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7
7
Chapter3 – 스포트라이트 (1)
1.
“아들, 김치찌개 2인분.”
“넵!”
우렁찬 목소리로 답해 보인 필상이 곧장 김치찌개를 조리하기 시작했다. 대회 참가를 결심한 뒤로 어느덧 며칠이란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 필상은 식구백반에 존재하는 모든 메뉴를 홀로 조리할 수 있게 되었다.
필상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지만, 글쎄? 아버지는 마치 물 위에 놓인 스펀지마냥, 자신의 가르침을 모두 빨아들이는 필상을 지켜보며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것 참, 정말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아네.’
설명 한 번이면 충분했다. 한껏 집중한 채 설명을 듣다가 “제가 한 번 해볼게요.”하고 말한 뒤, 가르쳐준 요리를 곧잘 만들어내기 일쑤였던 것이다. 단연 겉모습만 그럴싸한 게 아니라, 맛 또한 뛰어났고 말이다.
재능.
지난 며칠간, 정순오가 필상을 보며 수도 없이 떠올렸던 단어다. 이쯤 되니, 진작 요리를 배워보라 권하지 않았던 게 후회가 될 지경이었다.
만약 조금만 더 빨리 필상의 재능을 알아차렸더라면? 진즉 제대로 된 요리를 배울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학원을 보내든, 관련 학부가 마련되어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을 시키든, 빚을 져서라도 유명 요리사에게 체계적인 레슨을 받을 수 있게끔 해주든 하는 방식들로 말이다.
‘아니지, 아니야. 괜한 욕심부리지 말자.’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의 변덕이 으레 그렇지 않던가? 갑작스레 불이 붙었던 것처럼, 언제 어떻게 사그라져도 이상할 게 없다. 일단 당분간은 이대로 지켜보다가, 스스로 요리를 진지하게 배워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온다면 그때 가서 고민을 시작해도 늦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이봐, 정 사장!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간단히 걸친 소주 몇 잔 덕에 볼이 살짝 발그레해진 단골손님이 건네 온 물음이었다.
“응? 뭐가?”
이내 단골손님이 흐뭇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이었다.
“어째, 아들이 내주는 음식이 훨씬 더 맛있는 것 같은데?”
같은 자리에 앉은 일행들이 저마다 몇 마디씩 거들어주었다.
“그러게. 그나저나 아들 한 번 잘 뒀어. 얼굴도 훤칠하니 잘 생겼고, 부모님 돕겠다고 매일같이 식당 나와서 일손도 보태주고···.”
“부럽다, 부러워. 대학생 된 우리 아들 놈은 매일 전화해서 하는 말이 용돈 좀 부쳐달라는 말 밖에 없는데 말이야.”
그렇게 한참동안 단골손님들과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나누고 있던 정순오가, 고개를 슬쩍 돌려서는 필상을 바라보기 시작하던 순간. 정순오의 두 눈이,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 마냥 화등잔만해졌다.
“아, 아들. 너, 지금···.”
“네?”
다름 아니라, 아들의 손에 들려있는 ‘책’때문이었다.
– 쉽고, 빠르게 배우는 이태리어
이내 정순오가 한차례 심호흡을 해보이고는 조심스레 되물었다.
“너, 지금 설마 공부하고 있는 거야?”
“네. 한가할 때마다 틈틈히 해보려고요.”
“마, 맙소사···.”
공부와는 아예 담을 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아들이 아니던가? 근래 들어서는 하교 후 식당일을 돕고 있다지만,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정 무렵이 될 때까지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기 일쑤였다. 내색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이따금씩 처참한 성적표를 내밀며 사인을 해달라고 할 때마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갖은 애를 써야했건만···.
“여, 여보! 빨리 와봐!”
“무슨 일이에요?”
“필상이가 지금 공부를 하고 있다고!”
“뭐, 뭐라고요-?”
다급한 걸음으로 주방 안에 들어선 권순향이, 필상의 손에 들린 책을 보자마자 “허···.”하고 낮은 침음을 흘려보였다. 딱 한 사람, 필상만이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 듯 보일 따름이었고 말이다.
“다들 왜 그러세요? 학생이 당연히 공부를 해야죠.”
“그래, 그렇지. 그건 그런데···.”
한차례 어깨를 들썩여 보인 필상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실은, 알아보니까 괜찮은 요리 서적들은 대부분 번역이 안 된 원서라고 하더라고요. 또 나중에 요리를 제대로 배우려면 외국에 나가야 할 수도 있으니까, 외국어 공부라도 미리미리 해둘까 싶어서요.”
