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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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18 – 주방의 폭군 (3)
“아, 알겠습니다.”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답해 보인 알폰스가, 허둥지둥 접시를 챙겨들려던 찰나. 필상이 대뜸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아뇨, 그냥 제가 직접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말을 마친 필상이 곧장 접시를 챙겨들더니, 곧장 주방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대기 시작했다. 어느덧 주방 안에 들어선 필상이 한차례 “에렌?” 하고 말해 보이자, 한창 다음 요리 준비에 여념이 없던 에렌이 두눈을 휘둥그레 뜬 채 되물었다.
“예···?”
다음 순간, 필상이 손에 들고 있던 접시를 조리대 위에 내려놓으며 재차 말문을 열었다.
“훌륭한 요리를 대접해주신 게 너무 감사해서 도저히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더군요.”
“오, 그랬군요! 다행히 입에 잘 맞으셨나 봅니다.”
“이봐요, 에렌. 부탁이니까, 불만이 있으면 차라리 말로 하세요.”
말을 마친 필상이 손끝으로, 접시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브루스케타를 가리켜 보이며 싸늘하기 그지없는 투로 덧붙였다.
“쫌팽이 마냥 쓰레기같은 음식으로 복수하지 말고, 직접 말하라고요.”
“예···? 지, 지금 뭐라고···.”
“이해하기 어려운 말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다시 말씀드려요?”
에렌의 얼굴이 금세 붉게 물들었다. 이내 그가 흥분한 기색을 좀처럼 감추지 못한 채로, 무어라 답하려던 찰나. 알폰스가 득달같이 끼어들어서는, 타이르듯 조곤조곤한 투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에렌, 일단 들어 봐. 내 생각에는 아무래도 조리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아. 아무래도 훈제 연어가 덜 녹아 있었나봐. 이가 시릴 정도로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고 하시더군. ‘*클레임’(*claim)이 들어와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긴 하잖아?”
말을 마친 알폰스가 에렌의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에렌, 주방에 카메라가 세 대나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
그 말에 에렌이 한차례 긴 한숨을 내쉬어 보이고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여가며 횡설수설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좋아요, 필상. 무슨 말인지 충분히 이해했어요. 하지만 그건 그저 사소한 실수였을 뿐입니다. 아니, 실은 실수라고 말하기도 모호할 정도일지도 모르겠네요. 왜냐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었거든요.”
“그러니 그 말은 완전히 꽁꽁 얼어붙어 있어서 둔기 대용으로 사용하기에도 일절 손색이 없어보이는 ‘연어맛 얼음’을 테이블 위에 내놓을 수밖에 없던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다는 거로군요? 왜요? 누가 당신 목에 칼이라도 들이민 채로, 그 연어맛 얼음을 손님에게 내놓지 않으면 당장 죽여버리겠다고 협박이라도 했나 보죠?”
말을 마친 필상이 터져나오려는 분노를 억누르기 위해, 의식적으로 숨을 길게 몰아쉬기 시작했다.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될 것만 같은 불안감을 좀처럼 떨칠 수가 없었다.
회귀 이전의 삶 속에서 메종 드 조엘의 수 셰프로 일하며, ‘주방의 폭군’으로 불리던 때의 거친 언사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불안감 말이다.
제발 쓸 데 없는 변명을 늘어놓지 않기를 바라며, 옴싹달싹대기 바쁜 에렌의 입술을 뚫어지라 들여다보고 있던 찰나. 에렌이 바짝 말라붙은 제 아랫입술을 한 번 핥아내고는, 필상의 눈치를 살펴가며 조심스레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아뇨, 실은 시간이 부족했어요. 밤새 냉동실 안에 놓여있던 냉동 훈제 연어를 제대로 해동할 시간이 없었죠.”
“시간이 없었다?”
“오늘 출근하자마자 꺼내놓은 훈제 연어가 아직까지 녹지 않았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치 못하기도 했을 뿐더러···.”
