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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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13 – 기회는 늘 위기 속에서 (3)
“그래, 잘 했네. 일단 송승철, 그 사람한테는 내가 직접 연락해서 이야기 한 번 나눠보도록 할게.”
이내 필상이 고개를 한 번 내저어 보이고는 답했다.
“아뇨, 굳이 안 그래주셔도 될 것 같아요. 어차피 이제 와서 대화 나눈다고 해서 딱히 달라질 것도 없잖아요? 이렇게까지 말하면 조금 그렇지만, 그냥 똥 밟은 셈 치려고요.”
“그래도 가볍게 넘길 사안은 아닌 것 같으니까, 일단 선조치로 셰프들 사이에 공유되고 있는 블랙리스트 투자자 목록에 이름을 등재시켜둔 뒤 추후 방안을 고민해보는 게 좋을 것 같네. 사실 정 셰프가 의연하게 잘 대처했기에 망정이지···.”
한창 유려하게 말을 이어나가던 강훈 셰프가,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한 채 말끝을 흐려보였다. 아마 머릿속으로 최악의 경우들을 떠올렸기 때문이리라 짐작했다.
만약 그 자리에 아직 이런저런 잇속에 밝지 못한, 요리 말고는 아무 것도 모르는 젊은 셰프가 앉아있었더라면?
송승철이 던진 미끼를 덥썩 문 채, 젊음을 잔뜩 허비하는 것은 물론이고 후에 법적공방에 휘말렸을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괴롭히고 이용하다가, 끝에 가서는 인생을 아예 어그러트려 버리는 게 송승철과 같은 투자자들이 즐기는 방식이었으니 말이다.
한 번의 그릇된 판단으로 이와 같은 구렁텅이에 빠진 뒤, 트라우마가 생겨버린 탓에 아예 주방을 떠나버리는 젊은 인재들이 적지 않기도 했고.
이내 강훈 셰프가 착잡한 심정이 묻어나는 표정을 한 채,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럴 때 보면 주방 안이 전쟁터라면, 주방 밖은 지옥이라는 말이 참 맞는 말인 것 같다. 주방 안에는 고함을 내지르는 무서운 셰프와 선배들밖에 없지만, 바깥에는 순진한 요리사들을 낚아채서 어떻게든 이용해 먹으려는 악마같은 놈들이 들끓다시피 하잖아?”
“네, 그러니까요. 어쨌든 기왕 이렇게 됐으니, 투자 건은 없던 일로 치고 하루라도 더 빨리 에이전시 계약을 체결하는 쪽으로 진행시켜 보려고요. 아무래도 그 쪽이 훨씬 속이 편할 것 같아서요.”
고개를 주억거려 보인 강훈 셰프가 고개를 살짝 비스듬히 기울여 보이고는 되물었다.
“흠, 그렇다고 해서 너무 급하게 처리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은데. 어차피 아직은 마음에 드는 조건을 제시해 온 업체가 하나도 없다고 하지 않았어?”
한차례 “네, 그렇기는 한데···.” 하고 얼버무려 보인 필상이, 화색을 해보이고는 나직이 답했다.
“그래도 꽤 마음에 드는 조건을 제시해 줄 만한 업체가 하나 있기는 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먼저 그쪽에 연락을 취해보려고요.”
“그래? 생각하고 있는 어딘데? 생각하고 있는 곳 있으면 나한테 말해 줘. 알다시피 업계가 워낙 좁은 터라, 적어도 다리 놔주는 역할 정도는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그런데 국내 기업이 아니라서요.”
강훈 셰프가 의아하다는 듯 두눈을 크게 떠보이던 찰나, 필상이 재차 뒷말을 덧붙였다.
“다름 아니라, ‘빌리 반 코퍼레이션’(Billy Ban Corperation)이라는 에이전시 업체인데 혹시 알고 계세요?”
“잠깐만, 진심이야?”
“네. 일단 오늘부터 *포트폴리오(*Portfilio:자신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나 관련 내용을 집약해 둔 작품집) 제작 시작하고, 완성되는 대로 공식 이메일 주소로 연락을 한 번 취해보려고요.”
이내 강훈 셰프가 “허···.” 하고 헛웃음을 흘려 보인 뒤, 필상의 두눈을 빤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빌리 반 코퍼레이션.
