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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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19 – 팀 파우스트[Team Faust] (1)
브래들리의 설명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필상의 낯빛이 점차 어둡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사정은 참혹했다. 브래들리는 그동안 자신들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수준의 폭언과, 도를 넘은 폭행에 매일 같이 시달려왔다고 말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본 바에 의하면, 이 정도만 놓고 보더라도 당장 소송을 걸 수 있을 지경이었다. 이미 이 정도만 하더라도 위계질서라는 말로 용서받을 수 있는 수준을 아득히 넘어선 상태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버틸 만 했습니다. 사실 위계질서가 엄격한 주방이라든지, 성미가 드센 셰프의 주방에서는 으레 있는 일이기도 하잖아요?”
필상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자, 브래들리가 한차례 긴 한숨을 내쉬어 보이고는 덧붙였다.
“지, 지, 진짜 문제들은 월급이 대폭 줄어들면서 발생했죠. 가뜩이나 타 레스토랑에 비해 적은 월급을 수령하고 있었는데, 파우스트의 재정 상황이 점점 악화되면서 그 금액이 더 줄어버렸죠.”
“안 그래도 궁금했던 대목인데 고작 그 정도 금액으로, 그것도 물가가 반쯤 미쳐있는 맨해튼 내에서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던가요?”
“아, 아뇨. 저, 절대. 그래도 처음에는 이전에 모아둔 돈을 조금씩 꺼내서 부족한 생활비를 몌꾸는 식으로 버틸 수 있었죠. 물론 오래 버틸 수는 없었지만요.”
말을 마친 브래들리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침울한 눈을 한 채로 허공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뭐지···?”
그런 브래들리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던 필상이, 미간을 살짝 좁혀 보이기에 이르렀다. 그의 두 눈에서 이질감이 느껴졌다. 큼지막한 두눈이 마치 마취주사를 맞기라도 한 것 마냥, 반쯤 풀려있다는 느낌을 좀처럼 떨쳐낼 수가 없던 것이다.
기묘한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은 단연 눈빛만이 아니었다. 어투도 약간 어눌하게 느껴졌으며, 모든 행동. 특히, 손짓이 눈에 띨 정도로 느릿느릿했던 것이다.
“저, 셰프. 아니지, 아직은 셰프가 아니니까···.”
“저는 상관없으니 편한 대로 부르세요.”
“그래요? 셰프, 그럼 셰프라고 부르도록 할게요.”
횡설수설 말해 보인 브래들리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모든 과정을 말씀드리지 않아도 되겠죠? 그러니까, 일부를 생략하고 말씀드려도 되냐는 뜻이에요. 왜냐면 사실 대부분의 ‘몰락’이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잖아요? 어찌 본다면 상당히 뻔하고 진부한 내용일 수도 있죠. 듣는 입장에서도 꽤나 지루하게 느껴지실 테고···.”
어색하게 말려 올라가 있던 브래들리의 입 꼬리가 마치 경련하듯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사실은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거든요.”
이윽고 살짝 벌어진 필상의 입술 틈새로 “아···.” 하는 침음이 흘러나와서는 툭 떨어졌다. 문득 회귀 이전의 삶 속에서, 미각을 잃고 서서히 망가져가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던 탓이었다.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표현보다는, ‘죽어간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적합하던 시절이었다.
당시의 필상은 파리 중심가의 썩 괜찮은 아파트에서, 변두리의 스튜디오로 밀려나는 과정 속에서.
즉, 불과 2년 남짓한 시간 사이에 모든 것을 잃어야 했다. 기존에 영위하던 생활을 시작으로, 폭스바겐 사의 차량, 그간 모아둔 돈, 사랑했던 연인, 심지어 꿈이나 희망내지는 요리에 대한 열망조차···.
본래 추락이라는 게 으레 그렇다. 지면과 가까워질수록 중력가속도가 더 강하게 작용하기 마련인지라, 점점 곤두박칠 치는 속도가 빨라지기 일쑤다. 자신의 추락이 그러했듯, 이들의 추락 역시 그랬을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이 겪고 있는 모든 비극의 시발점이 이들의 아니라, 에렌과 알폰스. 그들 두 형제의 추잡스러운 욕망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들의 욕심이 타인의 삶을 철저히 망가트리고 있었다. 그들 역시 이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기야 했겠지만, 단 한 번도 깊게 생각해보려 든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 분명 그랬을 것이다.
“그래요, 당신의 심정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러니 말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는 전부 빼고 말씀해주셔도 괜찮아요.”