그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가러뎐 찰나, 필상이 돌연 조리대 위에 있던 접시를 손바닥으로 거세게 올려쳐버렸다. 그렇게 허공으로 높이 떠오른 접시가, 빙글빙글 몇 바퀴를 연달아 돌다가 바닥에 떨어지며 “쨍-!”하는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 나버리기에 이르렀다. 주방 안에 침묵이 드리우기를 잠시, 필상이 분을 이기지 못한 채 주먹으로 조리대를 몇 번이고 연달아 내리쳐대기 시작했다.
꽝! 꽝! 꽈앙-!
“제발 부탁이니까 그만 떠들어요. 당신, 손님이 클레임을 걸었어도 그렇게 멍청이처럼 변명하고 서있을 겁니까? 병신 머저리 마냥 입으로 꽁알꽁알 변명하고 있을 시간있으면, 차라리 빨리 사과하고 다음 요리에 집중하라고요-!”
“필상, 일단 진정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말씀드렸다시피 시간이 부족했어요. 그리고 사실 브루케스타를 최종적으로 검토하고 내보낸 건 제가 아니라 *수 셰프(*부 주방장) 직을 맡고 있는 ‘브래들리’였어요.”
이내 필상이 주방 안을 한 번 스윽 둘러본 뒤에 되물었다.
“대체 브래들리가 누굽니까?”
피골이 상접한 몰골을 한, 핼쓱한 인상의 청년이 조심스레 손을 들어올려가며 답했다.
“저, 접니다!”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인 필상이 이죽대는 투로 말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눈물나도록 좋은 상사와 함께 일하고 있군요.”
그리고는 에렌에게 몇 걸음 더 바짝 다가서며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신이시여, 개소리만 늘어놓고 있는 등신같은 까망베르 치즈 덩어리를 대체 어떻게 하면 좋죠? 정말이지 역겨워서 더는 못 들어주겠는데 말입니다. 쓰레기통에 플레이팅하면 딱일 것 같은 형편없는 요리를 내놓고는, 눈도 못마주쳐가며 변명만 줄줄이 늘어놓더니, 결국에는 애새끼 마냥 고자질까지 할 줄이야···.”
“이봐요! 말이 너무 지나친 것 아닙니까?”
“잘 들으세요. 저는 절대 여러 번 말하지 않습니다. 아마 이번 기회가 마지막 기회일 겁니다. 함부로 언성 높이지도 말고, 더 이상 변명하지도 마시고요. 그리고 제발 셰프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행동하세요. 주방에서 생긴 문제는 모두 당신 책임입니다. 왜냐면 당신은 셰프니까. 설마 손님한테도 ‘저, 손님. 실은 제가 아니라, 수 셰프의 실수였습니다.’하고 병신처럼 변명하고 있을 게 아니라면, 변명을 하더라도 다음 요리를 통해서 하라고요!”
말을 마친 필상이 미간을 잔뜩 찡그린 채 되물었다.
“무슨 말인지 알아 들으셨어요?”
이내 에렌이 필상의 두눈을 똑바로 응시하기 시작했다.
하나, 그것도 잠시 뿐.
이내 시선을 살짝 내리깐 채로, 엷게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예.”
다름 아니라, 필상에게서 뿜어져 나오고 있는 강렬한 위압감에 압도 되어버린 탓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한 때는 에렌보다 몇 배는 더 화려한 커리어와, 드센 성질을 지니고 있는 요리사들조차. 또 팔・다리가 통나무처럼 두껍고,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란 장정 요리사들조차 필상의 폭언을 듣고 난 뒤면 변기 통에 걸터앉은 채로 소리죽여 눈물을 훔치기 일쑤였으니까.
애초에 적수가 될 수 없는 상대였다.
에렌이 다시금 다음 요리를 위한 준비를 이어나가려던 찰나, 필상이 “아냐, 아냐. 잠깐 멈춰 보시죠.” 하고 말해보인 뒤 주방 상태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필상이 가장 먼저 살펴보기 시작한 것은, 다름 아닌 냉장고였다.