포브스 부자집계 상위권을 우직하게 지키고 있는 찰스 윌튼 회장이 직접 운영하는 외국계 에이전시 기업으로, 헐리웃 스타나, 스포츠 스타는 물론이고, 선택 하나로 세계의 유행 흐름을 뒤바꿔버리는 월드 클래스 디자이너들. 또 라스베가스에 초호화 개인 극장을 보유하고 있는 거물급 공연자들 및 극단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장르와 국적을 불문하고, 방송섭외 및 CF섭외, 투자, 법적 분쟁, 자산 관리, 심지어 이미지 메이킹까지. 그야말로 ‘모든 업무’를 알아서 처리해주는 초 대규모의 에이전시 업체랄 수 있었다.
빌리 반이라는 이름이 지니고 있는 위용 탓일까?
세상이 빌리 반과 계약한 아티스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오직 두 가지 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종사하고 있는 업계 내에서 단연 최고라 말할 수 있을 만한 위치에 오른 인물이거나, 혹은 머지않아 최고의 위치에 오를 재능이 있는 인물이거나.
“셰프님이 저한테 그러셨잖아요? 제가 지금 꽤나 매력있는 투자 상품이라고요.”
“그래, 그랬었지.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메일 한 통 보내는 게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고,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지 않을까요?”
잠시간 심각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하고 있던 강훈 셰프가, 재차 조심스레 물음을 건넸다.
“그나저나 셰프들 중에는, 아직 빌리 반 코퍼레이션이랑 직접적으로 계약을 체결한 사례가 없지 않나?”
“네. 아마 아직까지는 없을 거예요.”
자신이 알고 있는 대로라면 지금으로부터 딱 일 년 뒤인 2014년, 미슐랭 스타를 무려 스물여섯 개나 거머쥐고 있는 세계적인 스타 셰프 ‘램퍼드 마틴’이 빌리 반 코퍼레이션과 계약을 체결한 최초의 셰프가 될 예정이었다. 그 후에는 해가 거듭될 수록 빌리 반 측과 계약한 셰프들의 수가, 조금씩 늘어날 예정이었고 말이다.
필상이 빌리 반 측에 먼저 접촉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된 이유는, 사실 송승철 덕이랄 수 있었다. 불과 한두 시간 전쯤, 송승철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문득 품게 되었던 ‘만약 정말 강력한 힘을 지닌 에이전시가 있었더라면···.’이란 생각이 여기까지 이어지게 된 셈이었으니 말이다.
“그래, 뭐···.”
영 떨떠름한 표정으로 중얼거려 보인 강훈 셰프가, 사뭇 진중한 투로 뒷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시도해보는 것까지는 응원하는데, 답변 기다리는 동안에도 국내 에이전시들과 지속적으로 이야기 나누고 조건 조율해가면서 진행했으면 좋겠네.”
아무래도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라 확신하고 있는 것 같은 눈치였다. 이내 필상이 고개를 한 번 가볍게 끄덕여 보이고는, 사뭇 쾌활한 어투로 답했다.
“네, 사실 저도 딱히 큰 기대를 하고 있는 건 아니에요.”
일단 자신이 그간 이룩한 성과를 나타내 줄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제작하는데 의의를 둘 요량이었다. 단연 빌리 반 측이 아니더라도, 여타 해외 에이전시 업체 및 매거진 측에 자신을 설명하는 자료로 꾸준히 사용하게 될 여지가 있었으니 말이다.
*
모니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해 둔 채, 연신 마우스 스크롤을 내리고 있던 필상이 끝내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어보였다.
“완벽해···.”
투자자 송승철과의 미팅이 허무하게 막을 내린 뒤로, 꼬박 삼일간 시간이 날 때마다 열을 올렸던 포트폴리오 제작 작업이 드디어 막을 내린 것이다. 이내 필상이 곧장 포탈사이트에 접속해서는, 빌리 반 코퍼레이션 측에 보낼 메일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째깍, 째깍-.
작성과 검토, 그리고 퇴고를 거듭 반복했다. 행여나 놓친 부분은 없는 것인지, 또 간만에 영문으로 문서를 작성하고 있는 터라 비문을 사용하거나 문법에 어긋나는 구절은 없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금방이라도 모니터 안으로 빨려들어갈 것 마냥, 한껏 집중한 채 화면을 바라보고 있던 필상이 낮은 목소리로 “좋아···.”하고 중얼거려 보이기에 이르렀다.
고작 A4용지 두 장 분량의 편지를 작성하는데, 꼬박 네 시간이나 걸린 상황이었다. 영어 실력이 미숙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어 하나 하나를 마냥 신중히 골라냈던 탓이었다.
딸깍-.
필상이 마우스 왼쪽 버튼을 꾹 눌러보임과 동시에, 모니터 화면 위로 “메일 전송이 완료되었습니다.” 라는 문구가 기재되어 있는 창이 하나 나타났다. 이내 필상이 묵은 숨을 토하듯 내쉬어 보이고는, 한 손으로 떨리는 가슴을 살살 문질러대기 시작했다.
