이라도 더 부풀리기 위해 매년 2만 달러 이상을 아무렇지 않게 지출하고, 보잉 747이나 걸프스트림 등을 개인 여객기 삼아 사용하곤 하던 이들이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블랙 카드를 졸부 카드라 폄하해도 일절 괴리감이 들지 않던, 또 수억 원 대의 투자 정도는 ‘생산적인 취미’ 정도로 여기던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조차 자신에게 이토록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며,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늘어놓았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자신을 포섭하여 오너 셰프로 앉혀두고자, 또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의 투자자가 되고자 온갖 달콤한 조건들을 늘어놓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필상이 차가운 눈으로 송승철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던 찰나였다. 송승철이 괜히 “큼, 흠.” 하고 헛기침을 몇 번 해보인 뒤, 엷게 떨리는 목소리로 재차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허수아비 얼굴 마담이라니요? 저는 그저 정셰프님이 지니고 계신 ‘*네임 밸류’(*Name Value)를 빌리고자 했던 겁니다. 우선 일산에서 시작해서 자금 회수가 되는대로, 중심상권으로 진출해도 늦지 않을 뿐더러 미식에 조예가 깊은 저와 함께 하신다면 분명···.”
“아까 전에 중심 상권의 기본 권리금이 2억원 대에서 시작한다고 말씀하셨죠? 구색을 갖춘 레스토랑을 런칭하려면, 몇 곱절의 금액을 지출해야 할 거라고 하셨고요.”
이내 송승철이 이때다 싶어 고개를 거세게 주억거려 보이고는, 사뭇 힘이 실린 목소리로 답했다.
“예, 바로 그겁니다! 애초에 원금조차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해보일 정도로 큰 금액일 뿐더러···.”
“네, 잘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오늘은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없을 것 같네요. 그 정도 금액을 선뜻 투자해도 괜찮겠다는 확신이 생기시면, 그때 가서 다시 연락 주시겠습니까?”
말을 마친 필상이 뭔가 잊고 있던 것을 떠올리기라도 한 것 마냥, “아.” 하고 짧은 침음을 흘려 보이고는 재차 덧붙였다.
“뿐 아니라, 경영권과 메뉴 구성에 대한 결정권도 제게 위임할 수 있겠다는 확신까지 생기셨을 때 말입니다.”
물론 이는 자리를 파(罷)하기 위해 으레 건넨 말에 불과했다. 후에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연락을 해온다 하더라도, 송승철처럼 권위적이고 욕심 많은 투자자와 손을 맞잡고 한 배에 오를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까.
그때 미간을 잔뜩 찡그린 채 필상을 노려보고 있던 송승철이 제 화를 추스르듯, “하아···.” 하고 길세 숨을 내쉬어 보이고는 분기가 잔뜩 서려있는 어투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봐요, 정필상 셰프. 지금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계신 것 같은데, 혹시 지금의 매출과 인기가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아주 큰 실수 하시는 겁니다.”
“실수라, 재미있네요. 기존에 약속되어 있던 조건을 최대한 예를 갖춰 요구한 게 실수라 불릴 만한 일인 겁니까?”
“지금 보니까 본인이 진짜 셰프라도 된 것처럼 행동하시는데, 본인의 주제를 아셔야죠. 현실은 여러 매체에서 밀어주고 있는 ‘기획 상품’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그 말에 필상이 저도 모르게 피식 헛웃음을 터트려 보이기에 이르렀다. 반면, 송승철은 그런 필상을 죽일 듯 노려보며 계속해서 제 할 말만 늘어놓고 있는 중이었고 말이다.
“백 날 죽어라 찾아 보십시오. 셰프 놀이에 잔뜩 심취해 있는 새파랗게 어린 애송이한테, 선뜻 수억 원을 내줄 만한 정신나간 투자자가 있는지 말입니다.”
그리고는 들으라는 듯, 나직이 혼잣말을 중얼댔다.
