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65
65
Chapter18 – 주방의 폭군 (2)
잠시간 고민에 젖어들어 있던 빅토르 위고가, 결심을 굳힌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답했다.
“약속만 지켜주신다면야 당연히 모든 권한을 위임해드려야겠죠. 그러니까 3개월 안에는 파우스트의 적자를 해결하고, 6개월 안에는 맨해튼 내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파인다이닝으로 만들어내겠다는 약속 말입니다.”
“어떻게든 그렇게 만들어내고야 말 겁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이번 파우스트 건은 제게도 중요한 프로젝트입니다. 빌리 반 코퍼레이션과의 계약 체결 이후, 첫 번째로 맡게 된 비즈니스니까요.”
말을 마친 필상이 빅토르 위고의 두눈을 뚫어지라 바라보기 시작했다. 두 사람 사이에 무거운 정적이 드리우기를 잠시, 이내 그가 입가에 묘한 미소를 머금은 채 다시금 말문을 열었다.
“정말이지, 더 할 나위 없이 믿음직스럽군요. 그런데 셰프께 묻고 싶은 게 하나 있습니다. 셰프께서는 혹시 에렌과 알폰스 형제가 제 파인 다이닝, 파우스트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아뇨, 딱히 그런 생각을 품고있는 건 아닙니다. 설령 그들이 파우스트를 악화시키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들, 오전에 잠깐 들러 인사를 나누고 서류를 살펴 본 게 전부니 알 길이 없기도 하고요. 그래도 어찌 됐든 파우스트의 현 최고 관리자는 그들 두 사람이니, 현재 파우스트가 겪고 있는 침체에 대한 책임을 완전히 회피할 순 없겠지요.”
이내 필상이 잠시 틈을 두고는 재차 말문을 열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그들 형제를 무조건 내쳐야겠다는 생각으로 인사결정권을 요구한 게 아닙니다.”
“그럼···?”
“행여나 그들이 제 프로젝트의 걸림돌이 된다면 어쩔 수 없이 내쳐야 할 상황이 발생할 지도 모르죠. 하지만, 제가 그들의 인사결정권을 요구한 이유는 그들이 기존의 최고경영자였기 때문이에요.”
그 말에 빅토르 위고가 미간을 살짝 좁힌 채, 계속 말해보라고 재촉하는 것만 같은 눈빛으로 필상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들의 시각으로 바라봤을 때, 저는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이방인’으로 보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더군다나 기존에 셰프 직을 맡고 있던 에렌의 경우에는, 더 쉽게 그런 생각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을 테고요. 그들에 대한 인사결정권은, 쓸 데 없는 마찰을 눈에 띠게 줄여 줄 수 있는 일종의 수단이 되어 줄 겁니다.”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언뜻 살펴 본 바에 의하더라도, 파우스트가 겪고 있는 부진이나 침체의 근본적인 원인은 그들 형제인 것처럼 보였다. 아마 조금 더 세부적으로 조사해본다면 더 많은 문제를 들춰낼 수 있을 터였고 말이다. 파우스트의 미래를 위해. 아니, 자신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그들을 어떻게든 파우스트에서 치워버려야 할 필요가 있었다.
다만, 적어도 지금 당장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들 형제는 곧 촬영하게 될 다큐멘터리의 ‘조미료’가 되어줄 가능성이 농후했으니까.
필상은 이번 다큐멘터리 촬영이 진행되는 내내, 자신이 그들과 대립하고 갈등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줄 요량이었다. 그리고 갈등이 잔뜩 심화되고 고조되었을 무렵에 접어들면, 마치 셜록이라도 된 것 마냥 그들의 실체를 낱낱이 까발린 뒤 그 자리에서 내쫓아버릴 생각이었고.
만약 모든 일이 자신의 계획대로 흘러가 준다면 다큐멘터리라는 프로그램 포멧의 특성상 무조건적으로 발생할 지루함이, 머저리같은 그들 형제 덕에 조금은 해소될 수 있을 터였다.