답장이 오지 않으리라 반쯤 확신하고 있는 중이었다. 매일 마냥 정신없이 흘러갈 빌리 반 코퍼레이션의 하루 속에, 어린 동양인 요리사가 보낸 메일에 답장할 시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했으니 말이다. 물론, 다른 한 편으로는 기적같은 상황을 기대하고 있는 중이기도 했고···.
‘앞으로 딱 3일만 답장을 기다려보고, 그때부터는 다른 해외 에이전시 업체 쪽에도 포트폴리오를 돌려봐야겠네.’
한차례 입맛을 다셔 보인 필상이, 고개를 슬쩍 돌려서는 시계를 한 번 바라보았다.
전날 영업을 마친 뒤 한 숨도 자지 못한 채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었건만, 어느덧 다시 하루를 시작해야 할 시간을 코앞에 둔 상태였다.
새벽 세시.
한데, 뭐랄까?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자니 애매하고, 그렇다고 곧장 일을 시작하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었다. 이내 필상이 입맛을 한 번 다셔보이고는, 잠시 내려놓았던 마우스를 다시금 손에 꽉 움켜쥐었다.
다름 아니라, 요리 관련 *웹진(*웹 매거진)을 살펴보며 시간을 죽일 요량이었던 것이다. 딸깍, 딸깍. 고요한 방 안으로 마우스 소리만이 덤덤히 울려 퍼지기를 잠시.
이내 필상이 미간을 살짝 좁힌 채, 사이트의 메인 화면에 떠있는 헤드라인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 웹진 올 어바웃 쿡’S 특집 칼럼 – 미디어가 낳은 페단?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신예 셰프의 실체에 관하여. ] [ 김운행의 시야로 보는 요리 세상 – 방송은 더 이상 대중들을 위한 나침반이 아니다. 미디어와 기업, 일부 세력에 의해 기획 상품처럼 양성되고 있는 ‘가짜 셰프’들에 관한 단상. ] [ 베스트 아마추어 칼럼리스트 최민기의 담백 칼럼 – 자본주의로 오염된 사회, 괘씸한 기업가 흉내쯤은 거뜬히 해낼 수 있게 되버린 아이들? 대세로 떠올라 버린 쿡방과, 오히려 침체되고 있는 한국 요리계의 미래에 대하여. ]이내 필상이 저도 모르게, 낮은 목소리로 “뭐야?”하고 중얼거려 보이기에 이르렀다. 그리고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지난 24시간 동안 최고 조회수를 기록한 탓에 최상단에 게시되어 있는 ‘특집 칼럼’을 가장 먼저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윽고, 필상이 재미있다는듯 한차례 실소를 흘려보였다. 퍼즐 조각마냥 머릿속에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던 생각의 조각들이, 빠른 속도로 맞춰지기 시작했던 탓이었다.
송승철.
지난 십 수 년간 미식 동호회 활동을 이어온 것은 물론이고, 국내 여러 웹진 및 칼럼리스트들을 개인적으로 후원해주고 친분을 유지해 온 인물이니만큼 이와 같은 상황을 연출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문득 며칠 전, 송승철이 분기를 주체하지 못한 채 잔뜩 격양된 목소리로 남겼던 몇 마디 말이 떠올랐다.
‘너 이새끼, 운빨로 조금 뜨고 나니까 눈에 뵈는 게 하나도 없지? 두고 보자, 너는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바닥 뜨게 만들어 줄 테니까. 너 같은 애송이 하나 망가트리는 건 전화 몇 통이면···.’
사실 충분히 문제를 만들 수 있었으나, 너그러운 아량으로 묵인해 줄 요량이었다. 물론 선처를 해준다는 느낌보다는, 딱히 오래도록 신경을 기울이고 있을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던 탓이었지만.
“실수를 너무 여러 번 하시네···.”
하지만, 이렇게 나온다면 이야기가 사뭇 달라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내 필상이 싸늘하게 식은 눈을 한 채로 피식피식, 비릿하기 그지없는 실소를 흘려대기 시작했다.
그가 제 입으로 말했던 것처럼, 이와 같은 상황을 연출하는 것은 전화 몇 통만으로 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글쎄?
순간의 그릇된 대처가 만들어낸 후폭풍은 전화 몇 통으로는 절대 덮을 수 없을 터였다.
아니,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 동원해서라도 그렇게 만들어 줄 요량이었다.
정말 어떻게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