이내 두 분 부모님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딱뜨렸다. 마냥 덤덤히 받아들이고 넘기기엔, 지나치게 큰 변화인 듯 보일 따름이었다.
“그럼, 저 주문 들어오기전까지 공부 좀 할게요.”
“응? 어어, 그래. 알겠다···.”
그렇게 대화가 일단락 된 뒤로 얼마나 지났을까? 식용유 통 위에 걸터앉은 채 공부를 하고 있던 필상이, 괜히 제 머리칼을 긁적여대기 시작했다.
다름 아니라, 부모님께서 보여주신 지나치게 과한 반응 탓에, 괜히 멋쩍은 기분이 들었던 탓이었다.
‘공부 좀 하는게 그렇게까지 놀라실 일인가···?’
필상이 갑작스레 이태리어 공부를 시작한 이유는 사뭇 간단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무수히 많은 이들이 서양요리의 중심지라 일컫곤 하는 두 곳이다. 서양요리의 모든 틀이 구축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며, 여태껏 무수히 많은 레시피와 기법이 파생된 곳이기도 했다.
또 애초에 쓸만한 내용을 다룬 요리 관련 전문서적이나, 논문들이 둘 중 한 곳에서 최초발행되는 경우가 부지기수고 말이다.
요리에도 분명히 ‘트렌드’(Trend)라는 게 존재한다.
요리 역시 다른 산업들과 마찬가지로, 유행에 뒤쳐진다면 낙오되기 마련인 것이다.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정보를 입수하고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원서를 독해할 수 있을 수준의 영어와 불어. 또, 이태리어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냥 번역본이 나올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렸다가 보면 되는 것이지 않냐고?
멍청한 발상이다. 일단 요리서적들 중 태반이 업계종사자들만 관심을 기울이는 ‘비인기 서적’인지라, 번역본이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몹시 길 뿐더러 심지어 아예 나오지 않는 경우도 태반이다. 심지어 번역본이 나온다 하더라도, 실무에 대한 기반지식이 전무한 번역가의 손을 거치는 지라 오역이 섞여있는 경우가 다분했고 말이다.
영어, 불어, 이태리어.
이 세개 국가의 언어는 ‘세계적인 셰프’를 꿈꾸기 위한 기본적인 자격요건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만약 이 정도 노력을 할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꿈의 크기를 줄이고 적당한 실력의, 적당한 요리사를 꿈꾸며, 적당량의 노력만 하며 사는 편이 나을 것이다. 어차피 그 정도 각오로는 절대 세계적인 셰프라는 꿈을 이룰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을 한 가지 꼽아보자면 지난 삶에서의 노력과, 오랜 유학생활 덕에 영어와 불어는 이미 수준급으로 구사할 수 있는 상태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태리어 같은 경우 기초적인 문법은 커녕, 간단한 단어조차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말이다.
‘뭐, 꾸준히 공부하다보면 분명 진전이 있겠지.’
한차례 “후우···.”하고 숨을 내쉬어 보인 필상이, 홀 벽면에 거치된 시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속에 품고 있는 꿈의 크기에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주어진 시간을 분 단위, 아니. 초 단위로 쪼개 써야 할 것이다.
고개를 몇 번 내저어 보이는 것으로 정신을 다잡은 필상이, 다시금 교재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2.
마지막 손님이 가게를 늦게 나선 터라, 평소보다 퇴근이 한참 늦어졌다. 청소를 비롯한 이런저런 마감업무를 마치고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오니, 어느덧 자정이 넘어선 야심한 시각이 되어있던 것이다.
“하암-.”
한차례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해보인 필상이, 침대가 아닌 책상 앞으로 향했다. 다름 아니라, 잠들기 직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오늘부로 서울시 전국 요리대회의 참가접수가 마감되었으니, 주최측 공식 홈페이지에 1차 현장예선 관련 공문이 게시되었을 게 분명했다.
딸깍, 딸깍-.
이윽고, 손에 쥔 마우스 버튼을 연신 눌러대던 필상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댔다.
“떴네.”
[ 제 7회 서울시 전국 요리대회 ‘1차 현장예선 진행방식 및 심사기준’ 안내 ]1. 경연 시간은 총 60분으로, 출전 선수의 용모와 복장. 조리 과정 및 위생, 자세와 태도, 준비자세, 조리시간, 기술, 맛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합니다.
2. 참가자 분들은 당일 주최측에서 발표한 주제에 부합하는 요리를 선보여야 합니다.
또한 식재료 역시, 주최측에서 현장에 구비해 둔 식재료만을 사용해야 합니다.