이윽고, 깊은 상념에 젖어들어 있던 빅토르 위고가 다시금 말문을 열었다.
“무슨 뜻인지 이해했습니다. 좋아요, 셰프꼐서 요구하신대로 파우스트의 경영과 관련된 모든 부분의 권한을 위임해 드리도록 하죠. 어찌 됐든, 가장 중요한 일은 제 첫번째 파인 다이닝 사업이 실패로 끝나지 않는 일일 테니까요.”
말을 마친 그가 씨익 미소를 지어보였다. 명백한 자본주의의 미소였다. 이내 필상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엇비슷한 느낌의 미소로 화답해주었다.
*
다음 날, 정오를 살짝 넘어섰을 무렵. 멜리가 말끔한 오피스룩 차림을 한 채로, 투숙 중인 호텔 룸에 찾아왔다.
“필상, 어제 미팅은 잘 마치셨나요?”
그녀가 룸 안에 발을 들임과 동시에 건에 온 물음에, 필상이 제 어깨를 한 번 들썩여 보이고는 답했다.
“네, 그냥 그럭저럭?”
그리고는 곧장 룸 중앙에 비치되어 있는 푹신한 쇼파 위에 털썩 주저앉으며, 재차 말문을 열었다.
“사실 일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잡담을 훨씬 더 많이 나눈 것 같네요. 일과 관련된 이야기라고 해봤자, 에렌과 알폰스 형제에 대한 인사결정권을 요구한 게 전부였거든요. 그 다음에 나눈 대화들은 전부 잠담이었고요.”
“의외인데요? 그 정도로 많은 잡담을 나눈 걸 보면, 월 스트리트를 종횡무진하는 투자자 겸 사업과와 셰프 사이에도 일련의 교집합이 존재하나 봐요?”
“위고 씨는 어떠셨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저한테는 조금 힘든 시간이었던 것 같네요. 위고 씨가 제게 고전 음악에 대한 지식이 있냐고 물으면, 쩔쩔매다가 그래도 모차르트와 베토벤 정도는 구분할 수 있다고 답하는 식의 대화의 반복이었거든요. 사실 대화가 조금 겉도는 것 같은 느낌도 있었고요.”
한차례 “크큭···.”하고 웃음을 흘려 보인 멜리가, 제 클러치 백 안에서 두툼한 갈색 서류 봉투를 꺼내들며 화제를 전환했다.
“사실 좋은 소식이 있어서 찾아왔어요. 실은 다큐멘터리 제작사 측과의 최종 교섭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거든요.”
“이야기가 잘 풀렸나 보네요?”
이내 멜리가 제 머리칼을 귀 뒤로 슬쩍 쓸어넘겨 보이고는, 설명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우선 다큐멘터리 제작사는 ‘테이스티 아메리카’(Tasty America) 측으로 확정됐어요. 런칭 1년 만에 미국내 요리장르 1위 채널로 자리잡은 곳이죠. 다큐멘터리 촬영이 완료되는대로 즉각 편성・방영될 테고, TV를 통해 몇 번 송출된 이후에는 판권 및 DVD제작을 통해 2차 수익을 발생시켜 볼 예정이에요. 비록 엄청나게 큰 돈이 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마냥 적은 액수는 아닐 겁니다.”
“그렇군요. 그럼 촬영 시작 예상 기일은 대략 언제쯤일까요?”
“그 부분에 대한 협의가 특히 잘 이뤄졌다고 볼 수 있겠네요. 만약 필상이 원한다면 당장 내일부터라도 촬영을 시작할 수 있도록,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쳐뒀다고 하더군요. 사실 이번 다큐멘터리 제작에 관심을 보였던 많고 많은 제작사들 중, 굳이 테이스티 아메리카를 협업 파트너로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 자체가 가장 빠르게 촬영을 시작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거든요.”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네요. 그렇게 진행하도록 하죠.”
그 뒤로는 모든 일이 속전속결로 처리되었다. 멜리가 테이스티 아메리카 측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내일부터 촬영을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곧장 오케이 사인을 받아내는데 성공했으니 말이다.