“쯧, 어린 놈의 새끼가 세상 물정 하나 모르고 건방지게 굴기는···.”
이내 필상이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답했다.
“딱 보니까 나이도 어리고, 에이전시도 없으니 입맛대로 조건 조율하고 대충 계약해서 쥐락펴락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하신 것 같은데···.”
말끝을 흐려 보인 필상이, 송승철의 두눈을 뚫어지라 바라보며 재차 뒷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이를 어쩌죠? 상대를 잘못 고르셨습니다. 같잖은 수를 쓰더라도 사람을 봐가면서 쓰셔야죠.”
이내 저도 모르게 잠시 움찔했던 송승철이, 돌연 테이블을 주먹으로 “쾅!” 소리가 나게끔 거세게 내리쳐 보이고는 재차 소리쳤다.
“이 새끼가 보자보자하니까!”
이내 필상이 고개를 한 번 내저어 보이고는, 차분하게 착 가라앉은 투로 재차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쪽이야 말로 삼류 미식가 놀이에 잔뜩 심취해 있는 것 같던데, 치과부터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치석이 잔뜩 껴있는 누런 이로 미식은 무슨 미식입니까?”
한차례 “뭐, 뭐야···?” 하고 중얼거려 보인 송승철이, 이내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쩌렁쩌렁 고함을 쳐대기 시작했다.
“너 이새끼, 운빨로 조금 뜨고 나니까 눈에 뵈는 게 하나도 없지? 두고 보자, 너는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바닥 뜨게 만들어 줄 테니까. 너 같은 애송이 하나 망가트리는 건 전화 몇 통이면···.”
“이럴 때 보면, 남자는 나이 들수록 멋이 든다는 말이 참 잘못된 말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덤덤한 투로 말을 끊어 보인 필상이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두고 보자. 두 번째 삶을 겪으며 그간 몇 번이고 들어본 말이었다. 덕분에 확신할 수 있는 사실이 한 가지 있었다. 이런 말을 아무렇지않게 뱉는 사람일 수록, 실상은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는 점 말이다. 이내 필상이 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더 이상의 대화는 의미없을 것 같으니, 저는 일단 일어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덕분에 귀한 시간만 잔뜩 날렸네요. 그쪽도 마찬가지겠지만 앞으로 다시는 마주치는 일 없었으면 합니다.”
말을 마친 필상이 묵례를 한 번 해보이고는 미닫이 문을 열고 나섰다. 괜히 문을 “쾅!” 소리가 나게끔 닫는다거나 하는, 감정적이고 바보같은 행동도 하지 않았다. 순간의 감정이 지배당해 감정적으로 행동한다면, 하등 다를 바 없는 사람이 될 뿐이니까.
그렇게 필상이 프라이빗 룸을 박차고 나선 뒤, 넋이 나간 얼굴로 필상이 열고 나선 문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던 송승철이 돌연 고함을 내질러가며 테이블을 연달아 내리치기 시작했다.
쾅! 쾅! 콰앙-!
사실 처음 송승철의 시각으로 바라 본 필상은, 상당히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에 불과했다.
방송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상황이라지만, 아직 계약 업무를 비롯한 이런저런 대외적인 업무들을 대행해 줄 에이전시 업체나 메니지먼트를 구하지 못한 어린 셰프.
사실 송승철은 썩 부담스럽지 않은 금액을 투자하여 필상을 마스코트 삼아 주방에 세워둔 다음, 레스토랑 경영과 관련된 실무를 익혀볼 요량으로 접근했었다. 애초부터 필상을 파트너가 아닌, ‘홍보 수단’쯤으로 여기고 있던 것이다. 그것도 타 셰프들에 비해 훨씬 싼 값에 부릴 수 있는, 가성비 좋은 홍보 수단 말이다.
그렇게 판단한 이유는 자못 간단했다.