“그럼 모두 생략하고 저희의 현재에 대해서만 말씀드릴게요. 지금은 주방 직원 전원이 맨해튼 인근 지역인 ‘퀸즈’에 위치한 스튜디오(Studio)에 모여살고 있는 중이에요. 거짓말이 아니라, 이 인원이 다 들어서면 발 딛을 틈조차 없는 좁은 곳이죠.”
“그렇겠군요. 그럼 여섯 명이서 스튜디오 임대비를 나눠서 지불하고 있는 건가요?”
“네, 맞아요. 이전에 ‘*베드 버그’(*Bed Bug:벼룩, 미국은 벼룩이 나온 집이라는 걸 법적으로 고지해야 함.)가 출몰했던 이력이 있는 스튜디오라 시세보다 훨씬 싼 값에 입주할 수 있었죠. 집 주인이 천 달러가 넘는 금액을 지불해가며 대대적인 방역을 했다던데, 그래도 입주자가 잘 구해지지 않았나 봐요. 어쨌든, 다행인 점은 아직까지는 간지럼 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거죠.”
이내 필상이 저도 모르게 “제기랄.”하고 중얼대자, 브래들리가 마치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듯 제 어깨를 한 번 들썩여 보이고는 말을이었다.
“조, 조, 조금 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하루하루가 지옥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려야 해요. 쥐꼬리만한 월급을 그나마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면 말입니다. 매달 120불 가량의 교통비를 의무적으로 지출해야 하고, 스튜디오 렌트 비용 및 공과금, 휴대전화 사용요금, 보험료, 그 밖에도 기타 등등···.”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가며 말을 잇던 브래들리가, 돌연 긴 한숨을 내쉬어 보인 뒤에 덧붙였다.
“필수적이라 말할만한 지출을 모두 해결하고나면, 정말 단 한 푼도 남지않아요. 저축은 꿈도 꿀 수 없어요. 이제 숫자라면 정말 넌더리가 날 지경이죠. 그저 버티기 위해서 계산할 뿐이에요.”
“좋아요. 두 형제 덕분에 당신들의 생활수준이 어디까지 떨어진 것인가에 대해서는 충분히 파악한 것 같네요. 그나저나 에렌이 대체 어떤 협박을 하던가요? 대체 어떤 협박을 당했길래, 다들 파우스트를 떠나지 못했던 건지···.”
이내 브래들리가 조용한 어투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에렌은 자신이 마음만 먹는다면 파우스트를 떠난 ’배신자’들이 뉴욕의 어느 레스토랑에도 취직할 수 없도록 만들 수 있다고 했어요.”
“그 말은 2013년의 맨해튼에서 의리나 배신 따위 단어를 들먹였단 말입로군요? 심지어 월급조차 제대로 챙겨주지 못 하면서? 그나저나 대체 어떻게 당신들의 취업을 막겠다는 거죠?”
“에렌의 말에 의하면 뉴욕의 파인다이닝 곳곳에 르 꼬르 동 블루를 함께 졸업한 동문들이나, 모임을 통해 친분을 쌓아 온 셰프들이 잔뜩 포진해있다고 말했어요. 자신의 말 몇 마디 정도면, 며칠도 지나지 않아 해고 통보를 받게 될 거라고 했죠. 그리고 월 스트리트를 꽉 움켜쥐고 있는 파우스트의 오너, 빅토르 위고 씨의 능력이라면 그 범위가 미국 전역으로 확대될 수도 있다고···.”
“못 들어줄 정도로 재미없는 농담이네요. 애초에 에렌에게 그런 대단한 영향력이 있을 리 없을 뿐더러, 빅토르 위고 씨는 그렇게 한가하신 분이 아닙니다.”
“하지만 파우스트의 *쿡(*Cook:정식 요리사) 중 한 명인 테스는 실제로 인근 파인다이닝에 취직했지만, 에렌의 압력으로 인해 채용된지 3일만에 해고당하고 다시 돌아왔죠.”
말을 마친 브래들리가 턱짓으로 수염이 배가 불룩하게 나왔지만, 팔・다리는 앙상한 사내를 가리켜보였다. 이내 그가 멋쩍은 듯 씨익 미소를 지어보였고, 덕분에 누런 이가 훤히 드러났다.
“테스?”
한차례 “네.” 하고 답해 보인 테스가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몇 블록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로열 가든’(Royal Garden)이란 레스토랑에 취직했었죠. 채용된지 3일 만에 해고 통보를 받았지만 말입니다.”
“그럼 혹시 해고 통보를 받던 당시에 어떤 대화가 오갔었는지 기억하고 계신가요?”