담당자와의 통화를 마친 멜리가 제 다이어리에 무언가를 적어내려가며, 다시금 설명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말씀하신 대로 내일부터 다큐멘터리 촬영이 시작될 거예요. 내일 아침 8시까지 헤어 아티스트와, 스타일리스트를 룸으로 보내드릴게요. 준비를 마치신 뒤에는, 테리의 도움을 받아 곧장 파우스트로 오시면 될 겁니다. 서류에 기재되어 있는 대로, 필상이 차에서 내려서는 순간을 기점으로 촬영이 시작될 예정이고요.”
멜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필상이 “순조롭네요.” 하고 답해 보인 뒤, 고개를 슬쩍 돌려서는 호텔 통 유리벽 너머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통유리 벽 너머로 맨해튼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였다.
만약 이번 파우스트 건을 잘 마무리 짓는다면. 그러니까, 3개월이란 시간 안에 파우스트의 적자를 해결하는데 성공한다면, 단번에 맨해튼에 위치한 꽤 그럴싸한 파인 다이닝의 오너 셰프로 거듭날 수 있을 터였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훌륭한 기회다. 그러니, 어떻게든 붙잡을 생각이었다.
정말, 어떻게든.
*
다음 날, 파우스트 매장 바로 앞 대로변에 벤츠 사의 검정색 세단 차량 한 대가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멈춰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량 뒷좌석에서 말끔한 정장 차림을 한 필상이 내려섰고, 예정대로 대기하고 있던 전담 카메라 맨이 어깨 위에 큼직한 방송용 카메라를 짊어진 채 그런 필상에게 바짝 다가섰다.
“필상, 반갑습니다. 저는 이번 다큐멘터리 ‘파우스트 챌린지’(Faust Challenge)의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필상과 한몸처럼 붙어다니게 될 전담 카메라 맨 토니라고 합니다.”
“그렇군요. 반가워요, 토니.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필상, 3개월 내에 기울어져가는 레스토랑 파우스트의 적자를 극복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들었습니다. 혹시 지금 심정을 간단하게나마 들어볼 수 있을까요?”
“모든 도전들이 으레 그렇듯, 떨림과 기대감이 공존하는 것 같네요.”
어느덧 문앞에 다다른 필상이 파우스트 안에 첫 발을 내딛던 찰나, 카운터 앞에 선 채 대기하고 있던 에렌과 알폰스 형제가 필상을 한껏 반갑게 맞아주었다.
“필상,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오셨군요!”
카메라를 잔뜩 의식한 듯 보이는 가식적인 태도였다. 마지못해 그들과 한 번씩 포옹을 나눈 필상이, 카메라를 바라보며 두 사람에 대해 소개를 늘어놓았다.
“파우스트를 운영하고 있는 알폰스와 에렌 형제입니다. 형인 알폰스가 홀을, 동생인 에렌이 주방을 관리하고 있죠.”
말을 마친 필상이 까망베르 치즈를 닮은 셰프, 에렌을 바라보며 곧장 물음을 건넸다.
“에렌, 우선 파우스트의 코스 요리를 먼저 맛보고 싶은데 준비해주실 수 있을까요?”
필상의 말에 에렌이 의기양양하기 그지없는 투로 “그럼요.”하고 답해 보인 뒤, 로랜드 고릴라라도 된 것 마냥 제 가슴팍을 힘껏 두드려가며 말을이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파우스트의 요리는 아주 훌륭하다고 자부할 수 있거든요. 다만, 터가 좋지 못했을 뿐이죠. 만약 파우스트가 맨해튼 중심가에 위치해 있었더라면, 지금처럼 적자가 발생하는 일은 절대 없었을 겁니다.”
그 말이 끝맺어지던 찰나, 필상이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자 애써 미소를 지어보였다. 만약 지켜보는 이가 아무도 없었더라면, 건방진 말을 아무렇지 않게 늘어놓는 뻔뻔한 주둥이를 있는 힘껏 후려쳤을 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당당한 태도가 정말 보기 좋네요. 여러모로 기대되는군요. 가장 자신있는 요리들로 구성된 코스를 준비해주시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곧장 준비해 드리도록 하죠.”
