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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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16 – 지니어스 (2)
“아뇨, 그냥···.”
대강 얼버무려 보인 조엘이 제 맞은 편에 앉아있는 평론가, 에밀 아자르의 눈치를 한 번 살펴보였다. 그 역시 놀람을 감추지 못한 눈을 한 채로,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묘한 정적만이 흐르기를 잠시, 필상이 고개를 한 번 숙여 보이고는 정중한 투로 말을이었다.
“저는 다음 요리를 준비해야해서 이만 돌아가보겠습니다. 모쪼록 즐거운 식사 되셨으면 좋겠군요.”
필상이 주방으로 돌아가자, 평론가 에밀 아자르가 입맛을 한 번 다셔 보이고는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고작 에피타이져 메뉴를 조금 맛본 게 전부라지만 기대했던 것 훨씬 이상이로군요.”
“그렇습니까?”
“물론입니다. 타르틴 바게뜨라는 단순한 요리로 이토록 많은 것을 보여주리라곤….”
말끝을 흐려 보인 그가 접시 위에 시선을 고정해 둔 채, 다시금 뒷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타르틴 바게뜨는 말 그대로 단순하고 흔한 요리이지 않습니까? 어린 아이도 손쉽게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조리 과정이 간단하고, 카나페처럼 홈 파티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곤 하는 단골 메뉴이니 말입니다.”
“예, 그렇죠.”
“정작 저만 하더라도 딸 아이가 어렸을 적, 휴일이면 놀이삼아 카나페와 타르틴 바게뜨를 함께 만들곤 했었습니다. 이토록 간단한 요리를 통해 자신의 ‘격’(格)을 보여줄 수 있는 셰프가 과연 몇이나 될까요?”
접시 위에 담겨있는 것은 요리가 아닌, ‘작품’이었다. 완성된 타르틴 바게트 한 조각, 한 조각이 완벽한 형태로 배치되어 있었다. 그 배열도, 색감의 균형도 몹시 훌륭했다. 가장 놀라운 대목은 색감을 비롯한 외형적 아름다움을 살리기 위해, 불필요하거나 맛의 균형을 방해하는 식재료를 추가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었다.
그럼, 그 맛은 어땠는가?
애초에 세 종류의 반죽을 혼합한 뒤, 자신이 찾아낸 수분율에 맞춰 구워냈다는 바게뜨에서부터 남다른 품격이 느껴지는 듯 했다. 정성이 겹겹이 쌓인 것만 같은, 훌륭함이 오밀조밀하고 촘촘하게 엮여 만들어진 것만 같은 그런 품격 말이다.
“우선 바게뜨부터가 훌륭하군요. 이 정도면 메종 드 르뱅을 비롯한 파리의 수준급 베이커리의 오븐에서 탄생한 빵이라고해도 손색이 없을 지경입니다. 이따금 씹히는 거친 밀알 입자나, 질게 끊어지는 식감을 통해 셰프의 오랜 고민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 말에, 조엘이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답했다.
“맞습니다. 베이스가 되는 바게뜨 빵 부터가 완벽하기 때문에, 타르틴 바게뜨 자체의 퀄리티가 잔뜩 격상한 느낌이에요. 뭐랄까? 마치 튼튼하게 잘 지어진, 하지만 외형적 아름다움이나 예술성도 저버리지 않은 훌륭한 건축물이 떠오르더군요.”
한차례 “아아.” 하고 침음을 흘려 보인 에밀 아자르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신이 나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알 것 같습니다. 외형으로 한 번 감탄을 자아내고, 안으로 들어서서 내부를 살펴 볼 때는 세상이 귀 뒤편으로 밀려나는 것만 같은 이질감을 주는 그런 건축물들이 있죠. 건축가의 섬세함과 예민한 감수성에 전율할 수밖에 없는 그런 건축물들….”
“이제 고작 코스의 도입부인 에피타이저를 경험한 게 전부인만큼, 우리가 본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겁니다. 비록 수면 밑에 가라앉은 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면적의 크기와 너비가 어떨지는 두고 봐야 알 수 있겠지만, 확실히 해둘 수 있는 사실은 이미 드러난 부분만 놓고 보더라도 몹시 꽤나 크고 웅장하다는 것이겠죠.”
조엘의 말에 에밀 아자르가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주방 쪽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어린 셰프는 보란듯이 아주 기본적인 레시피의 에피타이져를 통해, 자신의 지식과 기량을 과시해내는데 성공했다. 이쯤 되니 기대감 탓에, 가슴이 터질듯 두근대느라 여념이 없을 따름이었고 말이다.
필상이 선보인 타르틴 바게뜨는, 쉽게 말하자면 실력이 아주 뛰어난 화공에게 한두 자루의 색연필과 흰 종이 한 장을 쥐여준 채 그림을 그려보라 말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었다. 세부적인 기법의 활용은 불가능하지만, 견고한 기본기로 재료와 형식의 한계를 뛰어넘어 그려낸 한 폭의 그림과 엇비슷했다고 해야 할까?