잠시 “음···.”하고 침음을 흘려대던 테스가, 기억을 더듬어가며 느릿하게 답했다.
“아마 저한테 에렌이란 셰프의 밑에서 일했던 적이 있냐고 물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답하면 안 될 것 같았지만, 거짓을 말해봤자 금세 들통날 것 같다는 생각에 맞다고 답했고요.”
“그랬더니요?”
“그럼 혹시 이전에 일했던 파인다이닝의 이름이 파우스트였냐고 묻기에, 맞다고 답했더니 돌연 다시는 이곳에 얼씬거리지 말라더군요.”
말을 마친 테스가 누런 이가 훤히 드러나게끔 멋쩍은 미소를 지어보인 뒤 재차 말했다.
“그 뒤로 보름을 폐인처럼 지냈어요. 어쩌면 정말 요리를 포기해야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겠더라고요. 왜냐면 제가 여태껏 배운 일이라곤 이것 뿐이고, 할 줄 아는 일도 이것 뿐입니다. 계속 요리를 하려면 파우스트로 돌아와, 에렌에게 용서를 구하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지옥에 다시 두발로 돌아오셨다는 겁니까?”
“네, 그렇다고해서 꿈을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 다시 파우스트로 돌아온 뒤, 에렌에게 약속을 받아내기도 했어요. 만약 파우스트의 적자 문제가 해결된다면, 그간의 노고에 걸맞는 보상을 해주시겠다는 약속 말입니다.”
이내 필상이 미간을 살짝 좁힌 채 되물었다.
“그 약속이 지켜지실 거라고 믿습니까?”
“지켜져야 해요.”
짤막하게 답해 보였던 테스가, 돌연 입가에 슬픈 미소를 머금은 채 덧붙였다.
“그런 약속 하나라도 없다면, 당장 직면해 있는 현실을 견뎌 낼 자신이 없거든요.”
억장이 무너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장 나이가 많은 브래들리라고 해봐야 고작 스물 아홉 살이었다. 테스는 스물 일곱, 나머지 직원들은 모두 이십대 초반의 청년들이었다.
에렌과 알폰스 형제는 꿈밖에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빨대를 꽂아넣은 채, 꿈을 인질삼아 겁을 줘가며 돈을 갈취해 온 것이다.
세세한 사정을 듣고 나니, 정신이 넝마처럼 너덜너덜해진 것만 같았다. 집무실 한 쪽 벽면에 비치된 거울을 통해 제 모습을 한 번 살펴보았다.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또 방금 롤러코스터에서 내려서기라도 한 것 마냥 머리가 핑핑 도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그때, 브래들리가 재차 입을 열어서는 특유의 어눌한 투로 말을이었다.
“되, 되새겨 보니 정말 처참하기 그지없는 상황이네요. 셰프, 우리는 각기 다른 도시에서 꿈을 품은 채 뉴욕 시에 왔어요. 저는 미시간 주에서 왔죠. 비록 지금은 셰프라는 꿈을 품은 채, 기차에 올라타던 그때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끔찍한 현실 속에 갇혀있지만요. 하지만 더 끔찍한 건 이곳을 도망치다시피 뉴욕을 떠나는 일일 겁니다. 그러니까, 모든 걸 잃고 꿈마저 뒤로한 채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 말입니다.”
한차례 힘없는 미소를 지어보인 그가 덧붙였다.
“그래서 어떻게든 버틸 겁니다. 절대 포기할 수 없어요.”
그때, 일순 그의 눈커풀이 파르르 떨렸다. 이내 그 광경을 포착한 필상이, 의미심장한 투로 물었다.
“혹시 항우울제를 복용 중입니까?”
현재 브래들리가 보이고 있는 여러 증상들. 말투가 어눌하게 느껴지거나, 며칠 내리 잠들지 못한 사람마냥 눈에 초점이 맞지 않고 풀려있다거나, 사고와 행동이 모두 느리다거나, 눈커플이 파르르 떨린다거나 하는 증상들은 항우울제를 복용했을 때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랄 수 있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정량을 초과해서 과도한 양을 복용했을 때 흔히 나타나는 증상 말이다.
이윽고, 브래들리가 어렵사리 답했다.
“예, 셰프. 어떻게 아셨죠?”
“하루에 몇 알 정도 복용 중이죠?”
“평균 서너 알 정도요.”
그 말에 필상의 입에서 짙은 탄식이 새어나오고 말았다. 서너 알이라면, 정량을 아득히 넘어선 양이다. 제기랄, 두 형제가 이들을 완벽히 궁지로 내몰았음이 명확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