“제기랄,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엉망이잖아? 이게 세균 배양 실험장인지, 냉장고인지 분간이 안 가는군.”
이내 필상이 색이 바라거나, 숨이 잔뜩 죽은 시들한 야채들을 꺼내서는 주방 바닥에 내동댕이쳐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곧장 냉동실 문을 활짝 열었다. 그와 동시에, 필상의 표정이 몇 배는 더 심각해졌다.
“홍합, 바지락, 새우, 연어, 랍스타, 등심, 안심···.”
이번에는 얼어붙어 있는 냉동 식재료들을 하나씩, 하나씩 주방 바닥에 던져대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꽝! 꽝!’하고 둔탁한 굉음이 울려댔다. 이윽고, 필상이 제 앞머리칼을 위로 한 번 쓸어올려 보이고는 분기가 가득 서린 투로 말을이었다.
“대체 엿같은 냉동 식재료나 통조림이 아닌, 생물을 받아 쓰는 재료가 단 한 종류라도 있기는 한 겁니까?”
“그게···.”
“혹시 원가 절감 같은 되도 않는 이유를 들먹일 계획이신 거라면, 그냥 잠자코 입 다물고 계시는 게 좋을 겁니다. 주둥이를 후려쳐 버리게 될 지도 모르겠거든요.”
말을 마친 필상이 주방 바깥에서 곁눈질로 상황을 살피고 있던 홀 직원을 손가락으로 ‘콕’찍어 가리켜 보이고는,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지금 홀에 손님 있습니까?”
“네···.”
“몇 팀?”
“두 팀이요.”
“계산 받지 마세요, 알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손님 받지 마세요.”
“예···?”
이내 필상이 주방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식재료들을 발로 툭툭 건드려가며, 신경질적인 투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이 따위 식재료로 만든 형편없는 요리를 대체 누가 돈 주고 먹고 싶어 할 것 같습니까? 당장 출입문 푯말부터 뒤집어 놓은 다음, 이제 더 이상 손님 받지 마세요. 오늘 영업은 여기서 끝입니다.”
그리고는 에렌을 바라보며 말했다.
“뭐? 파우스트의 음식은 완벽한데, 터가 문제라고요? 정말이지 웃기고 자빠졌군. ‘*베어그릴스’(*Bear Grylls:영국의 모험가)도 먹을 엄두를 못 낼거라는데 전재산을 배팅할 수도 있겠군요. 맨해튼 외곽이 아니라, 중심가에 위치해 있었더라면 적자가 나는 일은 없었을 거라고요? 훨씬 더 심각한 규모의 적자를 겪었겠죠.”
이내 에렌의 표정이 어두워졌음을 확인한 필상이, 제 얼굴을 바짝 들이민 채 비꼬는 투로 물음을 건네기 시작했다.
“기분이 나빠 보이는데, 혹시 제가 틀린 말이라도 했습니까? 파우스트가 그동안 간당간당한 매출이라도 기록할 수 있었던 건, 맨해튼 외곽의 알려지지 않은 파인 다이닝을 찾아 발품을 파는 관광객들 뿐일 겁니다. 다들 하나같이 이곳에서의 끔찍한 식사를 경험한 뒤, 뜻깊은 교훈을 얻어갔겠죠. 이를 테면, ‘제기랄, 다음 여행부터는 육감이 아닌 구글에 의지해야겠어! 그랬더라면 휴가 기간에 거액을 지불하고 쓰레기를 먹는 일은 없었을 텐데!’ 하는 교훈 말입니다!”
그때, 에렌이 제 앞치마를 벗어서는 바닥에 내던지며 분기가 잔뜩 서린 투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헀다.
“제기랄, 정말이지 더는 못 참겠군. 카메라 다 치워. 촬영도 여기서 끝이야. 지금 당장 위고 씨한테 연락해서, 당신이 아닌 다른 셰프를 고용해달라고 요청하겠어. 어차피 내 전화 한 통이면 넌 끝이라고!”