그럼 만약 그에게 다양한 재료를 쥐여주고, 틀이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손이 가는 대로 마음껏 그려보라 주문한다면 과연 어떤 그림이 탄생할 것인가? 그 기대감이, 자꾸만 두 사람의 시선이 주방쪽으로 향하게끔 만들고 있었다.
“간만에 괴로운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는군요.”
에밀 아자르의 말에, 조엘이 다음 타르틴 바게뜨 조각을 집어들며 답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아직 세 조각이나 남아있으니 말입니다.”
올리브와 프로슈트가 얹어져 있는 타르틴 바게뜨였다. 전등 불빛을 머금은 올리브의 단면이, 더 할 나위 없이 유들유들하게 빛나고 있는 중이었다. 이내 두 사람이 약속이라도 한 것 마냥 묵묵히, 그리고 천천히. 남은 타르틴 바게뜨의 맛을 음미해나가기 시작했다. 홀 한 귀퉁이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과, 이따금씩 들려오는 빵 바스라지는 소리 따위가 이곳에 존재하는 소음의 전부였다.
실로 맛있는 침묵이었다.
*
다음으로 서비스 된 메뉴는 전형적인 ‘버섯 수프’ 였다. 곱고 부드러운 연갈색 수면 위로, 아주 자그마한 크기의 기포 몇 방울이 자리를 잡고 있는 상태였다. 또 그 중앙부에는 새하얀 생크림과, 무심하게 떨어트렸을 올리브 오일 몇 방울이 망망대해 위에 놓인 섬처럼 둥둥 띄워져 있었고 말이다.
모락모락 피어 오르고 있는 후끈한 김이, 깊고 고소한 버섯 특유의 향을 동반했다. 잠시 그 향을 만끽하던 조엘이, 곧장 스푼을 집어 들어서는 한 술 크게 뜬 뒤 혀를 살살 굴려가며 맛을 보았다.
“제기랄···.”
저도 모르는 새에 격한 표현이 입술 틈새를 비집고 나와서는, 테이블 위에 ‘툭.’하고 힘없이 떨어졌다.
마치 뛰어난 오케스트라가 재현해 낸, 수 세기 전의 명곡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재해석은 없었다. 그저 악보에 맞춰,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마치 기계처럼 정확하게 연주해냈을 뿐. 이는 고전에 대한 정확한 답습이었다.
“훌륭하군요. 고루하고, 뻔하고, 익숙한 요리라지만 오점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요리에서 셰프의 기본기나 마음가짐이 여과없이 드러나곤 하는 법인데 말입니다.”
이내 물로 입을 한 번 헹궈내다시피 해보인 조엘이, 곧장 포크를 집어 들어서는 수프와 함께 서비스 된 핫 에피타이져 메뉴. 올리브 오일에 볶은 양송이 버섯과, 바질 페스토를 이리저리 들춰가며 살펴보기 시작했다.
원형 접시의 중심부에 녹색 윤기를 머금고 있는 양송이 버섯들이 놓여있었고, 외곽에는 꾸덕한 질감의 바질페스토가 붓으로 그려낸 것처럼 흩뿌려져 있었다.
일단 버섯은 정확하게 익어있었다. 오버 쿡(Over Cook)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으며, 접시 아래 기름이 고여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양을 잘 맞춘 덕에 적당히 오일리(Oily)한 식감을 갖추고 있으리라 짐작했다.
이내 조엘이 양송이 버섯 한 조각을 포크로 푹 찌르며 생각했다. 아마 올리브 오일의 향이 잔뜩 베어있겠지, 한 입 깨물면 그 향이 ‘확-.’하고 입 안으로 쇄도해 오겠지. 입맛을 한 번 다셔보인 조엘이 버섯에 바질 페스토를 잔뜩 묻혔다. 그리고는, 곧장 한 입에 쏘옥 집어넣었다.
한데, 그 순간.
조엘의 표정이 서서히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바질 페스토의 향이 너무 과해, 다른 맛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잖아.’
바질 특유의 엷은 신맛과, 강한 향기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강렬했다. 은연중에 느껴지는 파르메산 치즈나 마늘, 잣 등의 맛도 지배적이었다. 곁들인 페스토가 요리를 망쳤다는 게,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 하지만, 앞서 보여준 요리들에 비해 실망스러운 맛이라는 생각이 팽창하고 있던 그때.
거짓말처럼 새로운 향과 맛들이 아주 좁게 벌어진 틈새를 비집고 하나둘씩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올리브 오일의 묵직함과, 트러플 오일의 인위적이지만 고풍스러운 향, 그리고 버섯 특유의 향이 조화롭게 어우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야들야들하게 익은 버섯은 부드럽게 끊어졌고, 그럴 때면 약간의 흙 냄새와 더불어 기분 좋은 고소함이 입 안에서 넘실댔다.
꿀꺽.
입 안에 머금고 있던 버섯볶음과 바질 페스토를 모두 삼켜낸 조엘이, 다시금 실소를 흘려가며 말문을 열었다.