일단 나이가 나이인만큼 ‘꿈을 이뤄주겠다.’는 말로 현혹하면, 어렵지 않게 끌어들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비록 당장 원 테이블 레스토랑으로 꽤 괜찮은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중이니 설득이 마냥 쉽지만은 않겠으나, 그럴싸해 보이는 말들로 잘 구슬린다면. 혹은 고압적인 태도를 유지해가며, 은근한 협박을 섞어 말한다면 어떻게든 설득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아니···.
모르긴 모르더라도, 여타 셰프들처럼 꼿꼿한 자세를 유지한 채 건방지기 그지없는 어투로 “제가 말씀드린 조건을 받아들여 주실 수 없다면, 굳이 더 이상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을 것 같네요.” 따위의 말은 하지 않으리라 확신했던 것이다.
한데, 결과는 어땠던가? 주눅들기는 커녕 타 셰프들에 비해 몇 배는 더 꼿꼿한 자세를 유지해가며, 시종일관 자신을 동등한 비즈니스 상대 쯤으로 여기는 것 같은 태도로 일관하지 않았던가?
감언이설도, 은근한 협박도 통하지 않자 점점 더 감정의 동요가 심해졌다. 차라리 한 번 쯤이라도 흔들리고, 불안해하는 기색을 보였더라면 지금처럼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새파랗게 어린 애송이한테 진 것 같다는, ‘기이한 패배감’에 사로잡히는 일은 없을 테니까.
이윽고.
송승철이 제 귓가에 휴대폰을 바짝 가져다 댄 채, 엷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어, 나야. 다름 아니라 부탁할 일이 몇 개 있어서 말이야. 다름 아니라, 요즘 TV에 자주 얼굴 비추고 있는 셰프들 중에 ‘정필상’이라고 알지?”
그런 송승철의 두 눈 위로, 비릿하기 그지없는 ‘독기’(毒氣)가 잔뜩 서려있는 상태였다.
*
– 너 이 새끼, 운빨로 조금 뜨고 나니까 눈에 뵈는 게 하나도 없지? 두고 보자, 너는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바닥 뜨게 만들어 줄 테니까. 너 같은 애송이 하나 망가트리는 건 전화 몇 통이면···.
필상의 휴대폰에서 흘러 나온 송승철의 목소리가 끝맺어지기 무섭게, 운전석에 앉은 채 핸들을 움켜쥐고 있던 강훈 셰프가 “하아-.” 하고 깊은 탄식을 내쉬어 보이기에 이르렀다.
“정 셰프, 정말 면목이 없다. 나 때문에 괜한 고생만 잔뜩 했네. 이런 사람인 줄 알았으면 애초에 말도 안 꺼냈을 텐데···.”
“아녜요, 괜찮습니다. 그 사람 앞・뒤가 다른 게, 셰프님 잘못은 아니잖아요? 그냥 좋은 경험한 셈 치려고요.”
말을 마친 필상이 애써 미소를 지어보였다. 투자자 송승철과의 미팅을 위해 오늘 하루, 오후 예약손님을 일절 받아두지 않은 상황이었으니 꼬박 반 나절이란 시간과 더불어 잠정적 매출 백만 원 가량을 통째로 날려버린 셈이었다.
‘사실상 계약된 에이전시나 매니지먼트 업체가 없기 때문에 발생한 손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겠지. 최대한 빨리 계약할 업체를 선정하고 계약을 체결하는 게 좋겠네···.’
그렇게 필상이 한창 상념에 젖어들어 있던 찰나, 강훈 셰프가 고개를 슬쩍 돌려서는 필상을 바라보며 의아하다는 듯 물음을 건네왔다.
“그나저나 어떻게 녹음할 생각을 다 한 거야?”
한차례 어깨를 들썩여 보인 필상이, 마냥 덤덤한 투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냥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녹음해뒀어요. 귀한 시간 내서 애써 구두로 약속해 둔 내용들을 나중에 계약서 작성할 때 깜빡 잊는다든가 그쪽에서 멋대로 변경하려 들 수도 있는 노릇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