이내 필상이 숨을 길게 몰아쉬어 보이고는 되물었다.
“글쎄요? 다시 생각해보시는 쪽이 좋을 것 같은데요?”
“이미 늦었다. 참아주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라고.”
“제발 부탁드리겠습니다.”
“늦었다고 말했지? 그러게 책임질 수 있는 행동만 했어야지.”
“알겠어요. 그럼 어쩔 수 없죠.”
이내 에렌이 두눈을 휘둥그레 뜬 채, “뭐, 뭐라고요?” 하고 되물었다. 이미 전화를 걸고 있던 것인지, 그의 손에 들린 휴대폰에서 빅토르 위고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는 중이었고 말이다. 잠시 멍하니 서있던 에렌이 정신을 다잡고는,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귓가에 바짝 가져다댄 채 가식적이기 그지없는 투로 말문을 열었다.
“위고 씨, 저 에렌입니다! 죄송합니다만, 혹시 지금 잠시 통화 가능할까요? 다름 아니라,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서요.”
이내 에렌이 주방 바깥으로 나서며, 필상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렇게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닿던 찰나, 그가 승리를 확신할 때나 지어보일 수 있을 법한 비릿하기 그지없는 미소를 지어보였고 말이다.
반면 필상은 조리대 위에 걸터앉은 채, 기지개를 펴대는데 여념이 없을 따름이었다. 이윽고, 자연스레 주방 안에 지독한 정적이 드리웠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에렌이 창백해진 얼굴을 한 채,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라도 된 것 마냥 느릿한 걸음으로 다시금 주방에 들어섰다. 이내 필상이 그런 에렌을 웃는 낯으로 바라보며, 잔뜩 이죽거리는 투로 되물었다.
“저런, 이야기가 잘 안 풀리셨나봐요?”
그리고는 에렌에게, 가까이 다가오라는 듯 손짓을 해보였다. 이윽고, 에렌이 바짝 다가서던 찰나. 필상이 그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나직이 말했다.
“그러니까, 책임질 수 있는 행동만 하셔야죠. 이미 들어겠지만, 오늘부로 파우스트의 최고 결정권자는 접니다. 당장 쫓겨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조용히 찌그러져계세요. 그간의 모든 비리나 횡령까지, 카메라 앞에서 낱낱이 밝혀버리기 전에.”
“그, 그건···.”
에렌의 태도가 마냥 괘씸하게 느껴지기야 했으나, 적어도 아직까지는 내칠 생각이 없었다. 아직 횡령에 대한 사실을 카메라 앞에서 낱낱이 밝혀내지 못했을 뿐더러, 조금 더 들쑤시다 보면 더 자극적이고 추악한 비밀들을 뽑아낼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에렌이 사색을 한 채 우물쭈물대고 있던 찰나, 필상이 에렌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여주고는 덧붙였다.
“에렌, 걱정마세요. 우린 분명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비록 지금 당장은 문제가 많다지만, 차차 고쳐나가면 그만이잖아요?”
말을 마친 필상이 제 손목시계를 한 번 슬쩍 내려다본 뒤, 장내에 모여있는 모두에게 말했다.
“앞으로 한 시간 뒤에, 홀 테이블에 다같이 모여 회의를 진행하도록 하죠. 그때까지 홀・주방의 직원분들과 개별 면담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부터는 아직 미처 끝까지 파헤치지 못한 문제들을 천천히 밝혀 볼 시간이었다. 이곳의 직원들이 터무니없이 적은 월급을 받고 있는 이유와 더불어, 말도 안 되는 월급을 받아가며 매일 고된 강도의 노동을 견디고 있는 이유를 말이다.
비록 정확히 밝혀낸 부분은 단 하나도 없는 상황이라지만, 촉이 말해주고 있었다. 분명, 뭔가 감춰져 있다고.
악취가 물씬 풍기는, 뭔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