3. 단, 조리도구는 예외적으로 개인 물품 사용을 허가합니다.
이내 필상이 미간을 살짝 꿈틀거려 보였다.
‘흠, 1차 현장예선에서는 참가자들의 기본기를 시험해 보겠다는 건가?’
이는 ‘사전준비’가 아예 불가능한 구조의 진행방식이랄 수 있었다.
1차 현장예선 당일이 되기 전까지는 주최측이 어떤 주제를 내놓을 것인지, 또 어떤 식재료를 구비해놓을 것인지 알 도리가 아예 없는 상황이지 않은가? 미리 대책을 세울 방도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아마 몇몇 참가자들은 미리 이 사실 탓에, 사색을 하고 있을지 모를 노릇이었다. 기본기에 자신이 없다면, 결과를 오롯이 운에 맡겨야 하는 상황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반면, 필상은···.
오히려 입가에 짙은 미소를 머금고 있는 중이었다.
있는 그대로 평가받는 것.
아주 마음에 드는 진행방식이었다.
“그래. 명색이 ‘프로페셔널 부문’인데, 이렇게 진행해야지. 아주 깔끔하고 좋네.”
주최측의 결정이 다른 참가자들에겐 청천벽력같은 소식일지 모른다지만, 글쎄? 적어도 필상의 입장에서 만큼은 양팔을 벌려 환영해 마땅한 일이었다.
어차피 기본기라면 자신있다. 더군다나 필상은 본래 서울시 전국 요리대회 준비와 더불어, ‘중요한 일’ 한 가지를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데, 대회 진행방식 덕에 이제 그 중요한 일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회 준비와 동시에 진행하고자 마음먹었을 정도로 중요한 일이 무엇이냐고?
잠시간 제 양손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던 필상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댔다.
“감각···.”
미각을 잃었던 때 요리와 오래 떨어져 있던 탓인지, 아니면 회귀의 영향 탓인지는 알 수 없다.
감각이 무뎌졌다.
칼질, 팬 돌리기 등. 반복적으로 행하던 일들은 몸이 기억하고 있다지만, 감각은 별개의 문제였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복구해야 한다. 둔해진 혀와, 이제는 전과 달리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는 손의 감각. 또 침전물 마냥 기억의 수면 밑바닥에 가라앉아 버린 무수히 많은 지식들을 다시 건져내야 하는 것이다.
회귀 이전, 전성기 시절 필상의 감각은 잘 벼려진 칼날과도 같았다.
온갖 양념과 향신료로 범벅이 된 음식 속에 들어간 식재료가 평범한 양파인지, 몹시 흡사한 맛을 지닌 ‘샬롯’인지, 혹은 ‘펜넬’인지 확실히 가려낼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뿐 아니라, 이미지 트레이닝(Image Traing)만으로 요리를 할 수도 있었다. 알고 있는 식재료들을 머릿속에서 섞고, 조리한 뒤 꽤 그럴싸한 샘플을 뽑아낼 수 있었다. 정확도 역시 훌륭했다. 직접 조리해 보면 상상했던 것과 엇비슷한 맛을 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는 오랜 시간 훈련을 반복한 덕에 얻어낼 수 있던 감각이다.
절대 쉽게 되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치는 않았다. 이내 필상이 차분한 눈으로 책상 한 편에 놓인 캘린더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서울시 전국 요리대회의 1차 현장예선 당일까지 남은 시간은 앞으로 딱 한달 남짓.
‘한 달이라···.’
잃어버린 모든 것을 되찾기엔 상당히 촉박한 기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당장 필요한 만큼의 감각을 되찾기엔 일절 부족함이 없는 기일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제 ‘예열’(豫熱)을 시작해야 할 시간이다.
아마 예열이 완료될 무렵이면 자신의 화려한 복귀전이 시작될 것이다. 기묘한 일이었다. 주방이 전쟁터라면, 나는 패잔병 신세가 되어 전장을 떠난 패배자에 불과할 것이다.
한데, 왜일까? 도망쳐 온 패잔병 주제에 다시금 전장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피가 뜨겁게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아니, 아니지.
달리 생각해본다면 응당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패잔병에 불과하다지만, 아주 오랜 시간을 그곳에서 승부사로 살아왔으니 말이다.
이윽고.
필상의 두 눈 위에 이채가 서렸다. 주먹에 돌연 불끈, 힘이 들어갔다. 또, 연달아 스산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기대되네.’
서울시 전국 요리대회의 1차 현장예선일까지, 딱 한 달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