“크크큭, 정말 제대로 농락당하고 있는 기분이로군요.”
그 말에 에밀 아자르가 동조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어린 셰프는 보란듯이 한없이 기본적이고 단순한 레시피의 요리만을 고집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기본적이고 단순한 요리를 통해, 자신의 압도적인 기량과 천부적인 재능을 아주 은밀하게 조금씩 과시하고 있는 중이었고 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주방에 대고 소리치고 싶었다. 당신이 얼마나 기본을 중요시여기는 견고한 세프인지, 또 얼마나 대단하고 잘났는지 전부 다 알겠으니까 이제 제발 ‘진짜’를 보여달라고 말이다.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길게 숨을 내쉬어 보인 에밀 아자르가, 애써 차분한 투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이곳은 오트 퀴진의 형태에 맞춰 요리를 선보이고 있는 곳이니, 이제 어류를 활용한 메인 요리가 서비스 될 차례이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조엘의 시선이 다시금 주방 쪽으로 향했다. 그의 눈이 짙은 기대감과 설렘으로 반들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지금, 필상은 다음 순서로 선보여야 할 메인 요리를 조리하는데 한창 집중하고 있는 상태였다.
생선을 활용한 메인 요리로는, 얼마 전 제철에 접어든 ‘넙치’를 활용한 스테이크를 선보일 생각이었다. 직접 손질한 것은 물론이고, 미리 숙성까지 마쳐둔 넙치 살을 꺼내들어서는 한차례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속살이 눈송이처럼 새하얗고, 향이 매우 진했다.
‘완벽하군.’
얼마 지나지 않아 강렬한 향과 맛, 또 색을 지닌 ‘인도풍 넙치 스테이크’로 재탄생하게 될 예정이었다. 필상이 요리에 필요한 재료를 조리대 위에 하나씩 꺼내놓기 시작하자, 디저트 메뉴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던 이정준이 조심스레 물었다.
“셰프님, 도와드릴까요?”
“아뇨, 괜찮아요.”
짤막하게 답해 보인 필상이 우선 기름을 두르지 않은 팬에 소금과 아몬드를 함께 볶아주기 시작했다.
소금과 아몬드가 적당히 구워질 때까지, 넙치에 바르게 될 ‘탄두리 페이스트’ 양념 조리를 끝마칠 요량이었다. 우선 곱게 다진 생강과, 마늘을 그릇에 잘 담아냈다. 그 다음에는 고춧가루, 강황가루, 파프리카가루, ‘*가람마살라’(*인도식 양념으로 매운 양념 혼합물이란 뜻)를 한 번 잘 섞어주었다. 그 다음, 마지막으로 시기적절하게 완성된 구운 소금과 아몬드, 그리고 토마토 퓌레를 넣고 잘 섞어주었다.
맛과 향이 진하고 강렬한 식재료와 향신료를 혼합하여 만든 페이스트다. 앞서 서비스 된 요리들이 하나같이 절제된 맛이었던 만큼, 강렬한 맛과 향이 더욱 부각될 터였다. 페이스트를 지금 이 상태 그대로 발라 구워도 괜찮겠으나, 부담스럽게 느껴질 지도 모를 노릇이니 약간 중화시켜줄 필요가 있었다. 이내 필상이 완성된 페이스트에 레몬즙, 토마토 퓌레, 요거트, 콩기름, 그리고 설탕을 잔뜩 넣고 잘 섞어주었다.
이로써, 넙치 필렛에 발라 줄 탄두리 소스는 완성된 셈. 이내 필상이 소스가 담겨있는 통에 넙치 필렛을 넣어서는, 스푼으로 색을 칠하듯 골고루 발라주었다. 그 다음, 곧장 화구에 팬을 올리고 불을 켰다. 콩기름을 두르고, 열이 올라오기 시작할 무렵 소스가 골고루 발린 넙치 필렛을 팬 위에 가볍게 ‘툭’ 내려놓았다.
그 순간.
치이이이익-.
듣기 좋은 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강렬한 향이 주방 전체에. 또 더 나아가 홀까지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한 면에 각 2분씩, 노릇하게 구워내기 시작했다. 생선살이 익기를 기다리며, 곧장 플레이팅에 돌입했다.
접시 중앙부에 요거트를 담아낸 뒤, 그 위로 노릇하게 익은 넙치 스테이크를 올려주었다. 마지막으로 팬에 남아있던 연주황빛 기름을 스푼으로 떠서는, 접시 외곽에 잘 뿌려주었다. 그렇게 뿌려진 기름들은, 요거트와 섞이지 않고 층을 이루었다. 마지막으로 허브 가루를 넙치 스테이크 위에 흩뿌린 뒤, 민트 잎을 얹어주는 것으로 마무리지었다.
이윽고.
필상이 양 손에 각각 한 개씩, 인도풍 넙치 스테이크가 담긴 접시를 든 채로 주방 바깥으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