말을 마친 에렌이 비장한 표정을 한 채 주방으로 향하기 시작했고, 알폰스가 그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필상이 빈 테이블 한 개를 꿰차고 앉은 뒤 최대한 낮은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들어온지 5분도 안 됐는데, 벌써 너무 많은 문제점이 엿보이는군요. 간판은 뒷골목의 삼류 펍을 연상시키고, 엿 같은 자주색 벽지 때문에 파인 다이닝이 아니라 성인용품점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제기랄, 다닥다닥 붙어있는 테이블들 좀 보세요. 숨이 절로 막히는 것 같지 않아요? 심지어 인테리어 소품들조차 하나같이 별로군요.”
그리고는 텅 비어있는 가게 내부를 한 번 살펴본 뒤 나직이 말문을 열었다.
“잘 보세요. 이제 곧 런치 타임인데도 불구하고 손님이 두 테이블 밖에 없습니다. 얼마나 형편없는 곳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죠. 이곳의 셰프인 에렌은 터가 문제라고 말했지만, 제가 보기에는 인테리어가 훨씬 더 큰 문제처럼 보이는군요.”
“그래도 음식에 대한 자신감은 상당해 보이던데요? 더군다나 이곳의 셰프인 에렌은 명문 요리 대학인 ‘르 꼬르 동 블루’의 졸업생이기도 하고요.”
필상이 토니의 말에 무어라 답하려던 찰나, 알폰스가 에피타이져 메뉴가 담긴 접시를 든 채 테이블 앞으로 다가섰다.
“에피타이져 메뉴인 ‘*훈제연어 브루스케타’(*바게트 빵 위에 치즈, 야채, 연어 등을 얹은 요리)입니다.”
“고마워요, 알폰스.”
짤막하게 답해 보인, 필상이 다시금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서비스 속도 하나 만큼은 흠 잡을 데가 없네요. 자리에 착석한지 몇 분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에피타이져 메뉴가 나왔습니다. 우선 맛을 보도록 하죠.”
그리고는 곧장 브루스케타를 집어 들어서는, 크게 한 입을 베어물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필상의 표정이 점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필상이 입 안에 머금고 있던 브루스케타를 냅킨에 도로 모두 뱉어내기에 이르렀다.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을 정도로 형편없는 맛이었다. 연어는 꽁꽁 얼어붙어 있었고, 인근 마켓에서 구입했을 바게뜨의 식감은 보관 상태가 엉망이었음을 고자질해주고 있는 듯 했으니 말이다.
이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알폰스가 화들짝 놀라서는 되물었다.
“필상, 혹시 무슨 문제라도···?”
“문제?”
신경질적인 투로 되물어 보인 필상이, 제 고개를 좌・우로 거세게 내저어 보이고는 조곤조곤한 투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없습니다. 대단하신 르 꼬르 동 블루 출신 셰프가 만든 음식에 문제가 있을 리가요. 음식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다만, 제 입맛에 문제가 있을 뿐이죠.”
“그, 필상. 만약 문제가 있는 거라면,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말씀을···.”
“연어가 완벽하게 얼어있어요. 아삭아삭한 식감이 정말 일품이로군요. 어찌나 꽁꽁 얼어붙어 있는 것인지, 이가 시리다 못해 쓰라릴 지경입니다. 제가 무인도에 고립되었고, 3일을 내리 굶었다고 하더라도 다시는 먹고 싶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맛이에요.”
알폰스가 벙 찐 얼굴로 “예···?”하고 되묻던 찰나, 필상이 접시를 손끝으로 거세게 두드려가며 으르렁대듯 말했다.
“이 쓰레기 같은 브루스케타 좀 제 눈앞에서 치워주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제가 성질을 못 이기고 접시 채로 바닥에 던져버리기 전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